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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이서린
파란 20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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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저, 새 - 11
그러나, 꽃 - 12
젖은 발목으로 날아가는 새 - 14
스위치아웃 - 16
자작나무처럼 - 18
곰팡이 - 20
거룩한 계보 - 23
저녁이 온다는 것 - 24
아버지의 꽃 - 26
그대가 나에게 올 때 - 28
북면 - 30
죽음의 기록 - 32
밤이 손금을 읽으면 - 34
왜, 그럴 때 있잖아 지긋지긋해서 슬픈 - 36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에 의한 변주 - 38
울음의 두께 - 42

제2부

즐거운 오독 - 47
꼬리 - 48
존재를 켜 두고 있는 중입니다 - 49
노을의 이쪽 - 50
귀에 남은 그대 목소리 - 52
두둥실, 입술 - 54
에인다는 것 - 55
불그림자 - 56
손암일기(巽菴日記) - 57
곤포 사일리지 - 58
화요일에 비가 내리면을 듣는 날 - 60
불타는 짬뽕 - 61
엄마와 장미 - 62
수돗가에 뜬 달 - 64
뭉클한 나무 - 66
오월 편지 - 68
남겨진 길 - 70

제3부

뻘뻘 - 73
벼락을 피하는 방법 - 74
한낮의 독서 - 76
목욕탕과 눈사람 - 78
저녁의 노래 - 80
그 남자 - 82
종아리 - 84
그래, 눈사람 - 86
여(與) - 87
오동꽃 저고리에 관한 어떤 기록 - 88
피습 - 90
만곡(彎曲) - 92
소사동 팽나무 - 94
그때 나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 96
저녁의 얼굴 - 98

해설 황정산 일몰 그러나 아직 기억은 남아 있다 - 99

저자 소개 1

경남 마산 출생이다. 1995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에 당선했다. 2007년 김달진창원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시집 『저녁의 내부』(2016년 세종 우수도서 문학 나눔 선정), 『그때 나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가 있다. 2016년 세종 우수도서 문학 나눔으로 선정되었다. 날라리인문학 『돗귀』를 집필했고, 밴드 ‘주책’ ‘울림’ 멤버이다. 경남문협·창원문협·경남시협 이사이자 디카시 운영위원, (사)시사랑문화인협의회 부회장, 문학치료·소통·청소년 인성 강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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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2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113쪽 | 182g | 128*208*20mm
ISBN13
9791187756866

책 속으로

수백 개의 입술이

아니, 가늘고 보드라운 수만 개의 입술이

속살대며 떨리는 촉촉한 키스처럼
가만가만 이마에 하나 둘 닿더니
어느새 발등에 미친 듯이 퍼붓고

제발 좀 보라는 듯
나 여기 있다는 듯 애타는 연분홍 사태
소리 없이 펑펑 쏟아지는 눈물 같은
저 고요한 설움을 차마 어찌 밟고 가나요

작별쯤이야

큰소리치던 날들은 벌써 잊었군요
무성한 기약 뒤엔 조그만 혓바닥이 슬프다는 걸
변하는 건 사랑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걸
연인들은 종종 늦게 깨닫는다지요

도무지 거절하기 힘든 따스한 숨이라면요
덧없는 맹세인 줄 알면서도 피우느라 지우느라
밤새 뒤척이는 격정의 봄밤이라면요

숨 한 번 돌릴 사이 사라지더라도
함성처럼 피다 소나기처럼 끝난다 하여도
사랑은요
벚꽃은요
서러움 뒤에 오는 허무라 해도

그러나, 꽃이잖아요
---「그러나, 꽃」중에서

강이 보였다. 목 잘린 산 그림자가 어룽거렸다. 붉은 흙덩이 쏟아 낸 건너편 비탈. 바람이 일으킨 파문에 산산조각 부서지는 물살들. 물에서도 소리가 날 것 같은

서서히 핏물 번지는 하늘. 어린나무를 옆으로 눕히며 바람은 불고 나는 맨발로 모래밭을 걸었다. 발가락 사이사이 파고드는 차가운 모래 알갱이. 푸르스름한 발등을 흘러내리는 부드러운 모래의 기척. 디딜 때마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지구의 단호함에 몰입하면서 성글게 핀 풀들의 의지를 보았다.

걷다가 주저앉아 바라본 강물이 눈높이에서 헤적일 때 아주 잠깐, 강물에 발목을 적신 새와 마주쳤다. 우울한 인간쯤이야, 새는 당황하지도 도망가지도 않았다. 저렇게 작은 몸으로 낯선 공포와 마주하기까지의 시간을 짐작만 할 뿐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까만 콩 같은 눈동자. 흔들림 없던 엄마의 마지막 눈빛이 저러했을까

몹시 여린 발목으로 몇 발자국 옮기다 날개를 펼치는 새. 한마디의 울음을 남기며 새는 날아가고 나는 추운 줄도 모르고 오래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신기루처럼 사라진 새의 잔상. 만약 계속 삶이 이어진다면 생이란

이런 순간일 것이다. 나무가 바람에 몸을 굽히고, 강물은 눈높이에서 흐르고, 발가락 사이 느껴지는 차고 부드러운 모래, 잠깐이지만 마주친 작은 새의 눈망울과 젖은 발목, 잊을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얼굴과 체온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채 견뎌야 하는
---「젖은 발목으로 날아가는 새―섬진강에서」중에서

먼 산이 스윽
한 걸음 다가오고
산머리는
자줏빛으로 바뀌어 가고
거뭇해지는 초록의 표지판 곁
늙은 팽나무
바람을 거두고
고립된 짐승마냥 우두커니
두 눈은 하늘과
땅 사이를 서성이고
어쩌면 무슨 일 있는지 몰라
버스는 아무래도
오지를 않고
죽은 새 보았던
한낮의 기억이
낯선 마을 저녁에
어둑어둑 잠기고
궤도를 이탈한 별처럼
하염없이 기다리다
기다리다
그만 끝날 것 같은

---「그때 나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중에서

출판사 리뷰

그러나, 꽃이잖아요

희망을 가져라, 항상 행복했던 시절을 생각하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좌절과 절망과 비관적 전망을 쉽게 지우지 못하고 살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살면서 우리의 욕망의 좌절을 매일 매 순간 겪으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우리가 느끼는 대부분의 정서는 슬픔과 연관되어 있다. 행복과 기쁨마저도 사실은 이 욕망의 좌절에서 오는 슬픔을 잠시 잊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많은 예술 작품들이 이별과 좌절과 비탄을 주제로 한 슬픔의 정조를 깔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이 슬픔을 과장하면 그것은 감상주의가 된다. 반대로 이 슬픔을 이념적 견결성으로 넘어서고자 하면 그것은 관념적인 정신 승리의 시가 되고 만다. 시는 어쩌면 이 양극단의 중간에서 만들어진다. 슬픔을 오직 언어의 힘으로 견뎌 내려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시가 만들어지고 시가 단단해진다. 이서린 시인의 『그때 나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의 시들에서 우리는 바로 그런 시의 힘을 발견한다.

이서린 시인의 시들은 슬픔의 정조에서 출발한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우리의 삶이 모두 이 슬픔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슬픔은 삶의 모든 영역에 편재해 있고 우리는 이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이서린 시인의 시들은 이 슬픔을 과장하거나 반대로 헛된 희망으로 슬픔을 애써 무시하지 않는다. 그의 시들은 이 슬픔을 마주하고 그 슬픔 속에 들어 있는 기억의 내면을 들여다봄으로써 어떤 새로운 희망과 긍정의 힘을 발견한다. 시는 “울지도 않고” “날지도 않”는 것이다(?저, 새?). 감상적인 언어로 비탄에 젖지 않으면서 초월적인 몸짓의 가식적인 언어로 세상의 슬픔을 지우고 넘어서는 것도 아니다. 단지 결핍이 몰고 오는 슬픔을 “오지게” 견디는 언어 그것이 바로 이서린 시인이 추구하는 시의 언어이다. (이상 황정산 시인?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이서린 시인은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났으며, 1995년 『경남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저녁의 내부』를 썼다. 2007년 김달진창원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때 나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는 이서린 시인의 두 번째 신작 시집이다.

시인의 말

당신을 본다
살아 있다는 기척을 보여 주는 나

어두워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선
완강한 나무처럼
당신은 그렇게 오래 있어라

나,
당신에게 가는 중이니

추천평

사랑이 별거냐. 월촌댁의 김 씨가 농약을 소주병에 털어 넣고 세상 버린 저녁처럼 더 깊은 쪽으로 더 짙은 어둠이 고이는 것일 뿐(「죽음의 기록」), 사랑을 잃고 그 기억의 자리를 맴도는 사내와 그의 개처럼(「존재를 켜 두고 있는 중입니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이 사랑은 멈출 수가 없다. 뼈와 살과 피와 숨이 사랑의 근원이라면 이 열정의 기원은 내 몸이 아니어서 신병 같고 무병 같다. 다른 존재의 감각과 숨결과 넋과 기분에 가닿는 접신술이 몸과 정신을 바꾸는 연애학이다. 유명한 영화의 대사처럼 이 병에는 처방전이 있지만, 허망한 것은 반드시 병이나 숙주 양자 중 하나가 먼저 돌아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시인은 사랑을 이어 나가는 일을 ‘존재를 켜두는 일’이라고 썼나 보다. 바람막이 없이 초를 옮기는 일처럼 어려운 일이어서. 한생이 결국 그렇게 건너는 일이고, 지나고 보면 추억이란 반드시 따뜻한 것이어서 그리운 것만도 아니다(「에인다는 것」).

죽은 남편을 따라갈 독한 마음을 먹었던 엄마가 쓰디쓴 ‘장미’를 세 번에 나눠 피우면서 견디는 것이 사랑이고 삶이었듯이(「엄마와 장미」), 아비와 딸이 함께 걷던 양양한 한때가 있는가 하면(「뻘뻘」) 돌아간 사람을 두고 꼭 한 번만 안기고 싶다고 생각하는 미어지는 한때가 있다(「그 남자」). 이렇게 만상이 이 열병의 때를 지나고 지나서 소사동 팽나무처럼 잎 다 내려놓고 서게 되는 것이리라. 암세포처럼 곰팡이로 칠갑을 하면서 뒹구는 빈집 같은 삶의 한때가 있고(「곰팡이」), 눈앞의 벼랑을 무섭게 응시하면서 비를 맞는 새에게 삼투되는 생의 한때가 있는 것이다(「저, 새」). 그런데, 이상도 하지. 그 마음의 폭풍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풍경을 갖게 되는 것이다. 들판을 건너는 바람의 걸음이 보이는 것이다. 그때쯤, 어떤 어둠은 심연처럼 깊어서 시간도 멈출 것 같은 그때쯤. - 이현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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