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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탁
곰탕·12 서 있는 것들·13 실업·14 외등·15 이빨과 충치·16 반납·17 농부·19 그녀의 고양이·20 정년남자·21 치매2·22 김일태 길을 간다는 것은·24 낙타풀·25 천사를 보았다·26 손을 내밀며·27 눈이 트인다는 것 ― 문해대학·28 뻥 ― 문해대학·29 낙선·30 월아천에서·31 한혈마에게·33 달달한 봄날·34 민창홍 고비考備·36 어머니의 날씨·38 골목, 기울어진 등燈·40 이름에 대한 생각·41 패러글라이딩·44 웰 다잉Well dying·46 밥 먹은 것 같지 않다·48 관음觀淫의 봄·49 까치와 아버지·50 순정영화·52 성선경 적막 상점 11·54 적막 상점 12·55 적막 상점 13·57 적막 상점 14·59 적막 상점 15·60 적막 상점 16·62 적막 상점 17·63 적막 상점 18·64 적막 상점 19·65 적막 상점 20·67 이기영 상식의 시대·70 수면안대·71 잠복·73 논픽션·75 모른 척의 모스 부호·76 아홉 시·78 회색 컬러·79 설원雪願·81 분꽃·82 판화 834 ― 파인텍 고공농성이 끝난 날·84 이달균 고흐 ― 자화상·86 외조부 연계선생 장례일·87 연화열도蓮花列島 지나며·88 망연자실茫然自失·89 생태학 교과서·90 감은사지의 봄·91 난중일기 15 ― 군평선이·92 난중일기 16 ― 객수客愁·93 난중일기 18 ― 초혼제·94 어느 날 홀연히 개마고원에 들어·95 이서린 그러나, 꽃·98 저녁이 나를 그만두게 하였지요·100 젖은 발목으로 날아가는 새·102 오동꽃 저고리에 관한 어떤 기록·104 뭉클한 나무·106 곤포 사일리지·108 불 그림자·110 내 사랑의 방정식·111 외출·112 피습 ― H의 그해 여름·113 이월춘 적멸寂滅·116 다산초당에서·117 다 그렇지는 않다·118 꼴값·119 로맨스그레이·120 분홍이 죽어야 초록이 온다·121 사람이 집이다·122 똥개·123 섬에서 섬을 만나다·125 잠자리의 집·126 ■ 해설 | 이달균 2019, 영상시대를 건너는 ‘하로동선’의 시인들·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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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
출근길에 팔순 노모의 전화를 받았다 애비야 곰탕 한 솥 끓여놨는디 우짤끼고 올 거 같으모 비닐 봉다리 여노코 안 오마 마카 도랑에 쏟아 부삐고 이튿날 승용차로 세 시간을 달려 경북 봉화군 춘양면 본가로 곰탕 가지러 갔다 요 질 큰 기 애비 저 봉다리는 누야 요것은 막내 차 조심혀 잠 오믄 질까 대놓고 눈 좀 붙치고 묵처럼 굳은 곰탕을 스티로폼 박스에 담아오는데 세 시간 내내 어머니가 뒷자리에 앉아 계셨다 차가 흔들릴 때마다 씨그륵 씨그륵 곰탕이 울었다 차 앞 유리창이 부옇다 서 있는 것들 마음을 굽히고 돌아온 날은 서 있는 것들이 먹고 싶다 서 있는 성기 서 있는 소주 서 있는 선인장 서 있는 냉장고 서 있는 당신 서 있는 것들을 먹고 잠들면 꿈도 바짝 발기된다 고개 숙인 새벽이 올 때까지 탱탱하다 실업 공사장 철근공 박 씨 인력사무소에서 돌아와 콩나물 국밥집에서 국밥 먹는다 깍두기 국물을 국밥에 넣고 소주잔 털어 넣는다 녹물 같다 밖에는 철근 같은 빗줄기 땅바닥에 내리꽂히고 콩나물을 씹는데 대가리가 못대가리 같다 스펄 스펄 욕으로 끓는 뚝배기 속 국밥은 참 더럽게 뜨겁다 뜨거워서 고맙다 외등 공간을 휘어서 길을 당겨서 너에게 닿고자 불을 밝힌다 눈먼 사랑 헛발 디딜까 봐 타박타박 오라고 가슴에 단 등 달빛으로 채웠다 먼 데서 오는 사랑아 길목 미리 마중 보낸 마음은 일렁거리는 것도 흔들리는 것도 얼굴 붉게 달아오른 것도 모두 내 고백의 몸짓이다 물 위에 떴거나 나무에 달렸거나 서 있거나 누워 있거나 깜박거리거나 심장의 박동은 그리움의 말씀이다 공간을 휘어서 길을 당겨서라도 너에게 닿고 싶은 몸 밤새 환하다 이빨과 충치 밀접한 관계가 있기까지 참 더러운 것들과 난잡하게 놀았다 시간을 잘근잘근 씹으면서도 혀가 욕을 만들면 꾸역꾸역 밖으로 밀어냈다 질긴 것들을 녹인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로 얻은 훈장 하나 가슴에 달고 이빨이 이빨을 위로하는 이빨 사이로 나오는 말이 너무 아프게 슬프다 반납 가려운 등을 긁는 손의 영역이 자꾸 줄어든다 등줄기 저 안쪽으로 미치지 못한다 내 몸도 손이 닿지 못하는 모서리 먼지 앉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아내의 손을 빌려보지만 아내의 손은 닿아도 힘이 없다 가려움 하나 해소하지 못한다 내 몸에 내 손이 닿지 않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할 때 낡은 고무 호스같이 혈관이 막혀 팔다리가 저려올 때 관절마다 소리를 내며 뼛속까지 황소바람이 기어들 때 비로소 반납해야 할 삶을 생각한다 보송보송한 솜털 같은 시간을 잘 살고 너덜너덜해진 누더기 같은 세월로 갚겠구나 이자도 없이 독촉도 없이 참 잘 썼다 아끼다가도 더러는 헤프게 모자라다가도 가끔은 넘치게 참 잘 살았다 잘 살아서 고맙다 가려운 아내의 등을 긁어주고 나와 담장 모서리에 등을 대고 벅벅 문질렀다 견고한 담장에 맡긴 헐거운 생은 참 시원한데 서산에 걸린 노을이 너무 붉다 피나게 긁은 등줄기 같다 농부 심어놓은 땅콩 모종을 까치가 파먹었다 고민 끝에 다시 심고 그물을 쳤다 떼로 날아온 까치가 그물만 쳐다보다가 날아갔다 그물 안에서 땅콩이 자랐다 그물 안에서 잡초도 자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땅콩보다 잡초가 무성했다 다시 그물을 걷고 잡초를 제거했다 까치가 떼로 날아왔다 고라니도 잎을 뜯었다 농부는 밭둑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비가 오려는지 하늘이 시커멓고 철창에 갇힌 개가 컹컹 짖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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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로동선’의 존재 이유
방금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보고 와 이 글을 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심한 좌절감을 느꼈다. 영상시대의 언어예술인 詩가 시대와 사회에 어떤 빛깔로, 어떤 방향으로 기능할까. 그 영향력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를 고민해 보았다. 이 영화가 제72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력 때문이 아니라 기괴하고 그로데스크한 유머로 펼쳐내는 반전미학은 영화 좀 보았다는 나의 상상력을 여지없이 파괴해 버린다. 물론 예전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를 보고 난 후에도 이와 유사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땐 “일본 원작의 애니메이션에서 영감을 가져온 것”이란 말로 위안을 삼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다르다. 전적으로 한국 영화인에 의해 시나리오가 쓰여 진 것이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블랙유머, 적당한 은유와 B급 유머가 살아 있는 코엔 형제 영화에 열광했지만 「기생충」은 그들의 장점보다 더 압도적으로 위층에 자리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런 영화는 역설적으로 시인을 절망하게 한다. 이제 그 절망감을 설명해야 할 차례다. 한국영화는 신흥사대부의 기세처럼 당당한데 비해 1,000년을 넘게 지속해 온 시는 딸깍발이 정신을 견지하는 퇴락한 선비 같은 느낌을 준다. 한국문단은 숱한 단체 가운데서 가장 평균연령이 높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신인이 수혈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힘든 과정에 비해 대가가 형편없고, 무대 또한 철 지난 바닷가처럼 조명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제력이 모든 것을 정의하는 시대에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시간과 열정을 바치는 청춘은 없다. 그런데 왜 과거(더 거슬러 올라가지 말고 80년대에 포커스를 맞추자)에는 문학이, 문학정신이 한 시대를 지배했을까? 농경사회를 지나 산업화사회에 접어들 무렵, 무서운 정치 폭력에 대항할 무기가 필요했다. 농울 치는 서정의 강물을 끌어오든지, 앞장서서 애끓는 노래를 부르든지, 비분강개의 외침으로 사람들을 모으든지, 어쨌든 지향 없는 이들을 한 궤로 엮을 공간이 필요했다. 저변에 깔린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서정에 호소하는 시만큼 직접적인 것은 없다. 거기에다 학창시절 국어교육은 문학소년·소녀를 길러내기에 충분했다. 이런 대 사회적 정서는 결국 시의 시대를 잉태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보의 홍수 속에 있다. 시보다 훨씬 재미있고 자극적인 동영상들이 넘쳐난다. 언제 어디서든 천만의 관객이 든 영화를 볼 수 있고, 꿈만 같았던 빌보드 차트의 맨 앞을 K팝이 장식한다. 박경리의 『토지』가 국민소설이라고 하지만 완간 본 전체를 완독한 독자가 몇이나 될까. 이런 단순 비교만으로도 ‘문학의 위기’란 말은 이미 식상 그 이상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도 철 지난 바다를 찾아오는 사람은 있다. 그렇다면 그 바다를 지키기 위해 버려진 것들을 양동이에 담는 누군가는 있어야 한다. 바슐라르는 시인의 착각 혹은 자기 오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시는 모든 것을 확대한다. 오래 동안 고치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하찮은 존재가 최상의 희생, 영광의 희생을 찾아 날아가는 것은 -불꽃 중의 불꽃- 태양을 향해서이다.” 이 말은 시인을 향한 최고의 찬사라 할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는 안타깝게도 몽상가의 고독과 대중은 잘 소통되지 않는다. 여기에 ‘하로동선’의 존재 이유가 있다. ‘하로동선’은 그 바다를 떠나지 못한 운명들의 작은 집합체다. 비록 남루하지만 한때 우리가 기대고 동류가 되었던 그 깃발을 지켜내야 한다. 그렇게 훌훌 떠나도 우리는 남아 깃발 흩날리던 시절을 추억하고, 돌아가지 못할 상실감에 젖은 이들을 위무하는 제의를 펼쳐 보이고 싶은 것이다. 시에 의지하고자 한 시대의 공감에선 멀어졌으나 그 질곡을 견디며 살아온 연대의식은 여전하다. 다시 말하면 물리적 여건은 변화하였다 해도 화학적 결합, 즉 감정의 공유는 더 공고해진다. 하긴 이 말 역시 우릴 위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