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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세계 시인선

책소개

목차

1부

호텔 캘리포니아 · 11
불법체류자 · 12
엘리베이터에서 생긴 일 · 14
TV, 혹은 실내에서 그럭저럭 · 16
TV를 보며 신문을 · 18
충혈 혹은 혈안 · 20
건축의 힘 · 22
어떤 싸움 · 24
너덜너덜한 관계 · 26
가물거린다 · 28
명동에서 · 30
무소식으로 · 32
가을은 무성영화처럼 · 34
저수지에서 · 36
겨울, 그곳에서 · 38
내가 없는 봄풍경 · 40
대리석 속에서 · 42
실종, 또는 공원묘지 사람들 · 43

2부

기억에 대하여 1 · 49
죽음에 대하여 · 50
거리, 또 거리 · 52
자동차 안에서 · 54
가면 뒤에서 · 56
막다른 골목 · 58
기억에 대하여 2 · 61
희생에 대하여 · 62
소문에 대하여 · 64
일몰, 그후 · 66
말씀에 대하여 · 68
이방인 · 70
연극이 끝나고 · 72
부전자전 · 74
이방인 · 76
누가 먼저였는지 · 78
흑과 백 · 80
짓이긴다 · 82
들끓는다 · 84

3부

날개를 달고 난 후에야 · 89
외박 진술서 · 92
저금통에 대해 · 94
화장품 병에 대해 · 96
돋보기 놀이에 대해 · 98
창으로 별빛 가득하여 · 100
겨울 빈대에 대해서 · 102
아스피린, 아달린 · 104

해설 소멸, 새 삶을 위한 백지의 ‘여기’/ 김정수 · 106

저자 소개 1

1963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와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에드바르트 뭉크의 꿈꾸는 겨울스케치」로 등단했다. 여러 출판사에서 단행본 기획과 편집을 맡아 일했으며 중앙일보사 출판국의 계간지 『문예중앙』과 시사월간지 『월간중앙』에서 근무했다. 이후 경향신문 편집국으로 옮겨간 뒤 섹션 <매거진X> 취재기자를 끝으로 2001년 직장생활을 정리했다. 시집으로 『에드바르트 뭉크의 꿈꾸는 겨울스케치』(도서출판 청하, 1992년), 『불법,…체류자』(문학세계사, 1995년), 『울다, 염소』(현대시, 2009년), 『검
1963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와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에드바르트 뭉크의 꿈꾸는 겨울스케치」로 등단했다. 여러 출판사에서 단행본 기획과 편집을 맡아 일했으며 중앙일보사 출판국의 계간지 『문예중앙』과 시사월간지 『월간중앙』에서 근무했다. 이후 경향신문 편집국으로 옮겨간 뒤 섹션 <매거진X> 취재기자를 끝으로 2001년 직장생활을 정리했다. 시집으로 『에드바르트 뭉크의 꿈꾸는 겨울스케치』(도서출판 청하, 1992년), 『불법,…체류자』(문학세계사, 1995년), 『울다, 염소』(현대시, 2009년), 『검은 눈 자작나무』(문학수첩, 2018년) 등 네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현재 도서출판 북인(Bookin)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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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2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98g | 153*224*20mm
ISBN13
9791165121259

책 속으로

스모그가 몹시 끼어 바로 앞도 구분 못한다
나트륨 불빛이 조명처럼 그의 머리를
사각으로 비춰준다, 손을 천천히 든다
갈구하는 그의 눈빛이 손끝을 지나고
독백하는 낮은 목소리, 그러나 높아지며

나는 불법,…체류자다…누군가 내게 고―통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았고,…어디로 가느냐고, 나는 답변을 주저했다 지금, 인간의 탈을 쓴 짐승처럼 울면서 순간, 말을…잃는 범죄를 당했다 말은, 가끔은 불편을 초래한다, 이 많은 사람들의 눈이 감시하사…흘끔흘끔 곁눈질하며, 환부(患部)를 드러낸다, 세상…모든 일에 대해…나는 국외자(局外者)이기도 하다 이런, 무책임한…, 지명수배는 아니지만 누군가 미행하는, 듯도 해 시도 때도 없이 놀라…꿍꽝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난, 걸으면 쉬는…기계, 아니다…때론 쉬며 눈물 글썽이며 심장 멈추기도 하는 사람, 혹은 이곳에 없는지도…모른다, 삶에 뜨겁게 동참하고…싶기도 하지만, 왜 이런지 모른다 취했다, 내가 누고 있는 오줌은,…꼭 오뎅국물 같기도 해 내버려둔 세상일들이, 눈에 뒤덮인다, 눈을 녹이면서 얼어붙는, 나의 소외는 내가 만든 것,…수도 있다, 무엇이든 흔적도 없이,…없앨 수도 있을, 나의 슬픈 무력함…의심해본다

밤 깊음, 동시에 새벽도 깊고
그는 이 깊음 위를 표류한다
잠시도 쉬지 못할 노동을 지고
한가한 오늘이 또 그에게 넘어온다
---「불법체류자 ― 시네마 서울」중에서

밤은 깨어 있는 힘으로 잠들려는 나를
못살게 군다, 나는 다시 깨어나려는
힘에 붙들려 잠들지도, 깨지도 못한
어정쩡한 상태로
물을 휘감고 있는 야광 불빛 가물한 점점을
바라본다, 벌써 서너 시간 동안
나를 묶어놓은 몇 마리 고기들이
살림망 틈을 비집고 바라본다

물기 없는 떡밥을 이기며
물에서 풀어진 떡밥을 먹은
보이지 않는 플랑크톤을 먹는
새우가 붕어를 먹고,
한가로이 혹은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붕어를 잡아먹은 인간인 내가
이 저수지 한쪽에서 실족하면
물 속 깊숙이
넉넉하게 잠겼다가 부패할 대로 부패하여
누웠는데, 언젠가 내 뱃속에 숨었던
플랑크톤들이 떡밥 풀어지듯 풀어져
나를 뜯어먹는다, 고통도 없는

잠깐 선잠 들었던 내가 밤의 발길질에 깨어
물에 비친 나를 바라보니 내가
잠긴 물 속에서 낚싯바늘을 쪼고 있다
앗! 입질이…
물 밖의 내가 나의 입을 꿰기 위해
힘차게 낚싯대를 든다
물안개 잔뜩 피어 앞이…
---「저수지에서 ― 시네마 서울」중에서

새 삶에 이를 것이다
새 삶에 이를 것이다
새 삶에 이를 것이다
세월이여, 끊이지 않는 바람

새 삶에 이를 것이다
새 삶에 이를 것이다
새 삶에 이를 것이다
바람이여, 상처 많은 나뭇가지

새 삶에 이를 것이다
새 삶에 이를 것이다
새 삶에 이를 것이다
가지여, 끝에 매달린 반딧불 영혼

얼마를 돌고 도는가, 그 손쉬운 죽음
이르는 길 누구는 어느새
다른 죽음을 살고, 다시

새 삶에 이를 것이다
새 삶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다시 머릿속 사막을 걷는,
모랫바람만 내쉬는 눈먼 낙타처럼
걷다가 죽음에 이를 것이다

세포들에, 죽어가는 나는 묻힌다
그 어지러운 분열이 뒤섞여
또 다른 나를 대신할 것이다

---「죽음에 대하여」중에서

출판사 리뷰

‘소멸’이란 존재론으로 자유에 접근한 조현석 시집 『불법,…체류자』

198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에드바르트 뭉크의 꿈꾸는 겨울스케치」로 등단했던 조현석 시인이 25년 전에 발간했던 두 번째 시집 『불법,…체류자』를 현대시세계 시인선 125번으로 재출간했다. 조현석의 두 번째 시집 『불법,…체류자』와 첫 시집 『에드바르트 뭉크의 꿈꾸는 겨울스케치』에서는 공통적으로 불안한 미래와 사회, 사람을 불신하는 도시 소시민의 삶을 드러낸다. 전통적인 권위를 배척하면서 현대문명과 도시 감각을 화두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시는 모더니즘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비시적(非詩的) 요소와 현대문명(現代文明)”(김현, 김수영 시집 『거대한 뿌리』 해설)을 과감히 도입하면서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비시적 요소와 현대문명을, 도입하기 위해서 도입하는 태도까지 비판”한 김수영의 시정신에 맥이 닿아 있다. 모더니즘이 혁신적이지만 개성보다는 전통과 보편성을 중시한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를 거부하면서 개성·자율성·다양성·대중성 등을 존중하는 특징이 있다.

김수영의 시가 자유를 시적 탐구대상으로 삼은 데 반해 조현석의 시는 자유를 서로를 옭아매고 있는 부자유에 대한 시적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김수영이 4·19 이후 혁명에 관심을 가진 것처럼 조현석은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쳤던 6월항쟁 이후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사회정의에 관심을 둔다. 하지만 급격한 사회변혁은 엄청난 변화속도와 무차별적인 광역성 때문에 의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다. 이처럼 불안한 상황에서 김수영은 ‘본다’라는 행위로, 조현석은 ‘소멸’이라는 존재론으로 자유에 접근한다.

조현석의 시에서 ‘소멸’은 시집 제목이기도 한, ‘불법체류자’라는 인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시집 1부에 수록된 18편의 ‘시네마 서울’ 연작은 당연히 영화 〈시네마 천국〉을 패러디한 것이다. 극장 시네마 천국이 영화라는 가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공간인 것처럼 시인이 살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도 영화 속 세상과 다름없다는 설정이다. ‘시네마 서울’ 연작은 이글스의 노래 〈호텔 캘리포니아〉를 시작으로 TV와 비디오를 보고 신문을 뒤적이며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는 내부 세계와 자본주의 물결이 넘쳐나는 명동, 역전 광장 그리고 서울을 벗어나 저수지, 민둥산, 공원묘지까지 확장된 외부세계를 촘촘하게 다루고 있다. 조현석 시인은 표제작 「불법체류자」에서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도시의 일상과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자신을 “국외자이기도 하다”고 고백한다. 불확실한 미래, 부유하는 삶, “열려라 웃음천국, 사이사이로/ 펼쳐지는 현실은 사실은 지옥”(「TV를 보며 신문을」)에서 마주한 것은 ‘어둠’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덮인 후에야/ 오늘 나의 외출은 종말을 고”(「날개를 달고 난 후에야」)한다. 시인이 그 어둠 속에서 마주한 세상은 ‘죽음’이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에게 “인생은 영화와 달라. 훨씬 더 힘들지”라면서 더 큰 세상으로 떠나라고 충고해주는 알프레도 같은 인생 선배가 필요하지만 주위엔 아무도 없다. 격한 감정 탓에 시의 숨은 거칠고, 결엔 날이 서 있다. “이젠 서로의 다른 미래가/ 끝모를 곳으로 나란하게 펼쳐”(「겨울은 무성영화처럼」)질 것임을 의심하면서 어둠 속에서 죽음을 떠올린다. 죽음에 대한 시인의 인식은 “새로운 부활”(「가면 뒤에서」)이면서 “불멸”(「소문에 대하여」)이다. “새 삶에” 이른다는 것은 죽음이기도 하고, 이에 이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인은 의심한다. 삶과 죽음 가운데 어느 것이 진짜인가. 현재를 살고 있는 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내가 사는 세상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죽음 이후 다시 “새 삶에 이를 것”이라는 사실과 현생의 나는 누구이고, 내생의 내가 과연 나일까. “사방 모두 백색, 생소한 곳”(「아스피린, 아달린」)에서의 “오늘 일기는, 여기서, 백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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