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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공제
북학의
앞선 기술과 무역으로 백성을 이롭게 하라
박제가 원저 손주현정소영 그림
파란자전거 2021.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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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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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글쓴이의 말 :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눈과 열린 마음

제 1 부 『북학의』를 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다섯 가지
1. 18세기 세계와 그 안의 조선
2. 강하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자
3. 박제가는 누구인가?
4. 박제가와 친구들
5. 『북학의』는 무엇을 담았나?

제 2 부 잘사는 백성, 강한 나라를 위한 『북학의』
서문
박지원이 쓴 서문
서명응이 쓴 서문

내편
수레/배/성곽/벽돌/기와/사기/삿자리/가옥/창문/바닥돌(階?)/도로/다리/가축 기르기/소/말/나귀/말안장/말먹이 통/시장/장사/은/돈/철/목재/여자 옷/마당놀이/중국어/통역/약/장/도장/깔개/저보/종이/활/총과 화살/자/문방구/골동품과 그림

외편
밭/거름/뽕나무와 과일/농사와 누에치기에 대한 전체적인 이론/과거 제도에 관하여 1/과거 제도에 관하여 2/과거 제도에 관하여 3/북학이란 무엇인가 1/북학이란 무엇인가 2/북학이란 무엇인가 3/관직과 녹봉/나라의 재물에 관하여/중국 강남 절강 상선과의 무역에 관하여/장례에 관하여/군대에 관하여/정통 한족 문명만 존중하는 태도에 관하여/병오년 박제가가 임금께 올리는 의견

진북학의
『북학의』를 임금께 올리며/수레/밭/거름/뽕나무/농기구/철/볍씨/곡식의 이름/땅의 이용/물대는 논/물대기/전업 농사꾼/구전법/모내기/고구마 심기/천박한 이익/유생 추리기/국경 관아에 딸린 논밭에 드는 비용/물길의 관리/창고 만들기/배/‘불, 물, 나무, 흙, 쇠 등 기본 재료가 제 기능을 못 한다.’는 말에 대한 의견/번지와 허행/영원히 사는 방법

연보

저자 소개3

원저박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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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자로 연암 박지원과 함께 18세기 북학파의 거장이다. 본관은 밀양, 자는 차수(次修)·재선(在先)·수기(修其), 호는 초정(楚亭)·정유·위항도인(葦杭道人)이다. 1778년 사은사 채제공의 수행원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북학의』를 저술했다. 정조의 서얼허통(庶孼許通) 정책에 따라 이덕무·유득공·서이수 등과 함께 규장각 검서관이 되었다. 박제가는 키가 작고 다부진 체격이었으며, 수염이 많았다. 농담을 잘하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직선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후배이자 검서관 동료인 성해응(成海應)은 박제가 사후에 박제가의 성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초정은 뛰어난 재
조선 후기 실학자로 연암 박지원과 함께 18세기 북학파의 거장이다. 본관은 밀양, 자는 차수(次修)·재선(在先)·수기(修其), 호는 초정(楚亭)·정유·위항도인(葦杭道人)이다. 1778년 사은사 채제공의 수행원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북학의』를 저술했다. 정조의 서얼허통(庶孼許通) 정책에 따라 이덕무·유득공·서이수 등과 함께 규장각 검서관이 되었다. 박제가는 키가 작고 다부진 체격이었으며, 수염이 많았다. 농담을 잘하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직선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후배이자 검서관 동료인 성해응(成海應)은 박제가 사후에 박제가의 성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초정은 뛰어난 재능을 자부하여 남의 뒤를 좇아 움직이려 하지 않고 자기 천성이 가는대로 스스로 터득했다. 말을 꺼내면 바람이 일어 그 예리한 칼날을 거의 맞설 수 없었다. 그를 힐난하는 자가 나타나면 기어코 꺾으려 애썼다. 그런 탓에 쌓인 비방이 크고도 요란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끝내 덮어 버릴 수 없다.” 박제가의 오만하고 직선적인 성격과 강한 자부심, 호승심(好勝心)을 지적했는데 그를 용납하지 않는 적을 많이 만들어 낸 요인을 성격과 자부심 탓으로 돌리고 있다. 충분히 수긍할 만한 지적이다. 게다가 박제가는 서자였다. 내로라하는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서자인 처지에 이런 성격과 능력과 태도를 지녔으니, 그는 주변에 숱한 적을 만들면서 문예와 학문에 종사한 것이다. 『북학의』에 표출된 선명하고 선이 굵은 주장은 그런 성격과 태도에도 잘 부합한다. 저서로는 『정유집』, 『북학의』, 『정유시고』, 『명농초고』明農草稿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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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에서 국어와 예술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어린이 학습과 관련된 회사도 다녔습니다. 어린이와 함께하는 것을 더 찾아보다 동화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어린이가 옛것을 통해 바른길을 찾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지요. 『창경궁에 꽃범이 산다』로 제23회 MBC 창작동화 장편부문 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지은 동화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귀신 잡는 감찰 궁녀』, 『조선 과학수사관 장선비』, 『백제의 신검 칠지도』 등이 있고, 『동물원에서 만난 세계사』, 『요리조리 세계사』 등의 정보책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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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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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여자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한겨레 일러스트레이션 학교 그림책 과정을 마쳤습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는 『아들에게』, 『딩동딩동 편지 왔어요』, 『나는 우리 마을 주치의』가 있고, 『나는 그냥 나예요』, 『난 원래 공부 못해』, 『산에서 놀자 숲에서 놀자』, 『꼬끼오, 새날을 열어라』 등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커리를 잘 만드는 인도인 남편과 함께 파주에 살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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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3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87쪽 | 408g | 188*230*12mm
ISBN13
9791188609604
KC인증
kc마크 인증유형 : 적합성확인

출판사 리뷰

기만적인 현실을 비판하고 미래를 내다본
개혁 사상가 박제가

조선 후기의 정치가이자 외교관, 북학파의 대표적 사상가로 알려진 박제가는 어린 시절부터 늘 입에 붓을 물고 다닐 정도로 책 읽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서자라는 신분의 한계로 일찍부터 벼슬에 대한 기대는 접어야 했다. 벼슬은 힘들어도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던 아버지마저 일찍 죽자 박제가는 가난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실감하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서자로서의 신분적 한계와 일찍부터 그가 겪은 가난은 훗날 박제가가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백성의 고된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개혁 정책을 마련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청년기의 박제가는 스승인 박지원과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홍대용 등 실학파 동료와 어울리며 자신의 생각을 더욱 확장시켜 나간다. 그리고 1778년(정조 2년) 청나라로 파견되는 사신단의 수행원으로 꿈에 그리던 북경 땅을 밟는다. 북경에 가서 직접 본 청나라의 발전상은 박제가를 충격에 빠뜨렸다. 청나라를 오랑캐라며 깔보던 조선 사회의 편견과는 달리 당시 청나라는 동아시아 최고의 선진국으로 경제와 문화, 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조선보다 월등했다. 북경의 여러 중국 지식인들과 학문을 교류하면서 그곳의 풍속과 문화, 제도를 자세히 살피고 돌아온 박제가는 곧바로 《북학의》를 집필하게 된다.
십 대를 위한 고전 파란클래식의 스물일곱 번째 책 《북학의》는 선진국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여 백성을 잘살게 하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자 한 박제가의 개혁 사상이 담긴 책이다. 윤리와 도덕만 앞세운 성리학 일변도의 학문 풍토와 공리공론만 일삼는 폐쇄적인 조선 사회에서 박제가는 새로운 사상과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해, 사회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고자 한 개혁 사상가였다. 사회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휘둘리지 않고 항상 열린 마음으로 자신이 처한 현실을 개선하려 한 박제가의 삶을 대하는 태도는 오늘날까지도 역사를 뛰어넘는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

당대 실학자들의 고민과 직접 보고 느낀 것을 녹여 낸
조선 최고의 개혁 사상서

박제가는 총 네 차례 북경을 방문하는 동안 청나라의 제도와 문물을 허투루 보지 않았다. 그들의 풍속 가운데 조선 사회에 적용하여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제도나 문물을 쉼 없이 관찰하고 글로 기록하면서, 그것이 실제로 조선 사회에 적용되었을 때 어떤 이점이 있고, 따르지 않으면 무슨 손해가 있는지도 충실히 덧붙였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바로 《북학의》다. 《북학의》는 박제가 자신의 학문적 능력과 열정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등 같은 시대를 살아간 지식인들과 수없이 토론하고 고민한 시간들을 함께 녹여 낸 실학사상의 총체라 볼 수 있다.
제목 그대로를 놓고 보자면, ‘북학北學’은 북쪽, 즉 청나라의 앞선 문물을 배우자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박제가는 중국을 앞세워 서양, 일본 등 ‘선진국의 앞선 문물을 배우자’고 주장한다. 당시 청나라는 아시아 최대 강대국으로, 경제와 문화, 국방 등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조선보다 월등히 앞서 있었고, 그 안에는 세계의 앞선 기술과 문물이 다 모여 있었다. 하지만 조선의 지배층은 청나라를 오랑캐의 나라라 무시하며 청나라의 발전한 모습에도, 조선의 낙후한 현실에도 모두 눈을 감은 채 변화를 거부했다. 북경을 방문해 청나라의 실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접한 박제가는 청나라가 그렇게 앞설 수 있던 이유를 파헤쳐, 그들이 받아들인 앞선 제도와 문물을 배워 국력을 키우고 궁극적으로는 백성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들을 제시한 것이다.

세상에 실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길
백성이 잘사는 부강한 나라를 위한 계획

박제가는 먼저 세계를 향해 문호를 열어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물품을 사고파는 통상 교역과 상업’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조선은 전통적으로 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나라로 상업 활동을 천시했다. 박제가는 상업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상업으로 물품 거래가 활발해지면 농업 생산도 더욱 활발해진다고 보았다. 우물의 물을 자꾸 퍼 올려야 물이 다시 채워지듯 소비가 늘어나면 물품과 돈이 더 활발하게 유통된다는 것이다. 나라의 근간인 농업 생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청의 기술을 배워 ‘우수한 농기구를 만들고 농업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수레를 사용해 유통을 활성화하는 등 ‘산업 기반 확보’에도 신경을 썼다. 우수한 도구와 기술로 농업 생산량을 늘리고, 교통수단인 수레 등을 이용해 유통 경제를 활성화할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또한 정조에게 올리는 글에서 박제가는 조선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가난’이라고 하면서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으로 다른 나라와의 통상을 제안한다. 일본과 유구, 안남, 서양의 여러 나라들이 중국과 활발히 교역하는 사례를 들며 조선에서 흔히 나는 물건을 다른 나라에 비싸게 팔 수 있다면 백성이 잘살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주장한다. 교역을 통해 앞선 기술과 문물을 들여와 조선의 잘못되고 낙후한 제도를 고칠 수 있다면 우물 안에 갇힌 조선 선비들의 꽉 막힌 생각을 깨고 백성 또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문물과 제도뿐만이 아니라 사회 제도적인 면에서도 박제가는 ‘서얼 제도와 과거 제도 등의 사회적 폐단을 강력히 비판’하며, 잘못된 제도와 관습 때문에 인재를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되고 결국 조선의 발전을 가로막는 길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박제가가 이토록 북학을 주장한 까닭은 바로 ‘백성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이용후생) 하기 위함’이다. 중국을 배워야 하는 이유와 더불어 학문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 또한 민생의 관점에서 백성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낙후한 경제를 일으켜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는 강력한 나라를 만들어 누구라도 고도의 문명을 향유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박제가가 북학을 통해 실현하고자 한 궁극적인 목표이자 꿈이었다.

개혁과 개방으로 끊임없는 변화를 꾀하다
250년 전의 고전이 던지는 질문

파란클래식의 《북학의》는 크게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조선 후기 사회의 시대 상황과 박제가의 생애, 《북학의》가 탄생한 사상적 배경 등을 다양한 사진 자료와 함께 쉽고 재미있게 알아본다. 2부에서는 《북학의》 원전을 읽기 쉽게 풀어서 담았다. 크게 수레, 배, 성곽, 벽돌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구와 시설에 대한 내용을 담은 〈내편〉과 농사 이론, 과거 제도, 북학론, 무역론 등 농업 기술과 상업 진흥, 무역의 필요성을 설명한 〈외편〉, 임금께 올린 진상본 〈진북학의〉로 구성된다. 어려운 옛 용어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거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현대어로 다듬었으며 흥미로운 일러스트를 곁들여 읽는 즐거움을 더했다.
외국의 발달한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상업과 무역, 유통 구조를 개선해 소비를 촉진하고자 한, 당시로서는 다소 파격적이던 박제가의 주장은 시대를 한발 앞서 나간 것이었다. 그래서 박제가와 같은 실학자들의 개혁 개방 정책은 당대에 끝내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조선은 세계로 향하는 문을 더욱 단단히 걸어 잠그며 폐쇄적인 정책으로 일관했다. 그 이후 조선이 어떤 역사적 아픔을 겪을지를 생각한다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항상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이 처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의 대안을 마련하고자 했던 박제가의 학문적 태도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현실에 안주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면 개인과 사회는 발전하기 힘들다. 미래를 이끌 십 대들이 《북학의》를 통해 주목해야 할 것은 250년 전 한 지식인의 불손한 태도가 아니라, 사회를 보는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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