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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정치 철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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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글쓴이의 말
이간을 이해하기 위한 정치 철학서《군주론》

제1부 《군주론》을 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5가지
1. 천재들의 도시, 꽃의 도시 피렌체
2. 피렌체의 명문 메디치가
3. 마키아벨리의 생애
4. 《군주론》의 탄생 배경
5. 영원한 고전《군주론》

제2부 근대 정치사상의 기틀을 마련한 최초의 정치 이론서《군주론S》
헌사
1. 군주국이란 무엇인가?
2. 군주에는 어떤 인물들이 있을까?
3. 군주국을 다스리는 수단
4. 위대한 군주가 되려면
글을 마치며
연표

저자 소개 3

니콜로 마키아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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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colo Machiavelli,Niccolo di Bernardo dei Machiavelli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자 탁월한 정치이론가. 이탈리아(피렌체)의 관료이자 외교관이자 군사 전략가였으나, 말년의 저술로 정치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몰락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기록은 많지 않은데, 변변치 않은 교육 환경에서 홀로 역사와 정치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시절에는 말직으로 근무하다가 서른 살이 되어서야 80인회의 사무국의 서기에 임명되었고,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곧 10인군사위원회의 사무국장과 서기를 맡았다. 1492년 피렌체가 ‘위대한 로렌초(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사망으로 통치력 부재 상황을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자 탁월한 정치이론가. 이탈리아(피렌체)의 관료이자 외교관이자 군사 전략가였으나, 말년의 저술로 정치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몰락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기록은 많지 않은데, 변변치 않은 교육 환경에서 홀로 역사와 정치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시절에는 말직으로 근무하다가 서른 살이 되어서야 80인회의 사무국의 서기에 임명되었고,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곧 10인군사위원회의 사무국장과 서기를 맡았다.

1492년 피렌체가 ‘위대한 로렌초(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사망으로 통치력 부재 상황을 맞았을 때,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의 외교관으로서 국운이 풍전등화인 피렌체를 살려내려고 강대국 사이를 필사적으로 오갔고, 국제 정치의 민낯을 낱낱이 목격하며 ‘강한 군대, 강한 군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교황청에 사절로 파견갔다가 만난 발렌티노 공작(체사레 보르자)에게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해줄 강력한 신생군주의 역할을 기대했지만 체사레는 맥없이 병사해버렸다. 마키아벨리는 시민군 양성을 추진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메디치 가문이 군주로 돌아오자 공화국의 일꾼이었던 죄로 감옥에 갇혔다. 이후 특별사면을 받고 나와서 새 군주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필요한 경우에는 비도덕적인 수단도 행사해서 평화를 지키는 강력한 지도자가 되어라’는 조언을 담은 『군주론』을 썼다.

1506년에 피렌체 시민군의 조직을 계획하여 이듬해 9인위원회의 서기장이 되어 피렌체의 정복 전쟁에서 군대를 양성하는 책임을 맡았다. 1512년에 공직을 떠난 그는 산 카스치아노 근처의 저택에서 집필하며 루첼라이 가문의 소유인 오르티 오리첼라리 정원에서 여러 문인을 만났다. 이때 그는 메디치가의 요청을 받아 주로 통치론에 관한 글을 써 권력자들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그는 불우한 말년을 보내다 1527년에 사망했다.

대표 저서로는 『군주론』을 포함하여 『카스트루치오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결혼한 악마 벨파고르』, 『리비우스 역사 논고』, 『만드라골라』, 『우리나라의 언어에 관한 연구 또는 대화』, 『이탈리아 10년사: 1494~1504』, 『전술론』, 『카피톨리』, 『클리치아』, 『트리시노』, 『프랑스 사정기事情記』, 『피렌체 정부 개혁론』, 『피렌체사』, 『황금 나귀』, 『후회에 대한 권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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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호수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공부했다. 번역가이자 한양대 국제교육원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2년 단편소설 「십자수」로 근로자 문화 예술제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뮌헨 국제 청소년도서관(IJB)에서 소속 연구원으로 어린이 및 청소년 문학을 공부했다. 그동안 쓰고 옮긴 책으로는 『토머스 모어가 상상한 꿈의 나라, 유토피아』, 『얼음 공주 투란도트』, 『우리 음식에 담긴 12가지 역사 이야기』, 『둥글둥글 지구촌 음식 이야기』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윔피 키드』 시리즈,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 『위저드 오브 원스』 시리즈, 『멀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공부했다. 번역가이자 한양대 국제교육원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2년 단편소설 「십자수」로 근로자 문화 예술제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뮌헨 국제 청소년도서관(IJB)에서 소속 연구원으로 어린이 및 청소년 문학을 공부했다. 그동안 쓰고 옮긴 책으로는 『토머스 모어가 상상한 꿈의 나라, 유토피아』, 『얼음 공주 투란도트』, 『우리 음식에 담긴 12가지 역사 이야기』, 『둥글둥글 지구촌 음식 이야기』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윔피 키드』 시리즈,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 『위저드 오브 원스』 시리즈, 『멀린』 시리즈, 『구스범스 호러특급』 시리즈, 『생리를 시작한 너에게』, 『팍스』, 『베서니와 괴물의 묘약』, 『공부의 배신』 『누나는 벽난로에 산다』 등 30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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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신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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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우연히 그림책을 접한 뒤 그림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한양여자대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노라노라’ 전, ‘펜으로 떠나는 동화여행 전’ 등 여러 전시회에 참여했으며, 《부엉이와 올빼미》 《헨젤과 그레텔》 《꼬마 동물 친구들의 선물》 《세 마리 토끼를 잡는 독서 논술》 《초등 국어교과서》 등 다양한 어린이 책에 삽화와 일러스트 작업을 했다. 어린이들이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따뜻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7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56쪽 | 379g | 153*224*20mm
ISBN13
9788994258454

출판사 리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 철학자 마키아벨리가 지은 《군주론》은
인간의 본성과 정치에 대한 현실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한 정치 철학서입니다.


파란만장했던 마키아벨리의 생애
권모술수가, 냉혹한 정략가, 악마의 사도, 절대 군주제 신봉자,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를 마련한 정치 공학자, 민주 공화정 신봉자... 한 사람의 사상이 이처럼 상반된 평가를 받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 주인공은 바로 이탈리아의 정치 철학자 마키아벨리입니다. 피히테, 스피노자,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람시 등 많은 철학자들이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놓고 다양한 평을 내놓았으며, 그의 사상은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마키아벨리는 1469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가난한 법률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스물아홉 살의 나이로 피렌체 공화정에서 외교 업무를 담당하는 직책을 맡으며 뒤늦게 공직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뿐만 아니라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 강대국들에 파견되어 능숙한 외교 수완을 발휘해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때 여러 군주들을 만나고 유럽의 급박한 정치 상황을 몸소 겪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안목을 기르고 조국 피렌체의 미래와 능력 있는 지도자에 대한 상을 마음속에 그려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피렌체의 정치 상황은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 볼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망명을 가 있던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로 돌아와 권력을 다시 잡으며 이전 정부의 관료들을 대폭 물갈이했고, 마키아벨리도 10년 동안의 공직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교외에서 은둔 생활을 하며 《군주론》과 《로마사논고》 같은 책을 썼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은둔 생활 7년 만에 다시 메디치가의 부름을 받았지만, 메디치 가문이 무너지면서 다시 직업을 잃을 수밖에 없었고 크게 실망한 마키아벨리는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15세기 이탈리아의 급박한 정치적 상황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15세기 당시 이탈리아는 로마의 교황령, 나폴리, 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 등 수많은 공국들로 분열되어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로마 가톨릭이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던 나라였는데, 유럽의 다른 국가들이 교회 세력의 약화를 틈타 왕권을 강화했던 반면, 이탈리아는 부패한 교회 세력이 각 공국들과 정치적으로 결탁하며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주변 유럽 강대국들 또한 이탈리아의 분열 상황을 이용해 여러 공국 및 종교 세력과 관계를 맺으며 수시로 이탈리아를 침략했습니다. 이처럼 내부적으로는 각 도시 국가의 정치적 대립, 부패한 교회 세력의 영향력 등으로 큰 분열과 혼란을 겪었고, 외부적으로는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며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 강대국들과는 달리 강력한 통일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정치 현실 속에서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조국 이탈리아가 외부 세력에 휩쓸리지 않고 강력한 통일 국가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외교 사절로 유럽을 방문하면서 여러 군주들을 만나 보았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군주론》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논고》에서 민주 공화정을 신봉하는 글을 쓰기도 했지만, 당시 도덕과 윤리의 상징인 종교 세력의 부패와 사회 전체에 만연한 타락을 보면서 그러한 현실에서는 도덕과 윤리로 당면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고, 공화정이나 민주정 같은 자신이 꿈꾸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종교적 위선과 기만이 사회를 지배하며 도덕규범과 정치적 현실간의 간극이 너무나 컸던 시기를 마키아벨리는 누구보다도 냉철하고 현실적으로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모든 혼란을 잠재울 ‘강력한 군주에 의한 통치’라는 대안을 생각해냈습니다.

근대 정치사상의 주춧돌이 되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는 고전이지만 역사적으로 숱한 오해를 낳은 책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역사학자들과 철학자들의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으면서 시대적 상황에 따라 금서로 지정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군주론》에 대한 오해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마키아벨리즘’입니다. 이 말은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위나 사상’을 가리키는 말로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에서 유래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에서의 도덕과 윤리는 개인들 사이의 관계에서 작용하는 도덕이나 윤리와는 다르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당시 이탈리아 사회의 낡은 도덕관념과 부패한 종교 이념은 국가와 백성들의 삶을 더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부패와 타락으로 오염된 낡은 도덕과 종교에 휘둘리지 않으며 국가와 백성의 공익만을 고려하는 강력한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물론 마키아벨리의 사상에 대한 비판에도 타당한 측면이 있습니다. 마키아벨리의 본뜻이 어떠했든 그의 사상이 여러 독재자들에 의해 악용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5세기 후반 당시 이탈리아와 유럽의 정치적 상황과 시대적 배경에 대한 맥락 속에서 그의 사상을 놓고 볼 때, 교황·귀족·외세의 세력 다툼이 복잡하게 얽힌 시대를 살았던 마키아벨리가 혼란한 조국의 상황을 안정시킬 강력한 리더십을 꿈꾸었던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군주론》에는 중세의 국가 개념에서 벗어난 근대적 국가관이 드러나 있습니다. 《군주론》은 교회의 종교적 질서가 아닌, 다양한 집단 간의 전쟁과 갈등을 이겨내고 사회를 통합해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질서로서의 ‘국가론’을 다룬 최초의 저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세의 신 중심적 생각에서 벗어나, 국가라는 질서의 중요성과 그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지도자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생각의 전환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군주론》은 ‘국가 중심주의’를 모델로 한 최초의 정치이론서이자 근대 정치사상의 주춧돌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영원한 고전 《군주론》

수많은 오해와 비판, 찬사 속에서도 《군주론》이 5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며 영원한 고전으로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군주론》이 15세기 후반 당시의 이탈리아의 현실을 바탕으로 한 책이긴 하지만, 그 속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담겨 있습니다. 훌륭한 지도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군중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한 집단을 다스리는 리더의 자질과,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 집단을 잘 이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현실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며, 크고 작은 집단을 잘 이끌기 위해 사람들의 이기심과 선한 마음을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고민이 담긴 《군주론》은 오늘날 훌륭한 지도자를 꿈꾸는 모든 어린이들에게도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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