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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한국사
고대에서 현대까지 북쪽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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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역사/인물 top100 6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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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01 북녘 산하, 대륙으로 열린 땅
02 북녘 최초의 나라, 고조선
03 동북아 중심 국가 고구려의 군사력과 외교력
04 고구려 옛 땅에 세운 나라, 발해
05 개성의 호족, 고려를 건국하다
06 서경 천도 운동, 통념을 파괴하라
07 해동 천자의 나라 고려의 외교술
08 고려와 조선 시대 국경 이야기
09 조선을 건국한 북방 출신 이성계와 이지란
10 평안감사와 북쪽 최고의 도시 평양
11 개성과 개성상인
12 북쪽 지역이 겪은 왜란과 호란
13 오랑캐라고 불린 여진
14 1811년 홍경래 난, 평안도 차별에 반기를 들다
15 국경을 넘는 사람들
16 기독 세상이 된 평안도, 친미 엘리트를 배출하다
17 북방을 노래한 북쪽의 시인들
18 북쪽 정권을 세운 사람들
19 평안도에서 내려온 우익 세력
이 책을 집필한 사람들

저자 소개 10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1~4세기 고구려 정치체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고대사학회 총무이사, 고구려발해학회 편집위원장,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고구려사를 중심으로 한국 고대의 정치사와 국제관계사를 폭넓게 연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왕궁이나 도성 등 공간에 담긴 역사상을 규명하기 위해 실증 연구와 이론 모색을 다각도로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고구려 성 I?II》(1998?1999), 《아 그렇구나 우리역사 ③: 고구려》(2004), 《고구려 초기 정치사 연구》(201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1~4세기 고구려 정치체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고대사학회 총무이사, 고구려발해학회 편집위원장,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고구려사를 중심으로 한국 고대의 정치사와 국제관계사를 폭넓게 연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왕궁이나 도성 등 공간에 담긴 역사상을 규명하기 위해 실증 연구와 이론 모색을 다각도로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고구려 성 I?II》(1998?1999), 《아 그렇구나 우리역사 ③: 고구려》(2004), 《고구려 초기 정치사 연구》(2014), 《삼국시대 고고학개론 1》(공저, 2014), 《한국고대사 1》(공저, 2016), 《내일을 여는 한중관계사》(공저, 2019), 《중국 소재 고구려 유적과 유물 I~X》(공저, 2020~2022) 등이 있다.

여호규의 다른 상품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장 겸 군사전략학과 교수이다.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주요 논저로는 「예맥 관련 최근 논의의 비판적 검토」, 「기원전 7세기 중반 동북아시아의 국제관계와 고조선의 위상」, 「기원전 3~2세기 고조선의 중심지와 서계의 변화」, 「고조선사의 전개」, 저서로 『절반의 한국사』(공저) 등이 있다.

박준형의 다른 상품

1967년에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문 연수과정을 수료하였고,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연구원과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학예사 등을 거쳐, 현재 안동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발해사를 중심으로 한국 고대사 및 사학사를 연구하고 있다. 특히 실학자 유득공의 저서『발해고』수정본이 지닌 역사적 가치에 주목하여 수정본 연구에 매진하였다. 2009년에 청명문화재단의 ‘번역모임 지원사업’에 선정된 이후 초고본과 7종의 수정본 필사본 및 당시 유득공이 참고한 원사료들을 모두 대조하여 교감하는
1967년에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문 연수과정을 수료하였고,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연구원과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학예사 등을 거쳐, 현재 안동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발해사를 중심으로 한국 고대사 및 사학사를 연구하고 있다. 특히 실학자 유득공의 저서『발해고』수정본이 지닌 역사적 가치에 주목하여 수정본 연구에 매진하였다. 2009년에 청명문화재단의 ‘번역모임 지원사업’에 선정된 이후 초고본과 7종의 수정본 필사본 및 당시 유득공이 참고한 원사료들을 모두 대조하여 교감하는 작업을 중점적으로 진행하였다. 그 오랜 연구의 결과물이 바로『정본 발해고』이다. 저서로 『발해정치외교사』(2009)가 있고, 논문으로「수정본『발해고』의 내용과 집필 시기」(2010), 「완충지대로서의 요동을 통해 본 신라·발해·당의 관계」(2017), 「한국 근대역사학의 발해사 인식-남북국론을 중심으로」(2017) 등이 있다.

김종복의 다른 상품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저로 「고려 전기 왕명의 종류와 반포」, 「고려 전기 6부 판사의 운영과 권력관계」, 「고려 전기 재추의 출신과 국정회의에서의 위상」, 「고려 최씨정권의 권력행사와 왕권의 위상」과 『고려 국정운영의 체계와 왕권』, 『고려 전기 대간제도 연구』, 저서로 『절반의 한국사』(공저) 등이 있다.

박재우의 다른 상품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사연구사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주로 고려 시대 국경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는 「고려~조선 전기의 백두산 인식」, 「1107~1109년 고려의 갈라전 지역 축성과 ‘윤관 9성’ 인식」, 「고려의 일자명 기미주 편제와 윤관 축성」, 저서로 『절반의 한국사』(공저) 등이 있다.

申炳周

서울대 인문대학 국사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건국대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조선시대사학회 회장, 한국문화재재단 이사, 문화재청 궁·능 활용 심의위원, 외교부 의전정책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를 전공하고 있으며, 역사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KBS 「역사저널 그날」, KBS라디오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신병주의 역사여행」을 진행했으며,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연산군과 광해군’ 편 외 다수, EBS 「클래스 e」 ‘조선 왕을 만나는 시간’ 시리즈, CJ ENM,
서울대 인문대학 국사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건국대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조선시대사학회 회장, 한국문화재재단 이사, 문화재청 궁·능 활용 심의위원, 외교부 의전정책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를 전공하고 있으며, 역사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KBS 「역사저널 그날」, KBS라디오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신병주의 역사여행」을 진행했으며,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연산군과 광해군’ 편 외 다수, EBS 「클래스 e」 ‘조선 왕을 만나는 시간’ 시리즈, CJ ENM, 사피엔스 스튜디오의 ‘역사 읽어드립니다’ 시리즈 등에 출연했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평전』, 『왕으로 산다는 것』, 『참모로 산다는 것』, 『왕비로 산다는 것』, 『우리 역사 속 전염병』, 『56개 공간으로 읽는 조선사』, 『서울의 자서전』 등이 있다.

신병주의 다른 상품

강원대학교 사학과 강사이자 의암류인석기념관 기념사업팀장이다. 주요 논저로는 『19세기~20세기 초 조선의 만주 이주민정책에 대한 연구』, 『조선의 명재상 횡성인 고형산』(공저), 『횡성 각림사와 태종의 강무 행차 재조명』(공저), 「청의 간도정책과 이범윤의 이주민 관리 연구」, 「19세기 조선인 만주 이주와 고종의 관리정책」, 저서 『절반의 한국사』(공저)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근현대사를 연구했다.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저물어가던 역사로만 기억되던 근대 시기에 마음이 끌렸다. 박사 과정 당시 『윤치호 일기』를 편역하면서 근대사를 더 깊숙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고, 흑백 사진의 느낌만 있는 구한말에 다채로운 색을 입힐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후 2005년부터 메디컬 히스토리를 연구했다. 이때 재발견한 제중원은 개항기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선교사들의 일기와 편지를 비롯, 그동안 사료적 가치를 평가받지 못했던 많은 기록들을 세밀하게 복원할 수 있었다.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의사역사문화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근현대사를 연구했다.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저물어가던 역사로만 기억되던 근대 시기에 마음이 끌렸다. 박사 과정 당시 『윤치호 일기』를 편역하면서 근대사를 더 깊숙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고, 흑백 사진의 느낌만 있는 구한말에 다채로운 색을 입힐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후 2005년부터 메디컬 히스토리를 연구했다. 이때 재발견한 제중원은 개항기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선교사들의 일기와 편지를 비롯, 그동안 사료적 가치를 평가받지 못했던 많은 기록들을 세밀하게 복원할 수 있었다.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의사역사문화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논문에 「평안도 기독교 세력과 친미엘리트의 형성」, 지은 책으로 『윤치호일기 1916~1943』(편역), 『역사신문 5권』(공저), 『한국 근대사회와 문화 3권』(공저), 『한국의학인물사』(공저), 『사진과 함께 보는 한국 근현대 의료문화사』(공저), 『절반의 한국사』(공저) 등이 있다.

김상태의 다른 상품

1967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나서 서울에서 자랐다. 건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였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1996년 『세계일보』에 「벽화 속의 고양이 3」을, 2002년 『시평』에 「수락산」 외 5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섬세한 언어와 깊은 사유로 사회역사적인 상상력에 바탕한 서사적 서정성을 길어 올리는 시창작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대산문화재단에 재직하며 고려대, 한양대, 동국대 등에 출강하고 있고 『대산문화』 주간, 『문학나무』 『우리문화』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인디오 여인』 『지도에 없는 집』 『슬픔의 뼈대』,
1967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나서 서울에서 자랐다. 건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였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1996년 『세계일보』에 「벽화 속의 고양이 3」을, 2002년 『시평』에 「수락산」 외 5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섬세한 언어와 깊은 사유로 사회역사적인 상상력에 바탕한 서사적 서정성을 길어 올리는 시창작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대산문화재단에 재직하며 고려대, 한양대, 동국대 등에 출강하고 있고 『대산문화』 주간, 『문학나무』 『우리문화』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인디오 여인』 『지도에 없는 집』 『슬픔의 뼈대』, 저서 『한국 근대시의 북방의식』 『너는 내게 너무 깊이 들어왔다』, 편저 『아버지, 그리운 당신』 『구보 박태원의 시와 시론』 『이용악 시선』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청록집― 청록집 발간 70주년 기념 시그림집』 『이용악 전집』(공편), 『절반의 한국사』(공저) 등을 비롯하여 여러 권의 공동시집, 공저, 편저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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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洪九

한국 현대사학자, 혹은 현재사학자.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 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평화박물관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과거사위원회) 민간위원을 역임했다. ‘걸어 다니는 한국 현대사’라 불리는 이 시대 대표적인 역사학자이다. 한겨레21에 연재된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감춰진 현대사를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전달해서 지적 만족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현대사의 걸작으
한국 현대사학자, 혹은 현재사학자.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 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평화박물관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과거사위원회) 민간위원을 역임했다. ‘걸어 다니는 한국 현대사’라 불리는 이 시대 대표적인 역사학자이다. 한겨레21에 연재된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감춰진 현대사를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전달해서 지적 만족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현대사의 걸작으로 꼽히는 『대한민국사』를 통해 이 시대에 필요한 올바른 역사관이 무엇인지 역설한 바 있다.

1959년에 출생하여 서울대 국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걸어 다니는 한국 현대사’라 불리는 저자는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일명 ‘김일성 전문가’이다. 그는 꿈꾸는 권리조차 박탈당했던 한국 현대사의 금기들을 통쾌하게 고발해온 논객으로 유명하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과거사위원회) 민간위원을 역임했으며, 평화박물관 이사,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한국 현대사를 왜곡하고 헌법정신을 훼손했던 사람들을 기록한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 작업에도 앞장서고 있다.

논문으로 「상처받은 민족주의」 등이 있으며, 시사주간지 「한겨레 21」에 '역사이야기'를 연재하였고, 지은 책으로 『대한민국사』 1~4권, 『한홍구의 현대사 다시읽기』,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공저),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공저) 『지금 이 순간의 역사』, 『특강』,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공저), 『직설』(공저), 『유신』, 『사법부』, 『4·19혁명』, 『5·18민주화 운동』, 『한홍구의 청소년 역사 특강』, 『절반의 한국사』(공저) 등이 있다.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대통령이 군림하는 나라에서 근현대사를 공부한 죄로 여기저기 역주행의 현장을 발로 뛰어다니며 임시정부 건국 강령과 제헌헌법의 주요 내용을 외치고 있다. 국가보안법 없는 세상, 전투경찰 없는 세상을 꿈꾸고, 어디 존경할 만한 보수 한 분 없을까 두리번거리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새로운 고전이 된 《대한민국사》 1~4권을 비롯해 《특강》, 《지금 이 순간의 역사》 등을 통해 끊임없이 지나간 사건들의 현재적 의미를 밝혀 소개해왔다. 정수장학회의 진실을 파헤친 《장물바구니》, 소설가 서해성과 함께 금기를 넘나들며 한국 사회 위선과 부당함에 쓴 소리를 날린 《직설》 등 다양한 저작을 통해 지식인의 사회적 의무를 다하고 있다. 유신시대의 부활을 염려하며 <한겨레> 토요판에 ‘유신과 오늘’을 연재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유신》을 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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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4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436g | 152*215*15mm
ISBN13
9791191425512
KC인증
kc마크 인증유형 : 적합성확인

책 속으로

한반도에서 ‘반도(半島)’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나머지 한 면은 대륙에 이어진 땅을 뜻한다. 반쯤은 섬이지만, 섬과 달리 대륙과 이어졌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그래서 흔히 반도를 대륙과 해양을 잇는 가교라 한다. 반도에 사는 사람이라면 바다뿐 아니라 육로를 통해서 대륙으로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 p.11 「북녘 산하, 대륙으로 열린 땅」 중에서

고조선사에서 가장 논란이 많지만 아직 해결이 되지 않은 것이 영역과 중심지 문제이다. 고조선과 한나라의 경계였던 패수의 위치에 대해 난하(중국 허베성에 있는 롼허강), 대릉하(중국 랴오닝성 서부를 흐르는 다링허강), 요하(중국 랴오닝성 중앙부에 있는 랴오허강), 혼하(랴오허강의 지류인 훈허강), 압록강, 청천강 등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었다.
--- pp.24~25 「북녘 최초의 나라, 고조선」 중에서

신라와 발해가 소원하면서도 서로 경쟁한 이유는 신라가 나당 전쟁 이후 백제 유민은 물론이고 고구려 유민까지 받아들임으로써 삼한, 즉 삼국을 통일했다고 자부한 반면, 발해는 고구려 계승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고구려 유민이 고구려 옛 땅에 세운 발해의 등장은 삼국을 통일했다는 신라의 자부심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 p.60 「고구려 옛 땅에 세운 나라, 발해」 중에서

고려가 천자, 황제를 칭하면서도 한족이나 한족이 아닌 세력이 세운 나라에 사대를 했던 것은 국제 정세에 대한 객관적 인식에 따른 것이었다. 고려는 독자적 천하관을 바탕으로 한족이 세운 송을 서국(西國) 또는 남조(南朝), 여진이 세운 요를 북조(北朝)라고 하여 방위에 따라 부르기도 했지만, 송·요·금을 고려와 대등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 p.93 「해동 천자의 나라 고려의 외교술」 중에서

고려는 여진 부락들을 간접 지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요지마다 성곽을 설치하고 남쪽 지역의 백성들을 이주시켜 신개척지를 직접 지배하고자 했다. 이때 고려가 성곽을 설치한 지역에 대해서는 함흥평야설, 길주이남설, 두만강 이남설, 두만강 이북설 등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지금까지도 여러 가설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관련 사료가 명확하지 않고 남북 분단으로 현지 성곽에 대한 발굴 조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pp.103~104쪽 「고려와 조선 시대 국경 이야기」 중에서

조선 후기에 평양의 경제적 가치는 더욱 커졌다. 외교 관계가 안정되면서 청나라와 무역이 활발해져 평양은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실학자 서유구가 저서 《임원십육지》에 중국 무역에서 얻는 이익이 국내보다 몇 배에 이르며 평양의 번성함이 한양을 능가했다고 표현한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잘 보여 준다.
--- p.125 「평안감사와 북쪽 최고의 도시 평양」 중에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여진의 관계는 상당히 밀접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이 여진인들에게 단행한 최초의 수직(조정에서 외국인에게 관직 임명장을 주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세력은 동북면(함경도 지역)을 기반으로 했고, 고려 유민과 여진인들로 구성된 사병(私兵) 집단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성계의 사병 집단은 조선 건국에 큰 역할을 했고, 이성계를 도왔던 여진인 이지란이 개국공신에까지 오른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 p.160 「오랑캐라고 불린 여진」 중에서

평안도가 봉기의 선도 지역이 된 것은 광산이 많고, 대외 무역을 통하여 의주 상인, 평양 상인 등 대상인으로 성장한 이가 많았던 점도 주요한 원인이었다. ‘평안감사도 저 하기 싫으면 그만’이란 말은 그만큼 이 지역이 경제적으로 풍요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나 평안도 지역의 이러한 경제적 선진성은 오히려 중앙 정부로 하여금 수탈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단군조선·기자조선의 문화 전통을 계승했다고 자부하는 평안도 지역의 자존심마저 지역 차별로 무참히 짓밟혀지는 실정이었다.
--- pp.174~175 「1811년 홍경래 난, 평안도 차별에 반기를 들다」 중에서

1897년에 조선은 서상무를 서간도로 파견했다. 목적은 서간도 지역의 호구 조사, 한인의 재산 보호와 세금 징수였다. 서상무는 한인이 거주하는 서간도 지역의 토지를 측량해 토지 대장을 작성하고 호구 조사를 하며 간도 지역을 조선의 관할에 두기 위한 기초 작업을 했다. 이에 청은 서상무를 소환하라고 강요했지만, 서간도 지역 한인들은 서상무를 따르고 호전을 납부했다.
--- p.193 「국경을 넘는 사람들」 중에서

평안도에서 기독교는 단순히 종교가 아니라 근대 문명 그 자체였다. 기독교는 평안도 사람들의 정서와 이념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는데, 그것은 특히 기독교계 학교의 운영에 기초한 것이었다. 1910년에 전국의 사립학교는 2,200여 개였는데, 그중 평안도의 사립학교가 844개로 약 38%를 차지했다. 이 중 장로교와 감리교계에서 운영하는 학교가 341개로 40%에 이르렀다.
--- p.206 「기독 세상이 된 평안도, 친미 엘리트를 배출하다」 중에서

이용악의 시편에 나타나는 북방은 아버지의 제삿날 단 하루만 쉬고 일을 해야만 하는 힘든 삶을 이어가는 곳(「다리 우에서」)이며, 아기의 탄생이 팔아나 먹을 수나 있는 송아지만도 못하고 마침내는 일가족이 무서운 북쪽으로 사라지고만 곳(「낡은 집」)이고, 반도의 남단 전라도에서 여인이 술집 작부로 팔려온 곳(〈전라도 가시내〉)이다.
--- p.220 「북방을 노래한 북쪽의 시인들」 중에서

북쪽은 민족 해방 투쟁에 적극 참여한 사람들이 세운 정권이라는 점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북한 정권이 민족 해방 투쟁에 적극 참여했던 사람들이 모여 민족 해방 투쟁 과정에서 꿈에도 그리던 나라를 세우려고 했던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여기에 소련 군정이 깊이 개입했다.

--- p.227 「북쪽 정권을 세운 사람들」 중에

출판사 리뷰

한반도 남쪽에 치우친 좁은 역사를 넘어
대륙까지 뻗어 있던 ‘통 큰 역사’를 만나다

역사는 시간과 공간이 만나는 곳에서 무수한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들의 총집합이다. 이 책은 역사를 바라보고 서술하는 다양한 시도 중에서 공간을 중심으로, 그것도 한반도 북쪽이라는 공간에 초점을 맞춘, 최초로 시도되는 북방 중심 통사이다. 분단 이후 북쪽으로의 접근이 차단되면서 역사 교육 또한 한반도 남쪽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지금,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보다 균형 잡힌 역사 감각을 기르기 위해서는 잊힌 북쪽에 역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북쪽 지역을 중심으로 한국사를 다시 본다고 뭐가 다를까? 물론 그렇다. 대륙과 이어진 북쪽의 역사는 섬처럼 고립된 남쪽의 역사와는 달리 줄곧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과 연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배포 크게 전쟁을 벌여 주변을 평정하기도 하고, 외교적으로 수세에 몰렸을 때에는 자세를 낮춰 유연하게 대처하기도 했던 ‘북쪽’ 지역 국가들의 역사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우리 안에 갇혀 있던 좁은 시각이 훤하게 트이며 거대한 역사와 시대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각 분야 전문가 10인이 재조명한
우리가 놓치고 있던 한반도 역사의 절반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그런데 왜 우리 역사는 반 토막일까? 1950년 휴전과 함께 남과 북의 경계를 확정한 이후, 북한의 역사뿐 아니라 휴전선 이북의 역사 전체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갔다. 그 결과 신라와 백제, 조선의 역사에 대해서는 세세한 정치사까지 꿰고 있으면서 고구려의 수도가 어디쯤인지, 발해의 생활상은 어떠했는지는 모르는 상태가 됐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면서 우리 역사에 이토록 무지해도 괜찮은 걸까?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각 분야 전문가 10인이 나섰다. 고조선에서 남북 분단기까지,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북쪽의 역사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핵심적이고 흥미로운 주제들을 뽑아 쉽고 명료하게 서술했다. 또 지금은 직접 찾아볼 수 없는 유물과 역사 공간의 도판, 지도 자료 등을 다양하게 배치하여 북쪽의 역사를 보다 생동감 넘치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시대에 따라 180도 다른 삶을 살았던 북쪽 사람들,
그들의 굴곡진 삶에서 역사의 흐름을 읽는다

한반도 북쪽은 강대국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우리 역사의 숙명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지역이다. 이곳 북쪽 사람들은 가장 먼저 대륙의 문물을 받아들였고, 가장 많은 전란을 겪으며 용맹을 보이고 고통을 겪었다.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가장 먼저 자신들의 역사를 개척해나간 것이다. 그런 시각으로 이 책을 보면, 개성상인들의 활발한 활동과 평안감사의 호화로운 행차에서 북쪽의 풍요로움이 묻어나고, 홍경래 난의 배경에는 정치적으로 차별받는 북쪽의 아픔이 느껴진다. 북방을 노래한 북쪽 시인들의 시에서는 일제강점기에 힘든 삶을 버티지 못해 고향을 떠나 두만강, 압록강을 넘어 간도로 떠난 이들의 행렬이 보인다. 남북한 정권의 수립 과정에서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주도 세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와 신문물을 재빨리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북쪽 사람들의 질곡 많은 삶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복잡하고 어렵기만 했던 역사가 한층 더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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