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와서는 몸을 동그랗게 말아 내 배에 찰싹 붙이고 눕는다. 녀석의 코가 내 무릎에 닿는다. 우리는 함께 숨을 깊이 내쉰다. 개와 한 이불 속에서 체온을 나누는 이 순간이 너무도 편안해서, 나는 때로 잠들기를 잠시 거부하고 한동안 그 느낌을 빨아들인다. ‘친밀함’이라는 느낌을.
나는 개와 사랑에 빠졌다.
이것은 거의 우연처럼 일어나서,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만 같다(서른여덟 살의 싱글인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열렬히 사랑하는 것이 바로 이 개였어!). 그런데 사랑을 깨닫는 방식은 제각각 다르기 마련이고, 내 사랑의 방식은 이렇게 체중 20킬로그램의 두 살짜리 셰퍼드 잡종 루실을 통해서 왔다.
--- p.8
사회적 상식에 따르면, 개를 향한 사랑은 어느 선에서 멈추어야 한다. 우리가 개에게 느끼는 감정의 깊이를(애착의 강도와 중요성) 그대로 드러내면, 사람들은 당장 우리의 정신 건강부터 의심한다. 인간의 사랑을 엉뚱하게 개에게 바치다니(번지수가 틀렸어). 너는 동물을 사람하고 착각하고 있어(순진하기도 해라). 너는 아기나 가족을 원하는 무의식의 소망을 개를 통해 대리 만족하고 있어(딱한 일이지).
--- p.22
보호소의 누구도 루실이 어디서 왜 버려졌는지 알지 못했다. 그냥 하루 전날 그곳에 버려져 있었다고 했다. 다른 형제 강아지도 없고, 쪽지 같은 것도 없고, 아무런 사연도 없이. 돌아보면 녀석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었던 것 같다. 닻을 잃고 부유하는, 보살핌이 필요한, 애착할 가정도 가족도 없는 어린 암캐.
바로 이 점이 내 결심을 이끌어낸 것 같다. 녀석의 연약함이 내 깊은 환상에 닿은 것이다. 우리 둘이 함께 애착을 이루어보는 것은 어떨까? 가정과 가족 비슷한 어떤 것을, 우리 둘이서.
--- p.47
루실은 쉴 새 없이 주변의 잡동사니에 코를 박거나 나무들 틈으로 헤매어 들어갔고, 나는 몇 걸음에 한 번씩 돌아서서 제발 따라오라고 사정했다. 그러면 녀석은 때로는 얼른 따라왔지만 때로는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단 일주일 사이에 나는 돌이키기 어려운 아주 흔한 오류를 저질렀다. ‘오라’는 명령이 선택적이라고 가르친 것이다. 명령의 의미는 허공으로 흩어졌다.
--- p.94
진은 샘이 사나운 개로 자라난 데는 자기 역할도 있었다고 말한다. 독일셰퍼드가 대개 그렇듯이, 녀석에게도 기본적인 보호 본능이 있다. 강아지 때도 녀석은 문 앞에 사람만 나타나면 짖고, 길에서도 행인들에게 짖고, 집 창가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진은 녀석의 보호 본능이 뿌듯한 나머지 은근히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조장했다. 샘이 짖거나 으르렁거려도 모른 척했고, 때로는 녀석이 위협적 행동을 보여도 “나를 지켜주려고 그러는 거지?” 하며 흐뭇한 마음을 내비쳤다. 다시 말해서, 진은 샘에게 공격성을 보여도 된다는 신호를 지속해서 보낸 것이다.
--- p.164
루실은 처음부터 우리 관계에 문제가 되었다. 대낮의 토크쇼에서나 들을 법한 한심한 이야기(개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여자들) 같지만, 사실이 그랬다.
루실을 데려온 그 날부터 나는 녀석에게 엄청난 소유욕을 느꼈다.
‘내 거야, 내 거, 내 거. 이 녀석은 내 거야.’
--- p.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