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중독 당사자가 쓰는 중독에 대한 종합적인 탐색
한국 사회는 알코올중독이 가시화되어 있지 않은 사회다. ‘중독’이 문제시되기에는 술과 너무나 친하다. 점차 변화하고는 있지만 술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사교, 회식 문화, 술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는 중독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조차도 스스로 알코올중독임을 인지하지 못하게 한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이후 회식이나 술자리는 많이 사라졌지만 주류 구매율은 오히려 14퍼센트 증가했다. ‘혼술’하는 사람이 늘어난 탓이다. 같이 마시든 혼자 마시든, 한국에서 술 좋아하는 사람은 여전히 애주가로 불린다. “나 알코올중독인가?”라는 말을 농담처럼 주고받는 사람들은 많아도 치료를 받아야 할 병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잘 없다.
『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의 저자 박미소도 그런 ‘애주가’ 중 하나였다. 술 많이 마시기로 유명한 업계인 언론계에서 일하는 그녀에게 폭음과 과음은 일상이었고, 육아와 일의 고된 병행을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 친구는 부엌에 서서 들이켜는 술 한 잔이었다. 술은 힘겨운 일상을 위로해주는 안정제이자 인생에 즐거움을 더해주는 활력소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무기력에 빠진 뒤, 음주 습관이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져 일상을 잡아먹기 전까지는 그랬다. 어느 날 아이를 등교시키고 아침 9시 반부터 와인 한 병을 비워버린 후, 저자는 스스로 정신과를 찾았다.
『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는 스스로 알코올중독임을 인정한 저자가 중독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인 동시에, 도대체 무엇이 자신의 중독을 만들었는가를 파고든 책이다. 저자는 약물 치료를 시작하고 술을 멀리하기 위해 생활 습관을 뜯어고치는 등 안간힘을 쓰면서도 평생을 함께해온 술에 대한 사랑과 매혹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또 한편으로 사회적, 생물학적, 환경적 맥락을 전방위로 넘나들며 긴 세월을 이어온 중독의 원인을 파악하려 애쓴다. 자신의 삶이 술과 맺어온 관계, 중독의 생물학과 심리학, 한국 사회의 역사적 맥락을 가로지르는 유머러스하고 속도감 있는 글쓰기를 따라가다 보면,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알코올중독 문제를 자연스럽게 자신의 문제로 가져와 보게 된다. 이런 관점은 의사 등 치료자가 쓴 책, 또는 한 발짝 물러나 제삼자의 시각에서 중독을 바라보는 사회서와는 다른 차원에서 알코올중독 문제를 조명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사람들은 중독자가 한심한 의지박약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중독자는 중독의 대상을 향해 확고한 의지를 품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영리하고 기민하게 움직인다. 평일의 시간 동안은 내 마음대로 마음껏 고주망태가 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주말이었다. 온 가족이 하루 종일 함께 있으니 술을 마실 시간이 없었다. 나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다. 집에서는 마시기 힘드니 외식을 하자! 그럼 자연스럽게 술을 주문할 수 있으니까. 대낮에도 갈비나 삼겹살을 먹자고 주장하고 치맥을 시키자고 졸랐다. 남편의 불만스러운 눈빛을 애써 무시하며 태연한 척 술을 주문했다.(23)
극도로 지친 상태에서 마시는 몇 잔의 술이 고된 늪에 빠져 있던 나를 쑥 끌어올려 활기차게 바꿔준다. 일에 치이고 찌들어 우울하고 지친 사람에서 더없이 유쾌하고 명랑한 사람으로 탈바꿈한다. 일을 끝내고 친구와 마주 앉은 저녁 자리에서, 퇴근하고 돌아와 앉은 식탁에서의 맥주 한 잔에 갖은 피로와 스트레스가 녹아 내려가던 그 느낌. 그 한 모금이, 그 한 잔이 너무나 절실하게 느껴져 한 병은 두 병이 되고, 술 마시는 하루는 매일이 됐다.(76)
나는 인생을 온통 불만족스럽게 느끼고 있었다. 기자를 그만둔 것을 내심 후회했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 것 역시 잘한 일인지 확신이 없었다. 이 가정에 어울리지 않는 부적절한 사람 같았고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들었다.
내 삶은 결핍의 구멍이 숭숭 뚫린 부실한 골조로 지어져 불만의 무게에 짓눌리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상태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 주어진 내 삶에서 충족감과 기쁨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중독으로부터 나를 영원히 벗어나게 해줄 해답이라는 걸. 하지만 그건 술을 끊는 것보다 더 어려울 거라는 걸. 그럼 나는 앞으로 어떻게 변해야 하는 걸까.(102-103)
절박함에 종종걸음치며 냉장고를 열었다. 막걸리와 자몽 맛 소주(우웩)가 보였다. 한창 술을 퍼 마시던 시절에 남겨둔 거다. 안주는 뭘 먹지? 언제나처럼 우리 집 냉장고는 텅텅 비어 있지만 배달 앱만 있으면 문제없다. 아침 9시 30분에도 삼겹살이 배달된다는 사실을 평범한 사람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120)
한국에서 평생 한 번이라도 알코올사용장애를 겪는 사람의 비율은 12.2퍼센트(2016년 기준)나 되어 모든 정신질환 종류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이 병은 입 밖에 꺼내기 조심스러워하는 이슈로 각자의 사적이고 내밀한 영역에만 머물러 있다.(127)
내 글들을 읽으며 자기 자신을 언뜻 비춰보는 사람들도 대부분 이런 타입에 속할 것이다. 일도 가정도 친구 관계도 흠잡을 것 없이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하지만 단지 남들보다 조금 더 술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사람. 술자리에 가면 항상 남들의 2배속으로 술잔을 꺾어 결국 자기 주량보다 살짝 오버하게 되는 사람. 그렇다고 해서 큰 사고를 치거나 주사를 부리지는 않으니까 딱히 심각하진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항시 어딘가 술 마실 핑계가 없나 기대감에 두리번거린다. 식사 메뉴를 정할 때도 메뉴 그 자체보다는 어떤 술과 어울릴지를 생각해 선택하곤 한다. 혼자 있는 밤, 맥주 한 캔만 마시자고 시작한 게 금세 두세 캔으로 이어져 다음 날 아침 찌뿌드드한 컨디션으로 후회 속에 일어난다. 이건 전부 나의 이야기지만 평범하게 술을 좋아하는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씩 은은하게 알코올중독의 기운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141)
다른 사람들이 매일 두려움을 이기고 한 걸음을 내딛는 쪽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공포에 잠식당해 끝없이 들이붓는 알코올의 물결 속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 익사하기를 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은 다른 누구도 알 수 없는 틈에 내면에서 서서히 벌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스스로 뛰어들까 봐 두려워 물가에도 다가가지 못했다는 처칠은 정작 매일 매일 술을 들이부으며 작은 자살을 실행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내가 매일 밤 거실 소파 위에서 해오던 것처럼.(159)
중독은 사람을 바꾼다. 술을 많이 마시고 술에 집착하는 것 말고도 성격과 활동, 기능 측면에서 부정적인 변화가 뒤따른다. 정작 중독자들은 내가 그랬듯이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이 지적해도 이렇게 항변한다. “나 원래 이래!” 중독이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진행되기에 성격상의 변화도 느리게 일어나서 어느새 자기 본래의 모습인 듯 굳어버리기 때문이다.(201)
그러므로 내가 쓴 글은 술에 빠진 사람의 이야기인 한편 혼자됨을 택한 사람의 수기다. 알코올이라는 투명한 막에 갇힌 채 누구와의 접촉도 거부하고 깊이깊이 빠져 들어가던 추락의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세상 모든 술꾼들 역시 마찬가지일 거다. 자발적으로 고립을 택해 술로 빠져든 것인지,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져 술로 빠져든 것인지는 각각의 사정일지라도 결국에는 누군가와 이어지는 감각이 이들을 새롭게 살게 한다. 술로부터 건져 올리는 구원이 된다.(337)
저널리스트가 파고든 중독의 과학과 심리학과 사회학
저자는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를 다루면서도 저널리스트로서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스스로를 ‘호기심 많은 술꾼’이라고 표현하는 저자가 중독을 치유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 중 하나는 바로 ‘대상에 대한 이해’였다. 저자는 어디서부터 중독의 경로가 시작되었는가를 추적하기 위해 책과 각종 학술 자료, 사회적 현상의 이면으로 들어가고, 중독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요소들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병원에서 받아든 ‘자책을 없애주는 약’ 아빌리파이와 ‘갈망을 억제해주는 약’ 날트렉손은 이 약들이 어떻게 중독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해주는지, 그렇다면 중독의 생물학적 기전은 무엇인지 탐구하는 데로 이어진다. 한편 저자 자신의 삶에서 출발한 질문들은 중독의 더 넓은 사회문화적 배경을 드러내준다. 평생 술을 가까이했던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반추는 중독이 생물학적 유전인지 환경적 유전인지 탐구하게끔 만든다. 10대 시절의 방황과 어려운 가정환경에 대한 불안을 술로 해소했던 경험은 빈곤과 알코올중독의 상관관계를 조명해준다.
그런가 하면 여성들이 놓이는 위치에서 겪는 어려움이 왜 여성 특유의 알코올중독을 만들어내는지, 젊고 불안정한 여성 노동자이자 워킹맘이자 경력 단절 여성이었던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다각도로 비추어본다. 지극히 알코올 친화적인, ‘술 권하는 사회’인 한국 사회의 근대화 과정과 직장 문화, 한국인들이 경험하는 고도의 스트레스 역시 의존을 낳는 주요한 배경으로 다루어진다.
저자는 이러한 ‘앎’이 단지 인식과 깨달음을 제공할 뿐 아니라 병의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고 말한다. 심리적 의존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파악하면서 막연하게 두려운 존재였던 중독을 해결할 실마리를 얻게 된 것이다. 중독과 이별하며 저자는 그 인식의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술에 취해 도피하고 방치하는 대신 나 자신의 기쁨과 좌절과 괴로움과 가치관을 세심하게 살펴보겠다고. 그것이 술보다 삶을 더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음식을 시키는데 술이 빠질 수 있을까? 결국 배달음식은 혼술로 이어지는데, 이거야말로 폭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남들과 함께 마시는 술이 신호를 받아가며 달리는 시내 주행이라면 혼술은 경부고속도로다. 멈춤 없이 쭉쭉 잔을 들이켜 순식간에 한 캔이, 한 병이 사라진다. 사람들과 함께 마시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중간중간 대화도 하기 때문에 덜 마시게 되는데 혼술은 그런 제약이 없다. 마음이 풀어져 음주량이 더 늘어나고 속도 조절도 안 된다. 문제성 음주를 반복하는 사람이라면 만취까지 직진하기 십상이다.(33)
날트렉손은 원래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 계열의 마약, 특히 헤로인 중독 치료용으로 개발됐는데, 알코올중독에도 효과를 보여 약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술을 마시면 알코올은 오피오이드 수용체와 결합해 도파민 회로에서 도파민 분비를 증가시킨다. 음주를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원리다. 날트렉손은 오피오이드 수용체에 길항효과(두 개의 요인이 동시에 작용해 서로 그 효과를 상쇄하는 것)를 일으킨다. 쉽게 말해, 술을 마셔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 것이다.(62-63)
우리 사회에서 술은 헤로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흔하다. 식당과 마트, 편의점, 배달음식점 등등 도처에 널려 있어 손만 뻗으면 움켜쥘 수 있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사교 모임과 직장 회식 같은 사회생활에서는 최소 한두 잔 마시는 시늉이라도 해야 ‘정상인’ 취급을 받는다. 은근히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를 어디에서나 마주치며 그런 권유에도 끝까지 마시지 않는 사람은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사람만큼이나 괴짜로 여긴다.(78)
중독의 기질도 타고나기 때문이다. 유전적으로 도파민 수용체가 적거나 비활성화되거나, 도파민으로 보상을 주는 보상회로의 기능이 저하될 만한 유전 요소를 타고 나는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상태가 남들보다 우울하기에 술에 대한 갈망이 더 크다. 같은 맥주 한 잔을 마셔도 남들만큼 유쾌해지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자극을 위해 남들보다 많이 마시는 경향이 있어 중독성 물질에 빠지기 쉬운 체질이다.(122)
음식 그 자체가 술을 떠올리게 하는 강력한 단서인데, 음식에 대한 갈망이 전보다 강해지면서 덩달아 술에 대한 욕구까지 점화된 거다. 술을 생각나게 하는 ‘단서’인 음식을 집착적으로 떠올리면서 예전에 학습된 쾌감,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데까지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연결된다. 성급한 신경회로는 이미 술을 마신 것처럼 도파민을 내보내고 여기에 자극받아 술을 더욱더 강렬하게 원한다. 이런 식으로 식욕과 음주 욕구는 가까이 이웃하며 아주 긴밀하게 연동된다. 다이어트가 문제였다. 그로 인해 억눌린 식욕이 간헐적으로 분출되는 게 문제였다.(166)
오늘날 학자들은 문제적 음주 성향이 대물림되는 것을 크게 환경적 요인, 생물학적 요인으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중독자의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은 폭력이나 폭언 같은 부모의 비이성적인 행동에 노출되며 자란다. 술 문제 때문에 경제적으로 무능력해 자녀에게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스트레스와 각종 정서적 불안 요인을 안고 자란 사람은 심리적 취약성으로 인해 부모와 똑같이 알코올중독에 빠질 확률이 높다는 거다. 반대로 고소득, 고학력에 안정적인 양육을 제공한 부모라 할지라도 집안 분위기가 너무 알코올친화적이면 자녀가 음주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을 갖게 될 수 있다. 이런 게 환경적 요인이다.(191)
내게 음주는 가장 마초적인 행위이자 남성성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보였다. 아버지처럼 주량을 과시하고 남들에게까지 강요에 가깝게 술을 권하는 것. 음주에 능숙해지는 것이야말로 남성의 본질을 취해 여성이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생각들을 의식하고 행동한 것은 아니다. 어린 내 나름대로 아버지가 속한 어른의 세계를 엿보고 막연히 짐작하며 잠재의식 속에 술에 대한 선호를 새겨 넣었을 뿐.(195)
그전에는 월 20만 원짜리 고시원에 살았다. 창문이 있는 방치고는 다른 고시원보다 저렴한 편이라 서둘러 계약했던 기억이 난다. 거주에 쓸 수 있는 예산이 한 달에 25만 원인데 5만 원이나 아낄 수 있어 잘됐다 싶었지만, 그 관짝 같은 고시원에서 잠이 들려면 취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결국 아낀 돈 이상으로 술값이 지출되곤 했다. 거기서는 3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나왔다.
그 시절을 생각하며 나는 17세기 초의 영국 런던을 떠올린다. 당시 런던은 시골을 떠나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온 노동자들로 미어터졌고 이들에게 주어진 주거환경은 열악 그 이상이었다. 한 몸 누일 공간도 없어 여러 명이 비좁은 집에서 단체 숙소 생활을 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하루를 마치고 시궁쥐 소굴 같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거리의 선술집을 오가며 시간을 때웠다. 당시 대유행했던 술인 진을 쭉 들이켜고 다음 술집으로 가서 또 한잔 들이켜고…… 만취 상태로 런던의 지저분한 뒷골목을 갈지자로 걸을 정도가 되어야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276-277)
1960년대 박정희 정권 당시 쌀 소비를 줄이려 소주와 주정의 제조에 쌀과 잡곡 사용을 금지하는 바람에 고구마를 원료로 한 희석식 소주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고된 노동과 열악한 삶에 찌든 서민들이 저렴하면서도 도수가 높아 빨리 취할 수 있는 소주를 즐겨 찾기 시작하면서 국민술의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온 이주민들 역시 농촌에서 즐겨 마시던 막걸리 대신 독한 소주잔을 들며 시름을 풀었다. 결국 소주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아 유행했다기보다는 시대의 가난과 생산자 편의에 의해, 또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대중화된, 다분히 ‘강제된 기호’였던 측면이 있다.(294-295)
사회가 통제한 욕망, 그 반작용으로 생겨난 무절제함, 격변의 세월 동안 좌절해온 개인들의 경험, 내가 속한 사회가 품고 있는 이 수많은 중독 요인의 연장선 위에 나의 중독 역시 존재한다. 사회 단면을 들여다보며 현상이 어디서부터 유래됐는지 실 끝을 잡고 더듬어 되짚어보는 과정을 통해 내가 몸담고 살아온 이 ‘알코올중독 원더랜드’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이해하게 된 것 자체로도 핑계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325)
내가 중독에서 빠져나오게 해준 가장 강한 동력은 다름 아닌 글쓰기였다. 이 병이 무엇으로부터 연유했는지 총체적, 다각적으로 사유하고 탐구하는 과정에서 나는 이것을 진정 나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수면 위로 끄집어내어 햇빛 아래 명명백백히 원인과 결과를 드러냄으로써 이 병은 더 이상 모호하게 은폐된 비밀이나 막연한 외부의 그 무언가가 아닌, 내 안에 도사린 또렷한 실체로서 인식됐다. 정체를 파악한 것은 더 이상 내게 두려움을 주지 못할 뿐더러 나로부터 오롯이 분리시킬 수 있는 대상이 된다.(341-342)
여성은 왜 술에 취하는가
『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는 이제까지 한국 사회에서 잘 보이지 않던 ‘여성 중독자’의 형상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흔히 ‘알코올중독자’라고 했을 때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는 중년 남성 중독자의 모습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는 생각보다 많은, 보이지 않는 여성 알코올중독자들이 존재한다. 이들이 겪는 경력 단절, 육아 부담, 사회적 불안 등의 경험과 알코올중독의 상관관계는 기존의 전형적인 알코올중독과 상당히 다르다.
저자의 경험에서도 알코올중독이 심화하는 데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경력 단절이었다. 이른바 ‘키친 드링커’, 전업주부의 알코올중독을 다룬 챕터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다. 출산과 육아를 위해 그전까지 일궈온 커리어와 성취를 포기한 결과는 종종 불안감과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진다. 배우자와 분담한다고 해도 가사와 양육이 거의 전적으로 여성에게 전가되는 현실에서 전업주부는 가정 내의 존재로 고립되기 쉽다. 이런 불안과 우울을 술에 의존해 달래는 주부들은 상당히 많다.
더군다나 집 안은 여성들이 관리하는 영역이고, 직장인과 달리 혼자 있는 시간이 많기에 키친 드링커들의 중독은 눈치채기 쉽지 않아 손쓰기도 어렵다.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도 중독에 쉽게 노출되기는 마찬가지다. 각종 폭력과 차별에 노출되어 있는 현실이 가져오는 불안, 남성에 비해 저평가되는 상황에서 능력을 증명하기 위한 완벽주의를 술이나 다른 대상에 대한 의존으로 해소하려는 여성들도 많다.
여성 고유의 경험에 관한 이 책의 분석은 ‘여성 알코올중독자’의 존재를 더욱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지금까지 남성 중독자를 중심으로 전개되어온 논의의 빈 곳을 채우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며, 무엇에든 의존해본 경험이 있는 여성 독자들에게는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보다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여자는 무성의한 몸짓으로 유모차를 몇 번 앞뒤로 움직이더니 유모차 아래 수납칸에서 맥주 한 캔을 더 꺼냈다. 서늘하고 묵직한 금속성 물건이 손바닥에 닿자 기분이 좋아진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서둘러 캔을 따서 한 모금 넘긴다. 방금까지 마음 한구석에 스멀스멀 번져 나가던 우울이 한 모금 한 모금에 씻겨 내려간다.
지금 마시는 맥주 몇 캔이 그녀의 첫 끼니다. 네 살배기 큰아이의 식사를 챙기고 이제 갓 5개월이 지난 둘째를 돌보다 보면 식사 때를 놓치다 못해 그냥 거르기 일쑤다. 가끔 먹이다 만 아이 밥을 몇 술 삼키는 게 전부다. “뭐가 그렇게 바쁜데?” 종일 굶은 그녀에게 남편은 어이없다는 듯 묻는다.(215-216)
늦은 오전 한적한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울컥 가슴에서 뭔가 치밀어 올랐다. 주변 사람들이 다 출근해 있을 시간에 나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됐구나. 내심 회사를 그만둔 것을 통렬하게 후회했다. 내가 좋아하던 그 일을 더는 할 수 없게 된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도 직업 없는 사람이 된 현실이 견딜 수 없이 괴롭고 수치스러웠다. 한편으로는 내가 일을 그만둘 수 밖에 없게끔 만들던 모든 상황과 조건들, 나를 옭아맨 가족, 당치도 않은 요구를 해대던 직장상사가 원망스러웠다. 아니, 그 누구보다 생애 최고로 멍청하고 잘못된 선택을 한 나 자신을 극도로 미워하고 혐오했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유일하게 나를 위로하는 것이 술이었다. 오전 내내 초조하게 시계를 흘낏대다가 점심 먹을 시간이 되면 부리나케 냉장고로 뛰어가 술병을 꺼내 들었다.(220-221)
키친 드링커들은 숨기기의 천재다. 자신들의 영역인 부엌 곳곳에 술병을 숨겨놓고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뻗친다. 취기를 숨기는 데도 탁월하다. 술에 깊이 빠져 있던 어느 날, 나는 오전부터 와인이며 맥주며 잔뜩 풀어놓고 마셨다. 오후 두세 시쯤 되자 취기로 어질어질한 상태가 됐다. 곧 아이가 하교할 시간인데 이 꼴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동네에 있는 작은 공원에서 뜀박질을 했다. 땀을 흘려서 취기를 빼려고 공원을 돌고 또 돌았다. 스스로도 웃기고 비참했다. 이렇게까지 바닥을 치나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229)
유독 여성 능력자 캐릭터에게만 빼놓지 않고 술을 잘 마신다는 설정을 넣는 건 또 다른 층위의 단면 아닐까. 주인공이 실력자라 해도 결국 신체적 위력에서는 남성에게 밀리기 마련인데 남자를 주량으로 이겨버림으로써 이 사람은 육체적으로도 남성을 압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이 세계관 안의 진정한 강자임을 증명한다. 그렇다. 이것은 일종의 판타지다. 우리가 신체적으로 남성의 우위에 설 수 있다는 환상.(235)
음주 행태에 관한 여러 자료를 살펴보다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여성과 남성이 ‘술을 마시는 이유’가 다르다는 것이다. 연구 「대학생의 음주 정도에 따른 음주 동기와 음주 결과 기대」는 남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음주의 동기를 고양동기(긍정적인 기분이나 안녕감을 위해), 사교동기(긍정적인 사회적 보장을 획득하기 위해), 대응동기(부정적인 정서를 감소시키거나 조절하기 위해)로 나눠 조사했다.
“남성의 음주 원인은 내적 요인 이외에도 사회적 요인의 비중이 컸고, 여성은 반대로 개인의 우울이나 스트레스와 같은 내적 요인에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는 기존의 연구들과 유사한 결과로도 해석해볼 수도 있다.” 즉 남성은 친교 모임 등 사회적 활동의 일환으로 마시지만 여성은 우울이나 스트레스를 감소하기 위해 마신다는 거다.(248-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