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는 연인들이 느끼는 이러한 딜레마의 핵심을 짚어내기도 했다. ‘연인은 상대를 하나의 대상으로 소유하려 하는 동시에, 상대가 자유로운 존재로 남아서 자신을 자유의지에 따라 사랑해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조작할 수 없는 것을 조작하고, 강압할 수 없는 것을 강압하려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랑은 진정한 관계의 교류가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만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사랑의 최종 형태는 아닐 것이다. 모든 연인은 상대방에 대한 권리를 어느 정도 갖길 원하지만, 그럼에도 상대방이 작위적인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원하기 마련이니까.
---「피그말리온의 사랑이 지닌 함정」중에서
우리가 사랑할 때 자아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는 것처럼, 우리는 사랑을 잃어버릴 때 자아가 수축하고 감소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랑할 때 느낀 충만함이 마치 환상이었던 것처럼 허탈하고 공허해지는 것이다. 사랑 중에 느꼈던 합치의 희열은 반대로 실연 후의 외로운 자아를 더욱 상처받기 쉬운 상태로 만든다. 연인이 함께 만든 ‘우리’라는 세계는 이제 ‘나’라는 원소로 환원된다. 자신만이 상대방의 유일한 사랑이라 여겼던 행복감이 사라지고, 고갈되고 무가치하며 무의미한 자신만이 홀로 남는다. 실연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에 그치지 않고, 한 사람의 자아 중심부를 강타하여 그것을 흩트리고 부수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실연의 감정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사랑의 종말이 마치 죽음처럼 느껴질 때」중에서
폐소공포증이란 좁거나 밀폐된 공간에 있을 때 극한의 두려움을 느끼는 병이다. 밀폐된 공간에 대한 공포 때문에 환자들은 엘리베이터나 지하철 등을 타지 못하고, 그 안에 갇혀있으면 극심한 불안감으로 인해 공황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밀폐된 장소에 갇혀 질식하고 결국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은 통제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도 연관이 있다. 분석적인 측면에서 폐소공포증은 어머니의 몸 안에 갇혀 나오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과 연결지어 해석한다. 더불어 자신의 공격성이 어머니의 몸을 파괴하고 곧 자신에게 되돌아와 자신까지 파괴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 때문에 폐소공포증을 앓는 이들은 필사적으로 밀폐된 공간을 탈출하려고 한다.
---「단절된 세계에서 진실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중에서
이처럼 모든 사람은 여러 가지의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게 된다. 어떤 끈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단단히 얽매여있고, 또 어떤 끈은 내가 아무리 혼신의 힘을 다해도 견고하게 연결되지 않으며 자꾸 흘러내린다. 어떤 끈은 우연히 발끝에 채는 길거리의 돌부리처럼 그저 내 옆구리를 툭 치고 지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 다양한 끈을 따라서 우리의 욕망이 흐른다. 많은 경우에는 그 욕망의 흐름에 따라 삶이 결정되기도 한다.
---「사람 사이의 인연은 어째서 상처로 이어지는가」중에서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행동을 병행하는 것은 사실 젊은 사람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작은 실패에 부딪쳐도 금방 체념하고 포기하는 경험에 오히려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룰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꿈을 꾸는 것은 낭만보다는 허황된 망상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마침내 그 꿈에 도달하는 순간은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는 희열을 가져다준다. 꿈을 이루는 5분을 위해 평생을 살아왔다 해도 아깝지 않은 기분, 그 기쁨을 누릴 기회를 삶은 공평하게 부여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하고자 하는 자에게 기회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중에서
자기를 초월하여 자신이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할 때, 즉 내가 머지않아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밀려오는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내가 죽어도 다음 세대를 통해서 생명은 연속되며, 세상은 존속된다는 것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한다. 즉 우리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경험을 통합하여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모여 황금빛 호수를 이룬 곳에서」중에서
동물은 인간이 되기를 열망하고 인간은 동물이 되기를 열망한다. 세상에는 완전히 악한 사람도, 완전히 선한 사람도 없으며,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흘러가며 윤회한다. 우리는 종종 시간을 되돌린다면 모든 것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우리는 자신의 선택들을 통해 만들어진 존재다.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언제나 남을 수밖에 없다. 때론 잘못된 선택을 통해 배워나가면서 그만큼 성장하고 오늘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일 테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을까」중에서
사회란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이룬 집단을 말한다. 사람들은 사회 속에 살면서 자신의 내적 갈등을 밖으로 밀어내어 다른 사람이나 집단 혹은 어떤 사회적 이데올로기에 투사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외적 대상이 자신의 정신 내부의 한 기능을 맡도록 하는데, 이를 정신분석적 용어로 외재화라 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통해 사람들의 무의식은 사회를 구성하고 움직이게 만든다. 따라서 한 사회는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집단적 무의식이 투사되어 있는 장소라 할 수 있다. 모든 사회는 개인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심리적 구조를 가지고 같은 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기능하게 된다. 즉, 개인은 결코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사회 또한 개개인의 존재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가 집단으로 혹은 개인으로 존재할 때」중에서
우리 사회에서도 보다 견고한 자아를 갖추어 퇴행을 멈추고 성숙해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괴롭더라도 우리가 가진 수많은 문제를 직시하고, 참모습을 받아들이며 인정하는 것이 그러한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모든 정신치료의 시작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를 반영하고 있는 영화에서도 퇴행한 사회의 가학적인 쾌락보다는 어렴풋하게나마 희망의 여운을 안고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우리 사회는 왜 조폭 영화에 열광했을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