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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돌봄

새파란 돌봄

: 가족, 돌봄, 국가의 기원에 관한 일곱 가지 대화

이매진의 시선-13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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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2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262g | 135*210*20mm
ISBN13 9791155311295
ISBN10 1155311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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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돌봄’이라는 제목은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매우 젊다는 뜻의 ‘새파랗다’와 새로운 물결을 뜻하는 ‘새로운 파란’이다. ‘새파랗다’는 ‘영 케어러(Young Carer)’를 가리킨다. 영 케어러는 만성적 질병이나 장애, 정신적 문제, 알코올이나 약물 의존 등을 겪는 가족을 돌보는 18세 미만의 아동이나 젊은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 p.11

“정확히 가족이 어떻게 해체됐는데요?”
“평생을 여기서 다 말해요? 그러면 해주는 거예요?”
성희는 언성이 높아졌다. 간단하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무심하게 던지는 모습이 오히려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담당 공무원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아빠 일로 주민센터에 와 있는 것만으로는 가족 해체 사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네 고통은 내 알 바 아니라는 완고함 앞에서 성희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주민센터를 빠져나와 홧김에 ‘호적 파는 방법’을 검색했다. 호적을 팔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성희의 삶을 설명할 길도 이 세상에 없었다.
--- p.28

함께 돌봄을 할 수 있는 손이 있는데도 그 손을 쓰지 않게 만드는 힘은 분명 권력이다. 이 사회에서 돌봄을 보이지 않게 하는 더 큰 커튼은 ‘여성’이다. 성별 분업이야말로 돌봄을 가려주는 ‘사회적 커튼’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커튼은 남성에게 돌봄을 보이지 않게 가려준다.
--- p.58

희준네 집은 아빠, 엄마, 희준, 여동생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4인 가구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서 안정된 지위 대물림이 진행될 수 있는 가족 배경을 갖췄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되는 현상은 요즘 불평등 문제의 중심에 놓여 있다. 지위 대물림에 아픔과 돌봄이 맞물리면 어떻게 될까?
--- p.67

오빠에게 전화가 온다. 엄마와 아버지를 죽였다고 오빠가 말한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일, 아름이 상상한 최악의 순간이다. 현실이 돼도 납득할 수 있을 듯했다. 오빠는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하던 일들을 혼자 감당하고 있을 테니까. 아름이 한 최악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준 사람은 오빠가 아니라 엄마였다. 엄마는 칼을 들었다.
--- p.93

동생은 큰 외삼촌하고 갈등이 심해지면서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집에 들어가지 못하니까 집 앞이나 편의점 테이블에서 시간을 보냈다. 또다시 술을 마셔야 되는 곳이었다. 집을 나가서 얻은 방 또한 고시원이었다. ‘최저 주거 기준’에 맞지 않는 공간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공간과 공간 사이를 부유하는 사람의 삶에 어떤 인정과 존중이 스며들 수 있었을까?
--- p.126

닥친 문제를 업무 보듯 해결하는 방식은 경훈이 돌봄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된다. 감정의 개입을 최소화하니, 돌봄을 하면서 겪는 일에 정서적으로 지치는 경우가 줄어든다. 전업 주식 투자 같은 돈 버는 일과 할머니 돌봄을 병행할 수 있는 정서적 안배도 손쉬울 듯하다. 이런 상황은 돌봄이라는 행위에 남성이라는 젠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남성의 돌봄은 어떨지 상상하게 된다.
--- p.141

서진의 삶에서 돌봄은 일방적이었다. 마치 무한한 자원인 양 누군가를 끊임없이 돌봤다. 그렇지만 돌봄 하는 사람은 무한한 ‘자원’이 아니다. 아니, 차라리 ‘자원’이면 순환돼서 재생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딸이자 엄마라는 위치를 떠올린다면 순환되지 않는 돌봄은 서진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째서 끊임없이 돌봄을 한 사람이 자기도 돌봄을 받아야 한다는 마음을 지닐 수 없을까?
--- p.171

돌봄은 쉬지 않고 순환하는 대중교통하고 똑같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공장은 멈출 수 있어도 돌봄은 멈출 수 없는 모습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무임승차권을 회수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태어나고 아프고 늙고 죽는 과정은 우리의 삶 자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돌봄 수혜자’다. 우리는 돌봄을 받은 적이 있고, 받고 있으며, 받게 된다. 우리는 이 당연한 사실을 여태껏 잊고 살았다. …… 우리 모두 ‘돌봄 수혜자’라는 사실부터 인정하자.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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