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시작은 아빠여야 했다. 아빠에 대한 사랑이나 가족이라는 집단에서 아빠라는 지위가 가지는 권위 때문이 아니다. 아빠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11살 때부터 일했다. 아빠는 우리 가족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오래 일한 사람이다. 아빠가 노동자로 보낸 63년의 세월은 지금의 ‘부’와 상관없이 존중받고 존경받아야 한다.
언젠가 아빠는 고령으로 더 이상 엄마를 돌볼 수 없게 되고, 어쩌면 병들 것이다. 그리고 우리(자식)들은 늙고 병든 엄마와 아빠를 돌보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거나, 지금 하는 ‘일’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가난한 자의 삶은 가시밭이 아니라 지뢰밭이다.
---「1장 강영수. 가방 공장 사장의 꿈은 이뤘는데, 왜 퀵 서비스 가게 사장은 될 수 없었을까?」중에서
언니가 대학 입학을 위해 공부하던 당시 우리 집 형편은 매우 어려웠다. 당시 우리 집에는 고정적인 일자리나 수입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빚쟁이는 수시로 집에 찾아오고, 자주 이사를 다녔다. 지영 언니는 대입을 준비하는 내내 생활비와 학원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다. 하루의 반 이상을 일했다. 언니에게는 공부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공부의 질 또한 낮았다. 언니가 했던 아르바이트들은 대부분 몸을 쓰는 일이었다. 일을 마치고 지친 상태로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듣고 공부했다.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사수할 때는 일 년의 반은 돈을 벌고, 나머지 반은 공부하는 ‘전략’을 세우기도 했다.
지영 언니에게는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할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언니가 정규직이 되고 얼마 후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제도는 사라졌다. 언니 이후의 기수들은 아무리 많은 콜을 받고 친절하게 안내해도 계약직일 뿐이다.
---「2장 강지영. 아르바이트생에서 계약직으로, 계약직에서 대기업 정규직으로」중에서
유정 언니는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사는 ‘평범한’ 삶을 꿈꿨다. 하지만 그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유정 언니는 29살 때 3살, 5살 두 아이를 홀로 키워야 하는 여성 가구주가 되었다. 언니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에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들을 구했다. 언니는 김밥집, 중국집, 일식집, 백반집 같은 식당이나 마트에서 일했다. 언니가 시간당 버는 돈은 최저시급밖에 안 되었다. 가족의 도움 없이 생활은 불가능했다.
아이들이 중학생·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언니는 다마스 퀵 서비스를 시작했다. 시간당 버는 돈은 언니의 능력에 의해 결정됐다. 그리고 언니는 가족의 도움 없이 혼자서 두 아이를 부양할 만큼 벌게 되었다. 유정 언니는 ‘능력자’였다. 지금도 언니는 다마스 퀵 서비스 기사다. 그리고 3살, 5살이던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다.
---「3장 강유정. 모자가정 여성 가구주에게 가난은 숙명」중에서
22살 민준이는 경력 6년 차다. 민준이는 중학교 3학년 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16살 민준이는 하루에 12시간씩 일했다. 고등학생 때는 오토바이 배달을 했다. 일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었냐고 묻자, 민준이는 “누군가 무단결근을 하면,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혼자서 다해야 해. 또 누가 휴가 등으로 일을 못 하게 되면 ‘땜빵’으로 출근해야 하고. 거의 쉬는 날 없이 일했던 거 같아.”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을, 늦게까지 일한 민준이는 항상 늦잠을 잤다. 학교에는 항상 지각이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민준이는 다시 일하러 갔다. 학생이고 노동자였던 민준이는 학생으로도, 노동자로도 보호받지 못했다.
---「4장 이민준. 스트레스성 탈모가 생겨도 A 호텔에서 계속 일한 이유」중에서
오토바이 배달을 한 지 2년 정도 지났을 때, 지훈이는 스무 살이 되었다. 스무 살이 된 지훈이는 ‘직업’이 갖고 싶었다. 지훈이는 오토바이 배달만 근 3년을 했다. 오토바이 배달을 통해 빚도 갚고, 돈도 모았다. 하지만 지훈이에게 오토바이 배달은 직업이 아니었다. 직업은 본인이 ‘직업이에요’라고 말할 때만 직업이 된다.
지금 지훈이는 혼자 벌어서, 혼자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번다. 하지만 저축할 정도는 아니다. 언제 다치거나 아플지 모르고, 직장을 잃을지 모른다. 결혼 등으로 부양해야 할 가족이 생긴다면, 지금 수준의 벌이로는 ‘워킹푸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훈이 혼자서 200만 원을 벌고, 비슷한 사람을만나 결혼해서 둘이 번다면 400만 원(200만 원 × 2명 = 400만 원), 아이가 생겨 한 명이 아이를 돌보게 된다면 200만 원으로 3명(부부+아이)이 먹고 살아야 한다. 지훈이에게는 연금이나 보험, 퇴직금 등의 안전장치도 없다.
---「5장 이지훈. 오토바이 배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