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엠은 눈을 떴다. 온 마을 사람들이 이야기하던 눈. 커다랗고, 녹색과 녹갈색 사이 천 하고도 한 개의 미묘한 변화를 담은, 어떤 이들은 찬탄하고 어떤 이들은 적대감을 가지는, 아무 데도 보지 않는 것 같은 두 눈. 메리엠의 할머니는 생전에 늘 “이 아이의 눈은 태양보다도 더 밝아”라고 하며 메리엠을 보듬곤 했다.
메리엠이 반 호수 근처의 흙먼지로 덮인 마을에서 우울한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그곳에서 서쪽으로 1,1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이스탄불에서는 교수라는 인상적인 직업을 지닌 이르판 쿠루달이 비명을 지르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이스탄불에서 동쪽으로 약 1,450킬로미터, 그리고 메리엠이 살고 있는 마을을 지나 100킬로미터 넘게 더 가면 나오는 가바산맥의 눈으로 뒤덮인 경사면에 위치한 초소의 좁은 침대에서, 제말은 흥분으로 몸을 떨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제말은 그의 마을에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 내려온 전설 속의 무구한 신부에 대한 꿈을 또 꾸고 있었던 것이다.
잠에 빠지기 직전에 메리엠이 중얼거렸다. “왜 이젠 닭들이 울지 않죠, 비비?”
“닭들은 항상 운단다, 얘야?어떤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어떤 사람들은 못 들을 뿐이지.”
“나한텐 안 들려요.”
“왜냐면 너는 아침이 오기를 바라지 않으니까.”
이번에는 메리엠이 쉽게 제말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제말은 더 이상 산악특공대처럼 앞서서 나아가지 않고, 그녀와 함께 천천히, 그리고 지친 걸음으로 터덜터덜 걸었다. 메리엠은 감사함과 자비심으로 충만해져서, 색이 바랜 머릿수건을 마치 개선의 깃발처럼 자신의 머리에 둘렀다.
메리엠은 남자들 앞에서 먹는 건 이제 익숙해졌지만, 지금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자가 직접 만들어서 차려주는 음식을 먹으려는 참이었다. 게다가 그는 그냥 남자일 뿐 아니라 나이가 많고 도시 출신인, 교육을 받은?심지어 교수였다.
갑자기, 이르판에게 아주 흥미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어떤 사람이 그의 인생을 바꿨을 때, 그게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아니면, 그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꿈으로써 자기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이르판은 그의 모친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한 사람을 치유하려면 또 한 사람이 필요해.”
여기 이르판의 배에는 동부 아나톨리아에서 온 두 사람이 타고 있었다. 이르판은 그곳에 가볼 기회는 없었지만, 자기가 쓰고 있는 책에 필요한 부분인 동부의 분위기가 그에게로 왔다.
매초가 지나는 순간마다, 그 배는 터키석 같은 색깔의 바다 위를 미끄러지면서 그 끔찍한 스카프로부터 메리엠을 조금씩 더 멀리로 데리고 갔다.
사흘 동안, 무거운 대기 속에서 거의 끈적거릴 정도로 짙어진 오렌지꽃 향기가 모두를 에워쌌다.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위스키를 마셔댄 대사와 이르판은 물론이고, 배나 정원에서 게으르게 낮잠 자는 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제말 역시 그 향기에 취했다.
그 향기는 메리엠의 어둑어둑한 방의 열린 창문으로도 들어와서 향유처럼 그녀의 전신에 퍼졌고, 그녀의 상처를 치유했다. 그녀의 방에 스며든 오렌지꽃의 향기는 연민이 변한 것이었다.
“무슨 장난말이요? 어린아이가 되는 게임”
“인간은 사회가 그들에게 지워준 온갖 바보 같은 선입견을 짊어진 채 살아가는 ‘낙타 단계’를 거칩니다. 그러고 나면 그런 선입견들에 대항해서 싸우는 ‘사자 단계’가 오죠. 그런데 그 뒤에, 오직 소수의 인간들만 성취하는 또 다른 단계가 있어요. ‘어린아이 단계’죠. 어린아이의 천진함을 가지고 인생을 생각하고, 게임을 하고, 온갖 영향에 스스로를 열어놓고, 자신의 잃어버린 순수성을 찾는 게 요구되는, 가장 높은 단계죠. 내가 게임을 하는 게 그래서요.”
“이 바보야. 네 아버지는 그 애를 강간하는 걸로 모자라서 너한테 그 애를 죽이라는 일까지 맡긴 거야, 그걸 모르겠니”
이 말을 듣자 제말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그는 교수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줄을 붙잡았다. “거짓말쟁이! 당신은 그 말을 한 죄로 죽을 거야!”
“메리엠한테 물어봐.” 이르판이 간신히 말했다. “그 애가 말해줄 거야!”
제말이 메리엠을 향해 돌아섰다. “이 남자한테 거짓말쟁이라고 말해!” 그가 소리쳤다. “말해!”
메리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해!”
메리엠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이해가 안 가니” 이르판이 말했다. “저 애의 침묵이 모든 걸 설명해 주는 거야. 네 아버지는 변태야.”
오렌지꽃 향기를 두른 채, 혼자서,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그리고 자유롭게, 그녀는 파도가 찰싹거리고 미풍이 불어오는 바닷가 옆 모래가 깔린 길을 걸어갔다.
그녀의 드레스는 바람 속에서 펄럭였고, 파도의 분말이 그녀의 맨다리를 서늘하게 했다.
메리엠은 당나귀가 세 번 우는 소리를 들었다.
당나귀가 구슬프게 다시 한번 울었다. 그 소리가 그녀의 뒤편 언덕에서 메아리로 울리자, 메리엠이 대답했다. “다 왔어!” 그녀가 소리쳤다. “왜 이렇게 안달이야!”
마침내 메리엠은 신이 그녀를 사랑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