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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해연 | 라임 | 2022년 08월 0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6 리뷰 12건 | 판매지수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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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8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153*215*20mm
ISBN13 9791192411057
ISBN10 119241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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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김석진 씨의 죽음으로 진우 삼촌과의 인연이 다시 이어진 셈이었다. 단순히 아는 사이였다고, 과거의 어떤 인연 때문에, 혹은 아버지에게 신세를 졌다는 이유로 삼촌이 날 찾아온 것이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해는 이해일 뿐이고, 나는 딱히 갈 곳이 없었다. 이전의 잦은 가출이 내 발목을 잡은 것이다. 보호자가 없어서 영락없이 쉼터 같은 청소년 보호 시설에 들어갈 판이었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 p.14


벌 떼는 내 주위를 크게 맴돌며 하늘 위로 올라갔다 낙하하듯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꼿꼿하게 서서 벌들이 쏟아지듯 날아오는 걸 두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았다.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두려웠지만 나는 벌들을 거부할 수 없었다. 벌들은 검은 소용돌이를 만들듯이 나를 에워싸며 춤을 추었다.
벌이 나는 소리가 큰 압력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마치 공중에 뜬 것처럼 소리가 내 몸을 허공으로 이끄는 것 같았다.
급기야 벌들이 내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벌이 몸에 붙었다. 팔과 다리는 물론이고 얼굴과 머리, 몸통 할 것 없이 벌들은 틈을 주지 않고 내려앉았다. 마치 인간 먹이장에 앉은 것처럼 내 몸에 안착한 벌들이 윙윙거렸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 p.19


그 일 이후, 나는 사람들이 두려웠다. 아버지가 처참하게 죽은 현장에서 혼자만 살아남은 아이를 사람들은 뭐라고 말할까?
불쌍한 아이, 혹은 괴물 같은 아이.
그렇게 나의 평범함은 사라졌다.
낯선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내게 질문했다. 누구도 관심 없던 내 성장담이 이제 와서 왜 궁금한 걸까? 털어놓고 싶지 않은데 집요하게 말하라고 한다. 지루한 만남들, 질문들, 검사들. 나는 그 땅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때 만났던 사람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아버지를 알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죽자 몇몇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걱정이 돼서 찾아오기도 했지만 호기심으로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신문 기사를 보고 무작정 들이닥친 사람도 있었다. 여기까지 쫓아올 정도라면 내게 무엇인가를 단단히 묻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묻고 싶은 걸까?
모든 질문은 결국 하나였다. 성장담이고 나발이고, 내가 궁금하거나 그 상황이 궁금한 게 아니었다. ‘내가 아버지를 죽였냐’는 것이었다. --- p.48~49


여기에 오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엄마의 존재를 확인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이유가 없었다면 결코 오지 않았을 거다. 그러니까 그 이유를 물어야만 했다.
“그날, 우리 엄마 봤어?”
“봤지.”
“진짜?”
“……기억 안 나? 너 기억 상실인가 뭔가 그런 거라던데 진짠가 보네.”
내가 고개를 숙이자 희철이가 다시 물었다.
“그럼 벌도 기억 안 나?”
“벌?”
“그래, 벌이 너한테…… 아니다. 그럴 수도 있지. 그게 뭐 네 탓은 아니지…….”
--- p.75


해나는 더 할 말이 있는데도 말을 삼키는 듯했다. 삼켜 버린 말이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누군가의 상처를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의 상처만으로도 힘에 겨웠다.
“아빠가 널 많이 때렸다며?”
해나가 무심하게 물었다.
“응.”
그래서 나도 무심하게 대답했다. 마치 밥을 먹었냐는 물음에 먹었다고 대답하는 거와 같았다.
“나도 그래.”
그 소리에 깜짝 놀라 해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보지 마. 나도 그렇다고.”
해나도 나처럼 아버지한테 맞는 아이였다. 곱게 자라서, 너무 많은 걸 가져서 제멋대로 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애도 나와 다르지 않다니 놀라웠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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