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3년 02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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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56쪽 | 326g | 120*188*20mm |
ISBN13 | 9788954690560 |
ISBN10 | 8954690564 |
문학동네 에세이 1만 5천원 ↑ 구매 시,〈청춘유감〉 아크릴코스터 (포인트 차감)
발행일 | 2023년 02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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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56쪽 | 326g | 120*188*20mm |
ISBN13 | 9788954690560 |
ISBN10 | 8954690564 |
MD 한마디
[그 찬란한 빛 속에 함께 하려고] 베를린 시골 오두막에서 읽고 쓰는 것만으로 가득한 생활을 담은 배수아 작가 신작 에세이. 그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읽고 씀으로 인해 더 자라난 자신이, 자아의 자유로움이 보이는 것 같다. 삶 자체가 책이 되는, 낯설지만 환상적인 그 순간들로 안내할 매혹적인 책. - 에세이 PD 이나영
프롤로그 연인 일곱번째 아이 낙엽을 헤치며 걷는 사람 WG, 그리고 개구리를 먹는 자 작별들 누가 우리에게 자연을 암시하는가 최초에 새를 가리킨 여인 내가 가진 넝마를 팔고 영혼의 서쪽 벽 9월의 황무지에서 고통 고요. 회색. 멀리 헝가리 화가의 그림 에필로그 |
모시조개로 끓여낸 맑고 담백한 조개탕의 국물을 가만히 음미하는 것처럼 우리가 느끼는 행복이란 조용하고 평범한 삶을 마치 일상처럼 한 스푼 떠먹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치 특별하지 않은 주말의 어느 한가한 시간에 배수아의 산문집 <작별들 순간들>을 읽는 것과 같아서 호들갑스럽거나 억지스럽지 않은, 그러면서도 결코 흔하게 느껴지지 않는 일상의 시간 속으로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평범함이 오히려 귀한 가치로 대접받는 현대인의 고양된 삶에서 '독서'란 어쩌면 구시대의 유물처럼 곰팡내 나는 습관처럼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과도하게 고양된 일상의 에너지를 몇 단계 낮출 수 있는 방법 또한 '독서'나 '산책'과 같은 구시대적 유물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보면 현대인의 삶은 뭔가 어긋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게 아닐까.
"오래전 어느 날 당신으로부터 온 편지...... 그 순간 문득 작별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특정 시기에만 국한된 개별 사건이 아니라, 삶의 시간 내내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비밀의 의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일생은 그것을 위해 바쳐진 제물이었다. 우리가 평화롭게 정원의 흙 위로 몸을 기울인 동안, 당신의 몸 위로 빛과 그늘이 어지럽게 얼룩지는 그 순간에도. 작별은 바로 지금, 우리의 내부-숲안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궁극의 사건이었다. 배추흰나비의 애벌레가 몸을 구부리면서 당신의 목덜미 위를 느리게 기어간다. 나는 손가락 끝으로 그것을 집어올린다. 평화와 고요. 오직 빛과 호흡만이 있는 순간. 지금 당신이 불타고 있다는 증거인가? 글쓰기는 작별이 저절로 발화되는 현장이다. 그 아래 아직 당신의 발자국이 움푹 팬 채로 남아 있는 죽은 딱총나무가 내 눈앞에서 불타기 시작한다." (p.82~p.83)
지난 15년간 독일과 서울을 오가며 글을 써오고 있는 작가는 자신이 정원이라고 부르는 베를린 인근 시골의 오두막에서 살기로 결정했다. 책에서 작가는 독일 시골 정원에서의 생활을 묘사한다. 작가의 일상일 수도 있는 산책, 여행, 책과 작가들, 글쓰기, 정원 등을 소재로 한 이 책은 한 줄 한 줄을 모두 곱씹어 음미할 만큼 아름다운 문장으로 꾸며졌지만 이야기의 분명한 주제나 결론으로 독자를 이끌지는 않는다. 다만 감각적인 묘사와 눈에 보이는 듯한 상황 설정으로 인해 작가의 일상을 곁에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에 빠져드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그것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단지 시야에서 잠시 보이지 않았을 뿐. 아아, 따뜻한 바닷가에서 『파도』를 읽는 여름은 두 번 다시 가능한 것인가. 만약 그런 여름이 다시 온다면, 우리는 마침내 평화가 왔다고 착각할 것이다. 단 한 번도 있지 않았던 평화, 단 한 번도 끝나지 않았던 전쟁,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었던 기다림, 지금 우리가 겪는 이 암울함은 사실은 지속되는 한 권의 책과 같다고 말했다. 신은 책 읽기를 멈추지 않는다." (p.187)
“누군가 이 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읽기에 대한 글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고 에필로그에서 밝히고 있는 작가는 "나에게 독서란 한 권의 책과 나란히 일어나는 동시성의 또 다른 사건"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므로 이 책은 작가가 읽는 책과 나란히 일어나는 작가의 또 다른 사건에 대한 기록, 이를테면 작가가 읽는 책에 덧붙여진 동시성의 일상을 아름답게 풀어낸 글이라고 하겠다. '나'와 '베를린 서가의 주인' 두 인물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리얼리티를 획득하고 있는 독특한 산문 형식은 어쩌면 '배수아'라는 이름에 걸맞은, 그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든 그만의 발상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오직 이 정원을 따라서 쓰인 글이다. 어느 날 내가 우연히 도착하게 된, 투야나무 울타리 뒤편의 보이지 않는 정원.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정원의 시간과 동시에 일어난다. 정원의 삶과 나란히 간다. 이 글 속의 그 무엇도 정원보다 앞서거나 나중에 말해지지 않았다. 그것은 파라다이스라고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말했다. 파라다이스의 어원은 고대 이란어로 '울타리로 둘러쳐진 땅'을 의미하므로." (p.251 '에필로그' 중에서)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뱀과 물>, <에세이스트의 책상> 등 배수아 작가의 몇몇 작품들을 읽어오면서 나는 시나브로 그녀만의 작품 세계에 젖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책들에 덧붙여진 동시성의 나의 일상은 남아 있지 않다. 머릿속 기억이나 일기를 비롯한 어떤 기록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망각이란 경험의 부재와 같은 것인가. 아쉽거나 서글프다는 생각이 새로운 각오나 다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까닭에 나의 삶은 이렇듯 변하지 않고 흐른다. 나는 나의 삶을 제대로 감각하지 못한다.
이 책은 문학동네에서 출판된 배수아 작가님의 작별들 순간들입니다. 이 리뷰는 제 개인적인 생각을 담고 있으며 구매시 참고로만 부탁드리며 약간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사실 에세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는 아니지만 어쨌건.. 주의문구를 달아보았습니다.
배수아 작가님은 예전부터 유명한 분이었기 때문에 이미 명성은 익히 알고 있으나, 소설이 아닌 에세이로 접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워낙 식견이 짧은 탓에 작가님이 선보이는 고급어휘가 점철된 에세이를 읽을 때에는 내가 이 문장들을 제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 맞나,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이해가 안될까 할 때도 있었으나 어찌됐든 책장은 잘 넘어갔습니다. 읽다보면 나도 또한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의 서늘하고도 건조한 아침을 맞는 이방인이 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요즘들어 허무에 물들고 있는데 그런 분위기와도 잘 맞고, 어찌 됐든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다시금 정립할 수 있게 작가님의 생활로부터 얻는 것들이 있어 읽기에 좋았습니다.
<작별들 순간들>은 배수아 작가가 15년 전부터 머물고 있는 베를린 인근의 한 정원 딸린 오두막에서의 생활을 담은 에세이집이다. 이 오두막은 동네 주민들도 잘 모를 만큼 외진 곳에 있어서 독서와 집필에 몰두하기에는 최적의 공간으로 보인다. 그곳에서 저자는 '베를린 서가의 주인'이라고 부르는 인물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산책을 하고 요리를 하고, 아주 가끔 외출을 하거나 손님을 초대한다.
배수아 작가의 글 하면 소설이든 에세이든 어렵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다행히 이 책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한 소설가가 그중에서도 깊은 정이 든 공간에서 소중한 사람과 보낸 한 시절을 귀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꺼내 보여주는 듯해 오히려 다정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장소는 다르지만 작가님도 나처럼 집에서 책 읽고 집 근처 호수를 산책하는 조용하고 안정된 생활을 좋아하신다니 반가웠다(그러실 것 같았지만).
바흐 연주를 들을 수 있다고 해서 도보로 연주회장에 가다가 뜻하지 않은 체험을 한 에피소드가 재미있었다. 집에서 연주회장까지 10km 밖에 안 된다는 말만 믿고 가벼운 차림으로 길을 나섰는데 점점 낯선 풍경이 펼쳐지고 눈에 보이는 것은 군사 시설처럼 보이는 짓다 만 콘크리트 건물뿐일 때, 얼마나 공포스럽고 불안했을까. 그러다 마침내 익숙한 황금빛 밀밭이 보였을 때는 안도감 정도가 아니라 황홀감까지 느껴지지 않았을까(길을 잃어본 적이 많아서 더 깊이 공감했는지도 모르겠다).
베를린 서가의 주인과 스위스 실스마리아에 다녀오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실스마리아라고 하니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가 떠올랐고, 그곳의 풍경과 작가님의 오두막이 있는 곳의 풍경이 꽤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영화에도 두 사람이 작은 집에서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하고 산책을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극적인 사건이 없는 듯 있고, 있는 듯 없는 느낌이 이 책과도 비슷하다. 가을이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