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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팥진아’ 폴더 속에 쌓일 이야기
똥 맛 카레와 카레 맛 똥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둘리 호빵의 계절 도전은 몇 번이나 계속됐지만 고시앙 하나 주세요 맛있게 으깨지는 시간 눈으로 먼저 먹는 다시 만난 ‘있을 무’ 맛 모퉁이 국화빵 할머니 겨울에 조금 더 수다스러워지는 사람들 연말에 만나는 쉬운 행복 호두 없는 호두과자 버터 없는 앙버터 1 버터 없는 앙버터 2 대단한 에피소드는 없지만 사랑해 덕분에 반짝반짝 안심이 돼 오로지 하나의 목표로 그 겨울, 스무 마리의 붕어빵 에필로그 찐빵을 하나씩 찜기에 넣듯이 |
저임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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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속담 한 줄에 네 명 엉덩이가 골고루 아파졌다. 콩! 하며 매질, 콩 나고! 하며 매질, 팥! 하며 매질, 팥 난다! 하며 매질. 맞던 우리도 보던 애들도 눈이 동그래졌다. 맞으면서도 물음표가 터져 나왔지만 당장은 고개를 숙이기만 할 뿐이었다. 여기서 웃으면 또 어떤 속담이 튀어나와 고루고루 맞을지 모를 일이었다. 우리는 조용한 콩 두 명과 팥 두 명이 되어 그렇게 한참을 엎드려 있었다. (중략) 콩 심은 데 팥이 나기도 하는 게 학교 아닌가. 그 시기의 내 기분을 정리해보자면 이 정도일 것이다. 팥빙수 땡땡이 사건 이후에는 학교라는 곳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어른이 된 지금 그날을 회상해보면 학교도 결국 회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영어 시간에 버거킹에 나란히 앉아 팥빙수 먹은 게 뭐 그리 잘못이냐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중에서 나에게 겨울은 둘리 호빵의 계절이다. 접시에 한가득 담겨 있던 진짜 호빵과 비눗방울 호빵을 닮은 것들이 이 계절에 유독 많다. 내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은 둘리 호빵과 비슷하게 생겼다. 편의점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갓 찐 호빵은 물론이고, 탱글한 홍시도, 포실포실 단팥빵도, 찰떡 아이스도 비슷하게 둥글둥글하다. 겨울에 펑펑 내리는 눈도, 그걸로 만든 눈사람도 모두가 닮았다. 투박한 듯 무심한 모습이 가만한 마음들을 닮았다. 길에 서서 호빵을 먹을 때면 오늘의 일들은 아무렇지 않아진다. 나는 오랜 시간 뜨거운 온도 속에서 가장 안쪽까지 부족하지 않게 뜨거워진 호빵의 팥 부분을 좋아한다. 둘리 호빵의 맛이란 아무렇지 않은 맛, 그래서 내 마음도 잠시나마 아무렇지 않아져서 먹은 것마저 까먹을 정도로 안정되는 맛일지 모르겠다. ---「둘리 호빵의 계절」중에서 그림의 떡인 붕어빵조차도 놀이의 소재로 만들다니. 그것도 아픈 상태로. 오빠가 먹는 시늉을 하면 나는 오빠를 똑같이 따라 하면서 붕어빵을 먹으면 되는 놀이였다. “일단, 어디부터 먹을까. 고민되네. 오늘은 꼬리부터 먹을게.” 오빠의 주문을 따라 꼬리 부분을 입에 가까이 대면서 이 정도? 하는 표정을 취하면 오빠는 너무 많다느니 너무 적다느니 까탈을 부리기 바빴다. 오빠에게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오빠를 쳐다보며 붕어빵을 깨물었다. “그리고 열 번 씹을 거야.” 오빠의 주문대로 열 번 씹을 때 오빠도 아무것도 안 먹은 입으로 똑같이 씹는 척을 했다. 마주 보고 붕어빵을 씹고 있으니 푸하하하 웃음이 터져서 자꾸만 이불에 코를 박고 웃었다. 웃는 건 주문에 없었다고 같이 깔깔거리던 내복 차림의 오빠. 이번엔 팥만, 이번엔 살만. 이번엔 이렇게, 이번엔 저렇게. 점점 먹기 힘든 동작을 만들고 그걸 세상 열심히 따라 하면서 우리는 두툼한 이불 위라는 겨울의 놀이터에서 붕어빵 하나로도 배꼽이 빠져라 웃었다. ---「모퉁이 국화빵 할머니」중에서 그해 여름에는 지난 번아웃의 여파로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며 지냈다. 번아웃을 겪은 후, 마음과 몸의 맑은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되어 툭하면 마른세수를 해댔다. 해야 하는 일을 가까스로 매듭지은 후에 도착한 늦가을에는 절로 단순한 마음이 되었다. 단조롭고 편안한 하루하루를 보내자. 나에게 겨울은 그런 계절이 되었다. 마치 겨울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듯이. 먹고 싶은 떡 이름을 며칠째 흥얼거리고, 노래방에 가서 속을 뻥 뚫고, 만화책을 보며 맥주를 마시고, 영화를 보며 아이처럼 울기도 하면서. 앙꼬절편 안에 딸기를 넣으며 배시시 웃고 그 이야기로 긴 일기를 쓰면서. 제대로 쉬는 일과로 채워진 겨울을 보낸 다음 다가온 봄에는 후련하게 비워진 내 마음이 시원했다. ---「연말에 만나는 쉬운 행복」중에서 “저기요! 그 앙버터에 버터는 빼고 팥만 넣어서 주실 수 있을까요?” 팥소를 열심히 푸던 직원분은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앙버터에서 버터를 빼달라니? 자기 입으로 앙버터라고 말해놓고 뭘 빼라고? 그런 표정을 하기 충분했다. 나는 다시 한번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요청했다. 아직 버터를 넣기 전이니, 그 버터를 넣지 말아주실 수 있냐며. “버터를? 넣지 말라고요?” “네….” “그러면 맛이 없을 텐데요.” “…제가 팥을 너무 좋아해서요.” “그러면 팥을 아주 많이, 버터는 조금만 넣어드릴까요?” “팥만 넣어서 한번 먹어보고 싶어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버터 없는 앙버터 2」중에서 “여기 있는 거 다 주세요.” 이제 막 구워진 스무 마리 정도의 붕어빵을 가리키며 씩씩하게 주문한 건 오빠였고, 나는 애초에 입을 열 생각은 없다는 듯이 오빠 옆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런 오빠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던 붕어빵 가게 주인아주머니는 붕어빵을 두 개씩 집어 종이봉투에 넣으면서 말했다. 우리의 얼굴은 쳐다보지 않고서, 약간은 농담인데 조금은 진짜로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라는 듯이. “왜 이렇게 많이 사? 엄마가 집 나갔니?” ---「그 겨울, 스무 마리의 붕어빵」중에서 |
겨울에 조금 더 수다스러워지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충만한 계절 감각 그리고 쉽고 작은 행복 그러면서도 팥이 아니었더라면 쉽게 꺼내놓을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을 소환한다. 삶을 관통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과 그에 대한 속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녹록지 않았던 가정환경과 젊은 부모를 먼저 헤아리느라 정작 마음 놓고 울지도 못했던 자신을 비로소 호빵처럼 뜨겁게 안아주려는 글쓰기적 시도가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찡하게 만든다. 어느 겨울, 두툼한 이불 위에 앉아 배탈이 난 어린 오빠를 대신하여 더 어린 동생 임진아가 오빠의 지시대로 붕어빵을 요리조리 베어 물며 별것 없이도 까르르 배꼽이 빠져라 웃는 장면은 스노볼 속에 박제해두고 싶을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답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그리고 나 심은 데에는 내가 자란다. 우리가 숱한 붕어빵과 호빵으로 얼어붙은 손가락을 녹이고 배를 불리는 동시에, 그 쉽고 작은 행복에 기대어 긴 겨울을 보내던 마음은 앞으로도 여전할 것이다. 여름이면 제철 과일 신비복숭아를 박스째 쌓아놓고 챙겨 먹듯이, 겨울이면 자연스레 붕어빵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는 사람들 틈에 임진아 작가가 있다. 여름보다 겨울에 조금 더 수다스러워지는 사람들과 함께 충만한 계절 감각을 공유하며 또 계속 나아갈 힘을 얻는 우리들. 몸과 마음이 춥고 시려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무릎이 꺾여도, 그럼에도 팥알처럼 옹골찬 붉고 따스한 용기가 책의 곳곳에 알알이 박혀 있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팥알이었다.” ‘팥’이라는 붉고 따스한 용기에 대하여 팥을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나 확고해서 요즘 대유행하는 빵 ‘앙버터’마저 버터를 빼고 그냥 ‘앙’으로 만들어 먹는다는 고백도, 동네 떡집을 기웃거리며 설기설기 부서지지 않는 투명하고 쫄깃한 시루떡이 있는지 떡의 단면을 살피는 모습도, 고속도로 휴게소 필수 간식 호두과자를 3,000원어치 살까 5,000원어치 살까 사뭇 진지한 고민도, 모두 보지 않았어도 훤히 그려진다. 여기에 평소 일본 여행을 즐기고 일본이라면 빵집, 서점, 문구점, 공원 등 다양한 분야에 두루 능통한 필자답게 일본의 당고, 오반야키, 도라야키, 마메모치 등 다양한 ‘앙’을 만났던 순간으로까지 시공간을 초월하여 미각을 자극한다. 팥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임진아식 좋아하기’의 특징이다. 소화불량을 타고나 팥죽과 팥칼국수 등은 삼키기 어렵고 팥빙수는 그저 누군가 먹는 모습을 관람하기만 즐기는 반면, 선명하게 좋아하는 것은 푹 삶아 으깬 ‘팥소’의 형태로 더욱 구체적이다. 특히 밀가루 반죽과 결합할 때 환상의 맛을 내는 붕어빵, 국화빵, 호빵 등이 그것이다. 그렇게 다소 시도하기 어려운 영역과 그저 생각만 해도 좋은 영역이 임진아의 ‘팥’에는 공존한다. 한 사람의 고유한 취향을 들여다보는 일은 아찔하게 즐겁고, 그를 이해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싫어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더 좋아하는 건 분명한 미세한 취향의 차이가 스스로를 반짝반짝 빛나는 섬세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현재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포착하면서 쌓아온 취향의 장면들이 모이고 모여 행복이라는 감정을 충실히 감각하며 성장하고 자라날 미래의 임진아가 될 것이 분명하다. 임진아가 자라서 임진아가 된다는 것, 이 당연하지만 분명한 사실처럼 나 심은 데 내가 자란다는 것이 모두에게 든든한 위안이 되리라 믿는다. 이 책을 만난 모든 이들도 저마다 가슴속에 뿌려진 씨앗을 잘 가꾸어 용감하게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바란다. 어른이 되어서도, 한겨울에도. 나로서, 나답게. 마지막으로, 역시 평소에 ‘팥’을 몹시 즐겨 먹는다는 박혜진 문학평론가의 추천도 이색적이다. “어두운 색감, 거친 질감, 팍팍한 식감…. 그러나 첫입에 온몸의 세포를 미소 짓게 하는 깊고 담백한 단맛.”이라는 매력에 푹 빠진 두 사람은 팥을 좋아한다는 공통점 하나만으로도 이미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만 같다. 좋아하는 것이 같은 사람끼리 좋은 친구가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
엄마는 자주 찐빵을 만들어주셨다. 그 안에는 팥소가 들어가는데, 삶아서 으깨놓은 팥을 야금야금 집어 먹다가 혼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입안에 꽉 차는 그 고소한 단맛으로 향하는 손길을 멈추는 건 언제나 실패. 팥에 대한 내 오랜 끌림의 정체를 낱낱이 밝혀주는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그 실패의 불가피함을 전부 이해했다. 어두운 색감, 거친 질감, 팍팍한 식감…. 그러나 첫입에 온몸의 세포를 미소 짓게 하는 깊고 담백한 단맛 앞에서 이 모든 비주류적 특성은 팥의 신비이자 팥의 깊이로 승격된다. 그러고 보니 팥에 대한 이 사랑은 문학에 대한 내 사랑을 닮았다. - 박혜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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