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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이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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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양서아는 항상 백영 자신의 장난을 묵묵히 받아 주고 있었다. 양서아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아도 백영이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늘 코끝을 만지며 거짓말로 자리를 피할지라도 그의 표정은 언제나 ‘당황’이었지 ‘불쾌’는 아니었으 니까.어째서 당황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당장 백영에게 와닿는 감정은 아쉬움이었다.시간이 더 있었다면 친해질 수 있었을지도 몰랐는데. 연락처는 있었으나, 종종 연락하겠다고 말했으나, 어쩐지 문자로 보는 그 사람은 너무 굳어 있어서, 박사 과정을 시작한 백영은 하루가 지나고 몇 주가 지나고 몇 달이 지나도 섣불리 양서아에게 연락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
--- p.20~21 우주국에서는 대공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박사님께 경고를 보냈어요. 설득했죠. 더 가다가는 구조할 수 없는 영역까지 다다른다고, 연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선회하면 돌아올 수 있다고. 우주국의 보고에 따르면 당신은… 그럼에도 나아갔죠. 복귀 연료 한계를 넘어 우리 은하 바깥으로 계속해서 가속하셨죠. 우주국의 레이더는 박사님이 넘은 그 경계에서 관측 한계에 달했다고 해요. 그 너머의 풍경을 아는 건 박사님뿐이라는 거죠. 그때 양 박사님의 눈앞에 비친 풍경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대체 무엇이 박사님을 사로잡았기에 지구를 떠나신 건가요? --- p.76~77 대공 너머의 빛이 다가온다. 분명 다가가는 것은 양서아 본인일 텐데도 그 아득함에 주체가 전도된 것만 같다. 그사이 그립게도 사무치는 감정은 여전히 백영을 향한다. 양서아는 이제 무언가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홀로 남은 워프 드라이브 우주선 속에서 처음 이자 마지막으로 서럽게 웃었다. 매질 없는 우주에서 소리는 지구에 닿지 않을 텐데도, 백영에게 그 웃음의 의미가 닿길 바라며. --- p.157 이토록 짧은 찰나를 스쳐 가는 우리에게도,이렇게 마음을 전할 기회를 주는 이 우주는 참 너그럽네요. 슬슬 대공이 안정적으로 전할 수 있는 용량에 달하고 있어요. 아,막상 쓰고 나니 할 말이 더 많은데.아직 적지 못한 게, 전하지 못한 게 많은데. 괴롭겠지만 나아가 볼게요. 그곳까지 닿을 수 있도록 애써 볼게요.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도록 해 볼게요. 박사님의 뒤에서가 아닌 곁에서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요. 바로 변할 수는 없겠죠.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요. …그러니 제발 돌아와 주시면 안 될까요? --- p.168~169 |
2044년 근미래, 천체물리학자 백영은 어느 날 집 마당에 떨어진 운석을 보고 동료 양서아 박사를 떠올린다.
그로부터 몇 년 전, 인류는 미지의 존재와 조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퍼스트 콘택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우주로 쏘아 올린 전파에 대한 회신을 받았다. 우주에서 더 이상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는 환희도 잠시, 웜홀은 이상 웜홀이 되었고, 이상 웜홀은 대공이 되었으며, 대공은 ‘대파멸’이라 불리는 재앙을 초래했다. 지구를 초토화시킨 대파멸은 8년 동안 1년마다 반복될 것으로 추측되었다. 백영과 연구실 동료였던 양서아는, 첫 번째 대파멸이 일어나고 나서 대공 너머로 사라졌다. 다시 2044년, 쪼개진 운석을 몇 날 며칠 관찰하던 백영은 양서아의 작별 인사를 발견하고, 양서아를 구해 내기 위해 상상도 못할 일을 벌이기로 결심한다. |
기어코 서로를 구해 내고 마는 두 사람의 이야기
시간과 공간을 넘어 당신에게 가닿을 SF 로맨스 로맨스는 어떤 장르와 혼합되어도 매력적이지만, 유독 판타지나 SF와 결합될 때 더 빛을 발한다. 두 인물의 위기가 극적이면서도 환상적으로 그려질 때 로맨스가 주는 감동이 극대화되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증명』은 〈어떤 사람의 연속성〉으로 데뷔 후 활발한 활동을 해 온 작가 이하진의 근미래 배경 SF 로맨스 소설이다. 어느 날, 천체물리학자 백영의 집 마당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운석이 떨어진다. 처리하기 곤란해서 운석을 그냥 내버려두었던 백영은, 며칠 뒤 비정상적인 모양으로 쪼개진 운석을 보고 2년 전에 지구를 떠난 양서아 박사를 떠올린다. 그리고 양서아에게 결코 전해지지 못할 이메일을 쓰기 시작한다. 백영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두 사람은 물리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거리에 놓였지만, 한 시도 서로를 잊은 적이 없기에. 『마지막 증명』은 종종 유약하고 나이브하게 여겨지는 ‘사랑’이라는 가치가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보여 준다. 많은 이들이 사랑이 이타적이라 말하지만, 사랑은 때로 당사자를 제외한 이들에게 이기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백영이 오직 양서아를 구하기 위해 시간을 거스르고, 양서아가 백영을 구하기 위해 공간을 뛰어넘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마지막 증명』에서는 그러한 사랑의 배타성마저도 결국에는 모든 것을 구원하는 열쇠가 되며, 파멸의 시대에 세계를 지탱하는 힘으로 부상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한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 강렬한 마음이 기어코 세계를 구하고 마는 이야기다. 사랑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대두되고 있지만, 정작 ‘사랑’이라는 단어가 오용 또는 남용되고 마는 시대에, 『마지막 증명』은 독자들의 마음에 광활한 기적을 선사할 것이다. 전해지지 못한 마음은 결국 어디로 가는 걸까 영영 닿지 못할 우주 너머의 당신께 보내는 편지 『마지막 증명』에 붙일 수 있는 수식어는 많다. 작가 이하진의 첫 번째 경장편이며, SF 로맨스이고, 단편 〈마지막 선물〉을 장편화한 소설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지막 증명』이 작품을 단 하나의 단어로 표현해야 한다면 결국 ‘마음’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작품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백영의 편지와, 딱 두 번 등장하는 양서아의 편지는 『마지막 증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끝내 응답받지 못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서로에게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아무리 갈무리하려고 해도 쏟아지고 마는 그리움이 그들을 쓰게 만든다. 특히 백영이 초반부에 썼던 양서아가 끝내 확인하지 못할 편지들에는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한 후회와 자책,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상대에 대한 원망이 섬세하게 드러나 있다. 백영의 편지는 독자에게 질문한다. ‘이처럼 전해지지 못한 마음은 결국 어디로 가는 걸까.’ 작가는 이에 대해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도 빛을 보낼게요. 기대하는 마음으로요. 계속해서 보낼 거예요. 제가 과거에도 다녀올 수 있었잖아요? 이 우주엔 말도 안 되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니까. 말도 안 되는 우리 이야기가, 엇갈렸을지라도 끝내 맞닿은 것처럼요. _176p 머나먼 공간을 사이에 둔 백영과 양서아의 이야기는, 백영이 말한 것처럼 엇갈린 것이 아니라 어쩌면 평행을 이루고 있을지도 모른다. 둘에게는 어떠한 기약도 없으며, 물리적으로 만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이니까. 그러나 평행한 두 선 중에 하나가 아주 미세하게만 틀어진다면,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해도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틀어짐을 만들 수 있는 건 역시, ‘마음’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