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날레다는 오늘날 스페인에서는 누구나 아는 이름일지 모르지만 20세기 말에야 악명을 얻었다.…… 1975년 프랑코가 무자비한 승리를 거둔 지 36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 지방이 역사적으로 반항적인 소작농의 고향이고 프랑코로 상징되는 중앙 정부의 골칫거리인 데다 1936~1939년 내전 때 프랑코의 적이었으므로, 그는 안달루시아가 썩어 문드러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스페인이 파시즘에서 자유 민주주의로 서서히 조심스럽게 이행하기 시작하자 마리날레다 사람들은 정당을 만들고 노동조합을 결성해 토지와 자유를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10년 넘게 쉼 없이 투쟁하며 공항과 기차역, 정부 청사, 농장, 궁전을 점거하고, 단식 투쟁을 하고, 길을 가로막고, 행진하고, 팻말 시위를 했다. 그리고 애쓴 보람도 없이 수없이 구타당하고 체포되고 재판을 받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1991년에 이겼다. 정부가 그들의 저항에 진이 빠져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부유한 귀족 가문으로 손꼽히는 집안의 우두머리 인판타도 공작의 소유지 1200헥타르를 그들에게 주었다. _21~22쪽
나는 2012년 1월에 정신없이 어수선한 시장 집무실에 앉아서 산체스 고르디요에게 시의 문장에 있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집들과 비둘기 그림과 문구에 관해 물었다. 거기에는“평화를 추구하는 유토피아”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우리가 미래에 원하는 것을 지금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내일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오늘 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가능해지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본보기가 됩니다. 정치를 하는 다른 방법, 경제를 하는 다른 방법, 함께 사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 다른 사회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본보기 말입니다.”
그는 잠시 멈추더니 내게서 자본주의의 현실주의와 패배주의를 씻어 내고 다시 반쯤 청년기로 되돌아가게 하는 말을 했다.
“유토피아는 근거 없는 환상이 아닙니다. 유토피아는 사람들이 가진 가장 고귀한 꿈입니다. 투쟁을 통해 현실로 바꿀 수 있고 바꾸어야 하는 꿈입니다. _44~45쪽
마리날레다에 처음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건이 일어났다. 현대 스페인 역사에서 마을의 위치를 확고히 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1980년 8월에 지방 전역에서 일어난 파업을 배경으로 마리날레다가‘굶주림에 맞선 굶주림 투쟁’을 벌였다. 700명이 아흐레 동안 음식을 거부했다.…… 단식 투쟁에 들어간 지 엿새째 되는 날, 아이들 몇이 앉아 펠리페 왕자에게 편지를 썼다. 후안 카를로스 국왕의 아들인 왕자는 왕위 후계자이며, 열두 살이었다.……
우리 마리날레다 아이들이 네게 안달루시아 상황을, 그중에서도 특히 마리날레다 상황을 이야기하게 되어 기뻐. 며칠 전에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공개 집회에서 단식 투쟁을 계속하기로 했어. 우리도 어머니 아버지와 연대하고 있어. 지금 우리는 여러 날 단식 투쟁 중이야.
우리가 왜 단식 투쟁을 하느냐고? 그건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이미 6개월 동안 공동체 고용 기금으로 살았기 때문이야. 우리 마을 사람들은 하루에 200페세타도 못 벌어. 한 달에 이틀밖에 일하지 못할 때도 있기 때문이야. 가게에서 더는 외상을 주지 않아 이웃에서 돈을 빌려야 할 정도로 가난하게 살아. 우리 처지에서 한번 생각해 봐.……이것은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야. 너는 절대 모를……. 진심으로 부탁하는데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해 봐. 그러면 너도 화가 나거나 불쌍한 생각이 들 거고, 그럼 너나 네 부모님이 우리에게 해결책을 주겠지. _91~92, 95~97쪽
마리날레다 협동조합은 인간의 노동력이 가장 많이 필요해 되도록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는 농작물을 골랐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올리브 나무와 올리브유 가공 공장에 더해 다양한 종류의 피망과 아티초크, 누에콩, 깍지강낭콩, 브로콜리를 심었다. 이는 가공해 통조림을 만들고 단지에 담을 수 있는 농작물이어서 마을에 가공 공장을 만들어 2차 산업을 일으키고, 일자리를 늘렸다.“우리의 목적은 이윤이 아니라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었습니다”라고 산체스 고르디요는 설명했다. 이러한 철학은 후기 자본주의에서‘효율’을 강조하는 것과 완전히 대비된다. 효율이라는 말은 신자유주의 사전에서 거의 신성한 지위로 격상되었지만, 현실에서는 주가라는 제단에 인간의 존엄성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말이 되었다. _125쪽
마리날레다에서는 토지―땅과 흙―를 주권이나 집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깊이 들어가면 토지가 거의 호르날레로의 DNA를 구성하는 요소다. 산체스 고르디요의 화려한 수사에서 토지la tierra는 언
제나 숭고한 것이다. 그와 함께하는 정치적 동료와 노동조합, 디에고 카냐메로 같은 사람들의 언어에서도 마찬가지다. 토지는 지리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인 것이기도 하다. 토지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부정당하면, 이것이 사뭇 다른 의미를 띠게 된다.…… 마리날레다의 모토는―많은 모토 가운데 하나는―“경작자에게 토지를”이다. 그것이 그들이 푸에블로로서 하도록 되어 있는 일이다. 이는 1991년 투쟁을 그들의 목적론적 종착점에 놓는 철학이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역사의 종말이다. _131~132쪽
어느 날 밤 나는 법과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 크리스티나와 함께 카니타라는 값싼 라거 맥주를 홀짝거리는데, 그녀는“한 달에 1000유로면 괜찮아요. 1200유로면 꽤 괜찮고”라고 말했다. 한 달에 1000유로로 그럭저럭 사는 법을 배웠다고 하여‘1000유로 세대’로 불리는 그녀의 세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스페인의 최저 임금은 대략 월 600~700유로고, 실업 수당은 일반적으로 월 500~600유로다. 크리스티나는 어머니와 함께 마리날레다에 살지만, 에스테파에도 아파트의 방 하나를 빌렸다. 그녀는 에스테파에서 1주일에 며칠을 교사로 일한다. 그녀는 자신이 이중생활을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마리날레다보다 큰 푸에블로에서 자기 또래의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삶을 사랑한다. 그것은 불행하게도 길어진 청소년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제공해 준다. 에스테파에 사는 그녀의 또래들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서른이나 서른이 넘었는데도 아직 부모와 산다. _139쪽
조합의 활동가 수백 명이 두 슈퍼마켓에 나타나, 대다수는 밖에서 집회를 하고 그동안 소수가 안으로 들어가 열 개 정도의 카트에 기본적인 식품―기름과 설탕, 병아리콩, 쌀, 파스타, 우유, 비스킷, 채소―을 가득 싣고 계산을 하지 않고 나왔다. 슈퍼마켓 직원 몇몇과 실랑이가 조금 있었지만, ‘수탈한’것을 가지고 나오니 군중이 모두 환호했다.…… 그들의 메시지를 잘못 읽기란 불가능했다. 자본주의 아래서?‘위기’에도?주요 슈퍼마켓 체인들은 주주들을 위해 식품을 팔아 수억 유로를 버는데, 그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다는 메시지였다.…… 이 사건은…… 스페인 신문의 1면을 휩쓸고, 저녁 뉴스에서 톱뉴스가 되고, 로이터와 국제적인 뉴스 서비스를 통해 전 세계로 퍼졌다. 유럽과 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인도와 이란, 오스트레일리아와 중국에도 퍼졌다.“우리는 수탈자를 수탈하고 싶습니다”라고 산체스 고르디요는 선언했다.“수탈자란 지주와 은행, 대형 슈퍼마켓을 뜻합니다. 그들은 경제 위기로 돈을 벌고 있습니다.”_230~231쪽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공화주의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를 회상하며“혁명을 믿는 저 이상하고 가슴 뭉클한 경험”을 누구도 잊을 수 없을 거라고 했다. 그 사회는 잠시 살아 있는 공산주의를 경험하면서 활기가 넘쳐흘렀다. 마리날레다는 완전한 공산주의도 완전한 유토피아도 아니다. 그러나 푸에블로에서 한 발짝만 나가도, 오늘날의 스페인에 한 발짝만 들여놓아도 연일 난타당하는 빈곤하고 원자화된 사회, 가난한 사람들이 죽든 살든 전혀 관심 없는, 그동안 한 번도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던 정치 계급과 경제 제도가 죽음과 파괴의 구렁텅이로 끌어당기는 사회를 보게 될 것이다. 산체스 고르디요가 이룬 것은 토지와 주택, 생계 수단과 문화만이 아니다. 그것들도 물론 놀라운 업적이지만, 거기에 있는 것은 이상하고 가슴 뭉클한 경험이고, 오웰이 말한 대로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