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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징비록

: 유성룡이 보고 겪은 참혹한 임진왜란

류성룡 저 / 김기택 | 알마 | 2015년 02월 09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9 리뷰 41건 | 판매지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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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2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538g | 145*223*24mm
ISBN13 9791185430492
ISBN10 1185430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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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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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해설 : 임홍빈
1940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구부 전문위원을 거쳐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민족군사실 책임편찬위원과 국방군사연구소 지역연구부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1992년부터 중국의 군사역사, 전쟁사 연구와 중국 고전 및 현대문학 작품 번역에 전념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달빛을 베다》 《손자병법 교양강의》 《중국역대명화가선》 《수호별전》 《소설 공자》 《서유기》 《현실+꿈+유머: 린위탕 일대기》 《의천도룡기》 《백록원》(공역) 《열세걸음》 들이 있으며, 한국 고전 군사문헌을 현대어로 국역한 《문종진법ㆍ병장설》 《무경칠서》 《백전기법》 들이 있다.
그림 : 이부록
서울대학교 동양화과에서 공부했다. 《기억의반대편세계에서-워바타》 《세계인권선언》을 펴냈으며 《날개도 없이 어디로 날아갔나》 《동양철학 에세이》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들에서 실험적이고 개성 넘치는 화풍을 선보이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림만이 아니라 참여미술 프로젝트, 서재조형, 설치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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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열며_우리의 부끄러운 곳을 비춰주는 거울
《징비록》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아프고 어려운 시대를 되돌아보는 기록이다. 66개로 쪼개진 작은 나라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를 정복하겠다는 야심으로 그 길목에 있는 조선을 침략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일으켰다. 두 전쟁은 거울을 보듯 조선 사회가 가지고 있던 여러 잘못과 병폐를 자세하게 비춰보게 해주었다. 그중에는 너무 치욕스러워서 얼굴을 붉히지 않고는 결코 남에게 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적지 않다. 이 전쟁에서 일본군이 저지른 끔찍한 만행을 탓하기는 쉬워도 그 침략에서 드러난 우리의 치부를 꼼꼼하게 되돌아보고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기는 어렵다.
몹시 두렵거나 창피하거나 아픈 경험이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다시 떠올리지 않으려고 한다. 그 기억은 아픈 상처를 건드려 그 고통을 다시 겪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잘못과 부끄러움을 빨리 잊으려고 한다. 자기의 실수나 못난 모습을 정직하고 객관적으로 되돌아보고 곱씹어보고 말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를 내는 사람만이 자기의 잘못을 통해 큰 것을 배울 수 있다. 잊는 것은 편안하지만 망각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징비록》은 그 고통을 기억하고 다시 체험하고 그것을 잊지 않으려는 용기에서 나온 것이다. --- 6쪽

1장 전쟁 전의 조선과 일본
일본은 무로마치막부가 10여 년 전에 망하고, 나라가 66개로 나뉘어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야스히로가 사신으로 오기 한 해 전1585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66개 나라를 통일시키고 강력한 왕이 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본래 중국 사람인데 떠돌다가 일본으로 들어가 나무꾼이 되었다. 어느 날 일본의 최고 권력자인 오다 노부나가 장군이 밖에 나갔다가 그를 만났는데, 남달리 똑똑하고 뛰어난 것을 보고 자기 군대의 병사가 되게 했다. 그랬더니 용감하고 힘이 세어 싸울 때마다 이기고 큰 공을 쌓으니 곧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래서 마침내 권력을 잡아 오다 노부나가 장군의 자리를 빼앗고 왕이 되었다.”
“오다 노부나가 장군이 다른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자 도요토미가 그 사람을 죽이고 나라를 빼앗았다.”
일본이 계속 사신을 보냈으니 우리나라도 통신사를 보내야 한다는 말은 당연한 것 같지만, 거기에는 그럴 만한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일본을 통일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거쳐 명나라를 침략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조선의 통신사를 일본으로 보내라고 요구하면서 편지에다 이렇게 큰소리를 쳤다.
“우리 사신은 늘 조선에 가는데 조선의 통신사는 일본에 오지 않으니, 이것은 조선이 일본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 18쪽

2장 일본의 침략
1592년 4월 13일 저녁, 드디어 일본군의 배가 쓰시마에서 바다를 덮으며 우리나라로 몰려왔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때 부산진 첨사(첨절제사. 각 진영에 둔 종3품 무관으로 절도사 아래에 있는 벼슬) 정발은 절영도(지금의 영도)로 사냥을 나갔다가 적이 쳐들어온다는 보고를 받고 허둥지둥 성안으로 들어왔다. 일본군은 배에서 하루를 자고 새벽에 구름같이 몰려와 부산진성을 공격했다. 정발은 힘껏 싸웠으나 적의 수가 너무 많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정발은 죽고, 성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빼앗겼다.
경상좌도 수사(수군절도사) 박홍은 일본군이 대단하다는 말을 듣고 감히 싸울 생각을 하지 못하고 도망쳤다. 일본군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서평포와 다대포(지금의 부산시 사하구에 있는 포구들)를 차지했다. 경상좌도 병사 이각은 적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동래성으로 들어왔다. 부산성이 적에게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겁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각은 밖에 나가 적을 미리 살펴보고 구원병을 보내겠다고 핑계를 대고는 성에서 빠져나와 도망쳤다. 동래 부사(지방 수령의 하나. 정3품, 종3품) 송상현이 함께 동래성을 지키자고 했으나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 39~40쪽

3장 거듭되는 패배와 피란
동파역(마산역과 동파역 모두 서울과 개성 사이에 있는 중요한 역관이었다)에 도착하니 파주 목사 허진과 장단 부사 구효연이 임금께 올릴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왔다. 그러나 임금을 호위하던 사람들은 하루 종일 굶은 탓에 앞뒤를 생각할 것도 없이 짐승처럼 주방으로 들어가 닥치는 대로 먹어댔다. 먹다 보니 임금께 드릴 음식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것을 보자 허진과 구효연은 뒷일이 무서워서 도망갔다.
날이 저물 무렵 개성으로 가려고 했으나, 경기도에서 일하는 관리와 군사들이 모두 도망하여 임금의 행차를 호위할 사람이 없었다. 그때 시흥 부사 남의가 수백 명의 군사와 오륙십 필의 말을 이끌고 와서 개성으로 떠날 수 있었다. 황해 감사 조인득도 군사를 이끌고 와서 임금을 기다린다고 했다. 임금을 모시는 사람들이 어제와 오늘 거의 먹지 못했으므로 남의의 군사들이 갖고 있는 쌀과 조로 배고픔을 겨우 잊을 만큼만 밥을 지어 먹었다.
개성에 도착했을 때 대간이 글을 올려 “영의정 이산해가 나라의 일을 그르쳤습니다”라고 하면서 죄를 물어 물러나게 해야 한다고 했으나 임금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다. 5월 2일에도 대간이 계속 글을 올리므로 영의정을 물러나게 하고 그 자리에 나를 앉히고, 좌의정에는 최홍원을, 우의정에는 윤두수를 앉혔다. 그러나 저녁에는 나의 죄를 물어 물러나게 하고 최홍원을 영의정으로, 윤두수를 좌의정으로, 유홍을 우의정으로 삼았다. 그리고 정철을 불러오라고 명령했다. ---- 62~63쪽

4장 명나라의 구원병
7월에 요동에서는 부총병 조승훈이 군사 5,000명을 데리고 도우러 온다고 알려왔다. 7월 7일에 나는 치질이 심했으나 명나라 군사를 맞이하라는 명령을 받고 임금께 떠나는 인사를 올리러 갔다. 그 자리에서 임금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정주와 가산에는 5,000명의 명나라 군사가 지나갈 동안에 하루 이틀 먹을 식량은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주, 숙천, 순안 세 마을에는 식량이 없습니다. 그래서 명나라 군사들이 이 마을을 지나갈 때는 3일 동안 먹을 식량을 준비해야 합니다. 만약 구원병이 평양을 되찾는다면 성안에는 좁쌀이 많으므로 식량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날 동안 평양성을 포위한다면 평양 서쪽 세 마을에서 곡식을 옮길 수 있으므로 식량이 모자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정을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명나라 장수들과 의논하게 하고 시행하옵소서.”
저녁에 소곶역에 도착하니 관청의 아전과 군사들이 다 도망쳐서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군관을 시켜 마을을 뒤지게 하여 몇 사람을 데리고 왔다. 나는 그들을 타이르며 말했다.
“나라에서 평소에 너희들을 뽑아 훈련시킨 것은 오늘 같은 날에 쓰려고 한 것인데 어찌 이렇게 도망을 갈 수가 있단 말이냐? 명나라 구원병이 와서 나랏일이 정말로 급하게 되었다. 지금이야말로 너희들이 힘을 써서 공을 세울 때다.”
그러고는 공책을 꺼내 거기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보여주었다. ---- 96~97쪽

5장 이순신과 의병의 활약
이순신의 승리로 일본군이 평양에서 발이 묶여 우리나라는 전라도와 충청도를 지킬 수 있었다. 아울러 황해도와 평안도의 바다와 가까운 모든 마을도 보호할 수 있었고, 식량을 나르거나 명령을 전달하기도 훨씬 쉬워졌고, 그래서 나라를 다시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명나라의 요동과 천진도 일본군의 침략 때문에 놀라지 않아도 되었고, 명나라 군사들이 육지로 들어와서 우리나라를 도와 일본군을 물리칠 수도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이순신이 바다에서 이긴 덕분이다.
아아, 이것이 어찌 하늘의 도움이 아니겠는가?
이순신은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삼도(경상도ㆍ전라도ㆍ충청도)의 수군을 거느리고 한산도에 머물게 되었고, 일본군이 서쪽으로 쳐들어오는 길을 막았다.

이때는 전국에서 많은 의병들이 일어나 일본군을 무찌르고 괴롭혔다. 의병은 나라에서 뽑은 군사가 아니라 스스로 군사가 되어 적과 싸우는 백성을 말한다.
전라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사람은 김천일, 고경명, 최경회 등이다. 김천일은 전라도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경기도로 올라왔다. 나라에서는 그의 부대를 칭찬해 ‘창의군倡義軍’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이는 ‘앞장서서 정의를 부르짖는 군대’라는 뜻이다.
고경명도 전라도에서 시골 사람들을 데리고 의병을 만들어 임실, 금산 등 여러 마을에서 일본군을 쳐서 이겼지만, 금산 싸움에서 아들 고인후와 함께 죽었다. 그의 아들 고종후는 아버지를 대신해 의병부대를 이끌고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한다는 뜻으로 부대 이름을 ‘복수군’이라 했다. 최경회는 나중에 경상우도 병사가 되어 의병을 이끌고 진주에서 일본군과 싸웠으나 전사했다. ---- 106~117쪽

6장 강화 협상의 결렬
이여송이 명나라 장수 주홍모를 일본군 부대로 보냈다. 나는 김명원과 함께 일본군에게 가는 주홍모를 파주에서 만났는데, 그는 우리에게 명나라 황제의 글을 적은 깃발에 절을 하라고 했다. 거기에는 앞으로 조선군은 일본군을 죽이지 말라는 명나라 장수 송응창의 글도 있었다.
“이것은 일본군 부대로 들어갈 깃발인데 왜 내가 여기에 절을 한단 말이오? 일본군을 죽이지 말라는 글도 있으니 절을 할 수 없습니다.”
주홍모는 우리에게 억지로 절을 시키려 하다가 우리가 끝까지 대답하지 않자 이여송에게 보고했다. 이여송은 크게 화를 냈다.
“그 깃발은 황제의 명령이라 오랑캐들도 다 절을 하는데 어찌 절하지 않는단 말인가? 내가 그들을 군법으로 처리하고 명나라로 돌아가리라.”
우리가 개성으로 가서 이여송을 만나려 하니 이여송이 만나주지 않아 비를 맞으며 문 밖에서 기다렸다. 조금 있다가 이여송이 들어오라고 했다. 우리는 이여송 앞에 가서 예를 표하고 사과하면서 말했다.
“우리가 어리석고 부족하다고 해도 어찌 명나라 황제의 깃발을 보고 공경할 줄을 모르겠습니까? 다만 그 옆에 송응창의 글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사람에게 일본군을 죽이지 말라고 하니 너무 억울하여 절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죄는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자 이여송은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주 옳은 말씀입니다. 송응창의 글은 나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신하가 황제의 깃발에 절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이것을 용서하고 벌을 주지 않으면 나까지도 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절을 하지 않은 사정을 글로 써서 나에게 올리십시오. 만일 송응창이 체찰사(전쟁이 일어났을 때 임금 대신 군사 일을 보던 임시 벼슬)에게 벌을 주려고 하면 나는 그 글로 이유를 밝힐 것이고, 묻지 않으면 없었던 일로 할 것입니다.” ---- 96~97쪽

7장 일본의 두 번째 침략
이때 일본군이 우리나라에 다시 쳐들어왔다. 적군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는 또 요시라를 김응서에게 보내 이렇게 말하게 했다.
“일본 수군이 며칠 뒤에 더 쳐들어올 것인데, 조선 수군이 중간에 나가서 쳐부순다면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도원수 권율도 그 말을 믿었다. 이순신이 머뭇거리다가 죄를 받았기 때문에 빨리 나아가 싸우지 않으면 이순신처럼 죄를 받을 것이 두려워 원균에게 빨리 나가 싸우라고 재촉했다. 원균도 싸우러 나간다면 형세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이순신이 적을 보고도 나가 싸우지 않는다고 늘 헐뜯어서 마침내 이순신을 내쫓고 그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다. 만일 머뭇거리고 다른 이유를 대서 싸우지 않겠다고 거절한다면 창피해서 견딜 수 없었을 것이고, 벌을 피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모든 배를 이끌고 바다로 나갔다. 일본군은 높은 언덕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우리 배가 가는 것을 살펴보면서 서로 알렸다. 원균이 절영도지금의 부산 영도에 이르니 바람이 세게 불고 물결이 거칠게 일어나고 날은 저무는데 배가 머무를 곳이 없었다.
그런데 일본군의 배가 보이자 원균은 여러 군사들에게 앞으로 나아가 공격하라고 소리쳤다. 배 안의 군사들은 하루 종일 쉬지도 못하고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려 제대로 싸울 기운도 없었다. 게다가 풍랑에 밀려 배를 저어 가기가 어려웠고, 잠깐 앞으로 갔다가는 도로 밀려나곤 했다. 일본군은 우리 군사들을 지치게 만들려고 우리 배와 가까워졌다가 다시 피해 달아나면서 맞부딪쳐 싸우지는 않았다. 밤이 깊어지고 바람이 세차게 불자 우리 배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도 몰랐다. 원균은 간신히 남은 배를 모아 가덕도에 이르렀다. 군사들은 너무 목이 말라 한꺼번에 우르르 배에서 내려 물을 마셨다. 그때 일본군의 배가 섬에서 튀어 나와 덮치니, 우리 군사 400명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원균은 물러나 칠천도로 갔다. 배설은 원균에게 “칠천량이 해협이어서 물이 얕고 좁아 배를 움직이기가 나쁘니 빨리 다른 곳으로 부대를 옮겨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또 “이대로 있다가는 반드시 집니다”라고 거듭 말했지만, 원균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 164~165쪽

8장 7년 만에 끝난 전쟁
일본군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는 우리 수군이 일본군 배를 뒤쫓는 사이를 틈타 몰래 성에서 빠져나와 달아났다.
이 싸움이 있기 전인 7월에 일본 왕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다. 그래서 바닷가에 진을 치고 있던 일본군은 모두 일본으로 물러갔다.
우리 군사와 명나라 군사들은 이순신이 싸우다 죽었다는 말을 듣고 연달아 모든 부대에서 통곡했는데, 마치 자신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것처럼 슬퍼했다. 이순신의 관을 따르는 행렬이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이 제사를 지내며 관을 붙들고 울면서 소리쳤다. … 나라에서는 이순신에게 의정부 우의정정1품으로 벼슬을 높여주었다.
명나라 총독군문 형개는 “마땅히 이순신의 사당을 바닷가에 세워 그 충성스러운 혼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칭찬해야 한다”고 말했으나 실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바닷가에 사는 백성들은 서로 모여 영령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짓고 ‘민충사愍忠祠’라고 부르며 때마다 제사를 지냈다. 장사하는 사람들과 고깃배가 가고 올 때, 그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들도 저마다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 184~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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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이순신의 전쟁, 〈명량〉을 보았다면, 이젠 유성룡의 전쟁, 《징비록》을 읽을 차례다.
- 로쟈 이현우

《징비록》은 피로 쓰인 민족의 수난 기록이다. 이 책이 누구나 읽기 쉬운 글로 나온 것은 시의적절하다 하겠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국정 책임자들의 무능과 무책임, 이로 인한 민중의 고통을 눈앞에서 보는 듯해 참담한 마음이었다. 한국 사회의 앞날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 특히 보수와 진보를 막론한 정치인들의 필독서다.
- 라종일(전 주영ㆍ주일 대사, 한양대 석좌교수)

임진왜란은 승리한 전쟁이 결코 아니다. 패배, 그것도 처절한 패배로 끝난 전쟁이자 우리 역사를 두고두고 그 후유증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이런 점에서 《징비록》은 그 후유증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첫걸음이다. 뼈아픈 심경으로 모두에게 일독을 권할 수밖에 없다.

김영수(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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