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쌍둥이처럼 닮은 한국과 일본의 신석기시대 토기
신석기시대 한반도와 일본열도에서 살던 사람들은 각 지역마다 다양하고 특색 있는 토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그런데 바다로 떨어져 있는 한반도와 일본열도, 이 두 지역에서 만든 토기 가운데 닮은 것이 있다. 마치 쌍둥이처럼 닮은 덧무늬토기와 도도로키식 토기가 그것이다. 이들보다 조금 늦게 만들어진 소바타식 토기와 빗살무늬토기도 세트처럼 보인다. 더 놀라운 사실은 어떤 토기의 경우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상대 지역에서 발견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일본 쓰시마 고시다카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는 90퍼센트가 한반도 계통의 덧무늬토기이고,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에서는 도도로키식 토기가 나왔다. _ 1권 25~26쪽
(자료 1-11-①, ②, ③, ④)
- 동아시아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귀부인들
1972년 일본 나라 현의 다카이치 군에서 우연히 고분이 발견되었다. 이 무덤 내부 벽화의 내용이 알려지는 순간,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평양 수산리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귀부인과 다카마쓰 고분의 여인이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자료 11과 12를 비교해 보자. 밝은 색감, 겹쳐지는 저고리와 색동 주름치마. 한 눈에 보기에도 상당히 비슷하지 않은가. 머리카락을 자세히 그린 점, 인물 구도가 겹쳐지는 점도 제법 비슷하게 보인다. 고구려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그렸을까? 아니면 당시 왜국 사람들이 고구려 그림을 배워서 그렸을까? _ 1권 64쪽
(자료 4-11, 4-12, 4-13)
-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백제와 일본의 미륵상
백제의 금동 미륵상과 일본의 목조 미륵상은 너무나 비슷하다. 닮은 점은 말로 표현할 필요
조차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가만히 보고 있으면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국의 한 미술사학자는 그 느낌을 이렇게 말하였다. 백제의 보살상은 사색에 빠졌으나 강한 생동감이 엿보인다. 반면에 일본 고류지 보살상에는 내적으로 깊은 사유의 고요함이 배어 있다. 얼굴도 몸매도 차분하다. 숭고하고 적막한 사색의 경지를 있는 듯 없는 듯 나타내고 있다. 그럼, 자료 12와 13을 보면서 어떤 점이 다른지 찾아보자. _ 1권 78~80쪽
(자료 5-12, 5-13)
- 마치 같은 사람이 설계한 듯한 네 나라의 수도
자료 1~4는 비슷한 시기의 동아시아 네 나라 수도인 당의 장안성, 발해의 상경성, 신라의 경주, 일본의 헤이조코의 평면도이다. 첫눈에 뭔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네 나라의 수도 모두 북쪽 한가운데 왕궁이 있었다. 왕궁 남쪽 문에서 수도를 둘러싸고 있는 남쪽 가운데 문까지 다른 길보다 훨씬 넒은 길이 보인다. 이 길을 ‘주작 대로’라고 불렀다. 사방을 지키는 신 가운데 남쪽 신이 주작인데 거기에서 따온 이름이다. 주작 대로를 중심으로 네 나라의 수도는 바둑판처럼 질서 정연하게 짜여졌다. 어떻게 이렇게 닮았을까? 같은 사람이 설계했을까? 아니면 어느 나라 수도를 본떠 만들었을까? _ 116~119쪽
(자료 9-1, 9-2, 9-3, 9-4)
- 왜구의 역사를 둘러싼 한일 역사학계의 논쟁
한국 학계에서는 왜구를 당연히 일본인 해적으로 생각하여, 외세의 침략에 대한 민족의 항쟁이라는 관점에서 왜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 학계에서는 1960년대 이후 후기 왜구를 중국 국내의 사정으로 인해 발생한 밀무역에 초점을 둔 상인으로 규정하는 연구가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1980~90년대 이후 왜구가 제주도 해민(海民)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왜구를 중국․조선․일본의 경계 지역에 살던 ‘국적과 민족을 초월한 인간 집단’으로 이해하려는 이론이 일본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대다수 한국 연구자들은 이런 견해들이 주로 15세기 중반 이후 왜구의 상황에 대한 연구에서 제기된 것이어며 사료적 근거도 충분치 않다고 비판한다. _ 1권 204쪽
(자료 16-3)
- 한글과 가나의 탄생
일본어는 ‘자음+모음(또는 모음만)’으로 된 음절을 기본으로 하는 비교적 단순한 음운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 일본어의 음운 체계에 맞춰서 일본어의 음에 한자를 빌려 쓰는 것은 비교적 쉬웠다. 이처럼 한자의 발음을 차용해서, 그 글자 모양을 간략하게 만든 것이 가나 문자이다. 그러나 한국어의 표기는 ‘자음+모음, 모음, 자음+모음+자음’ 등 음절을 복잡하게 조합할 수 있었다. 음운의 종류가 많은 한국어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한자의 차용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한자와 함께, 모음과 자음으로 구성된 단음문자인 몽골 문자와 파스파 문자가 존재했던 15세기 동아시아의 문자 환경을 이용하여 음절 단위의 단음문자인 한글을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한국과 일본은 자신의 언어를 자기 말에 맞게 쓸 수 있는 한글과 가나를 만들었다. _ 2권 43쪽
(자료 21-1)
- 한국의 온돌과 일본의 다다미
한국의 한옥에는 방에 구들을 놓은 온돌이 설치되어 있었다. 온돌은 아궁이에 불을 때서 음식을 익히고 동시에 불길을 따라 구들을 덥히는 것이다. 바닥에 골을 만들고 그 위에 납작한 구들을 연이어 깔았다. 불길이 지나면서 구들을 덥히고 방바닥과 공기를 덥혔다. … 일본에서는 방바닥 일부를 잘라내고 그곳에 재를 깔아 취사나 난방을 위해 불을 피우는 이로리를 설치했고, 방바닥에는 다다미를 깔아 냉기와 습기를 막았다. 러시아에는 온돌을 세워 놓은 것 같은 벽체 난방법이 있었다. _ 2권 80쪽
(자료 23-4, 24-5)
- 한일 민중 문화의 꽃, 한국의 탈춤과 일본의 가부키
17세기 이후 조선의 상업 도시 곳곳에서는 길거리 공연이 벌어졌다. 씨름판이 벌어졌고, 굿판도 벌어졌다. 그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공연은 탈춤이었다. … 탈춤은 궁궐 행사의 공연을 맡은 전문 연예인 집단과 지방을 찾아다니며 공연을 하는 직업적인 전문 남자 연예인에서도 공연되었다. 이들의 주요 공연 종목은 탈춤 이외에도 음악 연주, 접시 돌리기, 줄타기, 꼭두각시놀음 등이다. _ 2권 188~190쪽 (자료 32-4)
자료 3은 ‘소가모노’의 하나인 「시바라쿠」의 한 장면을 연기하는 배우를 그린 우키요에이다. 주인공 소가 고타로는 무대 아래 가운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인공 소가는 정의와 분노를 나타내기 위해 얼굴을 붉은색으로 화장했다. 가부키는 원래 야외 가설 무대에서 공연했는데 차츰 실내 극장에서 상연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조명이나 무대 장치, 화장, 의상 등도 함께 발전되어가면서 화려한 무대극으로 발전했다. _ 2권 203~204쪽 (자료 33-4)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