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벌이는 산판이 나았다.’ 이것이 6?25 전쟁 후에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으로 들어온 이유였다. 돈도 땅도 없이 맨몸으로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나무라도 베어내고 화전이라도 일궈먹을 수 있는 산으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산에서 약간의 기술만 있으면 할 수 있었던 일이 참나무를 베어 숯을 구워내는 일이었다.
“숯굴은 꺼먼 흙이 나오면 안 되고 황토가 나와야 돼요. 그래서 숯굴 자리 보는 사람은 반풍수 다 된다고 그래요. 흙을 파내고 둥그만하게 담을 싸요. 게다 참나무를 끊어갖고 세우고, 그 위를 삿갓 모양으로 만들어요. ... ...” --- 「“일이라는 건 겁을 안 냈어요”」 중에서
동네 우환 없이 해달라고 온 동네 사람이 나와 빌고 놀았던 잔치가 산제와 당산제였다면, 집집마다 우환 없이 해달라고 떡 해놓고 조상님께 비는 의식은 도신이라는 것이었다. 도신은 안주인이 도맡아 했다.
“도신이라고 있었어. 가실에 추수해서 술하고 떡 해서 갈라묵고…. 떡은 시루떡. 솥에 쪄갖고 웃묵에 손 비비고, 여기 저기 손 비비고. 조상한테 절하는 것이지. 정제는 조왕님이라 하고. 도신도 하는 집이나 하지. 노인 잘되고 아이들 잘되고 재수대통 하라고 그러지 뭐.” --- 「지리산 마천골, 샘물 좋은 집 어르신들」 중에서
“머리 곱게 고께롱! 고깨고깨롱! 그 우리 딸 머리 곱다 그런댜. 머리 고~깨롱! 고~께고께! 구구국 구꾸, 그러고 울어. 하하하. 비요로로로~ 비요로로로~ 딴 새가 인자 또 그렇게 울어. 하하하….”
“또 어떤 새는, ‘께끼 최서방, 께끼 최서방, 술값 닷 돈 주쇼!’ 그랴. 하하하…. 옛날에 최서방이 술값을 안 갚고 죽었디야. 새가 ‘술값 닷 돈 주쇼!’ 할 때는 아주 볼통시럽게 하드라고.”
“왜 하필 최서방이래요? 내가 최서방인데….”
“하하하…. 왜 최서방인지 몰르지. 그리구 또 지쪽새가 있어. 메느리가 김치를 한 쪽 먹다가 시어머니가 쳐다보니까 놀래서 꿀꺽 생키다가 목에 걸려 죽었디야. 그래서 새가 돼갖고, ‘지쪽 지쪽 지쪼로로로~ 지쪽 지쪽 지쪼로로로~ 지쪽 걸맀다고….’ 하하하…. 옛날에는 시집살이가 얼마나 무섭다고…. 요새는 새가 어드로 다 가고 없드라고. 꾀꼬리도 없당게.” --- 「훈김 나던 옛 터엔 염소 울음소리만…」 중에서
“그런데 난중에 가실이 된게네 옷을 한다고 그래쌌고 뭐 그랴. 난 시집을 가는지 뭐 우짠지도 모르고 그냥 뭐 어른들이 하는 대로 봤지 뭐. 그래 인제 막 두부를 하고 뭐 꼬두밥을 쪄서 술을 하고 그러드라고. 인제 그래 해갖고 시집을 간다 하는데, 신랑이 왔디야. 옛날에 왜 질 안 뺏긴다고, 신랑이 새복에 왔어.”
“질을 안 뺏긴다구요?
“신랑이 남보다 앞에 온다고 일찍 왔디야.”
“아, 먼저 온다구요?
“신랑이 왔다고 수근수근 해싸. 할머니들이 바글바글바글 방으루 앉아가지고….”
이 대목에서 해설이 필요하다. 신랑이 신부 집에 장가갈 때 금기사항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길을 뺏기기 전에’, 즉 다른 혼례 행렬이 길을 지나가기 전에 일찌감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혼례 행렬끼리 길에서 마주치면 길 높은 쪽으로 가야 좋다고 해서 길에서 싸움을 벌이는 수도 있었다. --- 「그럭저럭 산 것이 60년이 되얐네」 중에서
“더덕도 캐고, 도라지도 캐고, 고사리 날 적에는 고사리 뜯고, 참나물 나면 참나물 뜯고, 가을 되면 능이라 하는 버섯 그것도 하지, 또 송이 따지, 찬바람 나면 굽더더기 따지, 또 인자 여기 도토리, 가을이 되면 또 그기 많이 나면 도토리 줍지. 매일 여여 산에 뭐, 이 산이 부자산이라요, 부자산. 나만 부지런하면요, 남한테 참 돈 꾸러 안 갑니다. 삽추뿌리, 당귀, 작약, 옛날엔 아주 뭐뭐 가서 한 망태기씩 캐오고 했는데, 요새 하도 사람이 들어오니께요 없어. 붙어나는 게 없어. 옛날엔 가면 그냥 모시대 참나물 취덩거리 같은 게 낫으로 깎아서 막 지게다 막 척척 짊어지고 댕겼어요. 지금은 하도 사람덜이 뿌리도 캐 가지, 나물도 쥐뜯어 가지, 그기 없어요.”
--- 「“꽃 같은 새댁이 왜 저런 장사를 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