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번영은 바로 이 길과 함께했다. 이 길을 통해 강력한 로마 군대가 이동했고, 식민지로부터 빼앗은 값비싼 물건들이 로마로 들어왔다. 한편, 성운의 어두운 그림자에 해당하는 로마의 쇠퇴 또한 이 길을 따라 진행되었다. 로마를 멸망시킨 북방의 게르만족이나 동방의 고트족과 같은 적의 군대도 바로 이 길을 통해 로마로 들어왔으니 말이다.
이렇듯 길은 사람 목숨을 살리는 ‘생명선’이기도 하고, 인간의 역사에서 펼쳐지는 모든 만남과 헤어짐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며, 번영과 쇠퇴를 가져오는 두 얼굴의 야누스이기도 하다. --- p.30
이 터널이 뚫리던 날, 중국 관영 런민 라디오의 기자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터널이 뚫렸어요. 이제 설산을 넘을 필요가 없어요.”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는 곧 3킬로미터가 넘는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서라도 다른 세상과 통하고 싶었던 사람들의 간절한 목소리이기도 했다.
이로써 중국과 인도 간 분쟁이 있는 땅이며, 설인이 살 것 같은 고원의 외딴섬으로 불리던 모퉈는 중국 2100여 개 현과 도로로 연결되어 세상과 통하게 되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터널은 양방향으로 뚫려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나름대로 전통을 지켜왔던 모퉈 사람들이 앞으로도 그들의 전통을 지킬 수 있을까?’하는 우려가 드는 이유다. --- p.55
본래 높은 산은 지역 간 경계가 되지만, 강은 먼 곳의 사람들을 묶어주는 일을 한다. 그렇게 묶인 사람들은 자주 만나게 되고, 닮아가게 된다. 예를 들어, 전라북도 장수의 지지리 사람들은 동쪽 경상남도 함양의 사투리가 아니라 남쪽 전라북도 남원의 사투리를 쓴다. 지지리 마을에서는 함양이나 장수가 남원보다 가깝다. 남원은 지지리에서 남쪽으로 섬진강 줄기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야 있다. 하지만 지지리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넘어 장수나 함양과 교류하기보다는 강을 따라 내려와 남원 사람들과 교류했다. 그건 강이 두 지역을 나누는 기준이 아니라, 두 지역을 하나로 모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 p.97
일제 강점기에 신작로가 닦이기 전, 곧게 뻗은 철길이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1899년 9월 18일, 지금의 수도권 전철 1호선인 경인선(서울-인천)이 개통되었다. 경인선은 한국 최초의 철도이고, 경인선이 태어난 날이 바로 철도의 날이다.
이동이란 그저 ‘걷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한 번에 수백 명을 태우고도 지치지 않고 달리는 거대한 ‘쇠 말’(기관차)은 그야말로 변혁의 상징이었다. 이 혁명은 도보-철도-도로-항공 교통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20세기 들어 말보다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철도를 통해 원료, 연료, 상품, 여행객의 이동이 늘면서 경제의 변화가 진행되었다.--- p.135
현재 세계에는 댐이 약 3만 3000개 있고, 그중 약 5000개는 높이 15미터 이상의 대형 다목적 댐이다. 바꾸어 말하면 세계 곳곳에서 물길이 흐름을 방해받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댐 건설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홍수와 가뭄에 대비하고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는 생각만 확대해서 하는 것 같다. 댐이 전 세계 전기의 16퍼센트를 생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댐이 물길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큰 강은 인간의 풍요를 위해, 인간의 편리를 위해 인위적으로 흐르고 숨 쉬도록 조절되고 있다. 마치 중환자실의 환자한테 인공호흡기를 붙였다 뗐다 하는 것처럼 말이다.(중략)
실제로 제조업이 발달한 개발도상국에서는 환경 파괴와 환경오염이 유독 심하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에서 만든 물건들을 선진국에서 실컷 쓰고 있다. 즉, 개발도상국의 환경 파괴는 선진국의 책임도 큰 것이다. 그러니 선진국들에서 브라질의 아마존강과 그 유역의 자연 파괴가 인류의 문제라고 반대한다면 인류의 이름으로 브라질을 도와야 한다. 그것이 이웃을 돕는 일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안전하게 사는 길이다.
--- p.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