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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셰퍼드, 죽은 자들의 의사

닥터 셰퍼드, 죽은 자들의 의사

: 헝거포드 대학살에서 다이애나 비 사망사건과 9·11까지, 영국 최고의 법의학자가 말하는 삶과 죽음

리뷰 총점9.3 리뷰 16건 | 판매지수 96
베스트
사회 정치 top100 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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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1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64쪽 | 614g | 145*215*30mm
ISBN13 9791187038528
ISBN10 1187038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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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그만둬!” 그 소리에 돌아선 마이클은 반자동소총으로 어머니의 다리를 한 발 쐈다. 그녀가 땅으로 고꾸라졌다. … 가까운 거리에서 어머니를 내려다보던 그는 등에 두 발을 더 쏘아 어머니의 목숨을 끊어버렸다. 가까운 거리, 대략 15cm 내에서 쏘면 총상 주변에 그을음과 화상 자국이 나는데, 이 마지막 두 발에서 그런 흔적이 보였다. 어쩌면 그는 어머니를 쏠 때 차마 얼굴을 볼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도착할 때까지 그는 집 주변의 좁은 구역만 돌아다녔다. 나의 추측이지만, 어머니가 죽고 나자 그는 긴장이 풀려 광기를 발산하게 된 것 같다. 해방감에 젖어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특별한 힘을 맘껏 과시한 것이다. 무방비 상태의 주민들을 총으로 제압할 수 있는 힘 말이다. --- pp.26~27

내가 지나친 추측을 한 건 아닌가? 얼굴의 부상이 도로에 쓰러질 때 난 게 아니라는 게 확실한가? 칼날이 흉곽 안에서 움직인 이유를 몇 가지로 설명해야 하나? 글에 자신감이 충분히 드러났나? 경찰이 용의자를 증인석에 앉혔을 때 피고 측 변호인한테서 이런 질문을 받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셰퍼드 박사님, 이 사건을 맡기 전에 칼에 찔린 시신을 단독으로 부검한 적이 몇 번 정도 되나요? 네? 없다고요?” --- p.88

소년의 진술은 첫 번째 법의관이 찾아낸 사실과 맞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가 침대에서 자고 있을 때 4번을 내리쳤다고 했는데, 법의관은 부상 부위가 20군데 이상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 젊은 법의관이었던 나는 진실을 찾으려는 열정으로 그 소년이 사용했던 쇠지렛대를 만들어봤다. 다만 소재는 스티로폼이었다. 그 소년의 키와 범행 현장의 사진을 참고하여 그가 아버지를 향했을 때의 적당한 높이와 각도로 섰다. 그런 다음 지렛대로 베개를 여러 번 세게 쳐봤다. 베개는 그 아버지의 머리 대신이었다. 오랜 연구 끝에 나는 지렛대를 빗겨 치면 베개에 닿는 순간 회전하면서 튄다는 것을 알아냈다. --- pp.135~136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나는 법의관은 항상 옳다고 전제해야 한다는 원칙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보면 내가 정식으로 법의관이 된 날은 아직 배움이 부족한 자신 없는 전공의에서 오류가 없는 전문가로 다시 태어난 날이었다. 다들 그것을 당연시했다. 하지만 별 볼 일 없는 클라크 켄트가 무적의 슈퍼맨으로 변모했을 때, 보는 사람은 스릴을 느꼈겠지만 켄트 자신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지 생각해보라. 나는 분명 내 어깨를 두른 무적의 망토가 무거운 짐으로 느껴졌다. --- p.137

부검을 할 때 나는 문명사회가 기대하는 ‘최고의 예우’를 갖출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까지 담아 신속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작업한다. 나는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려 이 일을 하는데도 수상하고 잔인한 백정으로 오해받는 게 너무나 괴롭다.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가족의 죽음에 대해 직접 나의 설명을 듣거나 법정에서 나의 증언을 듣는 사람들이 내가 세심하게 배려하며 그 일을 했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일한다는 것도. --- p.187

수많은 살인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죽일 생각은 없었어요!” 이 말은 “제가 한 행동으로 사람이 죽을 줄은 몰랐어요!”라는 뜻이다. --- p.254

잔해 분류 작업에 참여했던 한 인류학자 친구는 참사 현장에서 일한 많은 사람들처럼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몇 달 동안 인체 조직과 뼈를 찾는 작업을 한 그녀는 비행공포증이 생겼다. 영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몸 곳곳에, 팔다리에까지 자기 이름을 써넣을 정도였다. 비행기가 추락해서 팔다리가 절단되는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 p.385

어느 뜨거운 여름날 아침 나는 토막 나서 썩어가는 시신들의 영상에 쫓기고 있었다. 창자가 있었다. 스펀지 같은 간도 있었다. 뛰지 않는 심장도 있었다. 결혼반지가 끼워진 손도 있었다. 나는 그 반지를 빼야 했다. 그 안에 새겨진 이름을 봐야 주인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코를
찌르는 듯한 악취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 p.438

“박사님은 수십 년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기도 싫어하는 일을 해오셨잖습니까. 그런데 아직도 열정을 잃지 않으셨네요. 보면 압니다. 이 멍청한 남자는 아마 오줌을 싸다가 넘어져서 죽은 것 같고, 그 50대 여자는 가망 없는 알코올중독자라서 어차피 저승길이 멀지 않았는데, 그래도 박사님은 그런 사람들을 걱정하시는군요. 죽은 사람이 누구든 공정하게 대하시면서요.”
--- p.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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