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밴디지’라고 부르는 붕대를 손에 처음 감은 날을 떠올려본다. 어떤 기분이었더라. 샌드백용 10온스짜리 글러브를 처음 받은 것도 그때였다. 체육관마다 커리큘럼이 상이하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아마 처음 등록한 지 5일 정도 지난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붕대를 손에 감고 나서야 아, 내가 복싱을 하고 있구나 하고 실감했을 것이다. 또한 나도 저기 보이는 사람들처럼 큰 소리를 팡팡 내며 샌드백을 칠 수 있겠다는 기쁨을 아주 잠시 누렸을 테다. 그리고 금세 알았겠지. 그렇게 크고 경쾌한 소리는 저절로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 몸은 아침드라마 남자 주인공의 뺨을 김치 한 포기로 후려치는 것보다 더 미약한 힘밖에 가지지 못하다는 사실을. 이를 본 코치는 이렇게 표현했다.
“싸대기도 때려본 사람이 잘하더라고요.”
내가 계속 허리를 틀지 못하고 팔로만 스트레이트를 쳐서(복싱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주먹 힘은 팔이 아니라 허리 회전에서 나온다) 나온 말인데, 어찌나 정확한지. 뺨을 후려쳐야 할 사람들에게 아무 짓도 하지 못한 채 얼떨떨한 마음으로 인간관계에 아등바등 매달리고 순응할 수밖에 없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기까지 했다.
--- 「부상과 통증은 피할 수 없어」 중에서
5년을 넘는 세월 동안, 참 많은 글러브가 손을 거쳐갔다. 금방 스쳐지나간 것도 있고, 퍽 오래 사용한 것도 있다. 땀이 차면 지옥에서 부활해 돌아온 축구선수 같은 냄새가 나던 초보자용 인조가죽 글러브부터 밀리터리 스타일의 카키색 글러브, 수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도저히 반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호루스의 눈’이 정면에 크게 박힌 글러브, 타격감이 예술이었던 신소재 글러브까지.
새로운 글러브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마치 한 몸처럼 매일을 만나 함께하고, 그러다 점차 그 관계가 너덜너덜해지며 상대를 향한 불만이 슬슬 쌓이기 시작할 때쯤 어디선가 처음 보는 아이가 돌연 등장하여 마음을 사로잡는 그 과정은 마치 연애와도 같았다.
물론 글러브들의 입장을 직접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아마 그들도 나에게 할 말이 많았을 테다. 너는 왜 이렇게 땀이 많아서 나를 괴롭게 하냐는 둥, 네 손목이 약한 걸 왜 내 탓을 하냐는 둥.
그래서 각각의 글러브에 대한 추억도 참 많다. 과거 연인들을 회상하면 괜스레 마음에 희끄무레하고 몽글거리는 무엇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가장 애틋하고 기억에 남는 사랑은 네 번째 글러브다. 무더운 길거리를 걷다가 첫눈에 반한 그 순간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 「너라는 글러브를 처음 만난 그 순간」 중에서
온 힘을 다해 샌드백을 치면 그 충격이 누적되어 마치 알코올중독자처럼 손을 떨게 된다. 남들에게 손을 보이기 민망할 정도다. 여자 친구가 그러는 양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이 어땠을지, 이미 운동에 미쳐 있던 나로서는 미안하게도 상상하고 이해하고 배려할 마음이 없었다.
손만 떤 게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들이닥치는 어마어마한 졸음이었다. 평일 내내 극심한 수면 부족에 시달렸으니 주말에는 열두 시간쯤 자야 할 법도 한데, 그 시간에 전력을 다해 체육관에서 섀도 복싱을 하고 샌드백을 두들겼으니.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도 꾸벅꾸벅 졸았다. 그 거대한 졸음덩어리 앞에서 카페인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코엑스 한복판에 있는 카페 테이블에 이마를 댄 채 “오빠, 진짜 너무 미안한데, 진짜 너무너무 미안한데 10분만 잘게”라고 이야기하곤 한 시간을 잤다. 애인의 차 조수석에 오르자마자 정신없이 곯아떨어지는 것이 일상이었다.
--- 「누구와 연애하고 있던 걸까」 중에서
가장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는 감량법은 역시 수분 감량이다. 대신 ‘꿈에서도 물을 마시는’ 극한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물의 무게가 상상외로 어마어마하다.
식단 조절에 아직 익숙하지 않았던 ‘생체 초짜’ 시기에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 극한의 수분 감량법을 써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당시 이틀 만에 2.5킬로그램을 빼는 데 성공했던 적이 있다. 말이 ‘빼는’ 것이지, 실은 그냥 물에 젖은 빨래를 다 해지기 직전까지 짜서 탈수시키는 느낌이었다. 이틀간 물을 전혀 마시지 않고 종일 수업했다. 야간 수업까지 통으로. 입가에 허옇게 침이 쩍쩍 말라붙어 연신 손수건으로 입을 훔치며 다녀야 했다. 그 몰골은 정말이지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이마에 변명 가득한 메모를 써 붙이고 다니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는 원래 지저분한 사람이 아니고 감량하느라 물을 못 마셔서 이 지경인 것이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흑흑.’
그렇게 수업하고, 체육관에 가서 속옷이 흠뻑 젖을 때까지 운동했다(운동이 끝난 후 수분을 보충하지 않은 것은 당연지사). 너무 목이 마르면 물 반 모금을 입에 머금은 후 최대한 천천히 한 방울씩 목구멍 뒤로 넘기거나, 혹은 침을 쯥쯥 빨아먹었다(정말이다).
--- 「꿈에서까지 물을 마시더라고요」 중에서
타인을 전력으로 응원해준다는 것, 그의 성과에 함께 진심을 다해 기뻐해준다는 것은 굉장히 쉽고 단순해 보이지만 의외로 사는 동안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감정이기도 하다. 일단 우리 사회에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잘하는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시기하게끔, 그 시기심을 원동력으로 삼게끔 교육과 입시 제도가 설정되어 있다(라고 생각한다). 교육받고 학교를 나와도 또 경쟁이다. 자기 사업을 하든 회사에 취직하든 무조건 경쟁이다. 그렇게 죽는 둥 마는 둥 열정적으로 살아도, 보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 또한 없다. 한마디로, 나 사느라 바빠 남을 응원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특히 타인이 ‘국가대표 선수’나 ‘프로축구 선수’가 아닌, 바로 내 옆의 평범한 누군가일 경우 더더욱.
그래서 내가 운동을 좋아한다. 31년을 사는 동안, 누군가를 순수하게 응원하는 감정을 운동하며 처음 경험했다. 함께 고생했던 사람들이 링에 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 경기도 아닌데 긴장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경험. 경기가 진행되는 짧은 시간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그 사람의 움직임 하나만 눈으로 계속 따라가며 내가 가진 마음의 백 프로를 링 위의 그에게 쏟는 느낌. 공격 하나하나가 성공할 때는 내 일처럼 터뜨리는 함성. 그런 감정을 운동을 통해서야 비로소 찾게 되었다.
--- 「모두의 기를 모아, 원기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