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3년 02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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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40쪽 | 625g | 147*225*30mm |
ISBN13 | 9788960512870 |
ISBN10 | 8960512877 |
발행일 | 2013년 02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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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40쪽 | 625g | 147*225*30mm |
ISBN13 | 9788960512870 |
ISBN10 | 8960512877 |
추천사: 유진규 머리말: 왜 이 책을 써야만 했는가? I. 도덕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 1. 농업의 본질은 파괴다 생명에 대한 갈망으로 시작한 텃밭 가꾸기 | 지속 가능한 비료라는 게 가능한가? | 인간도 먹이 사슬의 일부일 뿐 | 사과도 동물을 먹는다 |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착각 | 농업의 열쇠를 쥔 일년생 초본 | 농업에 중독된 인류 | 농업의 본질 | 생태계를 뿌리째 집어삼키는 농업 | 지속 가능한 농업이란 없다 | 강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녹색 혁명의 비극 | 죽는 땅이 늘어만 가는 미시시피 유역 |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질문 2. 동물은 안 되고 식물은 된다? 처치 곤란 민달팽이, 비건 식으로 해결하기 | 호흡주의의 ‘정의’라는 것에 대해 | 도덕적 채식주의자를 위한 간단한 산수 | 영속 농법 농장 방문기 | 생명은 죽음으로써만 가능하다 | 동물 권리 옹호는 인간 중심적인 생각 | 자연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동물권 옹호 | 생명이란 상호 의존의 연속 | 채식주의는 죽음을 인정해야 한다 | 식물은 먹어도 괜찮은가? | 인간의 척도로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식물의 생명 활동 | 식물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다 | 생명에는 범위가 없다 II. 정치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 3. 현대 소는 옥수수를 먹고 큰다 박테리아와 동물의 상생 | 무지와 부정직함에서 비롯된 착각 | 정치적 채식주의자가 알아야 할 산수 | 전쟁과 농업의 교집합 | 곡물은 또 다른 화석 연료 | 소가 풀이 아닌 옥수수를 먹게 된 사연 | 과점 기업이 지배하는 세계 곡물 시장 | 값싼 농산물은 기아의 해결책이 아니라 원인 | 정치적 채식주의에서 말하는 ‘정의’의 한계 4. 사람이 너무 많다 수용 한도를 넘어 웃자란 인류 | 환경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아야 | 이 많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먹을 수 있는’ 방법은? | 인구 증감은 문화가 결정한다 | 지속 가능성과 평등성은 별개 | 농업 문명의 신화에서 깨어나야 III. 영양학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 5. 지방에 새겨진 주홍 글씨 현재의 인간을 만든 건 육식 | 우리 몸은 고기를 먹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 곡물 식사의 위험성 | 필수 아미노산은 있는데 왜 필수 탄수화물은 없을까? | 고탄수화물 식단이 불러오는 위기들 | 콜레스테롤은 억울하다 | 역학 연구 결과를 취할 때 유의할 점 | 지방 가설은 “의학 사상 최고의 사기극” | 내가 폭식 혹은 실수라고 오해했던 그것 | 지방, 알고 따지자 | 암을 모르고 사는 원주민 | 비건이 당을 찾는 이유 | 식품 산업 자본의 임상 실험 대상이 된 세계인 | 심장병 신화의 탄생 | 신화는 살아남았다 | 이제 기름진 음식을 찾아 나설 때 6. ‘만병통치약’ 콩의 진실 호르몬을 교란시키는 콩 | 유아가 더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 만드는 공정을 알면 먹지 못한다 | 아이들을 위험 속에 계속 두어야 하는가? 7. 채식주의자들을 찾아오는 식이 장애 뇌는 먹어야 한다 | 비건의 길은 자신을 파괴하는 길 | 마침내 멈추다 | 채식주의 식단을 유지할 때 일어나는 일들 | 채식주의자에게 고함 맺음말: 세상을 구하려면 채식주의자들이여, 세상을 구하고 싶은가? | 흙이 희망이다 | 지금 사는 곳을 돌아보라 | 현대 문명의 미래를 알고 싶은가? |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다 | 그나마 효과 있는 개인적인 해결책 세 가지 | 달콤한 동화는 잊어야 할 때 | 나를 치유하고 세상을 치유하는 음식 감사의 말 부록 참고 자료 |
2009년에 출판되어 이미 4년이나 지난, 한물 간 책을 아마존 별점이 양극단으로 갈린 최대의 논쟁서 어쩌고 소개하는 출판사의 낚시에 걸리지 않으려고 그냥 패스했던 책인데 최근에 제 주위에서 잡식을 하는 분들이 채식하면 죽는다고 채식을 해서는 안 되는 근거로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자꾸 이야기하기에 대체 뭔 소리가 쓰여 있길래 그러는지 궁금해서 읽어봤습니다. (일단 눈물 좀 닦고요. ㅠ.ㅠ)
비유를 들자면 '이단 종교를 기독교라고 착각하고 몸 주고 마음 주고 사랑도 줬건만 20년이나 지나서야 자기가 헛짓한 걸 깨닫고 분노의 하이킥을 기독교도 아닌 불교에 뜬금없이 날리는 격'이라고나 할까요? 그 모양새가 예전에 제가 혹평한 바바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2011)'과 완전 판박이입니다. 저자가 같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쌍동이처럼 똑같아요. 재미있는 건 '긍정의 배신'도 부키 출판사에서 번역했다는 거. 재미 좀 보더니 배신 시리즈로 독자층을 계속 배신하려나 봅니다.
예전의 부키 출판사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2007)',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2010)'와 같은 훌륭한 책들을 많이 내놨죠. 최근에 사장이라도 갈린 겁니까? 대체 왜 이러죠?
출판사 욕은 그만하고 저자 이야기를 좀 해보죠.
일단 책 제목처럼 채식의 배신 혹은 원제의 Vegetarian Myth처럼 채식은 이야기 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저자가 20년 동안 먹은 건 채식이 아니라 정크 푸드 편식이니까요. 저자가 20년 동안 뭘 먹고 살았는지는 책에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GMO 옥수수 시리얼이나 싸구려 두유, 콩고기 버거만 먹고 산 듯 합니다. 책 내용 중에 신선한 샐러드, 채소와 같은 단어 자체가 전혀 안 나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채식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신 분들이 동물성 식품을 안 먹는답시고 백미밥에 김치만 먹다가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일이 왕왕 있는데 딱 그 꼴입니다. 채식에 대해 조금만 공부를 하신 분들이라면 건강을 위한 채식마저도 단순히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균형잡힌 식생활을 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서 탄수화물 중독도 조심해야 하고, 가공 식품도 안 먹게 되고, 무엇보다 정크 푸드를 피하게 되죠. 제가 볼 때 저자는 비건이 아닐 뿐 아니라 채식 주의자도 아니고 그냥 정크 푸드 편식의 희생자입니다. 이 사람이 진정 비건이었다면 친구와 같이 차를 달려 로컬 레스토랑에서 피자를 흡입한다든가 참치 통조림을 먹으면서 온몸의 세포가 절규하는 히스테리컬한 경험을 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겁니다. 참치 통조림 에피소드에서는 그냥 고소만 나오더군요. 에휴~
저자가 제대로 된 채식인이 아니라는 건 책 곳곳에 등장하는 주변 사람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 주변에 있는 채식인들은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니라서 아프리카 세렝게티 공원에 담을 세워 포식동물과 초식동물을 갈라놔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자신의 삶과 존재가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고도 지속할 수 있다고 믿고 있거나(저자 본인도 그랬답니다) 아니면 공기만 먹고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호흡주의자(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런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채식과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동일시해서 식이장애에 걸린 사람들만 득시글합니다. 어디에서 이런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만나는 건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미국이라서 그런걸까요? 아님 유유상종?
무엇보다도 저는 이 저자의 아집("이 문제는 논쟁으로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경험을 했고, 내 신념에 자신 있다". 65p)에 일단 어이가 가출하더군요. 아~ 그래서 자신의 경험에 대한 자신감이 너무 넘친 나머지 이 책에 인용한 자료의 출처 중 1/3이 위키피디아였나 봅니다. 하도 이상한 자료들이 많아서 references를 보니 그냥 웹사이트 10개 달랑 소개한 게 답니다. 흔해빠진 영양학 journal이나 article 하나 없습니다. 개인적인 경험만 갖고 말하자면 겨우 1년 9개월 채식을 한 저도 할 말 있습니다. 채식 1년 만에 고지혈증, 고도의 지방간을 고쳤고 중성 지방 등 몸에 안 좋은 수치를 모두 정상으로 돌려놨습니다. 그러니 저를 믿고 채식하세요. 무병장수 하실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 다음은 책 내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시 눈물 닦고. ㅠ.ㅠ)
저자는 세 가지 방향에서 채식주의를 비판합니다. 일단 이 책은 온통 자가당착, 아전인수격의 자료 선별과 해석의 왜곡이 난무한다는 걸 미리 말씀드립니다.
1. 도덕적 이유의 채식주의
2. 정치적 이유의 채식주의
3. 영양학적 이유의 채식주의
저자에 따르면 도덕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고 있는 것은 농업이 본질적으로 파괴적이라는 것이고 특히 일년생 곡물의 단일 경작이라고 주장합니다. 농업에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그리고 로컬 푸드를 먹는게 좋다는 것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자는 채식주의자가 동물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 농업에 중독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농업을 위해 미생물, 곤충, 작은 동물들을 죽일 수 밖에 없으니 아무 것도 죽이지 않으려는 채식주의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그런 걸 주장하는 채식주의란 걸 저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가능하면 불필요한 살생을 피하자는 것이지 아무런 죽음도 인정하지 않는 채식주의란 것이 어디 있습니까? 왠 허수아비 공격?). 게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채식이란 건 불가능하니 그냥 고기를 먹자고 합니다. 어떻게? 직접 길러서 잡아먹자고 합니다(응?). 모두 자급자족식 농업을 하자는거지요(그러면서 참치 통조림은 왜 먹나?).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인, 질소 등의 제공없는 지속가능한 농업은 불가능하고 그러려면 가축이 필요하고 기왕 가축이 있으니 고기를 먹자는 겁니다. 동물이 전혀 없이 지속가능한 유기 농업을 하고 있는 veganic farm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그냥 고기가 먹고 싶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냥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지.
게다가 이 사람이 책에서 자주 먹는 유제품은 결국 낙농업에서 나온 산물인데 이 사람이 그렇게 칭송해 마지않는 수렵 채집 생활에서는 그런 양질의 유제품이 없었고 정착 농업이 시작되면서 가능해졌는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앞뒤가 안 맞아서 당췌 이해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단일 경작하는 옥수수 등의 곡물은 주로 고기 생산을 위한 가축들의 사료로 사용하기 위해 기르는 건데 단일 경작을 하지 않으려면 고기 소비부터 줄이는 데서부터 시작을 해야지 뜬금없이 채식은 왜 끼워넣는답니까? 아항 자기가 20년 동안 먹었던 옥수수 시리얼을 만드는데 사용된 GMO 옥수수를 까야하니까?
도덕적 이유의 채식주의 장에 나오는 동물 권리 옹호론에 대한 저자의 무지와 몰상식은 거론하기 창피한 수준입니다. 동물 권리 옹호론자들이 죽음이 생명의 일부라는 걸 부정하기 때문에 다른 생명을 전혀 죽이지 않고도 먹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말(142p)을 합니다. 대체 그렇게 주장하는 동물 권리 옹호론자들이 누굽니까? 자기가 죽음이 잘못된 것이라고 믿었다네요(150p). 자기가 그렇게 오해해놓고 엄한 동물 권리 옹호론자들에게 덤터기를 씌웁니다. 그래놓고 이 사람이 내린 결론은..... "나는 마침내 대답을 찾았다. 나는 선을 긋지 않을 것이다(160p)" 그냥 다 먹겠답니다;;;;; 그래서 참치 통조림을 흡입했지요~
정치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쳤다고 저자가 주장하는 건 동물을 먹지 않고 채식을 하는 것으로 세계 기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장에서 저자가 비판한 공장형 축산을 위한 단일 경작 문제는 저도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채식주의가 표방하는 곳도 같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저자는 중간에 방향을 틀어서 공장형 축산이나 채식주의나 똑같다고 한통속 취급을 합니다(읭?). 단일 경작은 공장형 축산을 위한 사료 생산도 하지만 저자가 20년 동안 먹었던 GMO 시리얼을 만들기 위한 옥수수를 생산하기도 한다면서요. 그러면서 갑자기 이 사람은 지구 상에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합니다(204p). 지구가 수용 가능한 지속 가능한 인구의 수를 6억으로 산정한 머컬(그냥 미국 작가랍니다;;;;)의 추정치도 너무 많다면서 이 책의 막판에 아이를 낳지 말자는 극단적인 주장을 합니다. 본인도 안 낳았다면서요;;;;; 아 놔~
마지막 3부의 영양학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고 있는 것으로 저자가 주장한 것은 현재의 인간을 만든 건 육식이지 채식이 아니라는 겁니다. 드디어 저자의 구석기 시대 찬양론이 등장하는데 수렵, 채집 시대에는 이렇다 할 질병이 없었다거나(p243), 들소 떼가 영양분 가득한 자신들의 몸으로 인간의 뇌를 성장시킨 결과 라스코 동굴 벽화가 탄생했다거나(241p), 게다가 이런 내용들에 대해 고고학적으로 논쟁의 여지 없이 증명된 사실(244p)이라면서 출처 표기 하나 안 하는 멋진 생까기를 보여줍니다.
제가 영양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하나하나 반박하지 못하나 상식적으로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저자의 주장을 몇 개 열거하면(당연히 출처는 하나도 없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이 포스팅의 말미에 영양학자의 반박 포스팅 링크를 걸어둘테니 관심있는 분들은 읽어보세요.
* 식생활에서 글루텐(밀에서 많이 발견되는 식물성 단백질)을 제거하면 정신분열병이 개선된다는 연구 결과가 수없이 많이 나와 있다(252p)
* 중간 크기의 구운 감자를 먹는 것과 대용량 청량음료 한 병을 마시는 것은 대사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 사실 감자 쪽이 살짝 더 나쁜 음식이다(258p)
*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피 속에 든 콜레스테롤의 80%가 우리 몸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266p).
* 동물성 지방보다 포화 지방이 더 많은 것이 코코넛 오일이다(279p).
* 비타민 A를 함유한 식물성 식품은 존재하지 않는다(293p).
* 비타민 D를 함유한 식품은 대구 간유, 동물 간, 달걀 노른자, 기름진 생선, 버터 등 동물성 식품 뿐이다(293p)
* 사실 심장은 지방을 연료로 사용할 때 가장 잘 돌아간다(295p).
* 의학박사 비어트리스 골롬은 1965년 이후에 발표된 모든 연구 결과를 샅샅이 훑어 낮은 콜레스테롤 수치와 폭력이 관계가 있는지 고찰했고, 둘 사이의 상관성에 인과 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296p).
* 식물성 기름에 오메가6 지방산은 많이 들어있는 반해 오메가3 지방산은 거의 들어있지 않다. 오메가6 지방산은 각종 염증과 고혈압, 소화기 자극, 면역 기능 저하, 불임, 세포 증식, 그리고 암을 유발한다(299p).
이 포스팅을 하는 중에 5분 정도 구글링을 해 봤는데도 위에서 저자가 주장한 내용 중 4가지 이상을 반박하는 증거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대체 뭘 갖고 이런 얼토당토 않은 주장들을 하는 건지...
그 밖에도 대부분의 비건들이 단것 중독증이라고 주장(312p)하거나(난 그 좋아하던 아이스크림도 전혀 생각 안 나는데?) 비건 식사를 시작한 지 6주가 지나자 탈진했다거나(굶어서 그랬겠지~ 난 몸만 가볍고 쌩쌩해지더구만)하는 허무맹랑한 주장이나 경험담이 난무합니다.
6장의 제목은 더 재미있습니다. "만병통치약 콩의 진실" 대체 어느 채식인이 콩을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한답니까? 아무리 홍삼이 몸에 좋아도 이 사람처럼 홍삼을 먹으면 몸이 견뎌내겠습니까? 아무래도 이 사람은 콩 혹은 두유 중독증이었나봅니다. 그러니 콩이 미워 죽겠지(난 콩 하나만 줄창 패~).
7장에서는 채식주의자들을 찾아오는 식이장애라는 제목으로 채식을 하면 식이장애에 걸린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헐~). 식이장애 환자들이 거식하는 걸 주변 사람들이 방해하지 못하게 하려고 흔히 대는 핑계 중 하나가 자신이 채식을 한다고 둘러대는 건데 이 사람은 그런 건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을 겁니다. 그냥 채식하면 식이장애에 걸린다고 주장하고 싶겠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투사(projection) 기제의 끝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저자가 우울증, 식이장애, 공황장애, 퇴행성 디스크, 저혈당, 암까지 걸렸다는데 그러게 제대로 된 채식을 하지 왜 정크 푸드만 20년을 먹으면서 고행을 한건지 참 안타깝습니다.
앞으로 본인이 기른 고기와 유제품 중심의 식단을 쭈욱 밀고 나간다니 더 안타까워요. (마지막으로 눈물 닦고)
꼼꼼히 읽느라고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데 보면서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리고 자꾸 멘붕이 오는 통에 참 힘들었습니다. 비건이나 채식하시는 분들은 정신 건강을 위해서 안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 채식을 하면 인슐린 수용체가 마모되어 저혈당증에 걸리고 뼈와 관절이 파괴되며 염증에 뒤덮이게 됩니다. 알츠하이머 병에 걸릴 확률이 급증하고 전신 통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갑상선도 손상되고 위도 망가지고 언제나 너무너무 춥습니다. 게다가 신경 손상 가능성이 있고 지능이 낮아지는데다 우울, 불안증에 걸릴 수 있답니다.
이 증상의 대부분을 저자가 경험했고 아마도 콩을 많이 먹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ㅡㅡ;;;;
잡식하시는 분들은 채식을 공격할 때 더 이상 이 책 들고나오지 마세요.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 않으면...
덧. 반박 리뷰 링크 몇 개 겁니다. 모두 영어이기는 하지만 읽어볼 만 합니다. 채식의 유혹을 쓴 김우열 번역가가 트윗해 주신 겁니다. 허락없이 무단 링크걸어서 죄송합니다~
http://www.theveganrd.com/2010/09/review-of-the-vegetarian-myth.html
http://skepticalvegan.com/2010/03/19/myths-of-the-vegetarian-myth/
미국 아마존에서 이 책을 검색하시면 최고의 추천 리뷰로 선정된 중립 입장의 리뷰도 읽어보세요.
덧2. '인간동력, 당신이 에너지다(2008)'라는 제가 극찬한 좋은 책을 쓴 유진규 PD가 추천사를 썼던데 유진규 PD 정말 실망입니다. 책을 보는 눈이 이 정도 밖에 안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 책에 대한 아주 솔직하고 주관적인 감상부터 쓰겠습니다. TV나 광고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라고 으례 믿듯이, 책으로 인쇄된 내용은 당연히 검증을 거쳤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채식의 배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주제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또는 책에 쓰여 있는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채식에 대한 엄청난 오해를 하게 만드는 책이 이런 책이죠. 채식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이런 책부터 읽으면 채식에 대해 굉장히 왜곡된 사고를 하게 됩니다. 특히 윤리적 채식주의에 대한 이 책의 내용은 너무나 많은 부정확한 정보가 담겨 있어 많이 위험합니다. 사실 이 책의 원서가 출간된 미국에서는 주목도 못받고 묻혀버린 책인데, 국내에는 어떤 이해관계가 결부되어 있는지 몰라도 자극적인 제목으로 번역되어 홍보되고 있네요.
출간때부터 이슈를 끌어서 관련 기사, 리뷰도 많은데,... 그 중 사실관계를 제대로 잡아낸 글은 거의 찾아볼 수 없더군요. 거의 대부분이 "채식이 알고보니 이런 배신을 하더라~" 는 카더라 통신입니다. 그런 평을 쓴 사람 중 일상에서 채식을 구현해본 사람은 당연히 없는 것 같구요.
제가 이렇게 이 책에 대해 혹평을 하는 이유는 채식이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먹히는 동물들을 말을 못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갖는 편견에 동물들은 엄청난 손해를 보지요. 아무 생각없이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 겁니다..
이 책은 20년간 채식했다던 사람이 썼음에도 불구하고 채식에 대한 총체적인 편견과 오해를 담고 있어 한 편으로는 어처구니가 없지만 없지만 채식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총체적으로 담고 있어서 채식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역으로 이용하면 좋은 토론거리와 교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채식/육식에 대한 균형잡힌 사고를 하고 싶은 분들께는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 <죽음의 밥상>, 에리카 퍼지의 <동물에 반대한다>부터 읽고 이 책을 읽으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래야 최소한의 객관적인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이 책에 임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음은 이 책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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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채식주의가 소수 문화이며, 이 책이 다루는 도덕적, 정치적, 영양학적 채식주의의 역사가 오래되었다고도 할 수 없다. 채식주의가 국내에 제대로 자리잡기 전에 <채식주의의 신화(The Vegetarian Myth)>라는 책이 <채식의 배신>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것이 시기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채식주의 운동에 동참하여 동물과 사람 모두 잘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사람의 입장에서 이 책이 채식주의에 대한 발전적 비판이나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기존의 편견과 오해를 강화시키기 쉬운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이런 점에서 이 책에 대한 반론을 통해 채식에 대한 일반의 오해를 바로잡고 채식주의자로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다음의 사실을 바탕으로 읽혀지고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1) 현대인의 육식이 대부분 '공장식 밀집 사육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 2) 공장식 밀집 사육 시스템은 동물의 비인도적인 사육과 도살, 환경오염, 제3세계의 기아 양산으로 비판 받고 있다는 사실. 3) 현대 곡물의 대부분은 식용 가축에게 먹이기 위해 재배되기 때문에 육식하는 사람들이 채식하는 사람보다 곡물을 더 많이 소비한다는 사실. 채식주의는 아주 간단히 정의하면 "육식을 하지 않고 식물로부터 양분을 얻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생활 양식이 존재하는 현대에 채식주의가 일상에서 구현되는 모습은 무엇을 먹는가, 어느 정도의 융통성을 허용하는가 등의 측면에서 개인의 생활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이 20년 동안 '비건' 으로 살았다고 했을 뿐, 비건 채식주의를 어떻게 실천했는가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책을 읽고 이해한 바에 따르면 저자는 채식주의를 '일체의 살생을 피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일탈이나 융통성을 불허하는 극단적인 채식주의를 지향한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에서 20년의 비건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육식을 하게 된 경험에 기초하여 도덕적, 정치적, 영양학적 채식주의의 무지와 신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부터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반론을 펴기로 하겠다. I. 도덕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
1) 동물 권리 옹호주의는 동물이 아닌 인간의 행복과 고통을 앞세우기 때문에 인간 중심적이고 감상적이다. "엄마가 있거나 얼굴이 있는 건 먹지 않겠다"는 주장이 동물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이런 특징이 동물에게도 통증, 공포, 염려를 느끼는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의 고통에 대해 신경 쓰는 사람들은 감상적이라는 비난을 듣는데, 그런 비난에는 맞는 구석이 있다. 동물 권리 옹호론은 인간의 필요와 욕구를 동물에 투사한 것이지 동물의 필요와 욕구를 반영한 것이 아니다. (p.135-136)
아무리 객관적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인간의 시각에 의존하여 동물을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이 순수하게 동물의 입장에서 행복과 고통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가 인간의 행복과 고통에 기초하여 동물의 행복과 고통을 가늠하는 인도주의적 시선을 완전히 걷어낸다면 내 앞에 있는 강아지와 책상이 다를 바가 무엇일까? 인간이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우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동물 학대를 주저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동물을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잘못이라면, 저자의 ‘식물도 감각과 감정을 느낀다’는 주장이나 ‘우리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자’는 주장도 같은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참고해볼만한 문제: 데카르트의 동물기계론 "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2) 동물 권리 옹호론자들은 동물의 동물적 본성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세렝게티 한가운데에 담을 세워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을 갈라놓는 담장을 쌓자고 제안한 비건처럼 동물 권리 옹호론자들은 동물의 동물적 본성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p.137) 폴런의 동물권 옹호 철학에 대한 비판: "동물 권리 옹호자들은 인간의 동물성 뿐만 아니라 동물의 동물성마저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들이 싸우는 대상은 바로 자연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p.141)
저자는 일부 괴상한 채식주의자의 생각을 보편적인 동물 권리 옹호론으로 간주하는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나는 동물보호단체가 자연의 포식관계를 부정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환경 운동가인 저자의 동물권 운동에 대한 몰이해가 놀랍다. 3) 도덕적 이유의 채식주의는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일년생 곡물을 기본으로 한 식단이 "아무 것도 죽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의 무지를 드러낸다. (p.140) 동물 권리 옹호자들은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고도 먹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죽음이 생명의 일부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부정한다. (p.142)
이렇게 생각하는 채식주의자가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채식주의 운동의 정론은 모든 살생을 부정하는 교조주의가 아니라 동물이라도 소비하지 말자는 것이다. 게다가 인간 때문에 죽는 동물이 식용동물이 전부는 아니며, 아무리 극단적인 채식주의자라도 살면서 일체의 살생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완벽하게 채식하지 않을 바에는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라는 생각이나, 모피를 입지 않는 사람에게 "당신이 먹는 동물은 불쌍하지 않냐?"고 따지는 것은 개인이 가능한 선에서 행하는 윤리적 실천의 본질을 흐리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먹을 거리는 윤리문제이지만 광신도는 필요 없다"는 피터 싱어의 조언(보기 클릭)은 매우 중요하다. 저자는 자신의 극단적, 교조적인 채식주의를 채식주의 전체로 투사한 것 같다. 4) 식물도 감각(고통)을 느낀다. 저자는 식물도 '생명 활동'을 하는데 인간의 척도로 가늠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 알지 못할 뿐(p.154)이라며, 우리는 식물에게 감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을 인간과 DNA의 50%를 공유하는 '우리'의 하나로 인정해야 한다(p.159)고 주장한다. 저자가 식물의 '감각'에 고통도 포함시키는지는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식물은 먹어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식물을 "살아있고, 영예를 돌릴 가치가 있으며, 존중하고 감사할 대상이지만 감각은 없는 생물"의 범주로 규정했지만 식물을 접하면 접할 수록 그런 범주가 말이 안돼 보였다(p.151-153)고 한 것으로 비추어보아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런데 식물의 감각을 운운하며 채식주의자의 세계관에는 이것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p.151)고 비판한 저자의 결론이 황당하다. 저자는 식물도 감각을 느낀다는 전제하에 생명의 범위를 정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어디서 선을 그어야 할까?"란 질문을 던지는데, 엉뚱하게도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것은 밤낮의 경계를 가르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신은 선을 긋지 않고 원을 그리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를 먹이기 위해 죽는 것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개별 개체들이 죽더라도 생물 종 전체가 멸종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p.162-163)라고 말한다. 저자의 주장은 동식물이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에 있고 감각을 느낀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지 않으니까 동물, 식물을 구분하지 말고 전부 먹자는 것인데, 이것이 비채식주의자의 육식 옹호론이라면 몰라도 한때 동물의 고통에 반대하여 채식을 했던 사람이 다시 육식을 하게 된 근거로 주장할 수 있을까? 동물의 고통에 반대하는 입장은 변치 않았다는 전제 하에 "식물이 감각을 느낀다"는 주장에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저자는 동식물 모두 먹지 않는 쪽을 택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뭐든 먹어야 하는 현실에서 윤리적인 태도를 고수하려면, 현대 과학의 테두리 안에서 감각을 느낀다고 밝혀진 동물은 먹지 말고, 식물의 감각은 그것이 실제로 밝혀진 후에 고민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나는 저자가 똑같은 심정으로 살아있는 당근과 닭에게 칼을 들이대는지 궁금하다. 식물의 고통을 거론하며 밥상의 윤리를 추상화시키는 것은 실존하는 고통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동물과 식물 모두가 감각을 느낀다고 믿는다면, 둘 중 어느 하나라도 먹지 않음으로써 고통을 줄이는 것이 옳을까, 둘 다 먹는 것이 옳을까? 게다가 육식은 채식보다 더 많은 식물의 죽음을 야기하는데? 만약 저자가 이 책에서 언급한 호흡주의자로 살아가기로 했다면 나는 심정적으로나마 저자에게 동의했을 것이다(물론 호흡주의가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5) 동물 사육에서 인간은 주도권을 쥐고 있지 않으며, 실은 그들을 키우기 위해 중노동을 하고 있다. 닭이 마실 물을 나르느라 겨울에 얼어붙은 문을 여는 과정에서 손바닥에 화상을 입고 목덜미에 눈 한 덩이가 떨어지는 것을 맞으면서 든 생각이 있다. "지금까지 몇 년 동안 모든 걸 거꾸로 봐 왔구나. 내가 닭을 착취하는 게 아니었어. 모두 따뜻하고 안전하고 배부르고 행복하잖아. 고생하는 것은 나뿐이야. 닭이 나한테 물을 가져다 주기는 커녕 눈 위에 발끝 하나 내밀지 않아도 되니까." 마치 나를 찌르는 냉정한 현실의 칼처럼 느껴졌다. 닭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들을 위해 일하도록 만든 것이다. (p.58-59)
살면서 더 나은 대우를 받고 고통과 스트레스 없이 도살된 동물을 먹는 것이 그렇지 않은 동물을 먹는 것보다 윤리적인 육식이라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자처럼 가축을 직접 키울 여건이 안 되기 때문에 자신이 먹는 동물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기 어렵고, 동물 복지 농장의 고기가 아직까지는 소수의 수요만 충족시켜 준다는 현실에서, 저자의 이런 주장이 현대의 육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닭과 인간은 동반자로 지내 왔고, 공장형 축산법이 나오기 전까지 이 관계는 건강하게 지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야생 가금류는 유전적으로 인간을 상대로 도박을 했고 그 도박은 성공이었다. 인간은 온 세계에 닭을 퍼뜨렸다. 정글에 사는 모성애 강한 어미 닭이 자식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하더라도 못다 이뤘을 원대한 꿈을 현실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p.59)
저자는 현대 농장 동물의 번식이 대부분 인공 수정으로 이루어진다는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 임신, 출산으로 이루어지는 번식을, 게다가 그런 번식을 통해 태어난 농장의 환경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낫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지옥같은 환경인데, 이런 번식을 동물이 인간을 상대로 벌인 도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저자의 논리에 따르면 충동구매에 따른 동물 유기를 양산하거나 말거나 인간에 의한 개, 고양이 대량번식과 판매도 정당화되어야 할 것이다. II. 정치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
정치적 채식주의자들은 일년생 곡물을 키우는 농사가 생태계를 통째로 파괴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곡물은 또 다른 화석 연료이다. 풍요로운 곡물은 사실은 진짜 풍요가 아니다. 화석연료로 만든 비료로 대량 생산된 곡물은 결국 '줄기에 달린 화석 연료'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 곡물 시장을 지배하는 몬샌토, 카길 등의 거대 곡물 카르텔은 곡물 가격을 생산비용보다 낮게 형성시켰다. 그리고 낮은 가격과 생산 비용의 차액은 납세자의 돈으로 메우게 되었으며, 이것은 전 세계 소규모 농장과 지역 경제를 망쳤다. 이러한 기업의 공급 장악과 과공급, 덤핑 가격대 형성의 순환구조는 지역 생존 경제를 파괴하고 전세계 극빈민의 생계를 위협한다. 따라서 미국 곡물은 기아의 원인이지 해결책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정의롭고 지속 가능하며 지역 경제를 살리는 방법을 모색하다 보면 지구에 인간이 너무 많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저자의 주장에도 매우 깊이 공감한다. 그런데 저자가 농업의 해악을 근거로 채식주의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곡물 생산의 수혜자가 오직 채식주의자뿐인가? 대부분의 곡물이 식용 가축을 위해 재배된다는 것은 오늘날 상식이 되어 가고 있다. 결국 육식하는 사람들이 채식주의자보다 곡물을 더 많이 소비하는 셈이다. 이 책에서 제기된 현대 농업과 곡물 카르텔의 문제점, 윤리적 소비는 채식주의자/비채식주의자 모두가 고민할 문제이지 채식주의를 탓할 일이 아니다. (참고로 유엔 국제식량농업기구는 2006년 11월 29일 발표에서 공장식 축산을 지역적, 전세계적인 토지 황폐화, 기후 변화, 공기 오염, 물 부족, 수자원 오염, 생물 다양성 파괴의 원흉 중 하나로 지목하였다.) III. 영양학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
육, 채식을 가리지 않는 소화 능력은 인류가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게 한 유리한 습성이다. 인간은 오래 전부터 육식을 해왔고 육식을 통한 영양소를 통해 오늘날의 인간이 되었다.(p.236-7) 인간의 뇌가 지금의 크기로 성장한 것은 고기 덕분에 소화 기관의 크기가 줄어든 결과 남은 에너지를 뇌에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p.238) 인류의 조상이 육식을 했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p.241)
인류가 고대부터 육식을 했다는 주장은 현대에도 육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과거에 식인 문화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부활시키는 근거가 될 수 없듯이, 과거에 어떤 것을 먹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그것을 먹는 것의 타당성과 아무 상관이 없다. 게다가 현대 인류는 생존 조건에서 고대 인류와 비교 불가능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인류 진보의 과정에서 여러 문화가 폐기되었듯이, 육식 문화도 이롭지 않다고 판단되면 폐기될 수 있는 것이다. 혹시 아는가? 인간 정신이 진보하고 기술이 발전해서 인류가 살생 자체를 야기하지 않는 음식으로 살게 될 날이 오게 될지? 나는 이 책에서 저자가 채식 때문에 앓게 되었다는 병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술했으면서도 채식하던 시절 어떤 음식을 먹었는가는 거의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 의아하다. 저자가 어떤 식으로 채식을 했는가에 대해 내가 이 책에서 찾아낸 문장은 물론 다른 것은 전혀 입에 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으니 그렇게 먹은 것은 모두 탄수화물이었고... 고기에 대한 금기가 너무 엄격해, 단백질을 먹고 싶은 감정마저도 거의 동족 살해와 맞먹는 끔찍한 범죄처럼 느껴졌다.(p.288) 뿐이다. 물론 20년 동안 채식 라면만 먹고도 채식을 했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전부 탄수화물로 이루어진 식단이 건강에 좋을 리는 당연히 없다. 탄수화물만 먹는 것이 채식이라고 믿는다면 저자는 한참 착각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황당하면서도 저자가 애처롭게 느껴진 부분이 있다. 채식의 영양학적 문제점을 기술한 후 저자는 이제 기름진 음식을 찾아 나설 때라며 지난 20년 동안 굶주려 온 바로 그 음식을 당장 먹자. 그게 무엇이든 지금 당장(p.335)이라고 외치는데, 생태계를 살리는 음식만 먹겠다는 초반의 비장한 결심은 온데간데 없다. 또한 저자는 자, 이 정도면 뭔가 기름진 음식을 찾아 수렵, 채집에 나설 때가 아닌가?(p.288)라고 말하는데, <잡식동물의 딜레마>의 마이클 폴란처럼 멧돼지 사냥이라도 떠날 기세이다. 저자의 히스테리는 참치를 먹고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고동치고, 마침내 먹을 것이 공급되는 환희를 느꼈다(p.379)에서 절정에 달하는데, 참치는 저자가 이 책에서 먹자고 주장하는 지역 생산물은 아닐 것이다. 나는 저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채식으로 병을 치료하고 올바른 채식에 대한 강연, 저술을 통해 채식을 과학으로 확립시키고 있는 닐 버나드, 존 맥두걸, 콜린 캠벨, 조엘 펄먼, 칼드웰 에셀스틴을 비롯한 의학 전문가에 대한 언급을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의아하다. 건강한 채식주의자와 채식으로 병을 고친 사람들은 저자에게 전부 투명인간일까? 게다가 현대인이 먹는 고기의 지방질에는 수렵, 채집 시대의 고기와 달리 각종 환경 오염 물질이 축적되어 있고 이것이 인체에서 암을 비롯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건 상식인데 이 책에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다. 인스턴트, 정크푸드, 가공식품을 즐겨먹던 사람이 건강이 나빠진 원인을 육식으로 돌릴 수 없듯이, 저자도 채식을 탓하기 전에 자신이 먹는 것에 문제가 없었는지 점검해보았어야 할 것이다. 동물성이든 식물성이든 건강에 해로운 음식은 존재하며, 해로운 식품을 즐겨 먹던 사람이 건강 악화의 원인을 육식이나 채식 전반으로 돌리는 건 온당하지 못하다. 한편, 채식의 영양학적 문제점과 관련해서 이 책의 정보를 신뢰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전문가의 리뷰를 링크한다. 베지닥터 이덕희 경북대 예방의학과 교수의 리뷰: http://vegedoctor.net/vegedoctor/bbs/board.php?bo_table=column5&wr_id=136 채식 영양 전문가 Ginny Messina의 리뷰: 영어로 된 리뷰인데 이 책의 저자는 영양학 자체에 대한 기본 지식이 부족하고, 책에 인용된 정보 역시 신뢰할 수 없는 것이며, 저자가 찬양한 지방에 대한 정보도 오류로 가득하다는 내용이다. http://www.theveganrd.com/2010/09/review-of-the-vegetarian-myth.html 맺음말: 세상을 구하려면
저자는 총체적 난국을 극복하기 위한 개인적인 해결책으로 다음을 제시하고 있다. 1. 가능하면 아이를 낳지 말자. 2. 차를 더 이상 몰지 말자. 3. 자기가 먹을 음식을 직접 기르자. 저자는 채식주의자들이 "광신적 추종 심리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지만(p.425), 한번 더 혹평을 하면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자신이 한때 심취했던 광신적 채식주의를 세상의 모든 채식주의에 투사하여 자기 위안을 도출한 어느 극단주의자의 채식 탈출기이자 사이코드라마이다. 저자는 '카스리말'이라고 하는 성인의 지식을 얻었다고 하지만, 그녀는 채식 근본주의에서 생태 근본주의로 이동했을 뿐 극단적인 사고 방식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에서 저자가 인류의 현실에 대해 제기한 문제는 채식주의자들이 고민하는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수렵, 채집 시대에 대한 갈망이나 채식주의나 결국은 같은 고민에서 탄생한 대안이다. 하지만 이 책에 제시된 세 가지 해결책에 동참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저자의 생각에 통렬하게 동의하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자기가 먹을 음식을 직접 기를 수 없고 여전히 공장식 축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엄존한 현실에서, 이 책이 현재의 문제를 타개하는 것에 또는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것에 채식주의보다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책의 비판에서 멈추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 나는 이 책에 대한 온라인 상의 반응을 검색해 보았다. "뭐든 골고루 먹는 게 좋지," "잘난 척 하더니 고소하다"는 반응들이 보였다. 사람들이 채식주의에 대해 느끼는 장벽의 원인으로 세 가지를 들자면, 첫째는 "고기를 안 먹기는 어렵다," 둘째는 "채식은 건강에 좋지 않다," 셋째는 "채식주의자가 잘난 척하는 게 아니꼽다"일 것이다. 첫 번째 "고기를 안 먹기는 어렵다"라는 장벽과 관련하여, 나는 완벽하기 보다는 최선을 다하는데 집중하자고 말하고 싶다. "채식주의자가 되자"는 말보다는 “육식을 최대한 줄이자"는 말이 훨씬 쉽게 느껴질 것 같다. 채식'주의'라는 용어는 많은 사람들에게 완벽에 대한 강박을 심어주어 중도에 포기하게 만들곤 하는데, 완벽을 기하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것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오래 지속하여 고통과 희생의 총량을 줄이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채식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장벽과 관련하여, 채식은 식단에서 단순히 육식을 제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잘못된 채식으로 건강을 해치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올바른 채식에 대한 연구와 홍보가 꾸준히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나라에 채식을 권장하는 의사들의 모임인 베지닥터가 출범한 것은 매우 환영할 일이다. 이와 함께 채식인 스스로가 빛나는 모범이 되어 채식주의자는 건강하다는 인식을 일반에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세 번째 "채식주의자가 잘난 척하는 게 아니꼽다"는 장벽과 관련하여, 채식인의 당당함과 윤리의식이 잘난 척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채식주의자가 잘난 척한다는 생각을 양산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육식을 야만적이라고 비난하는 일부 채식주의자들의 배려심 부족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말을 노골적으로 들은 적이 몇 번 있지만, 채식주의자들의 의식도 진보해서 점점 듣기 힘들어지는 것 같다. 윤리적인 이유로 채식하면서 주위에 채식을 전하고 싶다면 스스로 자세를 낮춰야 할 것이다. 채식은 윤리적인 실천임에 틀림없지만 남들에게 우월의식과 반감을 느끼게 하는 태도는 채식에 중립적이었던 사람들마저 등돌리게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나 자신이 항상 조심했지만 예전부터 수없이 저질러왔으며, 지금도 고치려고 노력하는 문제이다. 물론 이 글에서 내가 잘난 척한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부디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 드린다. 나 혼자 열 걸음보다는 다 함께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옆 사람의 손을 잡아준다면, 그리고 이러한 노력을 초석 삼아 후대가 이어간다면 언젠가는 인간과 동물 모두 잘 사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20년을 비건으로 살다가 채식을 버렸다기에 뭔가 가치 있는 내용이 등장하리라 기대했다.
채식의 영양학적 문제라든지, 육식을 꼭 멀리할 필요는 없다든지... 뭐 그런 이야기가 합리적인 근거와 함께 등장하기를...
그런데 이건 뭐... 라 할 말이 없다.
저자가 채식을 버린 이유는 2가지.
하나는 곡물을 재배하는 것이 지구환경을 망치고 있으며, 생태계를 파괴하기 때문이라는 것.
둘째는 채식이 영양학적으로 매우 불균형적이기 때문에 몸을 망친다는 것.
첫번째 이유는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하다. 그러나 곡물을 재배하지 않고 동물을 길러 먹는 것은 생태계를 더더욱 망치는 일이므로, 무엇을 먹고 살라는 것인지 책을 읽는 내내 궁금하게 만들었다. 결국 끝에 답이 나오긴 한다.
두번째 이유는 영양학에 대해 이야기 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은 자의 한쪽으로 치우친 시선이 데이터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옳다 그르다라는 판단을 내릴 수조차 없고 과학적 가치가 없다.
스스로 행한 연구도 아니고, 통계 데이터의 필요한 부분만 가져와서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채식위주의 식사는 문제인데, 육식위주의 식사는 문제될 게 없다느니... 지금까지 육식의 문제를 지적한 연구들은 조사를 잘못했고, 데이터를 조작했다느니... 정말...
결국 저자의 결론은 곡물을 먹지 말고, 과일도 재배해 먹지 말고, 동물도 대량으로 사육해서 먹지 말고, 자기가 먹을 만큼 동물을 뒷뜰에 키워 잡아먹거나 그 동물의 젖을 먹고 살라는 것이다. 실제로 자기가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한다. 지가 키운 짐승 잡아먹고 그 짐승의 새끼들이 먹을 젖을 빼앗아 먹으면서...
인간이 지구를 망치고 있으므로 아이를 낳지 말라고 주장하며, 피임과 낙태를 적극 권장하라고 말한다.
정말 어이가 없다.
차라리 지구를 위해 다 같이 굶어죽자고 하지... 이게 뭐하자는 건지...
나는 기독교원리주의자도 채식주의자도 아니다.
그래도 이 책은 좀 너무 아니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책 표지에 아마존 별점이 양 극단으로 갈린 논쟁작이라고 쓰여 있는데,
다분히 이 책을 주목받는 논쟁작으로 만들어서 많이 팔아보고 싶다는 욕구를 느낄 수 있는 문구였다.
마케팅 포인트를 그렇게 잡은 건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싶다.
돈과 시간과 읽는 노력을 들인 것이 이렇게 아깝기는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