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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에세이 top2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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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4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382g | 140*220*16mm
ISBN13 9791186372753
ISBN10 118637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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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MD 한마디

예순여섯의 노작가에게 어느 날 문득 찾아온 고양이 노라와 쿠루.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고양이와 함께 보낸 계절과 마음속 간직했던 소중한 추억을 꺼내 놓는다. 노작가의 따뜻한 글과 김효은 작가의 사랑스러운 그림이 그 마음을 오래오래 담아두게 한다. - 에세이 MD 김태희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노라가 방석 위에 누우면 아내가 보자기 천을 가져가 이불처럼 덮은 다음 얼굴만 내어놓고 폭 감싸준다. 노라는 그 자세 그대로 잠이 드는데, 방석과 이불 사이에 끼어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게 퍽 우스꽝스럽다. 내가 욕실 수건에 손을 닦으려고 문을 열면 잠든 노라가 반쯤 실눈을 뜨고는 잠에 취한 목소리로 야옹, 하고 내게 인사한다.
--- p.33

어느 제약회사에 보내준 신경안정제 견본품을 먹고 잠을 청해볼까 싶다가도, 그 약이 잘 들어 깊이 잠들면 노라가 돌아와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할까 싶어 망설여진다.
--- p.43

욕조 덮개 위에는 노라가 자던 방석과 덮는 이불로 쓰던 보자기가 그대로 있다. 그 위에 이마를 대고 거기 없는 노라를 부르기 시작하면 노라야, 노라야, 노라야, 하고 멈출 수가 없다. 이제 그만하자고 생각하면서도 또 부르고 싶어져서 이마를 방석에 대고 노라야, 노라야, 부른다. 멈춰야 함을 알지만, 거기 없는 노라가 사랑스러워 멈출 수가 없다.
--- p.49

노라는 얼굴이 아주 귀여워서 사진으로 찍어둘까 생각한 적이 있다. 이렇게 사라질 줄 알았더라면 사진이라도 찍어둘 것을. 하지만 사진 따위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 p.57

40일 가까이 바람소리, 빗소리 들으면서 노라만 기다리는데 어째서 돌아오지를 않나. 이건 단순히 고양이 한 마리에 관한 일이 아니다. 노라가 있던 예전 그 집의 나날들을 되찾고 싶다. 참으려고 애를 써도 눈물은 멈추질 않고.
--- p.77

노라야, 너는 3월 27일 낮에 속새 수풀을 지나 어디로 가버린 게냐. 그 후론 바람소리만 나도 낙숫물이 떨어지기만 해도 네가 돌아왔나 싶고, 오늘은 돌아올까, 이제는 돌아올까 기다리는데, 노라야, 노라야, 넌 이제 정말 돌아오지 않는 게냐.
--- p.83

자다가 일어나 앉아선 아주 사소한 일로 노라를 떠올리곤 눈물을 흘렸다. 오늘처럼 날씨 좋은 날엔 어디 담장 위에서 꾸벅꾸벅 낮잠을 자고 있지 않을까. 고양이는 꿈도 꾸지 않을 테니 내 걱정도 전해지지 않으리라.
--- p.91

고양이의 가장 사랑스러운 부분은 바로 귀다. 내 쪽을 향해 쫑긋 서 있을 때도 반대쪽을 보며 세모난 뒷모습을 보일 때도 늘 아주 천연덕스럽고 당당한데, 그 조그마한 귀를 한쪽씩 움직이면 그럴 때 가장 고양이답다.
--- p.142

노라의 3월 27일이 가까워지니 밤낮으로 눈시울이 뜨겁다. 정원의 가을벚나무 가지에 핀 연보랏빛 꽃 두어 송이를 보려고 해도, 그 아래서 노라가 뛰놀던 모습을 떠올리면 꽃잎이 흐릿해져 보이질 않는다.
--- p.161

나는 자고 일어나 이부자리를 떠날 때 꼭 쿠루에게 말을 건다. 잠든 쿠루의 이마에 내 이마를 대고 팔로 쿠루의 몸을 감싸 안고서. 쿠루에게선 쿠루의 냄새가 난다.
“쿠루야, 너니?”
목 깊숙한 곳에서 “응, 응.” 하는 듯한 소리를 낸다. 잠결에 대답하려는 것이리라.
--- p.207

쿠루는 5년 몇 개월, 정확히는 5년하고 석 달 동안 완벽히 우리 사이에 녹아들었고 우리는 차츰 쿠루를 귀여워하게 되었다. 쿠루는 집에 돌아오지 못하게 된 노라의 말을 전하러 온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었다. 어디 풀숲이나 담 그늘에서 노라가 쿠루에게 우리 집에 가서 이렇게 좀 전해줘, 하고 말한 게 틀림없다.
--- p.230

딱 하나 위안거리가 있다면 실종된 노라와는 달리 해주고 싶은 일은 다 해주었다. 쿠루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면, 그게 뭐든 다 하게 했다.
--- p.233

동트기 전 불현듯 잠에서 깼다. 옆 이부자리에서 아내가 운다. 휴지를 눈에 대고 하염없이 운다. 서로 쿠루 이야기는 잘 꺼내지 않지만, 죽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침, 아내가 아침이 되면 너무 괴롭다고 한마디 하고는 울었던 적이 있다.
--- p.237

밤중뿐만 아니라 낮에도 와서 올라온다. 얼마 전 책상 앞에서 밤을 새우고 날이 밝은 후에 지쳐서 누웠더니 순식간에 꾸벅꾸벅 잠에 빠졌다. 그때 아직 완전히 잠들지 않은 내 발 위로 쿠루가 곧장 올라왔다.
‘할아버지, 일 끝났어? 고생 많았어.’
쿠루가 그 말을 하러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발 위에 쿠루를 올려둔 채로 기분 좋게 잠들었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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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제일가는 문장가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우치다 햣켄이다. 햣켄의 명작을 뭐든 한 편 꺼내들고 “예술품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젊은 사람들에게 들이밀고 싶을 정도다.
- 미시마 유키오 (소설가)
우치다 햣켄 씨는 나쓰메 선생님의 문하로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선배다. 문장이 탁월하고 고토(琴)에도 조예가 깊다. 우치다 햣켄 씨의 작품은 소탈하고 서민적이지만 그 몽환적 특색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단순히 우정 때문만이 아니라, 나는 진심으로 우치다 햣켄 씨가 시적 천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소설가)
햣켄처럼 쓸 수 있을지 없을지는 둘째 치고, 우선 나아가야 할 방향이 뚜렷해졌다. 그때부터 내 글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고, 비로소 스스로 만족스러운 소설을 쓸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지금도 글을 쓰다 헤맬 땐 우치다 햣켄을 읽어본다.
- 모리미 토미히코 (소설가)
내 주변에 남은 메이지 시대가 차츰 저물어 사라져간다. 쓸쓸하다. 하지만 내겐 우치다 햣켄이 있다. 사실 나는 우치다 햣켄을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나 하나뿐이기를 바란다.
- 사노 요코 (동화작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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