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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의 교환

: 몽골 제국과 세계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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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0년 06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444쪽 | 624g | 147*225*30mm
ISBN13 9791160946680
ISBN10 116094668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몽골 제국의 등장은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몽골족은 정복을 통해 수많은 제국들과 왕국들을 휩쓸어버렸고, 역사상 가장 큰 단일 제국을 만들었다. 그들은 전근대 세계에서 가장 파괴적인 세력이었지만, 그들이 이룬 ‘팍스 몽골리카’는 상인과 선교사들이 유라시아를 가로질러 교류하게 했고 광대한 영토 안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삶이 안정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 책은 몽골의 정복이 세계의 변화를 위한 촉매였음을 교역, 전쟁, 행정, 종교, 전염병, 인구 변화, 문화 교류 등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한다. 그리고 이런 거대한 변화를 ‘칭기스의 교환’이라고 일컫는다. 이는 역사학자 앨프리드 크로스비가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신대륙과 구대륙에 일어난 급격한 사회 변동을 지칭한 ‘콜럼버스의 교환’이라는 용어를 변형한 것이다. 제국이 분열하고 그 힘이 쇠퇴했을 때조차도 몽골의 영향력은 지속되었다. 칭기스 칸의 성취가 이끈 변화로 콜럼버스는 칸의 땅으로 향하는 항해에 나섰고, 중국은 300년 만에 통일을 맞이했다.

몽골 제국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티모시 메이는 제국의 형성과 분열, 그 후의 변화를 포괄적으로 검토하며 몽골 제국의 유산에 대한 장기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몽골 제국 이후 세계는 완전히 달라졌으며, 이전보다 상호 연관성이 훨씬 더 커졌다.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가 시작된 것이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서론
역사 연구와 문제들 |이론적 관심사

1부 촉매가 된 몽골의 정복

1장 몽골 제국의 형성
칭기스 칸의 성장 |제국의 확장 |우구데이 |구육과 섭정들 |뭉케

2장 제국의 분열
대칸의 제국 |일 칸국 |차가다이 칸국 |주치 칸국

3장 1350년의 세계: 글로벌 세계
계승자들, 그리고 세계는 어떻게 변화했는가||오래 지속된 몽골의 영향력 |몽골의 이미지

2부 칭기스의 교환

4장 팍스 몽골리카와 교역
칭기스 칸과 초기의 접촉 |우구데이와 카라코룸 |오르탁, 공위와 복위 |분열 이후

5장 새로운 전쟁 방식
십자군과 중동에 끼친 영향 |델리와 인도 |동유럽 |동아시아와 화약 |현대의 전쟁

6장 몽골의 행정
몽골 행정의 구조 |세금 징수 |칭기스의 교환에서 몽골의 행정

7장 종교와 몽골 제국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결론

8장 몽골족과 흑사병
카파와 흑사병 |세계에 끼친 영향 |몽골 제국에 끼친 영향

9장 이주와 인구의 추세
몽골리아 |장인, 기술자와 예능인 |중국과 식민 |투르크화

10장 문화 교류
사상 |예술 |음식 |물품 |결론

미주
용어 해설
왕조의 계보
참고문헌
감사의 말
옮긴이 후기
색인

저자 소개 (2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테무진, 전쟁의 방식을 바꾸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몽골의 전쟁 방식이 변화하기 시작했음을 보게 된다. 공격을 감행하기 전에 테무진은 놀랄 만한 명령을 내렸다. 자신이 명령을 내릴 때까지는 아무도 약탈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유목민 군대는 적진에 다다르면 약탈을 감행하여 획득한 것들을 말에 싣기 바빴다. 침입과 공격의 주요 목적은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부를 축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테무진은 전쟁을 감행하는 새로운 이유를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부족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는 전리품에 빠져들기 전에 적에 대한 완벽한 승리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현대의 관찰자들이 상식으로 여기는 지혜를 깨달았던 것이다.
--- p.45~46

세계 정복이라는 개념
몽골이 세계를 정복할 것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한 때는 우구데이의 통치 시기였다. 세계 정복이라는 개념이 칭기스 칸 시기부터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지만, 사실 칭기스 칸의 행동은 세계 정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칭기스 칸의 목표는 정주 문화를 지배하는 것보다는 외부의 위협에서 몽골리아를 보호하려는 에 가깝기 때문이다. 정주지대를 습격하고 조공을 강요하는 것은 몽골리아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이익이었다. 그러나 우구데이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정복이라는 개념을 강화하여 칭기스 칸과 그의 후계자들이 세계를 정복하는 것은 하늘이 정한 운명이라는 믿음을 북돋았다.
--- p.67~68

정주 세계의 황제이자 유목 세계의 칸이었던 쿠빌라이
쿠빌라이는 스스로를 중국 황제라고 가정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았지만, 결코 중국어를 배우지 않았다. 그에도 불구하고 쿠빌라이는 두 세계(유목민 세계와 정주민 세계) 모두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식 왕조 이름인 원元과 책력冊曆을 받아들였다. (중략) 황제 쿠빌라이는 자신의 정체성에 중국적 요소를 다 포용하지는 않았다. 중국식 관료제를 어느 정도 유지했지만, 몽골의 행정은 대체로 비한족(몽골족, 위구르족, 페르시아인, 중앙아시아인 등)이 담당했다. 중국 관료들은 쿠빌라이를 유교에서 이상적이라 말하는 현명한 군주의 모습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맡은 역할을 수행했지만, 제국의 실질적인 운영은 몽골식 행정으로 이루어졌다. 쿠빌라이는 선조들을 기리기 위한 사당과 공자를 추도하기 위한 사당을 둘 다 만들어서 이러한 이미지를 뒷받침했고, 학자들에게 이전 왕조들(금과 송)의 역사를 집필하게 하는 관행을 그대로 따랐다.
--- p.85~87

‘이란’이라는 개념의 부활
일 칸국의 소멸이 낳은 많고 다양한 계승자들은 일 칸국의 여러 측면을 받아들였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해 보이는 것은 이란Iran이라는 개념이 부활했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페르시아 문화는 일 칸의 후원 아래에서 번성했다. 페르시아 문화를 즐기고, 제국의 분열 이후 격렬한 전쟁으로 국경이 강화되면서 ‘이란’이라는 명확한 개념이 등장했다. 일 칸국이 이란보다 더 거대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이란이라는 개념이 일 칸국 시기에 굳어졌을 뿐 아니라 일 칸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계승자들이 권력을 확립하고 유지하는 데 몽골의 혈통, 정치적 개념, 상징, 관습들이 여전히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일 칸국의 수도 타브리즈Tabriz는 정통성의 공간으로 남았다.
--- p.121

우구데이의 상업 진흥 정책
우구데이는 재위 기간 동안 금괴와 은괴부터 직물에 이르는 사치품을 저장하기 위한 창고는 물론이고, 세금으로 거둔 곡물을 저장하기 위한 곡물창고도 설립했다. (중략) 유목사회는 물품을 취득하더라도 항상 주변으로 이동시켜야 했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쳐 많은 양을 모으거나 보관한 적이 별로 없었다. 우구데이는 몽골의 궁정으로 모여드는 물품의 양을 관리 및 체계화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를 관할할 정부 부처를 새로 만들었다. (중략) 우구데이가 창설한 또 다른 제도는 바로 얌yam, 즉 역참 체계였다. 칭기스 칸이 이미 초보적인 형태를 만들었던 것 같지만, 우구데이는 이를 확대해서 제국의 다른 부분들과 연결시켰을 뿐만 아니라 역참의 효율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도 만들었다. (중략) 마지막으로 그는 주요 도로를 일상적으로 왕래하는 순찰대를 확대했다. 이들은 교역로의 안전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어떤 물품이 상단을 통해 오고 있는지를 칸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중략) 그의 과도한 소비는 카라코룸에 국제 교역을 가져왔다. 가져가는 물건이 무엇이든 운송비를 결제한 이후 그 가치의 2배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떤 상인이 카라코룸으로 가는 모험을 마다하겠는가?
--- p.171~175

무기의 변화, 휘어진 칼의 확산
몽골은 또한 무기의 실제 선택과 전술의 운용이라는 측면에서 중동의 전쟁을 바꾸어놓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휘어진 칼이 널리 퍼져 나간 것이다. 이런 일은 다른 곳에서도 나타났지만, 휘어진 칼이 중동 전역과 전 세계의 기병대에서 선호하는 무기가 된 것은 몽골의 성공 덕분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13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해 16세기가 되면 휘어진 칼을 도처에서 볼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휘어진 칼이 투르크족의 도래와 함께 동 에서 전해져왔어도 다른 집단들은 직선으로 뻗은 형태의 검을 여전히 선호했다. 그러나 몽골족이 도착하고 수 세기가 지난 뒤에는 이것이 기마 전사들을 위한 거의 유일한 무기가 되었다. 휘어진 칼은 말을 탄 채로 행하는 공격을 완벽하게 만들었다. 기마병이 말을 탄 상태에서 적을 베고 뒤이은 행동까지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직선 형태의 검은 적을 베는 공격에서는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고, 오히려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공격에 더 적합했다. 휘어진 칼로는 적을 내리치면서 계속 말을 탈 수 있었지만, 직선 형태의 검은 목표물에 꽂혀버리거나 공격자에게 충격을 주어 균형을 잃거나 무기를 놓치게 했다.
--- p.205~206

현대의 전쟁에 미친 몽골의 영향
탱크와 항공기의 출현은 빠르게 이동해서 깊숙이 쳐들어가는 몽골의 전쟁 방식을 재현할 수 있는 기동성을 만들어냈다. 영국 장교 리델 하트B. H. Liddell Hart는 탱크와 기계화 보병을 결합한 대형을 개념화하여 주력 부대보다 앞서 독립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했다. 이처럼 기동성 있는 타격대는 적의 통신과 보급선을 차단하여 적군을 무력화했다. 몽골에 대하여 그랬던 것처럼 적들은 단지 대응만 할 수 있을 뿐 공격적인 조치는 취할 수 없었다. (중략) 소비에트의 종심전투 방식은 군대를 집결시키는 적의 역량을 훼손하여 적들이 대응만 하고 공격적인 행동은 취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몽골의 목표를 공유한 것이다. (중략) 안토니아가 레인저부대에 있는 동안 그레인지 대령은 “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 아래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용기, 인내심, 의지, 능력 그리고 연대 안의 모든 지휘관들의 잠재력을 시험하기 위해 고안한 것으로, 지휘관들은 이 프로그램의 통과 여부로 평가했다. 그는 (칭기스) 칸의 지휘를 받는 대부분의 엘리트 전사들이 전투 준비를 위해 견뎌야 했던 혹독한 훈련을 프로그램의 모범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것을 ‘망고다이Mangoday’라고 불렀다.
--- p.225~231

몽골 행정의 원천, 케식
중앙 행정의 궁극적인 원천은 케식keshik(칸의 친위대와 집안의 하인들)으로부터 나왔다. 이는 전근대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으로, 군사 지도자의 동료들이 행정 관청의 수장이 되는 것이었다. (중략) 케식의 구성원 대부분은 전투가 치러지는 동안 대체로 칸의 진영과 가족을 지켰다. (중략) 군 지휘관들과 복속한 지배자들은 자신의 아들과 아우를 케식에 복무하도록 파견했는데, 이렇게 되면 칸이 그들의 목숨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인질이 되는 것이었다. 동시에 칸은 이 사람들을 알고 그들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만약 어떤 지도자가 칸의 바람을 따르지 않으면, 칸은 그를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대신 자신과 개인적인 유대를 형성하며 케식에서 훈련받은 친인척을 왕좌에 올릴 수 있었다. (중략) 칭기스의 교환이라는 맥락에서 이 제도는 몽골 이후의 세계에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칭기스 가문의 제왕들이 유라시아로 퍼져 나갈 때 칭기스 혈통의 권위와 칭기스 가문만이 칸의 칭호를 사용할 수 있다는 개념을 유지해주었다.

몽골의 종교적 관용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합리적 질문은 몽골은 왜 제국이 분열되고 나서야 세계 종교로 개종했는가이다. 그리고 왜 불교와 이슬람교였는가? (중략) 첫째, 그들은 하늘로부터 세계를 정복하라는 명을 받았다고 믿었다. 텡게리즘의 개념은 강력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의 신, 무슬림의 알라, 하늘 혹은 신성한 영혼 등 다른 모든 개념은 텡게리로 교묘하게 흡수될 수 있었다. 이것이 두 번째 논점으로 이어진다. 그들은 같은 신을 숭배했기 때문에 종교적 이유로 누군가를 박해할 이유가 없었다. 종교적 관용이 드물었던 시기에 몽골이 모든 종교에 놀라울 정도로 관용적이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중략) 셋째, 이슬람교와 기독교로는 굳이 개종을 할 이유가 없었다. 몽골 군대는 자신들에게 적대하는 모든 것을 파괴했다. 이러한 종교들이 전략적인 이점을 제공해줄 것 같지도 않았다. 몽골은 이 종교들을 박해하지 않았지만, 한 명의 신만 숭배해야 한다는 설명은 몽골을 개종으로 이끌기에 전혀 설득력 있는 논의가 아니었다. (중략) 몽골은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그들은 몽골의 정체성이 종교적 정체성에 흡수되어 버린 기독교도, 무슬림, 불교도가 아니라 무슬림 혹은 불교도(혹은 더욱 초기의 경우에는 기독교도)로 변한 몽골족이 되었다.
--- p.289~295

사상의 이동
일 칸국과 원 제국 사이가 연결되면서 학문적 교류가 빈번하게(혹은 적어도 기록상으로는 더 잘 드러나게) 이루어졌다. 실질적으로 모든 학문 분야가 당시 몽골의 후원 아래 소집되는 국제 토론회의 혜택을 입었다. (중략) 『집사』는 방법론 및 자료와 정보 제공자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중략) 라시드 앗 딘의 저작은 가잔 칸을 위해 집필되었기 때문에 당시의 몽골족과 정부에게 중요한 사항을 선별해서 반영한 반면, 『원사』는 중국의 전통적 역사 서술 방식에 따라 명 제국에서 편찬한 것이다. 『원사』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지만, 이는 다른 왕조의 시각으로 한 번 걸러진 것이고 몽골족의 관심보다는 중국인의 취향에 맞춰서 쓰였다. 그런데 몽골족도 『송사』와 『금사』를 편찬할 때는 중국의 역사 서술 방식을 따랐고, 라시드 앗 딘의 저작에 인용된 다른 역사적 자료들에도 접근했다. 『집사』의 역사 서술에 대한 토머스 올슨의 선구적 연구는 원 제국과 일 칸국이 정보를 공유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원천 자료는 물론이고 역사 편찬 조직과 방법론도 공유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인터넷이 애초에 의도한 것, 즉 학자들과 정부 기구 사이의 정보 공유를 실행에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 p.345~348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몽골의 정복 이후 세계는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미국의 역사학자 앨프리드 크로스비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상륙하면서 신대륙과 구대륙의 동물, 식물, 사상, 문화, 기술, 병원균 등이 상호 전파되어 급격한 사회 변화를 초래한 것을 ‘콜럼버스의 교환Columbian Exchange’이라고 표현했다. 이 책의 저자 티모시 메이는 이를 차용해 몽골의 정복이 세계사에 초래한 획기적인 전환을 ‘칭기스의 교환Chinggis Exchange’이라고 부른다. 몽골은 동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는, 흑해 초원과 러시아에서 인도 및 중동에 이르는 역사상 가장 큰 단일 제국을 형성하여 군사 분야의 혁신, 국제 무역, 세계 종교의 확산, 기술과 사상의 전파, 전염병의 창궐과 같은 전 세계적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흔히 칭기스 칸과 몽골의 세계 정복은 무자비한 파괴와 살육, 역사의 퇴행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상 근대 세계를 열어젖힌 모든 변화는 유라시아의 양극단을 연결한 몽골의 성취에서 비롯했다. 세계사의 핵심적인 분기점으로 여겨지는 ‘콜럼버스의 교환’조차도 ‘칭기스의 교환’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학문 연구에서 ‘위대한 인물’이라는 개념을 고려하는 것은 최근의 경향과 거리가 있지만, 진정으로 위대한 남성 혹은 여성이 때때로 나타나 세계를 극적으로 변화시키거나 최소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길로 역사를 이끌 수 있다는 생각을 우리는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중략) 물론 칭기스 칸이 이 모든 것을 계획했다는 식으로 곡해해서는 절대 안 된다. 실제로 나는 칭기스 칸이 제국을 원했다는 점조차도 확신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가 몽골리아를 통치하는 일에 꽤 만족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의 성취는 다른 사람들을 자극했고, 군대에 시동이 걸리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중략) 칭기스 칸이 사망한 후 수십 년, 심지어 수 세기가 지난 뒤에도 그의 그림자는 예전의 제국과 그 너머에 드리우고 있었다. 만약에 세계를 몽골 제국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본다면, 그 사이에 세계가 매우 달라졌으며 상호 연관성이 훨씬 더 커졌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_p.28~29)

저자는 역사 서술에서 한 사람의 역할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일의 위험성을 경계하면서도 이 거대한 변화의 시작이 칭기스 칸의 정복 전쟁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런 관점에서 1부에서는 몽골 초원의 미약한 세력이었던 보르지긴 몽골족이 칭기스 칸이라는 지도자를 만나 유라시아 세계를 통합하기까지의 과정과 칭기스 칸 사망 이후 후계자들에 의해 제국이 원 제국, 일 칸국, 차가다이 칸국, 주치 칸국이라는 4개의 영역으로 분리되고 이후 더 많은 계승 국가들로 분열되는 양상을 압축적으로 서술한다. 4개의 칸국은 각 지역의 환경과 조건에 기반하여 발전하는 가운데서도 몽골 제국의 유산이라는 공통분모를 느슨하게 유지했다. 몽골이 남긴 상징과 통치 구조를 활용해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했고, 몽골이 닦아놓은 안전한 교역로를 통해 사람과 물자, 종교와 사상, 기술과 문화를 이동시켰다. 이 통합된 세계에 대한 경험은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완전히 다른 삶의 조건을 마련했다. 먹는 음식, 입는 옷, 믿는 신은 물론 삶의 반경과 타자에 대한 인식도 확연히 달라졌다. “먼지가 가라앉은 이후 세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화했고, 결코 예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었다.”(_p.5)

1350년을 전후하여 4개의 칸국이 약화되고 더 작은 정치체들로 분열하는 과정에서도 몽골 제국의 유산은 면면히 이어졌다. 몽골의 정체성을 계승하든 부정하든 어떤 세력도 몽골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심지어 20세기 이후에도 러시아, 몽골, 중국, 일본 등이 뒤얽힌 국제 정치에서 칭기스 칸의 소유권을 둘러싼 반목과 갈등이 거듭되었고, 서구에서는 대중문화의 소재로, 몽골과 중국, 중앙아시아의 신생 독립국들에서는 민족 정체성의 상징으로 칭기스 칸을 끝없이 호출하고 있다. 12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유라시아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에서 벌어진 지구적 차원의 역사를 단 하나의 키워드로 정리한다면, 그 자리에는 아마 칭기스 칸이 놓일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2부 칭기스의 교환’에서는 그것이 단지 수사적 차원의 표현이 아니라 교역, 전쟁, 행정, 종교, 질병, 이주와 인구 변화, 문화 등 인류 삶의 모든 영역에 속속들이 영향을 미친 진정한 전환점이었음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언택트 시대에 읽는 최초의 연결된 세계사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전 세계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일이 동시에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문제이기도 한 ‘글로벌 세계’에 대한 감각이 새삼 두드러지는 가운데, 그 모든 연결을 중단해야 하는 ‘언택트untact’라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중이다. 강도 높은 언택트가 요구되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가 서로에게 깊숙하게 연결된 콘택트contact의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이다. 개인 단위에서뿐만 아니라 지역과 국가 단위에서도 우리는 불가분의 관계로 엮인 하나의 세계를 이룬 채 살아왔다. 이 책은 세계가 비로소 하나로 연결된 역사를 써 나가기 시작한 그 출발점에 관한 이야기이다.

몽골 제국은 유례없이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그 내부를 촘촘히 이어나갔다. 역참 제도를 통해 교역로의 안전과 편리함을 보장하고, 통행료와 세금을 줄이고, 효율적이고 장기적인 행정 기구를 설치하자 상인뿐만 아니라 선교사, 군인, 기술자, 예능인, 노예와 피난민들이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이동하기 시작했다. 세계는 점점 더 낯선 이들을 만나는 데 익숙해졌고, 서로 다른 것들이 뒤섞이는 풍경을 어색해하지 않게 되었다. 각지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의 삶이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이른바 ‘세계화’의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바로 그 연결성 때문에 흑사병이라는 파괴적인 질병이 순식간에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 전 인류가 삶의 토대가 흔들리는 압도적인 경험을 했다.

몽골 제국이 촉진한 흑사병의 전파와 그 영향을 지금 이 시점에 읽는 일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몽골 초원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흑사병이 몽골 제국이 구축한 교역로를 따라 중동과 유럽에 전해지고, 이후 급격한 인구 감소를 초래해 세계 각지의 경제 구조가 바뀌고, 의학이 발전하고, 교육과 신앙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모습은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가 맞닥뜨린 충격과 변화의 흐름과 상당히 흡사하다.

일부 직업은 이제 여성을 받아들였다. 실제로 14세기 후반과 15세기 중반에 맥주와 에일 생산에서 여성이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장원에서는 작물을 심고 수확하는 데에 노동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임금 노동이 증가했다. (중략) 교육에도 변화가 생겼다. (중략) 일부 대학들은 단지 학생 수 부족으로 문을 닫았다. 다른 한편 흑사병 이후 부유한 후원자들이 지역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 새로운 대학을 건립했다. 학생들은 주로 해당 지역 출신이었기 때문에 국제 통용어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라틴어보다는 지방 언어 사용이 크게 늘었다. (중략) 교회는 죽은 성직자를 대체할 새로운 목사들을 임명해야 했다. 너무 급하게 목사들을 대체하다 보니 때때로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목사들이 생겨났고, 라틴어나 올바른 예식을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예배에서 지방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이단의 견해도 증가했다. (중략) 이 기간에 르네상스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의 뿌리가 일부 형성되었던 것이다. (_p.303~307)

흑사병으로 인해 유라시아 대륙 전체가 초토화되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달라진 삶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 위에서 다시 끊어진 길을 이어나갔다. 몽골 제국이 건설한 하나의 연결된 세계가 낱낱이 황폐화된 이후 재건되는 과정은 언택트 시대 이후를 상상하기 어려운 우리에게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군사 기술부터 상업, 행정, 종교, 문화에 이르기까지
몽골 제국사의 전 영역을 아우르는 통합적 서술


이 책의 저자 티모시 메이는 몽골 제국사 연구의 고전이자 표준으로 여겨지는 『몽골족의 역사The Mongols』를 쓴 데이비드 모건의 제자로, 몽골의 초기 군사 전략과 전술을 분석하여 제국의 급속한 팽창 과정을 밝힌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몽골의 전쟁 기술을 비롯하여 문화와 풍습을 다룬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하고, 몽골 제국사 사전의 책임 편집자로 활약하면서 몽골 제국사의 전 영역을 아우르는 세계적인 연구자로 성장했다. 이 책에서 그는 전쟁사 전문가로서 자신의 장기를 발휘해 제국의 확장을 가능케 한 몽골족 특유의 전술과 전략, 무기의 발전과 전파, 여러 전투의 경과를 상세히 서술하고 그 유산이 현대의 전쟁에까지 미친 영향을 구체적 사례를 들어 언급한다. 나아가 몽골 제국이 성립 초기부터 분열 이후 계승 국가 시대에 이르기까지 세계화의 촉매로서 했던 역할을 분야별로 풍부하게 제시한다. 대부분의 중앙유라시아사 연구자들이 언어의 한계 때문에 특정 지역에 국한된 연구에 그치는 데 반해 저자는 모든 지역과 영역에 걸친 변화를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통합적 서술을 시도했다.

올슨의 연구는 중국과 페르시아의 정치적, 문화적 교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중앙아시아, 러시아, 흑해 초원 일대의 몽골 제국에 관한 분석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었다. 이 작업을 시도한 학자가 바로 티모시 메이이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중략) 저자는 한문과 페르시아어 이외에도 수많은 언어로 기록되어 있는 자료들과 기존의 연구 성과를 두루 참고하여 몽골 제국의 영향이 유라시아 세계 곳곳에 일으킨 변화를 생생하게 서술했다. 그의 폭넓은 묘사를 통해 우리는 13~14세기의 몽골 제국이 단지 잔인한 침략자였던 것이 아니라 ‘세계제국’의 건설자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략) 이 책은 몽골 제국과 세계사의 긴밀한 연관을 분석할 수 있는 서술의 틀을 제공하고, 다양한 주제를 제시하여 세계 학계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_p.433~434, 「옮긴이 후기」 중에서)

그동안 몽골 제국의 역사를 ‘세계사’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저작이 제법 소개되긴 했지만, 대부분은 중앙아시아사, 유목 제국의 역사, 동서 문명 교류사라는 큰 틀에서 쓴 책이거나 인류학이나 지리학, 종교학, 예술사 등 인접 학문에서 나온 성과물이었다. 이 책은 전공자가 쓴 본격 몽골 제국사로 몽골 제국과 관련하여 논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주제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몽골 제국사에 진입하고자 하는 일반 독자는 물론 이 분야에서 좀 더 다양한 주제를 개발하고 더 나은 분석 틀을 얻고자 하는 연구자들도 유용한 통로 하나를 얻게 될 것이다.

회원리뷰 (12건) 리뷰 총점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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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의 교환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바**별 | 2021.01.29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어려운 책일거라는 기대에 신선한 내용, 전문적 내용, 학술적 내용이 많지 않을까 하여 내심 서평으로 부담스러웠던 책이다. 몽골 세계제국이라는 과거의 영광과는 별개로 지금은 다소 역사 등과 연관된 것이 아니라면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로 치부하고 마는 요즘의 몽골이다. 그렇지만 역사분야 관심에 더해 오늘날 이미 회자되는 세계화, (몽골 이전의 세상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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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책일거라는 기대에 신선한 내용, 전문적 내용, 학술적 내용이 많지 않을까 하여 내심 서평으로 부담스러웠던 책이다. 몽골 세계제국이라는 과거의 영광과는 별개로 지금은 다소 역사 등과 연관된 것이 아니라면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로 치부하고 마는 요즘의 몽골이다. 그렇지만 역사분야 관심에 더해 오늘날 이미 회자되는 세계화, (몽골 이전의 세상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규모와 결합의 세계적) 네트워크에 대해 깊게 들어가보면 몽골의 침략과 정복에 기인한 세계화와 네트워크는 몽골제국이 세계사에서 등장과 그 역할과 비중은 절대 빼놓고 설명될 수는 없다.

 

이러한 전제와 부연한 설명으로 많은 이 분야의 역사학자들은 몽골의 역사를 논하기 시작하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곤 한다. 앞서 얘기했듯 <칭기스의 교환>은 크게 무겁지는 않지만 학술서 양식도 갖춘 책이기 때문에 책의 내용이 본격 시작되기에 앞서 저자 티모시 메이 교수는 책 서두에서 말한다. 책이 출간될 시점에 몽골제국과 세계화의 영향과 그것의 세계사적 의의라는 이 분야의 현재 일정 이루어진 연구의 학문적 성과와 앞으로 더 활발히 연구가 요구되는 주제와 분야 등을 종합적으로 언급하며 독자를 책 속으로 안내한다.

 

보통 이런 학술서 또는 전문적 연구서는 이 분야를 전공했거나 오랜 기간 해당 분야에 견문을 넓혀온 그런 독자가 아니라면 이런 책을 어떻게 접근할지 내지는 마땅한 독서방법을 못찾는 경우도 간혹 있다. 본인 또한 그 중 한 명이다.

 

책 초반은 예전에 중학교 때 영화감상부 써클에서 야외학습으로 영화관에서 '칭기즈칸'을 봤던 영상과 기억이 이미지가 되어 많이 떠올랐다. 칭기스 칸(테무진)의 어린 시절은 정말 (주관적 표현이지만) 야생과 고난, 시련의 시간이었다. 흔히 말하는 영웅이 겪는 통과의례, 시련의 연속, 생사를 넘나드는 고난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영웅은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제국을 이룩하는 초석을 놓게 되며, 역사에 길이 남게 된다.

 

책은 1부~3부, 미주, 용어해설, 왕조의 계보, 참고문헌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제든 몽골과 관련한 주제, 예컨대 전쟁사에서 새로운 강력한 전쟁술(방식)의 등장 같은 내용, 전염병 흑사병, 동서양의 문화교류 등 특정 주제를 찾아보기가 쉽도록 내용이 배치, 나열되어 있다. 책 체계가 잘 잡혀있어 재독하기에도 원활한 구성과 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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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첫 세계화의 관점에서 몽골을 바라보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류 | 2020.08.0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칭기스칸은 세계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인물이지만, 우리 한반도의 역사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아시아와 중동을 넘어 동유럽까지 정복한 몽골족에 대한 두려움과 질시의 시선이 칭기스칸과 그의 후손들, 나아가 몽골족 전체에 대한 왜곡을 낳았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최근 몽골제국에 대한 재평가가 유행하기 이전까지는 대체로 부정적인 인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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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칸은 세계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인물이지만, 우리 한반도의 역사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아시아와 중동을 넘어 동유럽까지 정복한 몽골족에 대한 두려움과 질시의 시선이 칭기스칸과 그의 후손들, 나아가 몽골족 전체에 대한 왜곡을 낳았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최근 몽골제국에 대한 재평가가 유행하기 이전까지는 대체로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 아마도 몽골족의 직접적인 침입과 원제국의 부마국으로 전락한 역사에 대한 수치심이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징키스칸과 몽골족에 대한 이미지는 대체로 흉포하고, 미개하며, 때때로 그로테스크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아직도 일부 미디어에서 몽골족을 악의 화신, 미개한 인디언 등으로 묘사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이룩한 정복과 대제국 건설, 문화 교류에 대한 재평가와 긍정적 인식이 이전의 부정적 평가를 넘어서고 있는 듯 하다. 징기스칸과 몽골족에 대한 전통적인 평가가 몽골족의 통일과 유라시아 정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최근에는 제국의 운영 시스템과 동서교류 쪽으로 관심분야가 다양해지고 있다. 이 책도 그러한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몇몇 챕터는 매우 독창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칭기스의 교환(Exchange)'은 '콜럼버스의 교환'에서 차용한 말이다. ('교환'에 내포된 의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우리말로 쓰기엔 한계가 있는 단어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고칠 부분을 하나 고르라면 바로 제목이다.) '콜럼버스의 교환'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우연히 발견함으로써 신대륙과 구대륙간의 정치, 경제, 문화에서 동식물, 자원, 심지어 질병까지 교류가 일어났다는 점을 의미한다. 즉, 칭기스칸과 몽골족의 유라시아 정벌이 콜럼버스의 발견에서 촉발된 신-구대륙의 교류처럼 세계사에 대변화를 일으켰다는 뜻이다.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몽골제국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정복활동을 전개하면서 대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2부는 몽골제국이 세계의 역사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본다. 저자는 칭기스의 교환, 즉 몽골제국이 이룩한 세계화를 증명하기 위해 교역, 전쟁방식, 행정, 종교, 흑사병, 이주와 인구, 문화교류 등 7가지 분야의 변화를 짧지만 인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1부에서 눈길이 가는 부분은 칭기스칸 사후 분열된 4개의 칸국이다. 몽골제국에서 원나라로 이어지는 국지적 역사에만 익숙하기에 일칸국, 차가디이칸국, 주치칸국의 역사는 어려우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특히 몽골제국의 몰락 뒤에도 근대와 현대까지 이어지는 제국의 자취는 한번도 접한 적 없는 내용이 많아서 흥미롭다. 2부는 팍스몽골리카를 이룩한 제국의 강력한 군사력과 거대한 교역망, 그리고 이를 뒷받침했던 실력중심의 글로벌한 인재 선발과 관용정책이 핵심을 이룬다. 흑사병이 초원지대에서 발병하여 유럽으로 전파된 경로를 추적하는 챕터도 흥미롭다.

 

한국인 독자의 입장에서 특별히 관심이 가는 내용도 다수 발견된다. 몽골족의 정복활동이 주로 동쪽에서 시작해서 서쪽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동아시아에 대한 내용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럼에도 고려를 언급한 부분이 적지 않다. 고려가 몽골의 직간접 지배를 받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서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처럼 제국에 흡수되거나 멸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저자가 고려를 길게 언급한 부분을 몇가지 꼽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원의 신유학정책이 고려의 사회와 문화를 변화시키고, 나아가 21세기 한국인의 문화, 윤리, 국가와 사회에 대한 개념 정립의 기초를 제공했다는 주장이다.(p.355~356) 둘째, 원의 침입이 멈추면서 고려에 문화적 르네상스가 일어났는데 대표적 유산으로 삼국유사와 고려대장경을 꼽는다.(p.360~361) 이 부분은 저자의 논증을 이해하기 어렵다. 외세에 대한 저항과 반발로 일어난 문화가 곧 외세의 영향을 받은 것이란 얘기인데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셋째, 고려의 인쇄술과 금속활자가 몽골을 통해 서방으로 전래되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고려의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에 도달하는 경로를 밝히지 않고, 중간에 몽골제국이 있었다는 식이어서 아쉬움이 남는다.(p.369~371) 넷째, 몽골의 패션이 세계적으로 퍼져나갔고, 고려에서도 몽골의 옷과 헤어스타일이 유행했다는 내용이다.(p.372~373) 한복의 뿌리가 몽골 스타일의 코트에서 유래됐다는 점은 흥미롭다. 다만, 문익점의 붓뚜껑 이야기는 한국에서조차 동화로 취급되는 내용이어서 아쉽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쉽지 않다. 등장하는 나라와 민족만 해도 수십을 헤아리고 기간은 근 200년이다.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을 살펴보는 것이 쉬운 일일 리가 없다. 하지만 저자는 생소하고 방대한 지식을 논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책 한권에 그런 내용을 다 함축한 것 만으로도 대단한 작업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몇가지 아쉬움도 있다. 저자의 주장은 자칫 유라시아 대륙 전체가 12세기 이후 몽골의 그림자 속에 갖혀있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흔적과 유산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흔적 몇가지로 역사를 판단할 수는 없다. 고려에 대한 설명 내용 중 몇 가지는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이런 부분은 세계사책에서 흔히 발견되는 국지적인 오류이기도 하지만 또 조금씩이라도 바로잡아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번역이다. 책의 내용도 어렵지만 일부 번역도 독서를 어렵게 했다. 개선되기를 바란다.     

 

서점에 가면 칭기스칸과 몽골에 대한 역사책, 위인전이 적지 않다. 대다수가 인물과 정복활동에 초점을 맞춘 지엽적인 책들이다. 이런 책들로는 몽골제국이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칭기스의 교환'은 제국이 이룩한 인류 역사상 첫 세계화의 관점에서 몽골을 바라본다. 독서를 마치니 초원을 달리는 기마병의 몽골이 아닌 유라시아 대륙 곳곳을 누빈 교역인, 문화 전파자의 몽골이 눈에 들어온다. 순서만으로 본다면 칭기스칸과 몽골제국을 이해하는 독서에서 가장 첫번째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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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몽골제국과 세계화의 시작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청**구 | 2020.08.05 | 추천2 | 댓글1 리뷰제목
몽골제국, 나는 세계사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위치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우선 이들은 동서양에 걸쳐서 가장 광범위한 제국을 만들었다. 몽골제국은 그들의 발원지인 몽골고원에서부터 시작해서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전역(일본 제외, 두 차례 원정에서 결국 태풍(일본인들은 신풍(가미카제)이라고 부른다)으로 인해 결국 실패한다, 수전에 약한 몽골의 특징도 있다), 서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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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 나는 세계사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위치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우선 이들은 동서양에 걸쳐서 가장 광범위한 제국을 만들었다. 몽골제국은 그들의 발원지인 몽골고원에서부터 시작해서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전역(일본 제외, 두 차례 원정에서 결국 태풍(일본인들은 신풍(가미카제)이라고 부른다)으로 인해 결국 실패한다, 수전에 약한 몽골의 특징도 있다), 서아시아, 인도를 비롯한 남아시아, 동유럽까지 당시 지구인이 알고 있던 세계의 거의 대부분을 정복한 최초이자 최후의 제국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신대륙은 발견전이었으므로)

 

저자가 말한 이 책의 처음 제목은 '몽골제국은 세계사이다' 저자는 과거 그 어떤 제국보다 몽골이 가장 넓고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면서 '팍스 몽골리카'를 이룩했고 상인과 선교사들이 유라시아를 가로질러 교류하게 되고 영토안의 모든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삶이 안정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제국하면 떠올리는 로마제국이나, 알렌산드로스의 제국보다 몽골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이 작지 않음에도 저평가 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어느 분 리뷰를 보니 이 책의 제목인 '칭기스의 교환'이 '콜럼버스의 교환'의 아류 정도로 평가하는 서양인의 시각이라고 했는데 저자 티모시 메이는 적어도 이 책에서 그런 의도를 보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이 책의 원제는 The Monggol Conquests in Word History(세계사속의 몽골 정복)이다. 칭기스의 교환은 역자가 번역하면서 티모시가 쓰는 개념의 하나를 차용해서 이해하기 쉽게 또 마케팅적으로 붙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몽골제국을 연구한 위대한 역사학자 존 앤드류 보일은 1970년대에 이미 '몽골 세계 제국'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는데, 이는 핵심을 찌르는 말이었다. 몽골이 중세 세계를 지배했고, 일부 지역으로 한정하여 볼 수 없는 제국임을 분명히 인식했다.

여러 측면에서 몽골 제국 시대는 전근대와 근대를 나누는 분기점이 된다.

동아시아 연구자 아서 윌드론은 근대사 연구를 몽골제국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면서 몽골이 세계사의 영향을 미친 사건들을 추적하고 알아보는 것이 근대 역사연구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세계사에서 몽골 제국이 가지는 중요성은 두가지 측면에서 아주 분명하다. 첫번쨰는 제국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의 거대한 영역이다. 몽골 제국은 하나로 연결된,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을 만들었다. 비록 제국은 정치적으로 분할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골의 영역을 통해 유라시아와 그 너머를 가로지르는 상당한 규모의 상호 교류가 존재했음으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몽골제국 연구에 사용되는 자료가 수많은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료의 언어권별 비중을 고려하면 가장 중요한 언어는 한문과 페르시아어이겠지만, 그 외에도 몽골어, 러시아어, 옛 슬라브어, 아랍어, 라틴어, 옛 프랑스어, 위구르어, 티베트어 등 수많은 언어가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언어에 능통한 사람은 없다고 봐도 된다. 결국 많은 학자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다양한 언어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몽골제국은 정치적 이유로 원과 4한국 등으로 나눠지지만 이는 지역적인 관점에서 분명 유용하지만, 13세기 말까지 제국은 비록 정치적으로는 아니라도 다양한 측면에서는 결국 하나의 단일한 실체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몽골 연구의 가장 큰 걸림돌은 아무래도 언어다. 상당수의 언어가 각자의 나라와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고, 이를 다 잘하기 힘들어서 결국 이것을 통일하고 표준화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 부분이 어렵다. 

또한 경쟁의식으로 발굴현장 등에 함부러 갈 수도 없다. 하지만 최근에는 많은 학자들의 노력으로 이를 일원화 시키고 있고, 오류 등도 바로잡고 있다. 

서양에서 몽골이 알려진 것은 두 편의 유명한 기행기 때문이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방견문록>과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다. 이븐 바투타는 맘루크 왕조의 저자가 아니지만 그의 저술은 몽골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이븐 바투타는 몽골제국은 물론, 맘루크 술탄국과 델리술탄국 같은 몽골의 이웃 지역까지 탐험하고 기록을 남겼다. 

 

또한 가장 중요한 한문 자료는 <원사>이다. 원사는 원을 몽골초원까지 쫓아내고 중원을 장악한 명나라대인 1369년 원이 남기고 간 기록을 토대로 편찬했다. 일부 내용에서 결함이 있지만 풍부한 전기 정보라 할 수 있다.   

아직 <원사>는 글로벌어로 번역이 안된 것 같다. 원 역시 자신들이 중원을 정복하고 <금사>와 <송사>를 가질 수 있게 됐다.

 

몽골제국 혹은 다른 어떤 국가,정치체,민족이든 그 영향에 대해 연구할 때에는 특정한 선행 사건들이 없었다면 일어날 수 있었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필연'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몽골의 활동으로 발생한 결과에 대한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저자는 몽골제국을 형성한 수 차례의 정복은 세계사에서 기념비적인 역사적 변화의 핵심이자 직접적인 원인으로 간주되어야 함을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변화를 위한 촉매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당연하게도 세계의 여러지역을 퇴행시킨 세력이 아니었다. 또한 정복이 다양한 방면에서 촉매역할을 했다는 점을 이책의 여러 페이지를 통해 말하고 있다.

몽골의 정복이 끝났을 때 20개 이상의 국가가 사라졌다. 서하, 금, 송 같은 동아시아 국가부터 이스마일 왕국, 나이만 연맹 등 중앙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사라졌다.

50년이라는 시간 동안 유라시아의 지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이 책의 1부에서는 몽골의 정복, 유라시아의 정치적 지리에 끼친 즉각적이고 장기적인 여파를 검토하고 있고, 2부에서 주로 다루는 칭기스의 교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기본 틀을 제공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하인츠 구데리안, 달라이 라마, 윌리엄 셰익스피어, 존 웨인 겉으로는 모두 제각각이고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름들이지만 이들 모두는 '칭기스의 교환'이라는 용어를 붙일 수 있는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혹은 우연한 상륙이 신대륙과 두개륙의 동물, 식물, 병원균, 문화의 직간접적인 교환을 불러왔듯이 몽골의 정복과 제국은 기술, 사상, 문화, 종교, 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분야의 전환을 가져왔다.

그만큼 몽골이 세계사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칭기스 칸이 흥기하지 않았다면 몽골 제국과 그로 인한 영향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몽골제국은 분열한 이후에도 대략 85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광범위한 지역을 그의 후손들이 지배했고. 이웃국가들은 그 후손들과 어떠한 형태로든 관계를 맺어야 했다.

 

1부는 몽골제국의 형성과 제국의 분열 흔히 말하는 4한국을 다루고 있다.

또한 1350년의 세계는 그 자체로서 글로벌 세계임을 말하고 있다.

몽골제국을 세계적 제국으로 만든 칭기스칸의 이야기를 먼저 볼 필요가 있다.

테무진(칭기스칸의 어린 시절 이름)이 태어날 무렵 몽골족은 세력이 분열되어 있었고, 대대적 적수였던 몽골리아 동부의 타타르족과 북중국의 금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사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세계적 제국을 건설한 칭기스 칸은 기적 그 자체였다.

칭기스칸의 일대기를 읽다보면 역시 한족 이외의 민족이 중국을 지배하고 나아가 세계적 대제국을 건설한 일대기가 무척이나 재미있다.

또 그들의 후계 구도 역시 재밌다. 대체로 한족 이외의 몽골족이나 만주족은 장자 상속의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 편이다. 그로 인해 후계가 불안정하면서도 이 후계를 위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몽골이 세계를 정복할 것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한 때는 칭기스칸의 후계인 우구데이의 통치 시기였다. 세계 정복이라는 개념이 칭기스 칸 시기부터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지만, 사실 칭기스 칸의 행동은 세계 정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후 특히 몽골의 확장에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쿠빌라이 칸의 정복기가 펼쳐진다.

쿠빌라이는 스스로를 중국 황제라고 자칭했고, 중국식 왕조 이름인 원과 책력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최상위 지배층은 대체로 비한족인 몽골족, 위구르족, 페르시아인 들을 중용했다.

 

2부 칭기스의 교환이 이 책의 핵심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팍스 몽골리카와 교역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특히 우구데이의 상업진흥 정책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우구데이는 재위기간동안 금괴와 은괴부터 직물에 이르는 사치품을 저장하기 위한 창고는 물론이고, 세금으로 거둔 곡물을 저장하기 위한 곡물창고도 설립했다. 우구데이는 몽골의 궁정으로 모여드는 물품의 양을 관리 및 체계화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를 관할할 정부 부처를 새로 만들었다.

 

새로운 전쟁방식 역시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십자군과 중동에 미친 영향이 컸다.

몽골은 또한 무기의 실제 선택과 전술의 운용이라는 측면에서 중동의 전쟁을 바꾸어놓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휘어진 칼이 널리 퍼져 나간 것이다. 이런 일은 다른 곳에서도 나타났지만, 휘어진 칼이 중동 전역과 전 세계의 기병대에서 선호하는 무기가 된 것은 몽골의 성공 덕분이었다.

책 중간중간 다양한 사진과 사료를 통해 몽골제국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역사책이지만 정복국가의 역사답게 매우 재미있고 역동적이다.

 

몽골의 행정의 원천은 케식(칸의 친위대와 집안의 하인들)로부터 나왔다.

 

유목민이었더 몽골족은 땅보다는 사람을 조직했다. 물론 땅을 중심으로 조직하는 일도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몽골이 조직의 도구로 처음 사용한 것은 밍간(천호)이었다. 밍간은 몽골제국의 기본적인 군사 단위였을 뿐만 아니라 징세와 징발의 단위이기도 했다. 1000명의 사람 혹은 가정으로 이루어진 단위들은 십진제를 선호한 몽골에서 잘 운영되었지만, 제국이 확장되면서 더욱 정교한 통치구조들로 통합되었다.

몽골이 새로 획득한 땅을 통치하는데 중요했던 제도 중 하나는 탐마였다. 행정적인 차원에서 몽골이 처음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군대에 인력을 동원하는 일과 약탈 및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포상할 물품을 조달하는 일이었다. ---p.244

 

몽골과 종교에 대한 설명도 나온다.

몽골은 세계적인 대영토를 지배하다보니 그 안에 있는 많은 종교와도 마주하게 된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밀교, 힌두교 등 거의 모든 종교가 그들이 지배하는 영토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었다.

몽골은 스스로를 하늘 혹은 뭉케 쿠케 텡그리(영원한 푸른 하늘)가 칭기스칸과 그의 아들들에게 세계를 지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믿었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세계를 정복하라는 명을 받았다고 믿었다. 텡게리즘의 개념은 강력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의 신, 무슬림의 알라, 하늘 혹은 신성한 영혼 등 다른 모든 개념은 텡게리로 교묘하게 흡수될 수 있었다. 그들은 같은 신을 숭배했기 때문에 종교적 이유로 누군가를 박해할 이유가 없었다. 종교적 관용이 드물었던 시기에 몽골이 모든 종교에 놀라울 정도로 관용적이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후 몽골과 흑사병 문화교류 등 몽골이 세계사에 미친 지대한 영향에 대해서 꼼꼼한 서술을 하고 있다.

음식, 물품, 의복 등 수많은 분야에서 몽골의 문화는 유럽에, 아시아 전역에 퍼져 나갔다. 그들이 지배한 영토에서 그들의 문화와 사상이 교류되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몽골 제국은 유례없이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그 내부를 촘촘히 이어나갔다. 역참 제도를 통해 교역로의 안전과 편리함을 보장하고, 통행료와 세금을 줄이고, 효율적이고 장기적인 행정 기구를 설치하여 상인뿐만 아니라 선교사, 군인, 기술자, 예능인, 노예와 피난민들이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이동하기 시작하며 세계화시켰다. 세계는 서로 다른 것들이 뒤섞이는 풍경을 어색해하지 않게 되었다. 각지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의 삶이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이른바 진정한 제 1의 ‘세계화 시대'가 열리는데 기여했다.

 

몽골제국사와 세계의 교류에 미친 지대한 영향을 아는데 매우 중요한 책이다.

여러 장에서 여러가지 분석과 영향을 통해 재미있는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다.

우리 역시 고려시대에 몽골의 부마국으로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몽골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 역사를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는데 큰 역할을 함은 부인할 수 없다. 너무 재미있는 내용이었지만, 집에서 육아를 하며 책을 보았기에 읽는데 시간이 좀 많이 걸렸던 것도 사실이다.

 

몽골족의 역사를 알았으니, 다음으로 내가 관심있는 만주족의 중국 지배인 청나라 역사에 대해서도 좀 더 공부해 볼 생각이다.

얼마 전 궁비한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 책을 시간이 나면 읽어볼 생각이다.

 

*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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