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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벽

차가운 벽

[ 양장, 개정판 ] 트루먼 커포티 선집-05이동
리뷰 총점8.8 리뷰 11건 | 판매지수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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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6월 24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460쪽 | 520g | 132*200*30mm
ISBN13 9788952769244
ISBN10 8952769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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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출구 없는 홀, 끝없는 터널이다. 머리 위에서는 샹들리에가 반짝이고 바람에 휘어지는 촛불이 공기의 흐름 속에 떠다닌다. 그의 앞에는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한 노인이 있다. 노랗게 염색한 머리, 분을 바른 뺨, 인형 같은 입술. 빈센트는 빈센트를 알아본다. 저리 가버려! 젊고 잘생긴 빈센트가 소리친다. 하지만 늙고 추악한 빈센트는 네 발로 기어 그의 등을 거미처럼 타고 오른다. 협박, 애원, 타격, 어떤 짓을 해도 그를 떼어낼 수 없다. 그래서 그는 그림자를 매달고 돌진한다. 등에 매달린 사람은 위아래로 흔들린다. 뱀과 같이 가느다란 빛이 번쩍이더니 갑자기 터널에 사람이 들끓는다. 하얀 넥타이와 연미복을 입은 남자들, 실크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 그는 부끄럼을 느낀다. 그렇게 우아한 모임에 흉측한 늙은 노인을 신드바드처럼 등에 업고 나타난 자기를 보고 사람들은 얼마나 눈치 없다고 생각할까. 손님들은 짝을 지어 멍하니 서 있고 대화는 하지 않는다. 빈센트는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자기처럼 더 흉측한 자아, 내면의 썩은 부분이 외부로 드러난 존재를 매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바로 그의 옆에는 도마뱀처럼 생긴 남자가 눈알이 하얀 흑인을 타고 있다. 한 남자가 그에게로 다가온다. 파티의 주인이다. 키가 작고 안색이 불그레하며 대머리인 남자는 반들반들한 신발을 신고 가볍고 정확하게 걸어온다. 딱딱하게 구부린 한쪽 팔에는 머리 없는 거대한 매를 얹고 있다. 매의 발톱이 손목에 들러붙어 피가 흐른다. 주인이 의기양양하게 걸어가자 매가 날개를 펼친다. ---「머리 없는 매」 중에서

“아, 세상일이 겉보기와 같은 적 있었어? 올챙이였다가 나중에 보면 개구리가 되어 있지. 금인 줄 알았는데 손가락에 끼어 보면 풀반지일 때도 있고. 내 두 번째 남편을 봐. 좋은 남자 같더니만 나중에 알고 보니 역시 별다를 바 없는 날건달이었잖아. 여기 이 방만 해도 그래. 저 벽난로에는 실제로 불을 피울 수 없지. 저 거울은 넓어 보이려고 달아놓은 거야. 거짓말을 하는 거지. 세상 어떤 것도 겉보기와 같은 건 없어, 월터. 크리스마스 트리는 셀로판지로 만들었고 눈은 비누 조각일 뿐이야. 우리 안에 날아다니는 이걸 영혼이라고 하는데 죽어서도 죽은 게 아니고 살아서도 산 게 아니지.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월터. 우리는 심지어 친구도 아니야…….” ---「마지막 문을 닫아라」 중에서

이 모든 일들 중에서도 가장 슬픈 건 삶이 계속된다는 것이었다. 만약 누군가 자신의 연인을 떠난다면, 인생은 그를 위해 멈춰야 하고, 누군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세상도 멈춰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게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는 진짜 이유다.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불행의 대가」 중에서

섀퍼 씨는 인생에서 나쁜 일을 딱 하나 저질렀다. 사람을 죽인 것.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는 않다. 다만 그 남자는 죽어 마땅했고 섀퍼 씨는 그 벌로 99년하고도 하루에 해당하는 형을 받았다. 아주 오랫동안---실상 몇 년 동안이나---그는 농장에 오기 전의 삶은 어땠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은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고 가구도 다 썩어 문드러져버린 집과 같았다. 하지만 오늘 밤에는 그 음울하고 죽었던 방들마다 불을 환히 밝혀놓은 듯했다. 티코 페오가 번쩍이는 기타를 들고 어스름 저녁 빛 속에서 걸어 나왔을 때 마음속의 불들은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까지만 해도 그는 외롭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자신의 외로움을 인식하자 오히려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물고기가 뛰노는 갈색 강과 한 여자의 머리카락에 내려앉은 햇빛을 기억한다는 것이었다.
---「다이아몬드 기타」 중에서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최초의 단편 [차가운 벽], 커포티를 주목받는 작가로 발돋움하게 해준 [미리엄] [은화 단지], 오 헨리 상 수상작이자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큰 영향을 준 [마지막 문을 닫아라], 어린 시절 소중한 친구였던 친척 ‘숙’과의 우정을 서정적으로 그린 대표작 [크리스마스의 추억], 작가 사후 28년 만에 공개된 [요트 여행] 등 21편의 단편이 빠짐없이 담긴 커포티 문학의 결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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