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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 치즈 맛이 나니까 치즈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

치즈 : 치즈 맛이 나니까 치즈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

띵 시리즈-005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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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9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184g | 115*180*12mm
ISBN13 9791190403788
ISBN10 1190403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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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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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억지로’가 아니라 ‘좋아서’ 하는 일은 어느샌가 개인의 역사가 되어 있곤 한다. ‘시간을 내서’ 하지 않아도 그것에 자연스럽게 쌓인 시간은 어느새 책 한 권 분량이 되고도 넘친다.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마음도 없이, 이걸 이용해 뭔가를 하겠다는 야망도 없이, 그냥 좋은 것, 그저 끌리는 것.

그것이 내겐 치즈다. 대단하지 않아도, 깊은 의미 같은 건 없어도 그저 좋아하는 세계가 있어서 나는 종종 스스로 부자라고 느낀다.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을 좀 더 단단히 쥐어본다. 그렇게 내 삶을 조금 더 좋아하는 쪽으로 이끌어본다.
--- p.10~11, 「프롤로그 : 그러니까 치즈처럼」 중에서

“이게 뭐꼬. 내 이따가 묵으께.”
“니 이거 좋아하잖아. 내가 일부러 따로 챙겼단 말이야. 사람들이 볼까 봐 막 망 보면서.”

엄마는 그 휴지뭉치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겨 풀기 시작했다. 휴지뭉치 속에서 노란색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나는 순식간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치즈였다. 카망베르 치즈, 체더 치즈, 고다 치즈, 훈제 치즈, 블루치즈까지. 한 종류라도 내가 놓칠까 봐, 한 조각이라도 내가 아쉬워할까 봐, 넉넉하게 챙겨놓았다. 휴지 속에 있는 건 아무리 꽁꽁 감춰놓아도 결코 숨겨지지 않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 p.18, 「무려 엄마, 겨우 딸」 중에서

치즈라니. 며느리는 자기가 아는 최고의 칭찬을 했지만 어머님은 고개를 갸웃하셨다. 그런 반응은 처음이었으니까. ‘치즈’라는 말을 들으면 노란 슬라이스 치즈나 쭉쭉 늘어나는 모차렐라 치즈부터 떠오르는 어머님에게는 완전 뚱딴지 같은 소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치즈였다. 잘 숙성되어 쿰쿰한 맛을 내는 치즈들. 하얀 곰팡이가 겉을 감싸고 있는 카망베르 치즈나, 푸른곰팡이가 점박이처럼 박혀 있는 블루치즈 같은. 그 치즈들의 끝맛과 된장의 끝맛이 절묘하게 같았다. 하긴 된장도 발효식품이고 치즈도 발효식품이니 그 둘 사이에 비슷한 맛이 스친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치즈 맛이 나는 된장에 반해 저녁 내내 모든 것을 된장에 찍어 먹다가 결국 한 종지를 다 비운 나는 확실히 이상한 사람이었다.
--- p.24-25, 「한명자의 간장 안 뺀 된장」 중에서

미숙한 상태에서 처음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건 불행일까 다행일까. 미숙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부자연스럽고, 기대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반응해야 할지 난감하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어른의 표정을 지어보지만, 숨겨지지 않는 건 잔뜩 긴장하고 있는 마음속 어린아이. 하지만 미숙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순간의 모든 것을 기억한다.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작은 디테일까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게 ‘처음’은 우리에게 아로새겨진다. 나의 첫 이탈리아 파스타의 기억도 그렇게 나에게 박제되었다.
--- p.42, 「불법숙박범의 치즈 사랑」 중에서

내가 정해놓은 ‘나’라는 사람의 경계는 어디까지 존중하고 어디부터 허물어야 하는 걸까? 어디까지가 고집이고 어디부터가 열린 태도일까? 분명 나를 제일 잘 아는 건 나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 자체가 어느새 나를 편협하게 만들고 있었다. 경계를 알았다면, 슬며시 선을 넘어 밖으로도 나가볼 일이다. 거기에 어떤 세계가 있을지 알 수 없으니. 어디에 꽃이 피어 있을지, 무엇에 내 마음이 덜컹일지 알 수 없으니.

물론 그 세계가 별로라면 다시 안전한 내 세계로 돌아오면 된다. 경계가 명확하니 돌아오는 일도 간단하다. 치즈 덕분에 나는 내가 몰랐던 세상에 슬쩍 발을 들여보았다. 가장 확실하다 생각했던 나의 경계가 조금 희미해졌다. 그 틈으로 더 큰 세상이 밀려들 것이다. 사는 게 조금 더 즐거워질 것 같다.
--- p.93-34, 「의외의 단짝」 중에서

파리의 치즈칼과 서울의 감자칼만큼, 사십대의 나는 이십대의 나와 달라졌다. 남들에게 자랑하기 좋은 값비싼 치즈칼보다, 언제든지 편하게 꺼낼 수 있는 감자칼을 더 기특해한다. 이제는 남의 눈을 덜 신경 쓴다. 어떻게 보이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없어 보여도 딱히 상관없다. 내가 어떻게 보이더라도 ‘진짜 나’와는 상관없으니까. 어쨌거나 사십대의 김민철은 감자칼로 치즈를 잘라도 맛있다는 걸 안다. 얇은 그 치즈를 먹으며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도 안다. 여기까지 오는 데 참으로 오래 걸렸다.
--- p.125, 「감자칼의 이중생활」 중에서

요약하자면 치즈에 대한 찐사랑 덕분에 나는 광고 세계에 입문했다. 치즈에 대한 찐사랑 덕분에 이 책을 쓰는 작가도 되었으니, 이 정도면 치즈교의 극성 신도라 불릴 만하지 않은가. 태초에 치즈가 있으셨나니. 슬플 때나 힘들 때나 치즈가 나를 구원하사. 치즈가 성공으로 나를 인도하사. 오직 치즈만을 믿고 따르겠나이다. 치-즈.
--- p.166, 「치즈교 극성 신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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