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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 양장 ]
리뷰 총점8.8 리뷰 127건 | 판매지수 232,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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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희곡 46위 | 국내도서 top20 7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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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일인칭 단수』 출간 - 노트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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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스티커팩 증정! 『일인칭 단수』
작은 출판사 응원 프로젝트 <중쇄를 찍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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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0년 11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36쪽 | 338g | 128*188*20mm
ISBN13 9788954675987
ISBN10 8954675980

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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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무라카미 하루키 6년 만의 소설집] 무라카미 하루키가 새 소설로 돌아왔다.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과, 작가가 꾸준히 응원해온 야구팀 등 하루키 월드를 구성하는 다채로운 요소들을 한데 만나볼 수 있는 단편집. 특유의 필치로 그려낸 소설들과, 이야기를 아우르는 강렬한 표제작까지, 그만의 작품 세계가 다시 열린다. -소설MD 박형욱

『노르웨이의 숲』 『1Q84』 『기사단장 죽이기』 등의 작품으로 세대와 국경을 넘어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여자 없는 남자들』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소설집. 작가 특유의 미스터리한 세계관과 감성적인 필치, 일인칭 주인공 ‘나’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작품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단편들을 모았다. 누군가의 삶을 스쳐가는 짧고 긴 만남을 그려낸 여덟 작품 속에서 유일무이의 하루키 월드를 구성하는 다채로운 요소들을 한데 만나볼 수 있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돌베개에 7
크림 27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51
위드 더 비틀스 With the Beatles 73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123
사육제(Carnaval) 149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183
일인칭 단수 215

저자 소개 (2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열아홉 살 무렵의 나는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거의 알지 못했고, 당연히 타인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래도 기쁨이나 슬픔이 뭔지는 대충 알고 있다고 내 딴은 생각했었다. 다만 기쁨과 슬픔 사이에 있는 수많은 현상을, 그것들의 위치관계를 아직 잘 분간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종종 나를 몹시 불안하고 무력하게 만들었다.
---「돌베개에」중에서

우리의 육체는 돌이킬 수 없이 시시각각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떠보면 많은 것이 이미 사라져버렸음을 깨닫는다. 강한 밤바람에 휩쓸려, 그것들은―확실한 이름이 있는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것이나―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어딘가로 날아가버렸다. 뒤에 남는 것은 사소한 기억뿐이다.
---「돌베개에」중에서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크림」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이 영혼 깊숙한 곳의 핵심까지 가닿는 음악이었다는 것이다. 듣기 전과 들은 후에 몸의 구조가 조금은 달라진 듯 느껴지는 음악―그런 음악이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법이다.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중에서

팝송이 가장 깊숙이, 착실하고 자연스럽게 마음에 스미는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로 그런지도 모른다. 혹은 그렇지 않은지도 모른다. 팝송은 그래봐야 그저 팝송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결국, 그저 요란하게 꾸민 소모품일 뿐인지도 모른다.
---「위드 더 비틀스」중에서

그렇다, 인생은 이기는 때보다 지는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하는 데서 나온다.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집』」중에서

그것들은 사사로운 내 인생에서 일어난 한 쌍의 작은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와서 보면 약간 길을 돌아간 정도의 에피소드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내 인생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어느 날, 아마도 멀고 긴 통로를 지나, 내가 있는 곳을 찾아온다. 그리고 내 마음을 신기할 정도로 강하게 뒤흔든다. 숲의 나뭇잎을 휘감아올리고, 억새밭을 한꺼번에 눕혀버리고, 집집의 문을 거세게 두드리고 지나가는 가을 끄트머리의 밤바람처럼.
---「사육제」중에서

“하지만 설령 사랑이 사라져도,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다, 연모했다는 기억은 변함없이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것 또한 우리에게 귀중한 열원이 됩니다. 만약 그런 열원이 없다면 사람의 마음은―그리고 원숭이의 마음도―풀 한 포기 없는 혹한의 황야가 되고 말겠지요. 그 대지에는 온종일 해가 비치지 않고, 안녕安寧이라는 풀꽃도, 희망이라는 수목도 자라지 않겠지요.”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중에서

지금까지 내 인생에는―아마 대개의 인생이 그러하듯이―중요한 분기점이 몇 곳 있었다. 오른쪽이나 왼쪽,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오른쪽을 선택하거나 왼쪽을 선택했다. (……) 그렇게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여기 이렇게, 일인칭 단수의 나로서 실재한다. 만약 한 번이라도 다른 방향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 여기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거울에 비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일인칭 단수」중에서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돌베개에」

대학교 2학년의 ‘나’는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자와 우연찮게 하룻밤을 보낸다.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던 그녀는 직접 지은 가집을 나중에 보내주었고, ‘나’는 그중 몇 편을 세월이 지나서까지 가슴속에 품고 있다.

「크림」

재수생 시절, 피아노 학원을 같이 다녔던 여자아이에게서 연주회 초대장을 받은 ‘나’는 혼자서 낯선 동네를 찾아간다. 그러나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기대와 전혀 다른 광경이었고, 뜻밖의 만남이 던져준 의문만 남는다.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알토색소폰의 대부 찰리 파커가 요절하지 않고 음악활동을 계속했더라면 어땠을까? 재즈 팬이었던 ‘나’는 이런 발상으로 가상의 음악평을 대학 잡지에 기고하고, 몇십 년 후 그와 관련해 기묘한 조우를 한다.

「위드 더 비틀스 With the Beatles」

전 세계가 비틀스 열풍에 휩싸여 마치 벽지처럼 그들의 음악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시절, ‘나’는 고등학교 생활과 첫사랑, 비틀스에 얽힌 몇몇 풍경을 떠올린다.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리그 성적도 시원찮고 재정 상태도 썩 좋지 않은 구단을 응원하는 숙명을 안고 있는 ‘나’. 그럼에도 야구에 대한 오랜 애정은 지금도 ‘나’를 구장으로 발걸음하게 한다.

「사육제(Carnaval)」

수많은 클래식 피아노곡 중에서도 슈만의 [사육제]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한 여자와 색다른 우정을 나누었던 ‘나’는, 그녀와 관련해 갑작스러운 소식을 접하고 기억을 더듬는다.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여행중 쇠락한 온천 마을 료칸에서 인간의 말을 할 줄 알고 나름의 교양을 지닌 원숭이를 만난 ‘나’. 이어서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더더욱 믿지 못할 것이었는데…… 『도쿄 기담집』에 등장했던 기이한 능력을 지닌 원숭이의 후일담.

「일인칭 단수」

평소와 다른 차림으로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나’는 처음 보는 여자에게 뜻밖의 공격을 당하고, 지금까지 알던 세계로부터 유리되는 듯한 체험을 한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가장 개인적인, 가장 보편적인 기억과 기록의 주인공
‘나’라는 소우주를 탐색하는 여덟 갈래의 이야기


첫 장편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부터 최근작 『기사단장 죽이기』까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세계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일인칭 화자의 정체성과 그 역할이다. 일정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하루키 월드 속의 ‘나’는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며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는 한편으로 비현실적인 매개체를 통해 저도 모르는 사이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그와 함께 읽는 이들을 깊은 우물과도 같은 내면으로 끌어들인다. 학생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재즈와 클래식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온 작가의 라이프스타일을 익히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몇몇 작품은 자전적인 이야기로 보이기도 하고, 취미생활에 대한 애정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글은 단편소설이라기보다 에세이에 가깝게 읽힌다. 『여자 없는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듯 다른 소재의 이야기를 아우르며 책을 끝맺는 표제작은 짧고도 강렬하다.

회원리뷰 (127건) 리뷰 총점8.8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주간우수작 『일인칭 단수』기억들이 찾아와 마음을 뒤흔드는....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블* | 2020.12.22 | 추천28 | 댓글14 리뷰제목
나이가 들수록 과거의 기억들에 천착하게 된다. 왜 그럴까, 라고 생각했던 의문이 지금에서야 이해된다. 지극히 현재진행형인 삶을 산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불쑥불쑥 옛생각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마도 자기가 원하는 어떤 것에 매진한 시기가 지나서일까. 살아온 날들이 더 길어서일까. 특히 유년시절 혹은 청년시절의 기억들이 불쑥 떠올라 흔히 말하는 추억에 잠기곤 했던 것;
리뷰제목

나이가 들수록 과거의 기억들에 천착하게 된다. 왜 그럴까, 라고 생각했던 의문이 지금에서야 이해된다. 지극히 현재진행형인 삶을 산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불쑥불쑥 옛생각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마도 자기가 원하는 어떤 것에 매진한 시기가 지나서일까. 살아온 날들이 더 길어서일까. 특히 유년시절 혹은 청년시절의 기억들이 불쑥 떠올라 흔히 말하는 추억에 잠기곤 했던 것처럼.


오래전의 기억들이 찾아와 마음을 뒤흔들게 되는 시기가 있다. 나이가 칠십이 넘다보면 더욱 그러할 것 같다. 영원히 산다는 생각을 버리게 되는 시기이기도 할 것이므로 우리는 과거의 기억에 매달리는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집 『일인칭 단수』가 특히 그러했다. 단편 소설이나 어쩐지 에세이처럼 읽혀졌다. 화자가 일인칭 이기도 하고 소설 속에 하루키라는 이름이 그대로 드러나 하루키의 기억속으로 다가가는 것 같았다. 그가 손짓하는대로 그의 기억속으로 다가갔다. 




여덟 편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건 역시 하루키의 느낌이 강하다는 거다. 음악을 좋아하고 야구를 좋아하고 판타지적인 내용이 가득했다. 하루키는 재즈를 좋아하여 재즈바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한 이유로 음악적인 색채가 짙었다. 소설 전반에 음악이 흐르는 느낌이랄까. 인생에 있어 다양한 삶을 경험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다양한 경험은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현명한 선택을 할 수도 있으며 작가에게는 소설의 자양분이 되므로 그렇다.


 「돌베개에」를 보면 그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다고 여길 만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같은 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우연히 하룻밤을 함께 하게 된 이야기를 그렸다. 좁고 볼품없는 자췻집으로 찾아왔던 여자는 단카를 지었었고 굵은 실로 엮어 간소한 표지를 입힌 자비출판이라고 할만한 가집을 보내주었다. 죽음에 대한 냄새가 짙은 단가였다.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 늙어 버린다. 우리의 육체는 돌이킬 수 없이 시시각각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떠보면 많은 것이 이미 사라져버렸음을 깨닫는다. 강한 밤바람에 휩쓸려, 그것들은 - 확실한 이름이 있는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것이나 -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어딘가로 날아가버렸다. (24페이지,  「돌베개에」 중에서) 발췌 문장에서 이 소설집이 가진 하루키의 전반적인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가 가진 기억들이 소멸하기 전에 책 속에 붙잡고 싶은 마음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여자없는 남자들』의 다른 버전인 것만 같다. 하루키의 소설이 기묘한 판타지적인 느낌이 강한데  「크림」도 그렇다. 대학에 들어가지 않고 재수생 신분일 때 같은 피아노 학원에 다녔던 여자애로부터 연주회 초대장을 받고 그 장소에 찾아갔던 에피소드를 말하고 있다. 초대장에 쓰여진 장소에 갔으나 커다란 철문에 굵은 쇠사슬이 친친 감겨져 굳게 닫혀 있었다. 기다리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자의 벤치에서 쉬고 있었다. 스트레스성 과호흡 증세가 덮쳐왔다. 호흡을 가다듬으려 숫자를 세고 있을 때 그를 바라보는 한 노인을 발견했다. 노인은 그에게 '중심이 여러 개 있는 원'을 떠올려 보라고 했고 어느 순간 그 증세는 가라앉았다. 모르는 걸 알아내려는 인생의 크림을 생각하라는 그의 말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 떠올려보며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이야기다.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에서는 하루키의 재즈 사랑이 그대로 드러난 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학생 때 쓴 글로 실재하지 않는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라는 음반이 있고, 직접 연주까지 했더라면 이라는 가정하에 쓴 글이었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이 음반이 실재하는 줄 알고 이걸 사려고 레코드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간히 흐른후 일 때문에 뉴욕에 머물렀을 때 중고 레코드 가게의 찰리 파커 코너에서 이 타이틀과 곡명이 그대로 인쇄돼 있는 음반을 발견했다. 다음 날에 사도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레코드 가게를 나왔다가 다시 갔더니 그 음반이 처음부터 없었다고 했다. 하루키는 그 밤에 꿈을 꾸게 되는데 꿈 속에서 찰리 파커가 음악을 연주해주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물론 하루키는 소설가이므로 약간의 기억에 의존해 소설의 색깔을 다르게 입힐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뮤지션이 꿈에 나타나 함께 시간을 보냈다면 그것처럼 좋은 게 또 어디 있을까. 


기억의 배열이 흐트러지는 질환을 갖고 있는 한 소녀의 오빠와의 에피소드인  「위드 더 비틀스」에서 비틀스 음반을 가지고 있던 소녀와 첫사랑 소녀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타인의 늙음에서 세월을 느끼고 서글픔을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설에서 하루키에게 동류의식을 느꼈는데 그가 나와 같은 활자중독에 가까운 습관을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책이 없으면 손에 잡히는 모든 인쇄물을 읽는 습관 말이다. 나 또한 읽을거리가 없으면 과자봉지나 상품설명서 등 모든 글자를 읽는다. 활자를 읽지 않고는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는 부류인 그가 여자친구의 집에서 꺼내든 것은 '현대국어' 였다. 교과서를 받아들었을때 맨 먼저 훑어본 게 국어 교과서였고, 국어책에 수록된 작품들의 짧은 지문들이 안타까웠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했다. 


 「사육제」는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 가장 못생긴 여자와 함께 각자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말한 내용이었다. 서로 피아노 곡을 특히 좋아하여 슈베르트의 피아노소나타와 슈만의 피아노 작품 중 그 중에서 한 곡만 남긴다면 뭐가 좋을까라는 질문에 슈만의 「사육제」를 떠올릴 정도로 취향이 비슷했다. 시간이 지난후 뉴스에서 떠들썩한 소식으로 다시 찾아온 그녀를 마주하고 느끼는 감정들을 담은 소설이었다.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은 여행중 허름한 온천의 작은 료칸에서 만난 원숭이를 만난 기이한 이야기이다. 온천욕을 하고 있는데 원숭이가 다가와 등을 밀어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에피소드였다. 물론 다음날 주인에게 원숭이와 함께 마셨던 맥줏값을 내겠다고 했지만 그 료칸에는 캔맥주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목욕탕에 몸을 담궜을때 찾아왔던 원숭이는 기묘한 하룻밤 꿈과도 같은 존재였을까.




인생은 이기는 때보다 지는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 하는 데서 나온다. (131페이지,「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중에서)

「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은 변변찮은 실력이지만 오랫동안 응원해온 야구 팀에 대한 애정을 시집으로 엮은 이야기다. 스포츠에는 문외한이며 야구경기는 겨우 TV에서 국가대항전이나 지켜보는 나와는 많이 비교되는 내용이었다. 이 소설은 박민규 작가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연상시켰다. 야구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며 느끼는 여러 감정들을 시로 표현하는 그의 야구에 대한 애정이 깊게 느껴졌던 소설이었다. 


표제작인  「일인칭 단수」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일 년에 고작 두세 번 입는 슈트를 차려입고 단골 바를 뒤로하고 한 번도 간 적 없는 바로 들어갔다. 보드카 김렛을 시켜놓고 미스터리 소설을 꺼내 읽다 만 곳을 이어 읽었다. 집에서처럼 독서에 집중할 수 없었음에도 계속 읽고 있었다. 한 여자가 다가와 그렇게 하면 멋있다고 생각하는지 시비를 걸고 있었다. 그의 친구의 친구라고, 기억나지 않은 삼 년전의 물가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며 부끄러운 줄 알라고 말했다. 이러한 터무니없는 일을 당했을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하루키처럼 조용히 술값을 계산하고 나올까. 아니면 도대체 누구냐며 그 여자에게 따질까. 몹시 불쾌한 상황일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물었다.  


하루키다운 소설이었다. 어쩌면 에세이로도 읽혀지는 소설. 재즈와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그와 음반에 대한 기묘한 이야기. 말하는 원숭이라니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하루키만이 그릴 수 있는 하룻밤 꿈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다만 이 이야기는 그의 기억들에 의존해 생의 무상함을, 기억들이 찾아와 마음을 뒤흔드는 노년의 쓸쓸함을 나타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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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주간우수작 일인칭 단수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파***키 | 2020.12.20 | 추천32 | 댓글13 리뷰제목
신간만 나오면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예약구매부터 걸어두는 몇 작가 중에는 단연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 특히 “빵가게 재습격”  을 비롯 그의 단편소설들을 가장 사랑하는 독자로서 근래 장편소설이나 수필집(그나마도 가뭄에 콩 나듯)만 출간하는 상황에 통탄했던 바, 드디어 오랜만에 단편소설집을 출간했다는 소식에 바로 구입해 읽었다. 일본에서 출간한지도 얼마;
리뷰제목

신간만 나오면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예약구매부터 걸어두는 몇 작가 중에는 단연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 특히 “빵가게 재습격”  을 비롯 그의 단편소설들을 가장 사랑하는 독자로서 근래 장편소설이나 수필집(그나마도 가뭄에 콩 나듯)만 출간하는 상황에 통탄했던 바, 드디어 오랜만에 단편소설집을 출간했다는 소식에 바로 구입해 읽었다. 일본에서 출간한지도 얼마 안 된 듯한데 문학동네에서 발 빠르게 번역 출간해주어 감사했다(그나저나 sns에 표지에 대한 말들이 있는데, 나는 원색에 선이 단순한 이 표지를 보며 예전 안자이 미즈마루 시절 일러스트도 생각나고 좋더라). 

 

너무 익숙한 기분으로 단편 몇 편을 한 달음에 읽으면서 아래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1. 컴필레이션 앨범처럼 예전 단편을 재편집한 컬렉션인가(디스는 아님, 전작주의자로서는 오히려 안정적이라 좋았음). 

2. 하루키 할아버지 요즘 젊었을 적 추억을 회상하며 삶을 정리하시나.

3. 이 단편집에서 취한 1인칭 서술은 소설을 수필처럼 읽게 만들어, 이 기묘한 일들이 정말 일어났을 것만 같다.

 

커미트먼트-> 디태치먼트로 돌아오는 1인칭 서술, 하루키가 “태엽감는새 연대기”를 쓰던 시절에 늘 등장한 주인공 30대 ‘나’를 좋아했던 자로서 반가웠다. 그의 완전 초기 작품들 청년 ‘나’의 독백하는 문체는 중2병 같아서 비교적 별로고, 3인칭으로 넘어오면서는 다소 객관적인 자세 때문에 하루키 문체의 매력이 떨어지지 않았나 싶기 때문이다. 그가 일본 문단에 속하기보다 외국에서 집필하기를 선택하고, 예기치 않은 “노르웨이의 숲” 대성공이나 옴 진리교 사린 가스 살포 사건, 고베 대지진과 같은 일련의 상황을 겪으면서 하루키는 바깥에서의 시선으로 일본을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한다. 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 선생님과의 대담집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 http://blog.yes24.com/document/57584 를 보면 그가 디태치먼트-> 커미트먼트로 문체를 바꾸게 되는 이유가 매우 자세히 나와 있다. 그는 작품에서 자기 안의 문제만 들여다보는 자기 폐쇄적인 주인공을 세우는데서 벗어나(물론 그때의 ‘나’도 누군가를 늘 찾거나 구하러 다니기는 했다), 의도적으로 거시사 속의 개인을 그리면서, 사회 구조나 역사 이야기 속 문제를 들여다보고 거기 적극 참여하는 주인공을 세우기 시작했다. 최근 번역 출간한 수필 “고양이를 버리다” 속 아버지가 전쟁에 참여했던 에피소드는 자연스럽게 “태엽감는새 연대기” http://blog.yes24.com/document/10936997 속 전쟁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1q84” http://blog.yes24.com/document/1687993 http://blog.yes24.com/document/2495482 같은 최근 작품들에서도 그런 자세와 문체를 유지해왔다. 그러므로 이번에 나온 단편소설집 제목이 “1인칭 단수”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하루키가 어떤 의도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집에서 ‘일인칭 단수’는 표제작답게 8편 중에서는 비교적 가장 신선하다. 그간 하루키 작품을 너무 열심히 읽었나, 홍보물에 분명 ‘신작’ 소설집이라고 써 있는데 나는 실제로 여기 실린 다른 작품들이 예전 작품인지 찾아보며 읽었다. 실제로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은 예전 작품의 후일담(하루키 단편집 “도쿄기담집” http://blog.yes24.com/document/105126 의 ‘시나가와 원숭이’ 속편)을 적고 있다. 여기 실린 단편소설들이 아무래도 하루키가 즐겨 쓰던 소재들(술과 바, 야구와 야쿠르트 스왈로스, 재즈와 찰리 파커, 팝송과 비틀즈, 클래식과 슈만 및 브루크너)을 변주하고 있어서 더 그런 기분이 들었나. 그의 골수 팬으로서는 크게 변화하려는 모험을 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꿋꿋이 자기 문체를 유지하는 편이 훨씬 좋다. 

 

“노르웨이의 숲”(개인적으로 하루키 작품들 중에서는 이런 쪽도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 확실히 요즘 같은 분위기 속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하루키 작품에서 불편한 요소를 많이 찾아낼 수 있을 듯 하다)이나 초창기 단편들 연애담 류 작품을 읽을 때에도 이번에 그가 옛날 소재나 모티프를 발전 시켜서 쓰셨나, 하루키 할아버지가 청춘 시절을 돌아보고 싶으신가 싶었다. 

 

가장 좋았던 지점은 클래식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 두 편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사육제(Carnaval)에서 그는 슈만의 피아노곡 ‘사육제’를 제목에서도 썼을 정도로 이야기 전개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모티프로 삼았다. 낭만적인(자유롭고 현란한, 정신없고 판타스틱한) 슈만의 피아노곡은 질서 있는 바흐나, 정갈하고 힘 있는 베토벤이나, 노래하듯 아름다운 슈베르트나, 기교 넘치는 리스트나, 춤곡처럼 경쾌하고 때로 달달한 쇼팽의 피아노곡과는 너무 다른 느낌이라, 호불호 타는 슈만 피아노곡 카니발의 (몇 없는) 실연을 이 단편 속 주인공들이 마니아처럼 찾아 들으러 다니는 장면에 납득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교양 있던 등장인물의 결말이 어땠는지를 떠올리면, 역시 기승전결과 한방에 하루키의 이 짧은 단편의 매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읽기 즐겁다. 주인공들이 연주자들마다 카니발을 어떻게 연주했는지 비교하며 대화 나누는 장면을 읽고 있자니,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http://blog.yes24.com/document/7927768 에서 하루키가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와 클래식 LP를 함께 듣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던 장면이 떠올라서 좋았다. 

 

한편 교육을 받아 인간처럼 말을 하고 사랑을 하고 예의를 차리는 역설적이고 기묘한 시나가와 원숭이는 어렵고 장엄한 브루크너 교향곡을 즐겨 듣는다고 말함으로써 인간보다 인간적인 원숭이의 이미지를 더욱 극대화한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하루키가 활용하고 있는 이런 장치들을 알아볼 때 재미있다. 재즈나 팝 마니아는 찰리 파커가 보사노바를 연주했다면 어땠겠느냐는 가설을 세우며 접근하는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나, 비틀즈 노래를 모티프 삼은 ‘위드 더 비틀스With the Beatles’ 같은 다른 단편을 읽을 때 비슷하게 공감하고 있을 듯하다. 

 

 

이제 나이는 할아버지이지만 꼰대 같지 않음을 유지하고 있어서 여전히 똑같이 최애 작가인 하루키의 최신작 단편소설 8편을 읽었다. 주인공들이 청소년, 청년이라는 점에서 자기 인생과 작품 세계를 돌아보고 계시냐는 슬프고 묘한 감정이 들었다. 워낙 건강관리하며 성실하게 늘 쓰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고 있기는 하지만 언제까지 하루키 신작을 만날 수 있을까 조마조마해지기 시작한지 꽤 되었다. 모쪼록 신작 계속 내 주시기를, 늘 그렇듯 무조건 구입해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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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파워문화리뷰 무라카미 하루키식 소설과 산문의 하이브리드, 일인칭 단수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책*****우 | 2021.05.13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여자 없는 남자들』 이후 6년만의 소설집이다. 총 여덟 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고, 표제작인 「일인칭 단수」는 가장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다.   사실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일인칭 단수'라는 제목이 상징하듯 '나'가 주인공인 소설들을 모아놓은 것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두 '나'의 이야기인 건 맞는데, 거의 대부분이 어릴 적에 대한 이야기다. 대체로 10대 후반에서;
리뷰제목

『여자 없는 남자들』 이후 6년만의 소설집이다. 총 여덟 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고, 표제작인 「일인칭 단수」는 가장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다.

 

사실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일인칭 단수'라는 제목이 상징하듯 '나'가 주인공인 소설들을 모아놓은 것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두 '나'의 이야기인 건 맞는데, 거의 대부분이 어릴 적에 대한 이야기다. 대체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과거의 이야기와 성인이 된 후 혹은 노년인 지금의 이야기들이 섞여 있는 패턴을 취하고 있다.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그 당시를 미화하거나 노스탤지어가 과잉되었거나 한 건 아니고, 그 즈음에 있던 평범했던, 그러나 생각해보면 다소 기이한 이야기들에 관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평생 살면서 한 번도 생각난 적이 없을 뻔한, 그러나 나이가 들어 거의 여든에 가까워져 문득 생각난 삶의 한 토막 같은.

 

이 소설집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기본적으로 '소설집'으로 엮었지만 산문집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실명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그냥 '나'로 등장하더라도 그의 산문집을 많이 읽거나 그에 대해 많이 아는 독자라면 그 '나'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100% 다 사실은 아니고 약간의 허구나 픽션이 가미되어 있겠지만, 대체로는 산문집으로 읽어도 무방할 것 같다. 살면서 기이한 일은 실재의 세계에서도 누구나 다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니깐 말이다.

 

「돌베개에」

 

「돌베개에」의 '돌베개에'는 10대 후반에 하룻밤을 잤던 한 여자가 보내준 '가집'의 제목이다. '나'는 그녀가 이미 세상에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어느 지점에선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아직 이 세상 어딘가에 있기를 마음 한구석으로 빌게 된다.

이런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아서, 짧은 소설이지만 공감이 됐다.


「크림」

 

「크림」 역시 열여덟 살에 겪은 기묘한 일에 대한 것이다. '나'는 아득한 옛날이라 거의 고대사처럼 여겨진다고 말하는데, 사실 앞만 보고 달리는 청년이나 중년 시절엔 과거를 돌아볼 여유도 시간도 없는데, 노년이 되고 시간이 많아지면서 옛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게 아닌다 싶다.

 

'나'는 한 여자애에게 피아노 연주회 초대장을 받는다. 어릴 때 같은 선생님에게 피아노를 배운 사이인데, 학비가 바씬 사립여학교에 다나는, '나'같은 평범한 남자애에게 관심이나 호감을 갖지 않을 그런 여자애였다. 

공연장은 고베의 산 위에 있었는데 힘들여 공연장까지 갔지만 공연장 문은 닫혀 있고 인기척도 없다. '나'는 한참을 기다리다 결국 단념하고 다시 내려온다. 그리고 노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때 일어났던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한, 설명이 안 되는 사건이었고, 열여덟 살의 나를 깊은 당혹과 혼란에 빠뜨렸다. 잠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잘 정도로. (p.48)

 

살면서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마음이 지독히 흐트러지는 일을 만난 사람이라면 어쩌면 이 소설이 이해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에서 동명의 글은 '나'가 대학생쯤에 쓴 글인데, 재미있는 점은,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라는 음반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찰리 파커는 1955년에 죽었고, 미국에서 보사노바가 히트한 건 1962년이다. 이것은 가상의 비평인 셈이다.

 

소설은 이에 대한 이야기와 그 이야기의 후일담으로 엮여 있다. 후일담의 내용은 후에 '나'가 뉴욕 시대네 머물 때 호텔 근처를 산책하다 중고 레코드 가게에서 실제로 이 타이틀의 레코드를 발견하게 되면서 시작한다. 당연히 픽션이겠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라면 이런 일을 경험했다 해도 수긍이 간다.


「위드 더 비틀스 With the Beatles」

 

「위드 더 비틀스」는 분량으로 따지면 이 소설집에 실린 여덟 편 중 가장 길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소설들이 산문으로 봐도 무방하듯이, 이 소설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쓴 것처럼 읽힌다.

 

이야기는, 역시나 소년 시절의 기억에서 시작한다.

1964년, 비틀스가 전세계를 강타했던 그 해에 학교 복도에서 <위드 더 비틀스>라는 음반을 가지고 가는 한 소녀를 만난다. 무척 아름다운 소녀였지만 그 뒤로 한 번도 못 만났던 걸 감안하면 기억이 미화된  것일 수도 있다.

 

고등학교 건물의  어둑한 복도, 아름다운 소녀, 흔들리는 치맛자락, 그리고 <위드 더 비틀스>. (p.77)

 

그 뒤로 몇 명의 여자를 만나고 가까운 사이가 되기도 했지만, 1964년 가을 어둑한 학교 복도에서 맞닥뜨린 빛나는 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1960년대의 추억담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현재에서 만난 누군가로 인해 그때의 기억이 환기되며 기묘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무라카미 하루키가 야구를 좋아하는 건 거의 모든 독자들이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야구장에서 야구 경기를 관람하다가 소설가가 되어야겠다 결심한 유일한 소설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이 소설 역시 산문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대개의 내용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리게 한다.

 

야구를 직관하는 걸 좋아해서 항상 야구장 근처의 집을 얻는 야구팬, 그중에서도 '야구르트 스왈로스'의 팬인 나의 이야기다. 하지만 내가 응원하는 이 팀은 야구를 잘 하지 못해서 나는 1968년부터 1977년까지 '실로 방대하'게 천문학적 횟수의 '지는 경기'를 지켜본다. 그리고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 하는 데서 나온다. (p.131)

 

그리고 나는 외야석에서 지는 경기들을 관람하면서 시 비슷한 것들을 끄적인다. 그런 시들을 한데 모아 1982년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이라는 시집을 낸다. 거의 자비출판이었고 500부 한정으로 일일이 사인펜으로 서명을 한 그 시집은 실제로는 300부 가량이 팔렸는데, 지금은 희귀한 컬렉터스 아이템이 되어 놀랄만큼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세상일 알 수 없다. 내 수중에는 두 부밖에 남아 있지 않다. 더 많이 남겨뒀으면 부자가 됐을 텐데. (p.135)

 

아,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런 식의 눙치는 유머가 좋다. 이 시집이 정말로 있다면 나도 한 권 소장하고 싶은데, 검색해봐도 이 시집이 실재하는 시집인지 여부는 확인이 불가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 중 이 소설이 가장 좋았다.


「사육제(Carnaval)」

 

「사육제」는 아내도 인정한 '나'의 여사친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는 '나'가 만난 여자 중 가장 못생긴 여자인데, 그녀의 범상치 않음이 그 모든 것을 압도할 만큼 특이한 여자다. 그리고 그 범상치 않음이 그녀의 주변에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데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둘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비슷한 취향 때문에 친해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슈만의 <사육제>다. 둘은 상당히 많은 수의 <사육제> 레코드와 CD들을 듣고 콘서트도 다닌다. 그리고...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음악의 훌륭함을 인정받지 못한 슈만과, 뭔가 기이하고 평범하지 않은 (못 생겼지만 매력적인) '그녀'의 이야기, 거기에 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대학생 때 한 번 만난 여학생의 이야기까지 합쳐져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것들은 사사로운 내 인생에서 일어난 한 쌍의 작은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와서 보면 약간 길을 돌아간 정도의 에피소드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내 인생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어느 날, 아마도 멀고 긴 통로를 지나, 내가 있는 곳을 찾아온다. 그리고 내 마음을 신기할 정도로 강하게 뒤흔든다. 숲의 나뭇잎을 휘감아올리고, 억새밭을 한꺼번에 눕혀버리고, 집집의 문을 거세게 두드리고 지나가는 가을 끄트머리의 밤바람처럼. (p.181)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은 온천이 딸린 여관에서 일을 하는 원숭이를 만난 '나'가 함께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는 내용인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서였는지 아니면 일본에 이런 민담이 내려오는 건지 암튼, 비슷한 모티프와 스토리의 이야기를 읽었던 것 같다.

 

교양 있는 가족에서 키워져서 인간의 말을 하고 인간 여성을 좋아하는 원숭이와 관련된 에피소드와 이것이 가짜나 망상,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후일담이 곁들여진 구성은 이 소설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즐겨 사용하는 포맷이다.

 

참고로, 이 제목이 너무 익숙하다 싶어서 소설을 읽은 후 찾아보니 『도쿄기담집』에 「시나가와 원숭이」라는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소설은 그 소설의 연작 형식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시나가와 원숭이'라는 동일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두 편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일인칭 단수」

 

표제작이니만큼 읽기 전부터 가장 궁금했다. 소설집의 가장 마지막에 배치한 것도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 가장 집중해서 읽었다. 

 

어느 날 슈트를 빼입은 나는 산책을 하다 바에 들어간다. 기분 좋은 봄날 저녁이었고 밝은 보름달도 떠 있었다. 모르는 사이 가게가 붐비기 시작했고, 빈 스툴 건너에 있던 한 여자가 내 옆자리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 말을거는데...... 

 

뭔가 위화감 같은 게 느껴지는 소설이다. 조금 뜬금없는 소설이기도 한데, 누구나 살다 보면 한 번쯤 이런 비슷한 일을 경험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부끄러운줄 알아요"라고 그 여자는 말했다. (p.233)

 

이게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자, 이 소설집의 마지막 문장이다.

여든이 다 되어가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 왜 'Shame on you.'였을까? 그 이유가 오랫동안 많이 궁금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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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식 소설과 산문의 하이브리드, 일인칭 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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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우 | 202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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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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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 202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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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의 매력이 있습니다. 자전적인 소설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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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 2021.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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