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말씀이나 오래된 격언이라고 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상에 모두 적용하거나 신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에 이바지하는 어구 중 하나는 ‘이왕이면 다홍치마’이다. 그 격언이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폐해를 양산한다고 지적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지만, 이왕이면 더 좋은 조건을 가진 대상을 취하라고 서로에게 권하면서 수요자와 공급자, 남자와 여자, 구인자와 구직자 등의 관계에서 서로의 눈높이만 높아져서 시도조차 못 하는 세태를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이왕 결혼할 바에는 여러 요소를 다 따지며 결혼하고 싶어 한다. 연봉, 외모, 키, 아파트, 성격, 취미 등을 기준으로 삼아서 그것들에 충족되지 않으면 고민을 계속하는 사람이 주위에 넘쳐난다. 그 결과 나이가 들어도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으며, 종교가 있는 사람은 같은 종교나 믿음의 신실성도 따지면서 연애의 가능성을 더욱 낮춘다.
그리고 자기가 어느 정도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인 서울 대학생은 이왕 취업할 바에는 공기업과 대기업에 취업을 원한다. 연봉은 최소 얼마, 실질적으로 수혜 가능한 복리후생, 회사의 인지도, 인 서울 회사 위치, 워라밸 등 그들이 진정으로 입사하고 싶은 회사는 정해져 있다. 그래서 입사 시기가 늦어지더라도 중소기업에 입사 지원을 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중소기업은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률에도 인력 부족의 미스 매칭을 계속 겪고 있다.
십여 년 전에는 한국 사람이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술을 권하는 사회라고 일컬었다면, 요즘 세상은 완벽을 추구하여 완벽을 권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 pp.31~32
우리는 일반적으로 매일 세 번씩 식사한다. 먹는 즐거움을 매우 좋아하는 나로서는 한 끼라도 굶은 적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때로는 일부러 돈을 모아 사서 먹으면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오늘의 식사를 통해 어떤 새로움을 경험할지 기대가 된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식당과 메뉴 중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주문하는 이 선택의 과정은 누가 지시해서 이루어지지 않고, 대부분 자율과 기대로 이루어진다. 즉 자유의지에 의해 많은 대안을 제치고 지금 앞에 놓여 있는 음식인 만큼 우리가 취하는 모든 음식은 선택받은 대상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지출 가능 범위, 취향, 기분, 함께하는 사람 등의 조건을 고려하여 제일 나은 선택을 했으니 천 원짜리 김밥에도 백만 원짜리 코스요리에도 의미가 있다.
이러한 의미부여 과정 덕분에 무엇을 먹어도 맛있게 먹는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해당 음식별로 제공하는 의미를 즐기고 있다. 누군가 분식점에서 먹는 천 원짜리 김밥이 별로 맛이 없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그보다 더 비싼 음식이 그 식당에 그리고 다른 식당에 수두룩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동시에 지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현 상황에서 가장 적절하게 구매할 수 있는 음식은 김밥이며, 지금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라는 생각으로 먹으면 그 김밥은 정말 꿀맛이다. 다른 음식과 비교하는 순간 맛이 없어지는 것이다.
가난했던 10대에는 먹고 싶은 음식이 너무 많았어도 형편상 참을 수밖에 없어서 그러한 환경을 원망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20대에는 일상에서 음식을 즐길 만한 여유는 많이 없었다. 경제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찾은 30대가 되어서야 내게 주어진 음식이 무엇이든지 소중하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것과 내 것을 비교하지 않고, 뜻대로 잘 풀리지 않는 현실을 원망하지 않으며, 지금 내 옆에 있는 단짝과 나눌 수 있는 행복과 함께 즐기는 김밥의 맛은 30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감동이다.
--- pp.70~71
영어를 매우 잘하지 않지만 배우기를 즐기면서 좋아한다. 영어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는 nevertheless이다. 그 단어가 우리의 삶 전반을 지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실패하거나 욕을 먹더라도 긍정적인 결말을 보여주면 인정받는다. 아무리 비싸도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면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 아무리 힘들고 외로워서 망할 듯하나 대부분 사람은 꿋꿋이 버티며 살아간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섭다고 해도 언젠가는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대부분인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상황과 관계없이 세상은 절망의 늪에 계속 머무르지 않는다.
세상을 지배하는 힘이 사랑이라면 그것을 끌어내기 위한 접속사는 nevertheless라고 말하고 싶다. 이 단어를 붙잡으며 이 세상의 역경과 고민을 타파하고자 의지를 굳세게 하는 한 소망은 우리 곁에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아무리 망할 것처럼 보이며 “이게 나라냐!”며 소리치고 싶어도 대한민국은 굳건하게 나라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우리가 많은 죄를 짓고 살아가고 극악무도한 범죄자도 많이 있지만, 가족과 같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하다고 고백하게 한다.
--- pp.168~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