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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일 포스티노
일 포스티노/ 연리지/ 스무 살의 드로잉/ 사마귀 날아오르다/ 파문/ 꽃 피다/ 숲에서 다시 그대/ 질경이/ 해빙/ 참 나지막한 봉분/ 자서/ 그림일기/ 폭풍주의보/ 점묘체의 자화상/ 나비를 보다 제2부 새빨간 씨앗 선인장/ 새빨간 씨앗/ 폭우, 난데없이/ 마른 햇빛 속으로/ 시든 줄기/ 목마른 날/ 진혼곡을 켜다/ 한 그루/ 상사화/ 선인장, 화분 속/ 붉은 삼십대/ 만종/ 음모, 길 위에 가스등 켜다/ 어떤 화엄/ 틈, 번지는 제3부 물 위의 가을 선인장꽃/ 만추/ ……/ 이별/ 오래된 소포/ 먼나무 열매/ 거미줄/ 이삭 줍기/ 가을비/ 몸속, 여자/ 흔들리는 주소/ 빈 칸, 한 생/ 남겨진 눈물/ 안개숲/ 어떤 변주 제4부 자국 너도바람꽃/ 가벼운 오수/ 달력을 찢다/ 늙은 여자/ 허공의 기록/ 자국/ 흉터/ 돌아가고 싶다/ 칼라꽃 부케를 든 신부/ 뒤샹의 샘물/ 위독한 플롯/ 아스팔트에서 비집어 오른/ 노란 바이어스 둘러진 손수건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산에 오르는 간헐천변의 꽃/ 겨울단풍 |
김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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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풀리는 사물들
쓰러진 뿌리 곁에서 새어나오는 첫숨들 질곡에서 빠져나온 연둣빛 잎들의 팽창을 듣는다 발효균처럼 포근해진 흙으로부터 누적된 육신들의 표정을 읽고 내 육신의 미래도 조심스레 읽어본다 어떤 암흑은 장작더미처럼 때로 마마꽃처럼 뜨겁게 창궐하였다 산다는 건 간단히 타오르다 그쳐버리는 것 사지를 얼기설기 꼬아 불꽃 일으키는 한 시절의 분출이 그리 낯설 것은 없지만 더러는 닿지 못한 구석 자리도 그리워하게 될 게 분명하다 다만 필연적으로 타오를 것 필연의 불꽃 뒤에 아무것도 남겨두지 말 것 --- 「해빙」 중에서 퉁퉁 분 물살 위로 떠다니는 찌꺼기 한 점이 삶이라고 믿지 않겠다 휘두르면 손톱 끝에 찍혀나오는 가벼운 윤리와 치부 위에서 환하게 여문 신파적 꽃씨들 교과서처럼 짓눌린 표정으로 꽃씨를 받는 나는 물이다 누워 바라보면 제거하기엔 너무 깊은 강 가슴께 꼬깃꼬깃 소외의 키를 잡는 시간과 시간에 얹힌 구름들 온몸 새겨온 손톱자국을 다시 한번 강에 뿌리며 도저히 어찌 못할 욕망은 프리미엄인 게라고 마음 고쳐먹기까지 강은 도도했고 내가 키운 검은 나비도 아름다웠다 말씀 한 줄로 일어서는 날개를 내려치진 못했다 폭우― 물살 잠잠한 강심으로 난데없이 내리꽂힌 한낮의 정사 --- 「폭우, 난데없이?전문 갈림길에서 걸어 나온 하늘을 우연히 만났네 삶의 흙과 삶의 바다 삶의 바위에 부대껴 흐르던 햇살 부스러기들은 얼룩을 털며 날아올랐네 넘어지는 꽃들이 꽃가루를 일으켜 세우려 애를 썼다네 한 방향으로만 부는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 견고한 줄 믿었던 나의 뿌리가 아주 낯설게 흔들, 흔들거렸네 --- 「파문」 중에서 폭풍 쪽으로만 귀 여는 습성은 버려야겠지 혼자 날아와 생각에 잠긴 생애의 한 끝을 망망한 깃대에 매어두고 슬며시 낯선 가지에 머물러 있다 스치는 바람들이 화사한 햇빛 몰고 지나갔지만 언제나 내 것이 아니었다 한 발짝 건너편에서 햇빛 머금은 꽃잎은 나비를 아삭아삭 씹어 먹기도 했다 진심으론 부러웠다 꽃잎 휘청거리는 자리만 골라 앉은 추억들 잘라내며 폭풍을 예감한다 이제 나는 갈증에 젖어 폭풍의 언저리 벗어나도 무방한가 비루한 줄기 한 올이라도 일으켜 세워 착한 나비 꼬옥 끌어안고 하룻밤 해로하고 싶다 --- 「마른 햇빛 속으로」 중에서 어둠 속에서도 미등이 지워지지 않는다 홍조 띤 가슴께 잔잔히 펴지는 방죽 연통한 꽃숭어리들 흐드러진 띠살무늬 벽에서 사방 막힌 슬픔이 뚜욱뚝 진다 전원 끊긴 뒤 어떤 명치 끝 당신이 밟고 섰던 빈자리에 오프 모드로 켜지는 꽃잎을 나는 왜 단죄할 수 없는가 --- 「겨울단풍」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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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검은 나비도 아름다웠다』는 1993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지연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필명 김규린으로 시집 『나는 식물성이다』, 『 열꽃 공희』를 펴내며 다른 시인들과 차별화되는 ‘육성’으로 독창적인 시세계를 펼쳐온 바 있는 김지연 시인은 어느 순간 필명 뒤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이번 시집부터는 본명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자 한다.
『내가 키운 검은 나비도 아름다웠다』는 때로는 무모하고 바쁘게 흘러가는 삶의 비의와 존재에 대한 질문과 허기, 상처와 열망 등을 응축하고 있다. “존재를 구부리는 바람 한 조각” 으로 표출되는 대상의 이면을 응시하며 이마를 적시는 석양으로 다가오는 것들은 “여태 그려온 그림에는/왜 내가 들어있지 않을까요”(「점묘체의 자화상」)라거나 “비뚤비뚤 흘려 적은 것일지라도/가지에 받쳐진 목숨은 모두 빛나는 거라고”(「먼나무 열매」) 등의 구절들이다. 결국 “모든 골짜기 밖에서 반짝거리는” 것들을 찾아가는 위무의 시선은 그만의 감각적 문체와 밀도 깊은 사유와 어우러지며 세계를 확장한다. 김지연 시인은 시인의 산문에서 자신의 전생이 나무였을 거라고 확신한다. “어둠을 밀고 나왔을 때/새로운 화면의 배면이 환하게 눈에 띄었다./나무였다.”고 고백한다. 김지연 시인이 줄곧 지향하고 있는 ‘식물성’은 무엇일까. “식물은 자신의 뿌리박기가 한 생애의 주제라는 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초록의 외연, 새와 다람쥐와 바람과 해를 사이좋게 나누는 나무가 “착한 나비 꼬옥 끌어안고” 얼룩을 털며 날아오르는 어떤 순간의 서정이 오롯이 담겨 있다. ■ 시인의 산문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 흘러내릴 때가 더러 있다. 존재의 빌미가 되었던 많고 많은 슬픔들 그 맛을 탐닉할 줄 아는 자는 스스로 식물이 되기도 하는가 생의 흡반을 땅 속 깊이 박고 번져나가는. 식물은 자신의 뿌리박기가 한 생애의 주제라는 진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위대한 식물이다. ■ 시인의 말 하나는 외롭고 둘은 넘어지기 쉽지 해묵어 잘 익은 시들이 스스로 붙들고 견지하며 세 번째 바퀴를 세우더라는 따뜻하고도 조금은 촉촉한 이야기 가을가을한 가을에 김지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