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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_꿈나들이
1부 산에 오르면 길 꿈 그네 산에 오르면 풍선 책 저수지의 마음 혼자서 완행버스 거울 의자 시간 동물원 2부 참 바쁘다 처마 끝에서 현호색 자벌레 봄표시 이어달리기 은행나무 봄이 가다가 가을 참 바쁘다 운동회 알밤 나를 따라온 바다 가을 편지 연날리기 3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아기나무 달밤 해바라기 계곡물에 빠진 햇살 무지개 저녁 단풍 바닷가에서 비 오는 날 비가 오면 바다는 산 땅 까치밥 4부 숨은그림찾기 숨바꼭질 아기와 햇살 말 1학년 크리스마스 아기와 놀던 바람 엄마소와 송아지 우리 할머니 졸음 청백 계주 숨은그림찾기 잠 새해 해설_27년만의 나들이, 자유로움에서 풀잎 웃음까지_권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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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못 가는 데가 없다. 다리도 건너고 언덕도 넘는다. 논에도 밭에도 풀숲에도 길은 가만히 숨어 있다. 길은 안 가는 데가 없다. 학교에도 시장에도 놀이터에도 버스를 타고 외가에 가도 길은 먼저 거기 와 있다. --- 「길」 전문 텅 빈 집안에 혼자 있으면 때깍때깍때깍 착 착 착 착 시계 소리만 방안 가득 앞산을 건너다봐도 하늘을 올려다봐도 바람 지나가는 소리뿐 와락 겁이 나고 갑자기 심심해진다. --- 「혼자서」 전문 산에 봄이 오는 것은 현호색 때문이다. 작은 나팔을 잔뜩 꺼내 들고 봄 봄 봄 봄 불어대기 때문이다. 현호색이 봄 하고 나팔을 불면 땅이 열리고 봄 봄 하면 새싹이 돋기 때문이다. --- 「현호색」 전문 봄은 앉았던 자리마다 표를 해 놓아요. 개나리 가지엔 노오란 꽃표시 양지바른 언덕에는 파아란 풀표시 봄을 만날 수는 없어도 봄을 만질 수는 없어도 봄이 해 놓은 봄표시를 보고서 우리는 봄이 온 걸 알아요. --- 「봄표시」 전문 신발 틈에 바다에서 따라온 모래알이 숨어 있다. 반짝이는 모래알에는 파도소리가 묻어 있고 짭짤한 바다 냄새도 배어 있다. 내가 돌아서 올 때 바다가 몰래 나를 따라왔다. --- 「나를 따라온 바다」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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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디푸른 마음 들키고 싶지 않은 소박한 마음-
현란함이 아닌 단순하고 묵직한 곳에 자리한 따스한 시 『나를 따라온 바다』는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27년 만에 내는 장혜선 시인의 첫 번째 동시집이다. 무려 27년 만이라니! 시인은 분명 지금은 찾아보기조차 힘든 ‘완행버스’를 타고 지금 여기 도착한 것이리라. 그동안 세상을 향한 시인만의 길을 열어놓고 안 가는 데가 없었으나 그 길은 우리 눈에는 보이질 않고 어딘가 가만히 숨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시인은 원주에서 태어나 오랜 교직 생활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 고향인 원주에 자리 잡아 살고 있다. “꿈속에선/왜 자꾸 길을 잃는지//이리저리 헤매고/맘 졸이다가”(「꿈」) 다행히 길을 잃지 않고 있음에 ‘후유’ 안심한다. 이렇듯 시집의 시작 자리에 길에 대한 작품이 놓여있는 것은 자신의 길을 우직하게 지켜 가고자 하는 시인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길을 가다 산을 만나면 산에 오르기도 해야 할 것이다. 세속에 머물 때는 그야말로 온갖 걱정들이 우리를 짓누르지만, 산에 올라보면 어떤가. “널따란 학교 운동장이 지우개”만 하고 “저수지는 작은 접시”만 하게 보인다. 또 친구와 싸웠던 일도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일도 그저 하하 우습기만 한 것(「산에 오르면」)이다. 이런 생각이 가능한 이유는 “푸르디푸른 속마음을/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바람이 불어오면/잔잔히/바람길을 내주”는 마음 “비가 내리면/조용히/빗방울을 다 받아 주”는 저수지와 같은 넓은 마음 말이다. 잘난 체하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은 길을 걷다 지쳤을 때 거기가 정거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손만 들면 헌 몸을 실어 줄 완행버스가 되기도 한다. “할머니 하품도 싣고/아저씨 낮잠도 싣고”, “쌀자루도/밤자루도/모두 싣고//굽이굽이 산모퉁이”를 느린느릿 가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지니고 살다 보면 때론 외로움에 몸서리칠 때가 생긴다. “텅 빈 집안에/혼자 있으면//때깍때깍때깍/착 착 착 착//시계 소리만/방안 가득//앞산을 건너다봐도/하늘을 올려다봐도//바람 지나가는/소리뿐//와락/겁이 나고//갑자기/심심해”지는 순간 시(「혼자서」)는 슬며시 찾아온다. 하지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무심하게 살았을 곁을 지켜왔던 이런 마음자리들이 사라졌을 때 “늘/그 자리에 있는 줄/알았다.//오늘/의자가 없으니까/겨우 알았다.//말없이 받쳐 주던/그 고마움을”(「의자」)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나를 따라온 바다』 전편에 걸친 작품들의 소박한 제목만 살펴보아도 시인의 단순명료한 철학과 세상을 품고자 하는 푸근하고 넉넉한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감동은 현란함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 소박한 곳에서 꽃을 피운다. 꿈나들이 겨울이 너무 길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으로 겨울잠 자던 동시들을 깨우고 꼬까옷 입혀 봄나들이를 보냅니다. 저의 첫 동시집을 밝은 햇살 아래 내놓습니다. 동시 속 아기들이 자라서 청년이 되고 지금은 엄마가 된 옛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전합니다. 꽃처럼 나무처럼 쑥쑥 자라고 있는 사랑스런 연우와 모든 어린이 친구들의 마음에도 살포시 내려앉아 작은 노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오래 기다려 주고 곁에서 도와주신 모든 분들, 용기를 주신 권영상 선생님과 예쁜 그림으로 꼬까옷을 입혀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2022년 새날에 장혜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