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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서의 죽음 _007
토니오 크뢰거 _141 해설 | 이루지 못한 것을 향한 갈망 _250 |
Thomas 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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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행을 떠나자. 아셴바흐는 이 생각에 만족했다. 아주 멀리까지, 호랑이가 사는 곳까지 갈 필요는 없어. 침대차에서 하룻밤을 자고, 정겨운 남쪽 나라 어딘가 평범한 휴양지에서 서너 주 낮잠을 즐겨야지…….
--- p.17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중에서 “아, 베네치아! 멋진 도시죠! 역사가 오래된 데다가 오늘날에도 매력을 듬뿍 안고 있어서 교양을 갖춘 사람들에게는 뿌리칠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하는 도시라니까요!” --- p.33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중에서 아셴바흐는 완벽하게 잘생긴 소년의 모습에 감탄했다. 우아하게 내성적이고 창백한 얼굴이 벌꿀빛의 머리카락에 에워싸여 있었다. 오뚝한 코, 사랑스러운 입, 기품 있으면서도 더없이 아름답고 진지한 표정은 가장 고귀한 시대의 그리스 조각상을 연상시켰다. --- p.49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중에서 정돈되지 않은 것, 무절제한 것, 영원한 것, 무(無)에 대한 금지된 애착도 있었다. 이 애착은 예술가로서의 임무에 정면으로 대치되었으며, 바로 그래서 유혹적인 힘을 발휘했다. 빼어난 것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완벽한 것에서 쉬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기 마련이다. --- p.59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중에서 그는 자신의 눈이 영원한 아름다움의 비유를 보는 순간 느끼는 격렬한 공포에 대해 말했다. 아름다움의 모상을 보아도 아름다움을 생각하지 못하고 경외심을 느끼지 못하는 불경하고 사악한 사람의 욕망에 대해 말했다. 고귀한 사람이 신과 같은 용모, 완벽한 신체를 보게 되면 사로잡히는 성스러운 두려움에 대해 말했다. --- p.85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중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받는 사람보다 더 신적일세.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신이 있지만, 사랑받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신이 없기 때문이지. --- p.86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중에서 그게 베네치아였다. 수상쩍게 교태를 부리는 미인 같은 이 도시는 반은 동화였고, 반은 이방인들을 유혹하는 함정이었다. --- p.105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중에서 문제는 토니오가 한스 한젠을 사랑하고 그 때문에 많이 괴로워한다는 것이었다. 원래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불리하고 괴로워하기 마련이다. 열네 살 소년의 영혼은 이런 단순하고 가혹한 가르침을 이미 삶을 통해 터득했다. --- p.147 「토니오 크뢰거」 중에서 행복은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고 혼잣말했다. 그건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만족, 혐오감이 뒤섞인 만족일 뿐이야. 행복은 사랑하는 것, 어쩌면 사랑하는 대상에 잠시 신기루처럼 다가가는 것일 수 있어. --- p.170 「토니오 크뢰거」 중에서 누군가가 와야 했어! 잉게보르크가 와야 했고, 내가 없어졌다는 걸 알아채야 했어. 몰래 내 뒤를 따라와서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해야 했어. 우리랑 함께 안에 들어가자! 신나게 즐기자! 난 너를 사랑해! ……하지만 잉게보르크는 결코 오지 않았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그래, 그때와 똑같았어. 그런데도 나는 그때처럼 행복했어. 내 심장이 살아 있었거든. --- p.245 「토니오 크뢰거」 중에서 나는 위대한 아름다움, 마적인 아름다움을 좇는 모험을 하며 ‘인간’을 경멸하는 당당하고 차가운 사람들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지는 않아요. 글쟁이를 시인으로 만드는 뭔가가 있다면, 그건 바로 인간적인 것, 살아 있는 것, 평범한 것에 대한 나의 이 시민적인 사랑입니다. --- p.248 「토니오 크뢰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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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신적인 아름다움’ 앞에
복수하듯 돌이킬 수 없이 빠져드는 감정 토마스 만은 스스로 경험하거나 직면한 문제를 시적이고 정교한 문장으로 풀어내며 인간의 보편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투영되어 있다. 토마스 만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역시 마찬가지다. ‘구스타프 폰 아셴바흐’로 분한 노작가는 산책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기묘한 외양의 이방인에게 이끌려 “환각을 야기할 정도로” 강렬한 “여행에의 욕구”를 느끼고 베네치아로 향한다. 이방인이 깨우친 여행에의 욕구는 바로 명망 있는 작가로서 지녀야 하는 부담감과 ‘정신의 노예’로서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의 방증이다. 베네치아에서 머물던 아셴바흐는 “가장 고귀한 시대의 그리스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미소년 ‘타지오’를 만나 걷잡을 수 없이 그에게 매혹된다. 작가로서의 체면을 벗어던진 채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골목골목까지 소년을 뒤쫓고, 소년에게 잘 보이기 위해 머리를 염색하고 화장을 한다. 급기야 “진실로 신적인 인간의 아름다움” 앞에 완전히 굴복해 전염병이 퍼져나가는 베네치아를 떠나지 못하고 충격적인 말로를 맞는다. 아셴바흐는 토마스 만과 마찬가지로 양친에게서 상반된 성향을 물려받은 인물이다. 아버지로부터는 엄격하고 강직한 시민성을, 어머니로부터는 자유로운 예술성을 이어받는다. 하지만 작가로서의 명성을 유지하는 데는 아버지의 기질을 좀 더 요구받았고, 오로지 창작 활동을 위해 일평생 예술가로서의 자유와 열정을 짓누른 채 금욕적인 생활을 한다. 억눌린 감성과 감각은 노년에 이르러서야 타지오라는 ‘절대미’를 마주하며 완전히 폭발한다. 지성의 경고를 무시하고 오히려 복수하듯 감각적인 사랑에 돌이킬 수 없이 빠져든다. 작별의 시간이 도래하자 자신보다 힘없는 자에게 굽실거리던 감정이 잔인한 난폭함으로 방향을 바꿔 오랫동안의 노예 생활에 복수하려는 듯 보였다. 승리자는 패배자를 놓아주지 않고 패배자의 등에 무릎을 꿇고 앉아 짓눌렀다.(〈베네치아에서의 죽음〉, 137쪽) 억제된 아셴바흐의 감각을 움직이는 데는 “아름다운 수상도시 베네치아”의 풍경과 분위기가 큰 역할을 한다. 베네치아에 도착하자마자 곤돌라 사공에게 바가지를 쓸 뻔하지만, 아셴바흐는 매일 바다에 눈인사를 보내고 해변의 산책로나 안개 가득한 미지의 골목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베네치아의 매력에 점차 동화된다. 우리는 자주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거나 닿을 수 없는 대상을 갈망하고 동경하지만 희망하거나 다가설수록 멀어지는 것이 있고, 그럼에도 소망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아셴바흐는 끝내 타지오에게 가닿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지만, 그의 마지막이 어쩐지 완전하고 장엄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토마스 만의 대표작이자 작품 세계를 응축해놓은 중요한 작품 토마스 만의 초기작이자 문학적 세계관이 집약되어 있는 〈토니오 크뢰거〉 역시 ‘일종의 자화상’이라 할 만큼 자전적인 작품이다. 주인공인 ‘토니오 크뢰거’는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아셴바흐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에게서는 청교도적 기질을, 어머니에게서는 열정적인 기질을 타고난다. 하지만 토니오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시를 쓰는 예술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며 시민사회에서는 아웃사이더로 치부된다. 자연스레 자신과 다르게 인기가 좋은 동급생 ‘한스 한젠’과 ‘잉게보르크 홀름’을 동경하고, 잉게에게는 사랑의 감정까지 느낀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끝내 ‘낯선 존재’로 남은 토니오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여행지인 덴마크의 어느 섬에서 다정하게 춤을 추는 두 사람을 목격하고는 어린 시절처럼 심장이 요동치는 경험을 한다. 〈토니오 크뢰거〉는 시민성과 예술성이라는 중재될 수 없는 대립을 의식한 토마스 만의 대표작이자 작품 세계를 응축해놓은 중요한 작품이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과 〈토니오 크뢰거〉의 두 주인공은 모두 바다로 여행을 떠난다. 토마스 만에게 바다는 “정돈되지 않은 것, 무절제한 것, 영원한 것”을 상징한다. 즉 바다로의 여행은 익숙한 일상적 삶, 타자를 의식하고 타자에 의해 규제된 삶이 아닌 자신이 소망하고 동경하는 삶으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그리고 두 주인공이 각기 다른 결말에 이른 것처럼 우리가 꿈꾸고 마주하는 바다, 여행, 삶의 모습은 어느 것 하나 예정되어 있거나 동일하지 않다. “수많은 존재 방식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만큼 삶을 긍정하고 추동할 수 있는 게 또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