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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토니오 크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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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_007
토니오 크뢰거 _141

해설 | 이루지 못한 것을 향한 갈망 _250

저자 소개 2

토마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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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Mann

1875년 북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곡물상이자 시의회 의원이고, 어머니 율리아는 반은 포르투갈계이고 반은 크레올계인 남부 출신으로, 그는 아버지에게는 북독일적인 이성과 엄격한 도덕관을,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남국인의 정열과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는 소위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토마스 만의 유년 시절은 부유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사가 정리되면서 가족들은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된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토마스 만은
1875년 북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곡물상이자 시의회 의원이고, 어머니 율리아는 반은 포르투갈계이고 반은 크레올계인 남부 출신으로, 그는 아버지에게는 북독일적인 이성과 엄격한 도덕관을,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남국인의 정열과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는 소위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토마스 만의 유년 시절은 부유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사가 정리되면서 가족들은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된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토마스 만은 일찍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1893년에는 산문 습작을 했으며, 자신이 발간하는 『봄의 폭풍우』지에 글을 기고했다. 토마스 만은 다니던 김나지움을 그만두고 가족이 이미 1년 전에 이주한 뮌헨으로 가서 화재 보험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시작하지만, 곧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1895년에서 1896년까지 뮌헨 공과대학에서 미학, 예술 문학, 경제 및 역사 강의를 들었다. 그 시절, 김나지움 시절부터 이미 그를 사로잡았던 슈토름, 헤르만 바르, 폴 부르제, 헨리크 입센 등을 탐독하였고, 직접 『짐플리치시무스』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01년 첫 장편소설 『부르덴브르크 가의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이 무렵 단편소설들을 모아 단편집『토니오 크뢰거』(1903)도 발표하였다.

1905년 뮌헨 대학교 수학 교수의 딸인 카타리나(카챠라는 애칭으로 불림) 프링스하임과 결혼하여 3남 3녀가 태어났다. 하지만 토마스 만의 가족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토마스 만의 두 여동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듯이, 아들 클라우스 만이 자살했고, 막내 미하엘 만도 신경안정제 과용으로 의문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에서 미국으로 탈출하다가 남편을 잃은 모니카 만은 정신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1912녀 폐병 증세가 있어 부인이 다보스 요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문병을 간 토마스 만은 그곳의 분위기와 그곳에 체류하는 손님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느낀 인상에도 매료되었는데, 이런 체험을 글로 쓰기 시작, 점점 방대해져 12년 후에 완성된 것이 『마(魔)의 산』이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창작을 중단하고, 평론집 『비정치적 인간의 성찰』(1918)과 같은 정치 평론을 발표했다. 전쟁 초기 독일 문화와 독일 시민 계층의 와해를 걱정하며 국수주의적 입장을 보이며 형 하인리히 만과 불화를 겪게 되지만, 평론「독일 공화국」(1922)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민 계급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던 중 1929년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1931년 히틀러가 총통에 취임한 이후 나치에 협조하지 않은 작가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1933년 바그너 서거 50주년이 되던 날, 토마스 만은 뮌헨 대학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뇌와 위대성]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을 끝으로 그는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1935년에는 나치 정권에 대해 공개 반박을 하기에 이르렀고, 193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 교수가 되어 나치 타도를 부르짖었으며,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49년 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 강연 청탁으로 16년 만에 독일 땅을 밟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토마스 만은 현실의 공산주의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사회주의의 기본 이념인 사회적 평등을 존중했다. 그래서 구동독 정권에 대해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매카시 위원회는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다. 이에 환멸을 느낀 토마스 만은 1952년 미국을 떠나 스위스 취리히로 향했다. 1955년 동독 및 서독에서 F.실러 사망 150주년 기념강연을 하고, 고향 도시 뤼베크의 명예시민이 되어 스위스로 돌아왔지만, 혈전증 진단을 받아 8월 12일 8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취리히 근교 킬히베르크 교회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저서로는 『키 작은 프리데만 씨Der kleine Herr』(1897),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Buddenbrooks』(1901), 「트리스탄Tristan」(1903), 「굶주린 사람들Die Hungernden」(1903), 「글라디우스 다이Gladius Dei」(1903), 「토니오 크뢰거」(1903), 「신동Das Wunderkind」(1903), 「벨중족의 혈통」(1905), 「피오렌차Fiorenza」(1906), 「대공 전하」(1909), 「베네치아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1912), 「주인과 개Herr und Hund」(1919), 『마의 산Der Zauberberg』(1924), 「무질서와 젊은 날의 고뇌」(1926)등이 있으며, 『요셉과 그의 형제들』(1943)는 1926년에 쓰기 시작해서 1943년에야 비로소 완간되었다.

또한 『바이마르의 로테Lotte in Weimar』(1939), 『파우스트 박사Doktor Faustus』(1947), 『선택받은 사람』(1951), 「속은 여자Die Betrogene」(1953)가 있으며, 1910년부터 쓰기 시작한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Die Bekenntnisse des Hochstaplers Felix Krull』은 1954년 [회상록 제1부]라는 제목이 덧붙여져 출간되었으나, 결국 이 소설은 그의 미완성작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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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카를스루에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고려대학교 독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와 중앙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저지대』,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유배중인 나의 왕』, 『깊이에의 강요』, 『꿈의 해석』, 『열정』, 『기발한 자살여행』, 『종이약국』, 『파우스트』, 『슈틸러』, 『꿈의 책』,『책에 바침』, 『약탈 기사 로드리고와 꼬마둥이』 등이 있고, 논문으로 「로베르트 무질의 소설에 있어서 비유의 기능」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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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6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60쪽 | 270g | 125*188*13mm
ISBN13
9791160804133

책 속으로

그렇다면 여행을 떠나자. 아셴바흐는 이 생각에 만족했다. 아주 멀리까지, 호랑이가 사는 곳까지 갈 필요는 없어. 침대차에서 하룻밤을 자고, 정겨운 남쪽 나라 어딘가 평범한 휴양지에서 서너 주 낮잠을 즐겨야지…….
--- p.17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중에서

“아, 베네치아! 멋진 도시죠! 역사가 오래된 데다가 오늘날에도 매력을 듬뿍 안고 있어서 교양을 갖춘 사람들에게는 뿌리칠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하는 도시라니까요!”
--- p.33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중에서

아셴바흐는 완벽하게 잘생긴 소년의 모습에 감탄했다. 우아하게 내성적이고 창백한 얼굴이 벌꿀빛의 머리카락에 에워싸여 있었다. 오뚝한 코, 사랑스러운 입, 기품 있으면서도 더없이 아름답고 진지한 표정은 가장 고귀한 시대의 그리스 조각상을 연상시켰다.
--- p.49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중에서

정돈되지 않은 것, 무절제한 것, 영원한 것, 무(無)에 대한 금지된 애착도 있었다. 이 애착은 예술가로서의 임무에 정면으로 대치되었으며, 바로 그래서 유혹적인 힘을 발휘했다. 빼어난 것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완벽한 것에서 쉬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기 마련이다.
--- p.59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중에서

그는 자신의 눈이 영원한 아름다움의 비유를 보는 순간 느끼는 격렬한 공포에 대해 말했다. 아름다움의 모상을 보아도 아름다움을 생각하지 못하고 경외심을 느끼지 못하는 불경하고 사악한 사람의 욕망에 대해 말했다. 고귀한 사람이 신과 같은 용모, 완벽한 신체를 보게 되면 사로잡히는 성스러운 두려움에 대해 말했다.
--- p.85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중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받는 사람보다 더 신적일세.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신이 있지만, 사랑받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신이 없기 때문이지.
--- p.86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중에서

그게 베네치아였다. 수상쩍게 교태를 부리는 미인 같은 이 도시는 반은 동화였고, 반은 이방인들을 유혹하는 함정이었다.
--- p.105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중에서

문제는 토니오가 한스 한젠을 사랑하고 그 때문에 많이 괴로워한다는 것이었다. 원래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불리하고 괴로워하기 마련이다. 열네 살 소년의 영혼은 이런 단순하고 가혹한 가르침을 이미 삶을 통해 터득했다.
--- p.147 「토니오 크뢰거」 중에서

행복은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고 혼잣말했다. 그건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만족, 혐오감이 뒤섞인 만족일 뿐이야. 행복은 사랑하는 것, 어쩌면 사랑하는 대상에 잠시 신기루처럼 다가가는 것일 수 있어.
--- p.170 「토니오 크뢰거」 중에서

누군가가 와야 했어! 잉게보르크가 와야 했고, 내가 없어졌다는 걸 알아채야 했어. 몰래 내 뒤를 따라와서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해야 했어. 우리랑 함께 안에 들어가자! 신나게 즐기자! 난 너를 사랑해! ……하지만 잉게보르크는 결코 오지 않았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그래, 그때와 똑같았어. 그런데도 나는 그때처럼 행복했어. 내 심장이 살아 있었거든.
--- p.245 「토니오 크뢰거」 중에서

나는 위대한 아름다움, 마적인 아름다움을 좇는 모험을 하며 ‘인간’을 경멸하는 당당하고 차가운 사람들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지는 않아요. 글쟁이를 시인으로 만드는 뭔가가 있다면, 그건 바로 인간적인 것, 살아 있는 것, 평범한 것에 대한 나의 이 시민적인 사랑입니다.

--- p.248 「토니오 크뢰거」 중에서

출판사 리뷰

‘진실로 신적인 아름다움’ 앞에
복수하듯 돌이킬 수 없이 빠져드는 감정


토마스 만은 스스로 경험하거나 직면한 문제를 시적이고 정교한 문장으로 풀어내며 인간의 보편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투영되어 있다. 토마스 만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역시 마찬가지다. ‘구스타프 폰 아셴바흐’로 분한 노작가는 산책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기묘한 외양의 이방인에게 이끌려 “환각을 야기할 정도로” 강렬한 “여행에의 욕구”를 느끼고 베네치아로 향한다. 이방인이 깨우친 여행에의 욕구는 바로 명망 있는 작가로서 지녀야 하는 부담감과 ‘정신의 노예’로서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의 방증이다. 베네치아에서 머물던 아셴바흐는 “가장 고귀한 시대의 그리스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미소년 ‘타지오’를 만나 걷잡을 수 없이 그에게 매혹된다. 작가로서의 체면을 벗어던진 채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골목골목까지 소년을 뒤쫓고, 소년에게 잘 보이기 위해 머리를 염색하고 화장을 한다. 급기야 “진실로 신적인 인간의 아름다움” 앞에 완전히 굴복해 전염병이 퍼져나가는 베네치아를 떠나지 못하고 충격적인 말로를 맞는다.

아셴바흐는 토마스 만과 마찬가지로 양친에게서 상반된 성향을 물려받은 인물이다. 아버지로부터는 엄격하고 강직한 시민성을, 어머니로부터는 자유로운 예술성을 이어받는다. 하지만 작가로서의 명성을 유지하는 데는 아버지의 기질을 좀 더 요구받았고, 오로지 창작 활동을 위해 일평생 예술가로서의 자유와 열정을 짓누른 채 금욕적인 생활을 한다. 억눌린 감성과 감각은 노년에 이르러서야 타지오라는 ‘절대미’를 마주하며 완전히 폭발한다. 지성의 경고를 무시하고 오히려 복수하듯 감각적인 사랑에 돌이킬 수 없이 빠져든다.

작별의 시간이 도래하자 자신보다 힘없는 자에게 굽실거리던 감정이 잔인한 난폭함으로 방향을 바꿔 오랫동안의 노예 생활에 복수하려는 듯 보였다. 승리자는 패배자를 놓아주지 않고 패배자의 등에 무릎을 꿇고 앉아 짓눌렀다.(〈베네치아에서의 죽음〉, 137쪽)

억제된 아셴바흐의 감각을 움직이는 데는 “아름다운 수상도시 베네치아”의 풍경과 분위기가 큰 역할을 한다. 베네치아에 도착하자마자 곤돌라 사공에게 바가지를 쓸 뻔하지만, 아셴바흐는 매일 바다에 눈인사를 보내고 해변의 산책로나 안개 가득한 미지의 골목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베네치아의 매력에 점차 동화된다. 우리는 자주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거나 닿을 수 없는 대상을 갈망하고 동경하지만 희망하거나 다가설수록 멀어지는 것이 있고, 그럼에도 소망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아셴바흐는 끝내 타지오에게 가닿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지만, 그의 마지막이 어쩐지 완전하고 장엄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토마스 만의 대표작이자
작품 세계를 응축해놓은 중요한 작품


토마스 만의 초기작이자 문학적 세계관이 집약되어 있는 〈토니오 크뢰거〉 역시 ‘일종의 자화상’이라 할 만큼 자전적인 작품이다. 주인공인 ‘토니오 크뢰거’는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아셴바흐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에게서는 청교도적 기질을, 어머니에게서는 열정적인 기질을 타고난다. 하지만 토니오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시를 쓰는 예술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며 시민사회에서는 아웃사이더로 치부된다. 자연스레 자신과 다르게 인기가 좋은 동급생 ‘한스 한젠’과 ‘잉게보르크 홀름’을 동경하고, 잉게에게는 사랑의 감정까지 느낀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끝내 ‘낯선 존재’로 남은 토니오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여행지인 덴마크의 어느 섬에서 다정하게 춤을 추는 두 사람을 목격하고는 어린 시절처럼 심장이 요동치는 경험을 한다. 〈토니오 크뢰거〉는 시민성과 예술성이라는 중재될 수 없는 대립을 의식한 토마스 만의 대표작이자 작품 세계를 응축해놓은 중요한 작품이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과 〈토니오 크뢰거〉의 두 주인공은 모두 바다로 여행을 떠난다. 토마스 만에게 바다는 “정돈되지 않은 것, 무절제한 것, 영원한 것”을 상징한다. 즉 바다로의 여행은 익숙한 일상적 삶, 타자를 의식하고 타자에 의해 규제된 삶이 아닌 자신이 소망하고 동경하는 삶으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그리고 두 주인공이 각기 다른 결말에 이른 것처럼 우리가 꿈꾸고 마주하는 바다, 여행, 삶의 모습은 어느 것 하나 예정되어 있거나 동일하지 않다. “수많은 존재 방식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만큼 삶을 긍정하고 추동할 수 있는 게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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