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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나에게 對答하라 / 박세영
머리말. 속물 정치와 잉여 문화 사이에서 / 백욱인 삶의 동물/속물화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귀여움: 87년 에토스 체제의 붕괴와 그 이후 / 김홍중 잉여미학-뉴미디어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한 노트 / 김상민 루저는 ‘세상 속의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 한윤형 웹툰에 나타난 세대의 감성구조?잉여에서 병맛까지 / 김수환 자기 계발하는 주체의 해부학 혹은 그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 서동진 한국사회와 청년들-‘자기파괴적’ 체제비판 또는 배제된 자들과의 조우 / 소영현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증여의 논리 / 이길호 현대 일본의 새로운 ‘계급’을 둘러싼 지적 지형도 / 안천 Between Flexible Labor and a Flexible Lifestyle: A Study of Working Poor Young Single Women in the Post-Asian Financial Crisis South Korea / Jesook Song |
金洪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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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과 잉여라는 기호가 현상을 재현하거나 지칭하는 수준을 넘어서 현상을 파고들어 그것의 얼개와 의미를 드러내는 데까지 확장할 때 그것은 개념이 된다. 속물이나 잉여는 아직까지는 묘사나 재현을 위한 단어이지만 그것이 다른 실천과 맞물릴 때는 이 시대의 주요 담론으로 될 수도 있다.--- 「백욱인 <속물 정치와 잉여 문화 사이에서>」
그것이 신세대이건, 386세대이건 혹은 어떤 세대이건 간에 무치의 에토스는 진정성의 인간이라는 규범적 범주를 해체하고 그들을 ‘최후의 인간’이라는 새로운 범주로 재구성한다. 니체가 말하는 ‘가련한 안락’ 이외에는 삶에서 아무런 야망도 소망도 없는 이 포스트 히스토리의 지배적인 삶의 유형, 최후의 인간들이 영위하는 삶의 유형, 그것이 바로 귀여운 삶이다.--- 「김홍중 <삶의 동물/속물화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귀여움>」 잉여 인간은 디지털 뉴미디어 시대의 프롤레타리아트이고, 새로운 미디어 테크놀로지는 이들의 잉여적 시간과 파편화된 시간을 조직하기 위한 도구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김상민 <잉여 미학>」 시기할 것이 없는 곳에서 냉소는 싹튼다. ‘젊은이들의 보수화’란 것도 이런 문맥 위에 있다. ‘다른 것’을 보여주겠다는 ‘좌파 어른’들에게 젊은이들은 세상에 다른 게 어딨냐고 되묻는 것이다.--- 「한윤형 <루저는 ‘세상 속의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병맛 만화라는 이 기이한 콘텐츠는, 결국은 게임이나 현실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 “현실 자체가 레벨이 존재하는 슈퍼인생게임이라는 걸”(<슈퍼인생게임>) 깨달아야만 하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태어났다.--- 「김수환 <웹툰에 나타난 세대의 감성구조>」 이미 주어진 삶의 궤적에서 벗어나 자신의 자유와 희망을 꿈꾸는 주체의 욕망은 ‘자기 계발, 자기 경영’하는 주체를 통해 그/그녀의 삶을 자기책임과 자기실현의 문제로 각색하는 일상생활의 권력과 손을 잡는다.--- 「서동진 <자기 계발하는 주체의 해부학 혹은 그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주목할 것은 한국 소설이 청년과 배제된 자들과의 조우 장면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이다.…한국 사회에서 청년 문제는 청년에 관한 문제만을 뜻하지 않는다. 청년에 대한 한국 소설의 관심은 사실상 한국 사회에서 가장 문제적인 지점에 대한 날카로운 포착에 다름 아니다.--- 「소영현 <한국사회와 청년들>」 갤러리에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은 특정한 이름을 달고 다니는 자다. 그의 존재는 그의 말과 행동과 생산물로 드러난다. 이제 생산물은 단순히 교환을 유발하는 매개 형식이 아니라 그의 이름, 그의 존재 자체가 된다. 따라서 사람들이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이란 온갖 형태의 증여(들)이다.--- 「이길호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증여의 논리>」 일본 사회에는 파편화한 개인들이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도록 이끄는 사회적 승인 장치가 부족하다. 이들은 경제적 보상 못지않게 자기 긍정의 계기에 목말라 있다. 빈곤이라는 ‘생존’의 문제만이 아닌, 살아가는 의미의 결여라는 ‘실존’의 문제도 그들을 궁지로 내몬다.--- 「안천 <현대 일본의 새로운 ‘계급’을 둘러싼 지적 지형도>」 그들은 최저임금으로 파트타임 일자리를 가졌다. 그것은 단지 여성 및 학생운동 출신에 대한 구조적 차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이 일과 생활 방식 두 측면 모두에서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것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 「송제숙 <Between Flexible Labor and a Flexible Lifesty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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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과 ‘잉여’로 포착한 21세기 한국 사회의 자화상
한국 사회는 1987년 형식적 민주화 이후 현재까지 전 사회에 걸쳐 속물화가 전개됐다. 자기 성찰로 현실과 마주하는 진정성의 윤리 대신 성공과 안정이라는 속물 에토스가 사회의 주류를 차지했다. 한편 돈과 지위와 향락을 축적하기 위해 노력하는 속물의 행위는 잉여를 낳았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강압적 경쟁 체제에서 속물 대열에 진입하기 위해 온갖 자기 계발 노력을 기울였으나 경쟁에서 탈락한 자들에게는 냉소주의와 ‘잉여짓’으로 대표되는 잉여의 에토스가 깃들었다. ‘속물’과 ‘잉여’는 21세기 현재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두 용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속물 또는 잉여를 키워드로 삼아 1990년대 이후 변화한 한국 사회의 정서와 체질을 포착한 아홉 편의 논문을 묶고, 머리글을 덧붙였다. 속물과 잉여란 수사는 우리 사회를 비추는, 나아가 현실의 우리 자신을 마주하게 하는 거울이다. 독자들로선 논문마다 조금씩 달리 등장하는 속물 또는 잉여와 조우하면서 그들의 실체에 점차 다가갈 수 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속물과 잉여란 누구인가? 속물 : 체제 내에 포섭되어 축적하고 소비하는 주체다. 재산과 지위를 축적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다. 그러나 정작 자기 주체에 대한 성찰과 반성은 없다. 생존력이 매우 질기고 거짓말도 잘한다. 위선자와 졸부 중에 많았으나 이제 인구의 다수를 차지할 만큼 대세가 되었다. 비록 악덕 소유자이지만 악의 화신이 될 만한 힘과 용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선한 윤리의 힘든 경로를 추구할 진정성도 갖고 있지 않다. 잉여 : 속물 대열에 가담하여 속물 지위를 얻고자 노력했으나 실패한 자들 가운데 속물 되기를 유예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체제 안에서 살지만 이상한 방식으로 체제에 포섭된 비듬 같은 존재다. 주로 인터넷에서 패러디를 즐기지만 심하게 인정 경쟁에 빠져들면 현실로 걸어 나와 엽기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르기도 한다. 최근 이들이 하는 ‘잉여짓’이 정보자본주의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386 속물에서 이태백 잉여까지, 잉여짓에서 자기 계발 열풍까지 사회학자, 인류학자, 문화연구자, 국문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각기 다양한 이론과 방법으로 한국 사회의 속물성을 진단하고 잉여 문화를 해부한다. 논문들은 물론 학술적이고 때론 현실 비판적이다. 연구 대상에서 세대로는 속물화한 386세대와 스스로를 잉여라 부르는 청년 세대를 아우르고, 현상으로는 그들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잉여짓과 자기 계발 열풍 등을 포함한다. 각 논문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87년 체제의 붕괴와 속물 에토스, 워킹푸어의 보편화와 소셜미디어의 성장, 학벌 사회의 잉여 인간과 젊은 층의 보수화, 청년들의 냉소주의와 병맛 만화의 인기, 신자유주의 통치술과 자기계발서 열풍, 노동시장 유연화와 정보테크놀로지의 확산, 청년 백수와 기타 사회적 약자의 연대, 신자유주의 체제와 자유주의적 생활 방식 등으로 다양하다. 언뜻 별개의 문제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논문을 한 편 한 편 읽다 보면 이들 현상이 서로 밀접하게 엮이어 영향을 주고받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속물 문제는 속물만의 문제가 아니고, 잉여 문제는 잉여만의 문제가 아니다. 속물과 잉여는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고, 이 상호 관계는 신자유주의의 자기 관리 기술과 정보자본주의의 자동 축적 기술이 결합할 때 본격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속물과 잉여란 문학적 수사의 힘 속물과 잉여는 물론 사회과학적 개념이라기보다는 문학적 수사에 가깝다. 그러나 1980년대를 풍미했던 ‘민중’이란 용어처럼 어떤 국면에서는 문학적 상상력이 던져주는 울림이 사회과학적 개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도식적 이해보다 더 생생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한 시대의 유효한 논의는 단어에서 출발해 과도적인 담론 과정을 거쳐 개념으로 상승한다. 속물이나 잉여는 아직까지는 묘사나 재현을 위한 단어이지만 그것이 다른 실천들과 맞물릴 때는 이 시대의 주요 담론으로 될 수도 있다. 책의 특징...'논문선' 기획 취지 ‘논문선’이란? 잉여를 꿰어 살아 있는 책을 만들다 매년 수많은 많은 논문들이 발표되고 축적된다. 나름 의미 있고 훌륭한 논문들도 많다. 하지만 글쓴이와 심사자 범위를 넘어 독자에게 전달되는 논문은 많지 않다. 축적된 논문들은 읽히지 않은 채 잉여로 넘친다. 그래서 잉여 논문을 꿰어 살아 있는 책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생겨났다. 이 책은 바로 그 같은 욕망에서 출발한 ‘논문선’이라는 기획물의 첫 권이다. 이미 발표된 논문을 어떤 주제와 문제의식을 갖고 선별하여 배치함으로써 우수한 논문이 좀 더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후 주제를 바꿔 ‘논문선’을 계속 펴낼 계획이다. 읽지 않는 논문들, 찾지 않는 논문들 현재 한국연구재단의 등재 학술지는 후보학술지를 포함해 2,100종이 넘는다. 1990년대 등재지 정책 이후 많은 논문이 학술지에 실렸다. 학술 논문의 수가 늘어난 것은 물론 다루는 주제와 내용의 폭도 다양해졌다. 그러나 파편처럼 흩어져 논문을 인용하려는 사람 이외는 별로 찾지 않게 되었다. 지식인들 간 논쟁도 사라지고 논문의 사회적 영향력도 줄어들었다. 대중과 만남을 주선하던 계간지들이 하나둘 사라지면서 논문과 대중의 접촉점도 엷어졌다. 미디어 환경을 포함해 세상이 많이 바뀐 탓이다. 인터넷 블로그나 학술 논문 데이터베이스가 이를 대신하고 있지만 그리 신통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 논문 큐레이션 서비스를 통한 학문과 대중의 새로운 만남 우선 ‘논문선’은 특정 주제에 대한 현재의 논의 내용을 보여 준다. 책으로 묶인 논문들은 해당 주제에 대한 현재의 연구 경향과 연구 수준을 드러내 줄 것이다. 이를 통해 서로 쪼개져 있는 분과 학문들이 서로 이야기를 걸고 주제를 심화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 또한 ‘논문선’은 연구자 간 상호 소통을 확산한다. 전공 분야와 경력을 가로지르며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고 활발한 논쟁을 통해 논문으로 현실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논문선’은 전문 논문도 대중과 만날 수 있고, 또 만나야 함을 보여 준다. 일반 독자로선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좋은 논문이 있더라도 그것을 직접 찾아 읽기 어렵다. 하지만 전문 연구자가 주제별로 논문을 선별해 제공한다면 필요한 논문을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논문 큐레이션 서비스라 할 수 있다. 책의 구성_논문 내용 백욱인은 속물과 잉여의 발생 배경과 상호 관계를 살피고, 지금 우리에게서 속물과 잉여 담론이 갖는 실천적 의미를 새긴다. 또한 수많은 학술 논문들이 읽히지 않은 채 잉여로 흘러넘치는 시대에 이를 꿰어 한 권의 책으로 ‘논문선’을 펴내는 취지도 밝힌다. 김홍중은 87년 에토스 체제의 핵심을 진정성으로 파악하고, 이후 한국 사회의 에토스 변화를 탐색한다. 그에 따르면 포스트 87년을 지배하는 에토스는 타인 지향적인 몰염치의 속물화이며, 그것은 곧 성찰적이고 주체적인 근대적 인간의 해체를 의미한다. 김상민은 잉여 탄생의 물적 기반, 조건, 환경을 연구하고, 이 새로운 주체 혹은 존재·행동 방식이 어떻게 우리 삶을 관통하는지 밝혀낸다. 그에 따르면 잉여는 정보 테크놀로지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결합이 낳은 산물이며 동시에 그 양자를 이끌어 가는 동력이다. 한윤형은 학벌 사회의 잉여 인간들이 빠져 드는 루저 문화에 대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에 따르면 루저 감성은 정치적인 각성과 자기 학대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다. 그는 새로운 것이 없음을 자각하는 ‘냉소’라는 정서에서 정치성의 발생 가능성을 엿본다. 김수환은 웹툰을 청년층 개인의 인격과 주체성이 조형, 성장, 상실, 소멸되는 기호-생태학적 공간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한국 웹툰계의 독특한 현상인 ‘병맛 만화’의 언어적 특수성과 세대론적 함의를 그것의 생산과 소비의 적극적 주체인 20대 청년 문제와 관련시켜 고찰한다. 서동진은 한국 자본주의의 정체성이 변화하는 과정과 불가분한 상호 구성적인 과정으로 새로운 주체화의 논리와 그 과정에 관심을 둔다. 그리고 이를 ‘자기 계발하는 주체’라는 주체화의 정치학으로 정의하고 분석한다. 소영현은 청년 문제에 대한 해법과 전망을 제시하고 있는 한국 문학의 사례들을 검토한다. 청년 문제는 청년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재생산 구조와 깊이 연관돼 있다. 결국 청년 문제가 한국 사회의 핵심 문제임을 확인한다. 이길호는 디시인사이드란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벌어지는 행위의 양상과 논리를 인류학의 ‘증여’ 개념의 적용, 비교를 통해 해명한다. 이 글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그가 디시 특정 갤러리에 직접 출현해 수행한 현지 조사에 기반하고 있다. 안천은 현대 일본 사회의 새로운 계급인 ‘프레카리아트’ 출현을 둘러싸고 이를 해석하는 일본의 주요한 사상가와 그들의 이론을 소개한다. 그의 말처럼 일본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새롭게 상상하는 출발점이 될지 모른다. 송제숙은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서로 수렴되는 현상의 전후 관계를 추적한다. 특히 과거 리버럴 사회주의자였던 비혼 여성 세 명의 사례를 통해 좌파 지식인들이 신자유주의 체제는 비판하면서도 자유주의적 생활 방식은 즐기는 양태를 해석한다. 〈미디어 리뷰〉 한겨레: 학계와 대중 잇는 '논문선' 시리즈(안선희 기자) ▶ 경향신문: [저자와의 대화] ‘속물과 잉여’ 백욱인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김종목 기자) ▶ 동아일보: 어려운 논문 대중 앞으로(신성미 기자) ▶ 중앙일보: [책과 지식] 자동차에 꽂히고, 패션에 빠지고 … 그 허영의 시장(양성희 기자) ▶ 매경이코노미: [BOOK] 속물과 잉여 | 부끄러운 한국 사회의 자화상(김헌주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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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미 속물이지만, 벌써 속물은 되지 말자
세계화와 인터넷 그리고 경쟁의 격화는 잉여를 낳는다. 잉여는 잉여짓을 하고 그것이 낯선 386들은 헛기침으로 혁신의 기억을 날려 보낸다. 지금 대한민국에 속물과 잉여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논문선’이 무엇인가? 발표된 논문을 새로운 주제의식으로 골라 다시 배치한 ‘책-장치’다. 그런 ‘책-장치’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좋은 논문이 많이 발표되지만 대중과 연결되지 않는다. 전문 논문이 대중 의식과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학술 논문은 발표하면 어느 정도 읽는가? 논문 심사자와 관련 전문가 몇 명이 읽는다. 연구자도 남의 논문을 별로 읽지 않는다. 전문화의 폐해다. 학술지에 실리고 나면 끝이다. 주제별 논문집 형식의 책은 처음이 아니다. 이 책은 뭐가 다른가? 주제 논문집은 기획하여 집필하는 과정을 밟는다. 이 책은 주제별 묶음집이지만 이미 발표된 논문을 선택하고 배열한다. 논문 재활용이다. ‘재활용’해서 다른 방식으로 출판하면 더 많은 대중과 연결된다고 확신하나? 그것은 주제 선정과 문제의식, 선택과 배열, 그리고 선별된 논문의 힘에 달린 문제다. 대중은 충실한 문제의식과 섬세한 분석, 좋은 문장으로 구성된 책에 매력을 느낀다. 어떤 논문을 골랐나? 선택과 배열만으로 뭔가를 전달하고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논문이 모여 새로운 이야기가 되도록 고르고 안쳤다. 선택과 배열 자체로 말할 수 있는 것, 그게 선별의 기준이었다. 첫 호의 주제가 ‘속물과 잉여’다. 무슨 뜻인가? 인터넷 시대의 한국 사회에서 대중의 생활과 의식이 만나고 헤어지는 교차점, 과거와 미래가 함께 있는 지점을 찾았다. 속물 에토스의 핵심은 무엇인가? 속물 에토스는 일상의 삶과 닿아 있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영악하고 비루한 자세이자 태도다. 우리 시대의 속물은 누구인가? 특히 386세대를 가리키는 것인가? 속물은 그냥 속물이다. 386세대만 속물이겠는가? 단, 속물이 되려고 해도 되지 못하는 계급과 집단이 있다. 속물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 하나 있다. 그것은 비교적 안정된 일자리다. 속물의 전제 조건이 안정된 일자리라면 잉여의 물적 기반은 무엇인가? 잉여의 기반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정보자본주의다. 잉여는 세계화와 인터넷, 그리고 치열한 경쟁의 산물이다. 잉여는 아웃사이더인가? 잉여는 체제에서 밀려난 아웃사이더가 아니다. 잉여는 체제에 포함되어 있지만 스스로 밀려났다고 느끼며 체제를 재생산하는 데 일조하는 집단이다. 잉여가 정치 세력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잉여짓’이 정치성을 띨 수 있는가? 잉여는 정치 세력이 아니다. 주어진 상태에서 특정한 잉여의 모드를 보여 줄 뿐이다. 잉여짓은 정치성을 띨 수도 있다. 〈나꼼수〉와 ‘일베’는 뭔가? 〈나꼼수〉는 속물 잉여가 만든 정치 놀이였다. ‘일베’는 사악한 속물이 부추기는 잉여 놀이다. 놀이가 지나쳐 놀이의 선을 넘어 현실로 돌아오면 충돌이 생긴다. 잉여는 속물을 갈망하는가? 잉여는 속물들의 삶에 다다를 경제적 기회가 없다. 그들은 속물의 경제적 기반을 이루는 틀에서 배제되어 있다. 잉여는 속물을 갈망하지는 않지만 속물의 경제적 토대는 부러워한다. 속물과 잉여에서 벗어나는 길은 있는가? 그런 길이 따로 있겠는가? 그냥 속물이나 잉여라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알음과 반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늙은) 속물과 (젊은) 잉여의 연대는 가능한가? 연대할 조건과 이유가 만들어지면 굳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속물이나 잉여 모두 과학적 개념이라기보다는 존재의 모양새를 묘사하는 수사적 용어에 불과하다. 그런 수사적 용어를 사용하면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나? 속물과 잉여 현상의 밑바닥에 놓여 있는 사회 현실을 보아야 한다. 속물과 잉여라는 수사는 현실의 자신을 들여다보게끔 들이대는 일종의 구리거울이다. 머리말의 마지막 문장인 “우리 이미 속물이지만, 벌써 속물은 되지 말자”는 무슨 뜻인가? ‘이미’는 단순 시제로 과거이고, ‘벌써’는 도래하는 과거다. 데리다의 ‘future’와 ’avenir’를 과거 시제로 뒤집어 패러디한 것이다. 이 문장의 뜻은 하나가 아니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 뜻이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다가가면 좋겠다. 시처럼 읊다 보면 꽂힐 때가 있을 것이다. 당신은 속물인가 아닌가? 나는 이미 속물도 한참 속물이다. 여러분도 자신이 이미 속물임을 인정한다면 “벌써 속물이냐?“라는 말은 듣지 않도록 과거를 미리 예비하시기 바란다. 『논문선』 2호 계획은 어떻게 되나? 주제가 잡혔나? 문제는 무엇을 고르고자 하는 강력한 욕구와 고를 수 있는 논문의 집합에 달려 있다. 글을 고르고 틀을 짜기 위한 마음의 흔들림이 첫 호가 나간 후에도 지속되면 좋겠다. 다음 주제는 아직 모르겠다. 당신은 누구인가? 백욱인이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 교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