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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 태동기
11장 고백 12장 제삿날 13장 돌아와서 14장 자살 15장 석이의 청춘 16장 군중심리 17장 뜨거운 모래 18장 환(環)의 죽음 제4편 긴 여로 1장 사춘(思春)의 상처 2장 계명회 3장 내 땅에서 4장 진실 5장 아침 커피 6장 수모 7장 마약의 심연 8장 판정패 9장 풍류 따라 10장 사랑과 미움 11장 어머니의 노여움 12장 귀부인들 13장 왜 혼자 사는가 14장 쫓기는 사람들 어휘 풀이 |
Park, Kyung-Ree,朴景利,박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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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는 봉순이 문제를 아직 꺼내놓지 못하는 자신의 감정을 다시 되씹어본다. 서울서 함께 내려온 김환의 모습도 눈앞을 지나간다. 형평운동에 깊이 관여했으며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청년들과 부단히 접촉하고 있는 관수의 근황도 머릿속에 떠오른다. 김환이 돌아왔기 때문에 관수의 현 위치를 검토해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늙어서, 아주 늙어버렸기 때문에 기대할 수 없는 혜관의 모습도 눈앞을 지나간다.
---「자살」중에서 고등계(高等係)에는 연학과 줄이 닿는 형사가 하나 있긴 있었다. 오륙 년 전 홍이가 하동서 진주경찰서로 넘겨졌을 때 약을 먹여놓은 사람인데, 그동안 부산으로 가 있다가 요즘 다시 진주로 돌아온 오형사, 그러나 연학은 이번 사건을 위해 그에게 접근하지는 않았다. 홍이의 경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홍이 진주로 넘어왔을 때는 이미 혐의가 없다는 그네들 심증이 있었고 사실 캐봐야 캐낼 건더기, 근거가 없었으니까 형사를 매수하는 데 위험이 적었다. ---「환의 죽음」중에서 환국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으나 다음 순간 두 손을 등 뒤에 감춘 소녀의 얼굴은 거의 잿빛이었다. 크고 뚜렷한 눈동자가 환국이를 노려본다. 그 눈빛은 살기였으며 어둡게 타는 불꽃이었다. 언제 그랬는지 소녀는 병원 안으로 사라졌고 환국이는 병원 밖에 나와 있었다. 하늘은 눈이 부시게 푸르고 차가웠다. 환국은 토할 것만 같은 현기를 느끼며 걸음을 옮긴다. ---「사춘의 상처」중에서 《청조(靑鳥)》 잡지사 사무실 문을 밀고 강선혜가 푸른 머플러를 너풀거리며 들어섰을 때 둘러앉아서 얘기를 하며 웃곤 하던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었다. 아직은 가을인데, 책상과 의자와 사람 이왼 별다른 비품이 없는 사무실 안은 초겨울같이 썰렁했다. ---「수모」중에서 텅 비어버린 운동장을 질러서 건물 안으로 들어간 봉춘네는 몸을 부르르 떤다. 운동장의 바람 대신 교사 안의 냉기가 심장을 꿰뚫는 것 같다. 그것은 추위 때문만은 아니다. 봉춘네는 교회당을 제외한 큰 건물에 대해서는 늘 무섬증 비슷한 것을 갖고 있었다. 기웃기웃하다가 봉춘네는 눈에 띄는 도어를 살며시 밀어본다. 난롯가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책을 읽고 있는 석이 뒷모습이 보인다. ---「사랑과 미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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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삶이 평탄했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삶이 문학보다 먼저지요.” 고전의 품격과 새 시대의 감각을 동시에 담아낸 박경리 타계 15주기 추모 특별판 1957년 단편 「계산」으로 데뷔해, 26년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 『토지』로 한국 문학사에 거대한 이정표를 남긴 거장 박경리. 타계 15주기를 맞아 다산북스에서 박경리의 작품들을 새롭게 엮어 출간한다. 한국 문학의 유산으로 꼽히는 『토지』를 비롯한 박경리의 소설과 에세이, 시집이 차례로 묶여 나올 예정인 장대한 기획으로, 작가의 문학 세계를 누락과 왜곡 없이 온전하게 담아낸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이번 기획에서는 한국 사회와 문학의 중추를 관통하는 박경리의 방대한 작품들을 한데 모아 구성했고, 새롭게 발굴한 미발표 유작도 꼼꼼한 편집 과정을 거쳐 출간될 예정이다. 오래전에 고전의 반열에 오른 박경리의 작품들은 새롭게 읽힐 기회를 갖질 못했다. 이번에 펴내는 특별판에서는 원문의 표현을 살리고 이전의 오류를 잡아내는 것을 넘어, 새로운 시대감각을 입혀 기존의 판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책을 선보인다. 이전에 박경리의 작품을 읽은 독자에게는 기존의 틀을 부수는 신선함을, 작품을 처음 접할 독자에게는 고전의 품위와 탁월함을 맛볼 수 있도록 고심해 구성했다. 이전의 고리타분함을 말끔하게 벗어내면서도 작품 각각의 고유의 맛을 살린 표지 디자인으로, 독서는 물론 소장용으로도 손색이 없게 했다. 한국 문학사에 영원히 남을 이름, 박경리 문학의 정수를 다산북스의 기획으로 다시 경험하길 바란다. “문학에 대하여 나는 다시 나에게 물어야만 할 것 같다. 멀고 먼 피안에서 서성대는 진실을 위하여.” 우리 시대의 최고의 고전 한국 문학사의 걸작을 현대적 감각으로 새로 만나다! 명실상부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자리하고 있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가 첫 집필 54년 만에 현대적 감각으로 다시 탄생한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근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토지』는 우리말의 미적 감각을 첨예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토지』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국문학의 대표 작품으로서 오늘날까지 범국민적으로 읽혀온 것이 사실이다. 『토지』는 1969년부터 1994년까지 장장 26년이라는 세월 동안 집필되었으며, 200자 원고지 기준 4만여 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토지』는 구한말에서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그날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는다. 일제의 수탈 속에서 우리 민족의 고난의 삶을 생생하게 형상화해 내는 인간 보편성에 관한 근원적인 탐구를 통해 대하소설 『토지』는 20세기 한국문학의 정수로 자리매김했다. 2024년은 『토지』가 완간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다산책방에서 출간하는 2023년판 『토지』는 이미 완성된 지 30년이 된 이 작품이 최대한 오류 없이, 최대한 훼손 없이 독자들께 전달될 수 있도록 수 개월간의 자료조사를 통해 심혈을 기울인 편집 과정을 거쳤다. 어휘 풀이와 인물 계보도 등도 재정비하면서 좀 더 간결하고 정확하게 독자들께 이해되도록 했다. 이전의 판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박경리 선생의 에세이 「『토지』를 쓰던 세월」이 최초로 수록되어, 작가 박경리가 『토지』를 집필하는 긴 시간 동안의 소회를 독자가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느껴볼 수 있도록 도왔다. ‘『토지』를 쓰던 세월’ 서문 최초 수록 “무수한 사건 무수한 사람들, 밀림과도 같은 생각의 넓이와 깊이.” “지금 나는 지극히 편안하고 외로움 같은 것은 느끼지 않는다. 나는 이제 늙었고 자식들은 남과 같이 제법 순탄해졌기 때문에 하소연할 아무런 말도 없고 언짢은 일을 기억할 필요도 없으며 감사할 뿐이다. 그러나 기억해 두어야 할 일은 있다. 『토지』를 쓰는 동안 도움을 주시고 격려해주신 분들, 7년의 수난기에 우리를 따스하게 감싸주신 분들, 그런 분들이 적지 않았다.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사실 나는 지금 망연자실해 있다는 것이 정직한 고백이다. 내가 뭘 어쨌기에? 이렇게 단비가 내게 내리는가. 치열하게 살지 않는 목숨은 없다. 어떠한 미물의 목숨이라도 살아남는다는 것은 아프다. 그리고 어떠한 역경을 겪더라도 생명은 아름다운 것이며 삶만큼 진실한 것은 없다. 비극과 희극, 행과 불행, 죽음과 탄생, 만남과 이별, 아름다움과 추악한 것, 환희와 비애, 희망과 절망, 요행과 불운, 그러한 모든 모순을 수용하고 껴안으며 사는 삶은 아름답다. 그리고 삶 그 자체만큼 진실된 것도 없다. 문학은 그 모순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표현 아니겠는가. 나는 지금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문학에 대하여 나는 다시 나에게 물어야만 할 것 같다. 멀고 먼 피안에서 서성대는 진실을 위하여.” _박경리, 「『토지』를 쓰던 세월」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