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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혼백(魂魄)의 귀향
6장 해체(解體) 제2편 운명적(運命的)인 것 1장 밀수사건(密輸事件) 2장 송화강(松花江)의 봄 3장 서울과 동경(東京) 4장 명정리(明井里) 동백(冬柏) 5장 황량(荒凉)한 옛터 어휘 풀이 |
Park, Kyung-Ree,朴景利,박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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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은 삼일까지 쉬기 때문에 홍이는 집에 있었다. 물론 아이들도 집에 있었고 식구가 모두 지내지도 않는 설 때문에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리고 달포 전부터 임이가 와 있었다. 나이는 쉰여덟, 아직 환갑이 멀었는데 칠십 노인처럼 늙고 초라해진 모습을 본 홍이는 차마 가라 하지 못하였고 돈을 쥐여주는 것도 한두 번, 흐지부지하는 홍이 태도에 얼씨구나 잘되었다 싶었던지 눌러붙어 있었는데 한 달 전이던가 보연은 입술이 툭사발같이 부어서 남편에게 임이를 보내라 했다.
---「밀수사건」중에서 여행 가방을 메고 간편한 차림의 중년 사내가 허공로(許公路)에 있는 운회약국으로 들어왔다. 매우 세련된 모습이었다. 그는 일본말로 소화제를 달라고 했다. 흰 가운을 입은 여자가 돌아서서 약을 꺼내는데 머리를 걷어 올린 목덜미가 눈이 부시게 희었다. 여자는 포장을 하다 말고 사내를 쳐다보았다. 동시에 사내도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두 사람은 돌이 된 듯 행동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본다. ---「송화강의 봄」중에서 찬하와 함께 오가타는 유인성의 집 앞까지 왔다. 집주인의 성품처럼 조촐하고 단정해 보였던 옛날과는 다르게 밖에서 바라본 집은 노쇠하여 허덕이는 것 같은, 묘하게 어둡고 찬 바람이 이는 느낌이었다. 오가타는 잠시 동안 눈을 감았다. 지난 일들이 발밑을 감아올리는 삭풍과 같이 그의 의식 속을 휘몰고 지나갔다. 그것은 사건이기보다 세월이었던 것 같았다. 세월이었다는 느낌 속에는 한 아이의 해맑은 얼굴이 있었다. ---「서울과 동경」중에서 전차에서 영광이 내렸다. 가벼워 뵈는 여행 가방을 들고 헐렁하고 얇은 회색 잠바 차림이다. 땡땡 종을 치며 우둔한 몸짓으로 떠나는 전차를 잠시 동안 영광은 바라보다가 역 광장으로 들어선다. 땡땡 치는 전차 종소리가 경쾌하게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으나 눈에 뵈는 모든 물체는 침묵과 안개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보따리를 이고, 짐짝 가방을 들고, 아이 손목을 잡고, 여자 남자, 젊은이 늙은이 형형색색의 사람들은 광장을 질러서 역 대합실로 사라지고 있었다. ---「명정리 동백」중에서 하얼빈에서 신경까지, 언덕 하나 없는 광활한 대륙이 눈앞에 떠올랐다. 숨이 막히게 끝이 없었던 광막한 대지, 그것은 어떤 공포감이었다. 홍이는 영광에게 바다는 불안하다고 말했다. 만주의 그 끝없는 벌판을 연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들고나고 하는 배들의 그 뱃고동 소리 때문이었을까. 떠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은 더욱 견딜 수 없는 일이다. ---「황량한 옛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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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삶이 평탄했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삶이 문학보다 먼저지요.” 고전의 품격과 새 시대의 감각을 동시에 담아낸 박경리 타계 15주기 추모 특별판 1957년 단편 「계산」으로 데뷔해, 26년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 『토지』로 한국 문학사에 거대한 이정표를 남긴 거장 박경리. 타계 15주기를 맞아 다산북스에서 박경리의 작품들을 새롭게 엮어 출간한다. 한국 문학의 유산으로 꼽히는 『토지』를 비롯한 박경리의 소설과 에세이, 시집이 차례로 묶여 나올 예정인 장대한 기획으로, 작가의 문학 세계를 누락과 왜곡 없이 온전하게 담아낸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이번 기획에서는 한국 사회와 문학의 중추를 관통하는 박경리의 방대한 작품들을 한데 모아 구성했고, 새롭게 발굴한 미발표 유작도 꼼꼼한 편집 과정을 거쳐 출간될 예정이다. 오래전에 고전의 반열에 오른 박경리의 작품들은 새롭게 읽힐 기회를 갖질 못했다. 이번에 펴내는 특별판에서는 원문의 표현을 살리고 이전의 오류를 잡아내는 것을 넘어, 새로운 시대감각을 입혀 기존의 판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책을 선보인다. 이전에 박경리의 작품을 읽은 독자에게는 기존의 틀을 부수는 신선함을, 작품을 처음 접할 독자에게는 고전의 품위와 탁월함을 맛볼 수 있도록 고심해 구성했다. 이전의 고리타분함을 말끔하게 벗어내면서도 작품 각각의 고유의 맛을 살린 표지 디자인으로, 독서는 물론 소장용으로도 손색이 없게 했다. 한국 문학사에 영원히 남을 이름, 박경리 문학의 정수를 다산북스의 기획으로 다시 경험하길 바란다. “문학에 대하여 나는 다시 나에게 물어야만 할 것 같다. 멀고 먼 피안에서 서성대는 진실을 위하여.” 우리 시대의 최고의 고전 한국 문학사의 걸작을 현대적 감각으로 새로 만나다! 명실상부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자리하고 있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가 첫 집필 54년 만에 현대적 감각으로 다시 탄생한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근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토지』는 우리말의 미적 감각을 첨예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토지』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국문학의 대표 작품으로서 오늘날까지 범국민적으로 읽혀온 것이 사실이다. 『토지』는 1969년부터 1994년까지 장장 26년이라는 세월 동안 집필되었으며, 200자 원고지 기준 4만여 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토지』는 구한말에서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그날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는다. 일제의 수탈 속에서 우리 민족의 고난의 삶을 생생하게 형상화해 내는 인간 보편성에 관한 근원적인 탐구를 통해 대하소설 『토지』는 20세기 한국문학의 정수로 자리매김했다. 2024년은 『토지』가 완간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다산책방에서 출간하는 2023년판 『토지』는 이미 완성된 지 30년이 된 이 작품이 최대한 오류 없이, 최대한 훼손 없이 독자들께 전달될 수 있도록 수 개월간의 자료조사를 통해 심혈을 기울인 편집 과정을 거쳤다. 어휘 풀이와 인물 계보도 등도 재정비하면서 좀 더 간결하고 정확하게 독자들께 이해되도록 했다. 이전의 판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박경리 선생의 에세이 「『토지』를 쓰던 세월」이 최초로 수록되어, 작가 박경리가 『토지』를 집필하는 긴 시간 동안의 소회를 독자가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느껴볼 수 있도록 도왔다. ‘『토지』를 쓰던 세월’ 서문 최초 수록 “무수한 사건 무수한 사람들, 밀림과도 같은 생각의 넓이와 깊이.” “지금 나는 지극히 편안하고 외로움 같은 것은 느끼지 않는다. 나는 이제 늙었고 자식들은 남과 같이 제법 순탄해졌기 때문에 하소연할 아무런 말도 없고 언짢은 일을 기억할 필요도 없으며 감사할 뿐이다. 그러나 기억해 두어야 할 일은 있다. 『토지』를 쓰는 동안 도움을 주시고 격려해주신 분들, 7년의 수난기에 우리를 따스하게 감싸주신 분들, 그런 분들이 적지 않았다.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사실 나는 지금 망연자실해 있다는 것이 정직한 고백이다. 내가 뭘 어쨌기에? 이렇게 단비가 내게 내리는가. 치열하게 살지 않는 목숨은 없다. 어떠한 미물의 목숨이라도 살아남는다는 것은 아프다. 그리고 어떠한 역경을 겪더라도 생명은 아름다운 것이며 삶만큼 진실한 것은 없다. 비극과 희극, 행과 불행, 죽음과 탄생, 만남과 이별, 아름다움과 추악한 것, 환희와 비애, 희망과 절망, 요행과 불운, 그러한 모든 모순을 수용하고 껴안으며 사는 삶은 아름답다. 그리고 삶 그 자체만큼 진실된 것도 없다. 문학은 그 모순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표현 아니겠는가. 나는 지금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문학에 대하여 나는 다시 나에게 물어야만 할 것 같다. 멀고 먼 피안에서 서성대는 진실을 위하여.” _박경리, 「『토지』를 쓰던 세월」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