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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만세(萬歲) 이후
1장 끈 떨어진 연 2장 전주행(全州行) 3장 겨울 혼사(婚事) 4장 상해에서 온 사람 5장 별빛이 쏟아지는데 6장 출옥 7장 밀령(密令) 8장 부녀(父女) 9장 흥정 10장 악랄한 처방 11장 백정은 예수도 믿을 수 없었다 12장 비어버린 번데기 13장 친정에 와서 14장 나들이 15장 고뇌 16장 자객 17장 혈투 18장 옛터 제2편 어두운 계절 1장 용정행 2장 아버지의 망령(亡靈) 3장 영원한 잠 4장 형제 5장 신여성론 어휘 풀이 3부 주요 인물 계보도 |
Park, Kyung-Ree,朴景利,박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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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면서 두만네는 앞서가는 남편을 부른다. 두만아비가 돌아서며 마누라 오기를 기다린다. 다듬잇살이 잘 오른 옥양목 치마저고리를 입고 명주 수건을 쓰고 고동색 비단으로 겉을 싼 털토시에 두 손을 낀 두만네가 어기적어기적 걸어간다. 몸이 비대하고 모처럼의 나들이 차림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털토시 말고는 여전히 농가 늙은네 차림이나 어딘지 모르게 부골스런 태가 난다.
---「겨울 혼사」중에서 진주에서 여덟 달 동안 징역살이를 하고, 마중 나와준 강쇠를 따라 짝쇠는 지금 평사리를 향해 걷고 있다. 해동(解冬)하여 강물은 풀렸으나 논바닥에는 아직 살얼음이 남아 있었다. 짝쇠는 사흘 전까지만 해도 감옥에 있었는데 지금 활갯짓을 하며 걷고 있는 자기 자신이 믿기지 않아 부지런히 사방을 살핀다. 농촌의 풍경은 변함이 없다. 한결같은 겨울 풍경이다. ---「출옥」중에서 기이한 광경이었다. 중늙은 사내가 혼자 술을 마시면서 실신한 것처럼 웃고 있어서가 아니다. 이 고장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훌륭한 차림새의 사내가 주점에서 술을 마신다. 하긴 그래서 기이하긴 한데……. 퇴기 앵모(櫻暮)의 주점이 오가는 길가 술꾼들을 불러들이게 꾸며져 있다고는 하나 결코 시시한 목로주점은 아니었다. 서장대(西將臺) 촉석루(矗石樓)가 근처에 있었고 본성동의 길목이어서 옛적부터 풍류객, 벼슬아치들 내왕이 잦은 곳인 만큼 유서가 깊다면 깊은 주점이다. ---「악랄한 처방」중에서 평사리에 있는 최참판댁으로 용의 거처를 옮기는 일이 주변에서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여름이 다 지나도록 해결을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여러 칸의 행랑 중에서 육손이 부녀가 한방을 사용하고 있을 뿐 나머지 방들은 먼지가 쌓인 채 텅텅 비어 있었고 김서방 내외가 살던 채마밭 너머 뒤채도 비워둔 채 있었으므로 가려고만 하면 언제든지 갈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렇지가 않았다. ---「옛터」중에서 용정촌에 한복이가 내려섰을 때는 가을이 한창이었다. 시끄러운 역두, 괴이스런 풍물에 놀랄 겨를도 없이 꼬깃꼬깃 접은 종이를 하나 품에서 꺼낸 한복이는 골똘히 그것을 들여다본다. 허술한 상민 차림의 옷이, 그것이나마 때가 묻어서 남루한데 괴나리봇짐을 늘어뜨린 모습은 누가 보나 품팔러 온 떠돌이다. 한복은 너덜너덜 해어진 종이를 보면서 목적지에 당도한 것을 가슴 아프게 느낀다. 평사리에서 떠나올 때부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이 이 종이쪽지를 꺼내어 들여다보았는지 알 수 없다. ---「용정행」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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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삶이 평탄했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삶이 문학보다 먼저지요.” 고전의 품격과 새 시대의 감각을 동시에 담아낸 박경리 타계 15주기 추모 특별판 1957년 단편 「계산」으로 데뷔해, 26년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 『토지』로 한국 문학사에 거대한 이정표를 남긴 거장 박경리. 타계 15주기를 맞아 다산북스에서 박경리의 작품들을 새롭게 엮어 출간한다. 한국 문학의 유산으로 꼽히는 『토지』를 비롯한 박경리의 소설과 에세이, 시집이 차례로 묶여 나올 예정인 장대한 기획으로, 작가의 문학 세계를 누락과 왜곡 없이 온전하게 담아낸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이번 기획에서는 한국 사회와 문학의 중추를 관통하는 박경리의 방대한 작품들을 한데 모아 구성했고, 새롭게 발굴한 미발표 유작도 꼼꼼한 편집 과정을 거쳐 출간될 예정이다. 오래전에 고전의 반열에 오른 박경리의 작품들은 새롭게 읽힐 기회를 갖질 못했다. 이번에 펴내는 특별판에서는 원문의 표현을 살리고 이전의 오류를 잡아내는 것을 넘어, 새로운 시대감각을 입혀 기존의 판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책을 선보인다. 이전에 박경리의 작품을 읽은 독자에게는 기존의 틀을 부수는 신선함을, 작품을 처음 접할 독자에게는 고전의 품위와 탁월함을 맛볼 수 있도록 고심해 구성했다. 이전의 고리타분함을 말끔하게 벗어내면서도 작품 각각의 고유의 맛을 살린 표지 디자인으로, 독서는 물론 소장용으로도 손색이 없게 했다. 한국 문학사에 영원히 남을 이름, 박경리 문학의 정수를 다산북스의 기획으로 다시 경험하길 바란다. “문학에 대하여 나는 다시 나에게 물어야만 할 것 같다. 멀고 먼 피안에서 서성대는 진실을 위하여.” 우리 시대의 최고의 고전 한국 문학사의 걸작을 현대적 감각으로 새로 만나다! 명실상부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자리하고 있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가 첫 집필 54년 만에 현대적 감각으로 다시 탄생한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근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토지』는 우리말의 미적 감각을 첨예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토지』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국문학의 대표 작품으로서 오늘날까지 범국민적으로 읽혀온 것이 사실이다. 『토지』는 1969년부터 1994년까지 장장 26년이라는 세월 동안 집필되었으며, 200자 원고지 기준 4만여 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토지』는 구한말에서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그날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는다. 일제의 수탈 속에서 우리 민족의 고난의 삶을 생생하게 형상화해 내는 인간 보편성에 관한 근원적인 탐구를 통해 대하소설 『토지』는 20세기 한국문학의 정수로 자리매김했다. 2024년은 『토지』가 완간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다산책방에서 출간하는 2023년판 『토지』는 이미 완성된 지 30년이 된 이 작품이 최대한 오류 없이, 최대한 훼손 없이 독자들께 전달될 수 있도록 수 개월간의 자료조사를 통해 심혈을 기울인 편집 과정을 거쳤다. 어휘 풀이와 인물 계보도 등도 재정비하면서 좀 더 간결하고 정확하게 독자들께 이해되도록 했다. 이전의 판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박경리 선생의 에세이 「『토지』를 쓰던 세월」이 최초로 수록되어, 작가 박경리가 『토지』를 집필하는 긴 시간 동안의 소회를 독자가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느껴볼 수 있도록 도왔다. ‘『토지』를 쓰던 세월’ 서문 최초 수록 “무수한 사건 무수한 사람들, 밀림과도 같은 생각의 넓이와 깊이.” “지금 나는 지극히 편안하고 외로움 같은 것은 느끼지 않는다. 나는 이제 늙었고 자식들은 남과 같이 제법 순탄해졌기 때문에 하소연할 아무런 말도 없고 언짢은 일을 기억할 필요도 없으며 감사할 뿐이다. 그러나 기억해 두어야 할 일은 있다. 『토지』를 쓰는 동안 도움을 주시고 격려해주신 분들, 7년의 수난기에 우리를 따스하게 감싸주신 분들, 그런 분들이 적지 않았다.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사실 나는 지금 망연자실해 있다는 것이 정직한 고백이다. 내가 뭘 어쨌기에? 이렇게 단비가 내게 내리는가. 치열하게 살지 않는 목숨은 없다. 어떠한 미물의 목숨이라도 살아남는다는 것은 아프다. 그리고 어떠한 역경을 겪더라도 생명은 아름다운 것이며 삶만큼 진실한 것은 없다. 비극과 희극, 행과 불행, 죽음과 탄생, 만남과 이별, 아름다움과 추악한 것, 환희와 비애, 희망과 절망, 요행과 불운, 그러한 모든 모순을 수용하고 껴안으며 사는 삶은 아름답다. 그리고 삶 그 자체만큼 진실된 것도 없다. 문학은 그 모순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표현 아니겠는가. 나는 지금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문학에 대하여 나는 다시 나에게 물어야만 할 것 같다. 멀고 먼 피안에서 서성대는 진실을 위하여.” _박경리, 「『토지』를 쓰던 세월」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