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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왕립학술원 원장 루이지 페데르조니의 서언_8
파스콸레 델리야 신부의 서언_11 참고도서 약어표_38 일러두기_54 『리치 원전』의 전체적인 개요 I . 전반적인 배경. 고대 중국의 종교사상 5 II. 그리스도교가 처음 전해진 것 78 III. 가톨릭 문명의 첫 번째 여명기 93 IV. 중국에서 예수회의 시작 121 V. 리치 신부를 통해 중국에 그리스도교가 최종 도입되다 148 VI. 『리치 원전』들의 발표 202 『그리스도교의 중국 진출기』 서문 1책 서언: 중국과 중국인 제1장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와 집필 방식에 대해 251 제2장 중국의 명칭, 국토의 크기와 위치에 대해 255 제3장 중국에서 생산되는 것들에 대해 271 제4장 이 땅의 예술적 메커니즘에 대해서 293 제5장 교양과목, 학문과 중국에서 주는 학위 306 제6장 중국의 정치에 대해서 333 제7장 중국의 예법과 몇 가지 의례 368 제8장 중국인의 외모, 몸단장법, 의복 갖추기와 그 외 중국의 관습 396 제9장 중국의 미신과 몇 가지 나쁜 풍속들 407 제10장 종교와 관련한 중국의 여러 종파 4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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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는 1540년 바오로 3세에 의해 승인받았고, 같은 해, 로마에서 중동과 극동으로 첫 선교사들을 파견했다. 특히 중국과 관련하여, 예수회는 16세기 후반에 절대 우위를 차지했다. 예수회는 중국에 첫 번째 추진자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Francisco Javier)를 보냈고, 이후 다른 많은 예수회, 프란체스코회, 아고스틴회와 도미니코 회원들을 거쳐 효과적인 길을 준비하게 한 다음, 탁월한 전략가며 리더인 알렉산드로 발리냐노(Alessandro Valignano)와 인내심 있는 선구자 미켈레 루지에리(Michele Ruggieri), 그리고 드디어 총명하고 헌신적인 실천가 마태오 리치(Matteo Ricci)를 파견할 것이다. 그들은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고 더 많은 이탈리아에서 온 동료들과 함께 중국 사회에 봉사함으로써 그곳을 고국으로 삼아, 선교와 교회를 영구히 뿌리내리게 할 것이다.
--- p.121 선구자의 별은 희미해지고 기울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꺼지고, 중국 가톨릭 선교의 진정한 설립자의 별이 나타나 빛나고, 1500년대 중국 상류 사회의 모든 시선을 사로잡았다. 우리는 마태오 리치라는 빛나는 인물과 마주하고 있다. 오랜 문화를 간직한 민족들에게 이상적인 선교사의 모델이 되었고, 그래서 선교지들에서 방대한 사도직의 하늘에 가장 빛나는 별이 되었다. --- p.148 조경(肇慶)에서 쫓겨난 리치는 이 기회에 계속해서 중국 내륙으로 진출하려고 했다. 실제로 그는 8월 26일, 같은 광동(廣東)성의 북쪽에 있는 소주韶州시로 들어갔다. 그곳은 조경(肇慶)의 두 배에 달하는 큰 도시였고, 주민도 2만에서 2만 5천 정도 되었다. 리치는 이곳에 새로운 시지프스, 곧 두 번째 수도원과 두 번째 성당을 지었다. 더는 유럽 양식이 아니라 중국 양식으로 지었다. --- p.168 1936년, 한 중국인 작가는 리치의 “세계지도”와 관련하여, 그[리치]에 관해 말하기를, “당시에 리치가 중국에 미친 엄청난 영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를 알았던 당시의 가톨릭 신자들, 문인 학자들과 관리들, 심지어 황제까지 모두 그의 지리학적 지식과 세계지도에 관한 놀라운 뉴스를 직·간접적으로 들었습니다. 그 덕분에 그들은 세계에 대한 지리학적 지식을 발전시켰고, 다른 이웃 민족들과의 관계에서 중국이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던 견해가 조금은 수정되었습니다.” 1939년 다른 저서에서도, “리치는 아마도 중국의 역사와 문학에서 확실하고 영속적인 위치를 획득한, 현재까지 유일한 가톨릭 선교사일 것입니다. 그를 언급하지 않은 현대의 백과사전이나 중국 역사책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 p.211~212 우리가 중국이라는 이 방대한 왕국에 입국하여, 우리 수도회와 그리스도교의 진출에 대해 기록되지 않은 것에 초점을 맞추어, 내가 이 대륙에 들어와 처음부터 관심을 가졌던 것들을 잘 알려진 순서대로 정리하여 기록하고자 한다. 대부분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어서 매우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스승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작은 씨앗이 싹을 틔워 성장하고, 거기서 선善이 수확되어 당신의 거룩한 가톨릭교회에 받아들여졌다면 마땅히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근세기에 들어 멀리 있던 백성들 사이에서 이룩한 당신의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을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실 것이다. 만약 하느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이토록 성공적인 결과는 이루지 못했을 것이며, 이 책에서 읽게 될 증거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 증거란) 우리 예수회가 중국이라는 나라의 개방을 위해, 그리고 너무도 거친 숲을 개척하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고 공을 들였는지, 그 덕에 얼마나 값진 희망을 품게 되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 p.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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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이탈리아 정부는 마태오 리치 서거 300주년을 기해, 동서양 문명의 가교가 된 ‘이탈리아의 위대한 아들’을 기억하기 위해 국가 주도로 이 책을 감수하여 발간하였다. 사업의 총책임은 예수회 소속 중국학자 델리야(Pasquale M. D’Elia S. I.) 신부가 맡았다. 델리야는 이후 30여 년간 원전에서 언급하고 있는 행로를 따라 중국 현지를 답사하고, 기록을 고증하는 한편, 그때까지 연구된 명말청초 동서양 문명교류사의 모든 기록을 각주에 담아 1942년(Volume I)과 1949년(Volume II)에 두 권의 책으로 출판하였다. 책은 다섯 책(冊)으로 구분한 리치의 원문 텍스트를 본문으로 하고, 델리야가 검증한 내용과 그때까지 연구된 학문적 자료들을 각주로 달아 방대하고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책은 엄밀히 말해 ‘리치 원전과 델리아의 주석서 합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델리야는 그냥 『리치 원전, 그리스도교의 중국 진출기』로 편찬하여 소개하였다. 역자가 번역서로 사용한 판본은 바로 이것이다.
책의 내용은 리치가 세분하여 번호(number)를 단 그대로, 모두 1000번까지 있다. 이것은 리치가 성경을 비롯한 전통적인 고전서의 양식을 그대로 따랐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한편, 『리치 원전』은 본문과 각주의 비교를 통해 리치의 원저에 페레이라와 트리고가 이미 손을 댔고, 거기에 델리야가 다른 방식으로 손을 댄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원저자인 리치, 분실된 몇 개의 장(章)을 포르투갈어로 가필한 페레이라, 그것을 그대로 집대성하여 라틴어로 번역하여 유럽으로 가지고 갔던 트리고, 그리고 20세기 초, 이 판본들을 총 정리하여 『리치 원전』으로 소개한 델리야를 통해 본서를 둘러싼 중국학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다. 각주가 많아 읽기에 불편한 점이 있겠으나 학문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이 점이 더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핵심 저자인 리치와 델리야가 다른 사람의 경험이나 견해를 빌려서 쓴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가 직접 경험하고 느끼고, 연구한 소견을 담은 자료이기 때문에 원문 텍스트에서 읽히는 행간의 의미까지 깊이 있게 통찰할 수가 있다. 이탈리아인 마태오 리치(Matteo Ricci), 중국인 리마두(利瑪竇)의 열정과 성실함을 보면서 한 중국인 학자가 『기인십편』(리치 저) 발문에서 한 말, 리치의 말과 삶이 기이하고, 그야말로 “역설을 사는 사람”이라는 말이 여운으로 남았다. 베네딕토 데 고이스의 묘비명 “카타이를 찾다가 하늘을 발견했다”라는 대목에서는 한국교회의 기원이 떠올랐다. 서학, 서양 학문을 찾다가 천학, 그리스도교를 만난 우리의 이야기 말이다. 저자인 리치와 델리야가 쓴 이탈리아어 특유의 만연체 문장을 최대한 우리말의 통사구조에 맞게 옮기려고 노력했다. 가독성을 생각해서 용어를 쉽게 풀어 쓰려고도 노력했다. - 옮긴이의 말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