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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약어표_17
일러두기_34 제18장 남경에서 그리스도교가 순조롭게 발전한 것에 대해(1606년 12월 21일부터 1610년 12월 25일까지) 37 제19장 바오로 박사의 고향 상해(上海)에서의 선교에 대해(1608년 9월부터 1611년 5월 초순까지) 57 제20장 그동안 소주 수도원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1609년 5월 말부터 10월 21일까지) 78 5책-2 선교의 점진적인 발전과 개별 그리스도인의 증가(1603년 2월부터 1610년 5월 10일까지, 그리고 1611년 11월 1일까지) 제21장 마태오 리치의 죽음(1610년 3월 11일부터 5월 18일까지) 91 제22장 북경 리치 신부의 무덤(1610년 5월 18일부터 1611년 11월 1일까지) 139 리치 용어집_221 옮긴이의 말_307 찾아보기_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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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른 여러 집[수도원]에서 그리스도교가 성장하는 동안, 우리 주님께서는 남직례南直?에 있는 교회도 그냥 두지 않으시고, 매년 많은 수의 그리스도인이 증가하게 하셨다. 매년 거의 배로 늘어나는 것 같았다. 신자 수가 늘어나는 것만큼 신앙의 열기도 뜨거워, 여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참으로 많지만 같은 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남경의 교우들도 다른 집과 비교하여 절대로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점만 언급한다. 교우들은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것처럼, 모두 똑같은 그리스도교 신심을 실천했다.
--- p.38 신부는 그에게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를 다시 주면서 좋은 의도를 가지고 주의해서 다시 잘 읽어 보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쓴 다른 4개의 주제를 다룬 4편의 논문도 주었다. 하나는 “천주(Dio)”를 논했고, 다른 하나는 “영혼(l’Anima)”을 논했으며, 세 번째는 “원죄(Peccato originale)”를, 네 번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Vita di N.S. Gesu Cristo)”를 논했다. --- p.50 한 교우는 이웃에 사는 비교인 부자父子가 모두 말라리아에 심하게 걸려 밤낮 신음하는 것을 보고, 찾아가 우리 주님을 믿으라고 권했다. 그들은 병이 나으면 신자가 되겠노라고 약속했고, 교우는 〈십자가 성화〉 하나를 가져다주겠노라며, 그것을 통해 병이 치유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병이 심했기 때문에 그들을 설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교우는 그들에게 십자가를 갖다주었고, 즉시 나았다. 건강해지자 그들은 『천주교요天主敎要』를 배우기 시작했고, 설명을 듣기 위해 우리 집으로 왔다. --- p.72 이렇게 그는 5월 11일까지, 한 번은 우리 신부들과 한 번은 새 교우들과 평온하게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5월 11일 저녁 무렵, 침대 한가운데 앉아서 아무런 미동도 몸부림도 없이 영혼을 하느님께 맡겼다. 잠이 드는 것처럼 눈을 감고 주님 안에 조용히 평안하게 잠들었다. --- p.106 이제 여기서 이 위대한 인물이 자신의 날들을 마무리한 것처럼, 이 조사弔詞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선종하기 몇 개월 전에, 그는 동료들에게 여러 차례 “중국선교를 위해 기대할 만한 최고의 수단이 무엇일까 자문해 보건대, 저의 죽음 외에 다른 아무런 수단도 떠오르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형제들이 아직도 [중국] 선교에서 당신을 많이 필요로 한다며 반대하자, 그는 자기 생각을 고집하며 여러 가지 당위성을 들어 결심을 굳혔다. 그의 사망 이후에 일어난 일과 그의 예측을 비교하건대, 그가 옳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가 더 바라고 더 할 수 있는 그곳에서 더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이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 p.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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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이탈리아 정부는 마태오 리치 서거 300주년을 기해, 동서양 문명의 가교가 된 ‘이탈리아의 위대한 아들’을 기억하기 위해 국가 주도로 이 책을 감수하여 발간하였다. 사업의 총책임은 예수회 소속 중국학자 델리야(Pasquale M. D’Elia S. I.) 신부가 맡았다. 델리야는 이후 30여 년간 원전에서 언급하고 있는 행로를 따라 중국 현지를 답사하고, 기록을 고증하는 한편, 그때까지 연구된 명말청초 동서양 문명교류사의 모든 기록을 각주에 담아 1942년(Volume I)과 1949년(Volume II)에 두 권의 책으로 출판하였다. 책은 다섯 책(冊)으로 구분한 리치의 원문 텍스트를 본문으로 하고, 델리야가 검증한 내용과 그때까지 연구된 학문적 자료들을 각주로 달아 방대하고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책은 엄밀히 말해 ‘리치 원전과 델리아의 주석서 합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델리야는 그냥 『리치 원전, 그리스도교의 중국 진출기』로 편찬하여 소개하였다. 역자가 번역서로 사용한 판본은 바로 이것이다.
책의 내용은 리치가 세분하여 번호(number)를 단 그대로, 모두 1000번까지 있다. 이것은 리치가 성경을 비롯한 전통적인 고전서의 양식을 그대로 따랐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한편, 『리치 원전』은 본문과 각주의 비교를 통해 리치의 원저에 페레이라와 트리고가 이미 손을 댔고, 거기에 델리야가 다른 방식으로 손을 댄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원저자인 리치, 분실된 몇 개의 장(章)을 포르투갈어로 가필한 페레이라, 그것을 그대로 집대성하여 라틴어로 번역하여 유럽으로 가지고 갔던 트리고, 그리고 20세기 초, 이 판본들을 총 정리하여 『리치 원전』으로 소개한 델리야를 통해 본서를 둘러싼 중국학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다. 각주가 많아 읽기에 불편한 점이 있겠으나 학문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이 점이 더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핵심 저자인 리치와 델리야가 다른 사람의 경험이나 견해를 빌려서 쓴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가 직접 경험하고 느끼고, 연구한 소견을 담은 자료이기 때문에 원문 텍스트에서 읽히는 행간의 의미까지 깊이 있게 통찰할 수가 있다. 이탈리아인 마태오 리치(Matteo Ricci), 중국인 리마두(利瑪竇)의 열정과 성실함을 보면서 한 중국인 학자가 『기인십편』(리치 저) 발문에서 한 말, 리치의 말과 삶이 기이하고, 그야말로 “역설을 사는 사람”이라는 말이 여운으로 남았다. 베네딕토 데 고이스의 묘비명 “카타이를 찾다가 하늘을 발견했다”라는 대목에서는 한국교회의 기원이 떠올랐다. 서학, 서양 학문을 찾다가 천학, 그리스도교를 만난 우리의 이야기 말이다. 저자인 리치와 델리야가 쓴 이탈리아어 특유의 만연체 문장을 최대한 우리말의 통사구조에 맞게 옮기려고 노력했다. 가독성을 생각해서 용어를 쉽게 풀어 쓰려고도 노력했다. - 옮긴이의 말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