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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VOSTOK 보스토크 매거진 (계간) : 50호 [2025]
아주 보통의 하루 양장
편집부
보스토크프레스 2025.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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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2025년 여름호 / VOL.50
특집 | 아주 보통의 하루

002 향기와 그림자 _ 아키텍?
012 In Her Arms _ Lyripapa?
022 Sowing the Seeds Here _ Kazuyuki Kawahara
032 Notes on Ordinary Day _ Ola Rindal?
042 필링 인 비트윈 _ 박하은?
054 Metropolight _ David Gaberle?
066 그날 이후 _ 최진영?
071 보통이 아닌 날 _ 김지연?
076 아저씨 _ 이석원?
081 보통의 척추를 위한 자세 _ 유선혜?
086 그의 감자밭과 광장 _ 조문영?
092 [연재: 영화의 장소들] 자동차의 안과 밖 _ 유운성
098 [연재: 일시 정지] 공원의 내러티브 _ 서동진?
108 TTP _ Hayahisa Tomiyasu?
120 Milky Way _ Vincent Ferrane?
132 Mother _ Paul Graham?
146 Passengers _ Dagmar Keller / Martin Wittwer
156 Days to Nothing _ Albert Bonsfills?
172 [에디터스 레터] 거대하고 정교한 거울 _ 박지수
174 No Seconds _ Henry Hargreaves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6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190*260*20mm
ISBN13
9791170370697

책 속으로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라도 다시 질문을 던지면, 그렇게 물어보기 위해 애써 바라보면 모든 것이 한 뼘쯤은 새로워진다. 특별하기 때문에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있기 때문에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더 바라보기 때문에 특별하게 기록되는 장면이, 더 물어보기 때문에 특별하게 의미를 맺는 순간이 사진에 피어난다. 그 모든 작은 기적들이 이미지에 새겨지게 된다.
--- p.39 「올라 린달: 노트 온 오디너리 데이」 중에서

그날의 글쓰기를 끝내면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선다. 한 시간 반 정도 집 근처 공원을 걷는다. 악천후가 아니라면 산책을 거르지 않는다. 산책은 글쓰기만큼 중요하다. 글쓰는 나와 생활하는 나를 분리해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모니터 앞에 앉아 글을 쓰다 보면 ‘망했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이번 글은 망한 것 같고, 형편없는 글만 잔뜩 쓴 것 같고, 내 인생도 통째로 망하리라는 불길한 예감에 시달린다. 그러다가 바깥에 나가 길을 걸으며 타인을, 하늘을, 새를, 나무를 바라보면 알게 된다. 세상 사람 아무도 내 글에 관심 없다는 것을. 내 글에 관심 있는 사람은 나뿐이며 이번 글이 망한다고 내 인생이 망하는 건 아니란 사실을. 걷는 동안 그 단순한 사실을 깨닫는다. 과잉된 자의식을 훌훌 털어낸다.
--- p.69 「최진영, 〈그날 이후〉」 중에서

어느 날은 친구가 지금 행복한데 왜 행복한지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만나서 이야기한 것이 아니고 카톡 메시지로 그 말을 전해 받았을 뿐이라 그 말을 하는 친구의 목소리나 표정, 손짓, 발짓 같은 것이 어땠을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친구가 정말이지 행복한 것 같다고 느꼈고 그 글자가 내게로도 전해져 행복의 기운이 내 마음속에 조금 스미는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친구도 지극히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문득 그렇게 생각한 것이리라. 그러니까 이유를 찾으려고 해도 쉽게 찾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 아무 이유가 없는 그 행복이야말로 왠지 행복의 궁극 같았다. 흔히들 사람들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 이유가 없는 것이야말로 궁극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이유를 찾을 수 없는 행복감이야말로 궁극의 행복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음, 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아주 보통의 하루의 모습이다. 실은 보통이 아닌, 꽤나 희귀한 날.
--- p.75 「김지연, 〈보통이 아닌 날〉」 중에서

나는 아저씨에게 내 멋대로 혼자 한 오해를 어떤 형태로든 사과하고 싶었지만, 다시 아저씨를 볼 일이 없었으므로 그럴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아저씨가 내게 알은 척을 하고 싶어 할 때에는 열심히 도망을 다니다가, 내가 뭔가 전하고 싶은 게 생기니 이젠 아저씨가 출근하지 않는 현실. 나는 오늘도, 글을 쓰다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하루 세 번씩 아파트 앞 마당으로 산책하러 나간다. 그러면서, 제복을 입은 낯설고 새로운 얼굴들을 마주치고 인사 할 때마다 종종 그 아저씨를 생각한다. 물론 나는 아저씨가 영영 퇴직했는지 아파서 휴직 중인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만약 아저씨가 다시 출근하게 된다면 나는 아저씨가 이곳에서 가능한 한 오래 근무하길, 그렇지만 여전히 가급적 내게 말은 덜 걸어주기를 바라며 오늘도 평소처럼 아파트 이곳저곳을 거닐고 있다.
--- p.80 「이석원, 〈아저씨〉」 중에서

나는 보통이라는 말이 무서웠고 항상 보통이 가장 힘겨웠다. 보통의 상태라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경지가 아니었으니까. 김보통. 천계영의?만화 『예쁜 남자』의 여주인공 이름이다. 남주인공의 이름은 ‘독고마테’로, 그는 이름만큼이나 범상치 않은, 너무 아름다워서 모든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외모의 소유자다. 그 만화는 재벌 기업의 서자인 독고마테가 무시무시할 정도로 능력 있고 똑똑하며 아름다운 열 명의 여성을 거치면서 성장하는 이야기. 부동산 재벌, 스타 배우, 천재 해커, 소문난 무당, 정의로운 검사... 이들을 거치며 독고마테는 깨닫는다.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은 바로 김보통이라는 사실을. 나에게도 보통이 절실했다. 동시에 보통은 너무 어려웠다. 독고마테가 날고 기는 열 명의 여성을 사로잡고 나서야 김보통에게 향하듯이, 보통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험난했으니까. 지나쳐서도 안 되고, 모자라서도 안 되는. 과잉과 결핍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중심을 잡기 위해 항상 바짝 몸을 긴장하고 있어야만 겨우 유지할 수 있는 절묘한 균형. 어떤... 포즈.
--- p.84 「유선혜, 〈보통의 척추를 위한 자세〉」 중에서

아침에 일어나 카톡 문자를 확인했다. 부지런한 기독교 신자 신 씨의 평범한 하루는 이미 시작된 모양이다. “(어제) 밤 10시 40분 XX 도착, 주님과 동행하는 아침을 시작합니다. 교수님도 굿모닝요.” 나는 전날 그가 보낸 사진을 다시 꺼내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곧 있으면 감자꽃이 피겠지. 햇감자는 한 달은 더 기다려야겠지. 광장에서 농민들과 범상치 않은 하루를 보내고 나니 그의 감자밭이 예사로운 풍경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의 보통의 하루가 기후재난을 버티고 국가폭력에 악다구니라도 써야 간신히 유지할 수 있는 시간임을 깨닫는다. 싸우는 사람들의 광장 덕분에, 광장 너머 일상이 흐른다. 그들의, 우리의 평범한 하루가 시작된다.
--- p.91 「조문영, 〈그의 감자밭과 광장〉」 중에서

카메라가 자동차의 내부에 놓이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사람을 포착하기 위해서거나 그가 보는 풍경을 포착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오직 전방을 주시하는 시선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면 어찌해야 할까? 이 강박적 시선의 그로테스크함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그 시선이 그리는 직선을 따라가는 동시에 그 직선의 궤적 자체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일단 카메라가 철저히 자동차 외부에 머물러야 한다. 자동차 내부에서는 이 직선의 궤적은 보여주지 못하고 기껏해야 직선이 향하는 방향의 소실점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니 말이다. 사정이 그렇다면, 300미터에 달하는 이동촬영용 레일을 설치하면서까지 얻어낸 저 가공할 숏은 고다르 특유의 천진한 엄격함에서 나온 ‘대항-사물’이었다고 해야 할까?
--- p.87 「유운성, 〈자동차의 안과 밖〉」 중에서

뉴질랜드의 사진가 헨리 하그리브스는 사형수들이 마지막으로 원했던 음식에 관한 정보를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진 작업을 진행했다. 작가는 사형수의 시점에서 바라본 마지막 식사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연출했다. … 내일 죽는다면 지금 당장 무엇을 먹을래? 우리가 한 번쯤 재미 삼아 주고받는 질문과 대답이 너무나 진지하고 엄숙하게 펼쳐진 사진 이미지를 바라보면 할 말을 잃게 된다. 곧 죽을 텐데, 음식이 무슨 대수라고 싶다가도 그런 순간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희망하는 것이야말로 인간다운 일이 아닌지 곱씹게 된다. 그리고 사형수에게 마지막 식사를 대접하는 매우 인간적인 전통과 그럼에도 그들의 목숨을 박탈하는 매우 비인간적인 제도가 공존하는 아이러니가 씁쓸하게 다가온다. 그런가 하면 내일 죽을 사형수들이 다시는 먹을 수 없을 마지막 식사를 바라보면서 지금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오늘의 가치와 평범한 식사 한 끼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 p.176 「박지수, 〈노 세컨즈〉」 중에서

출판사 리뷰

오늘 또 오늘, 보통의 하루를 살아가는 나에게

미리 자백하자면, 사진에 ‘보통의 하루’가 담기기는 어렵다. 우리는 오늘 하루를 삼차원의 공간에서, 또 지속적인 시간 속에서 마주한다. 세상에서 사진처럼 평면적으로, 또 멈춰서 하루를 바라볼 수 없는 것이다. 사진 속에서 이차원의 공간으로, 또 순간적인 시간으로 가시화되는 하루는 현실 그대로 ‘보통’일 수는 없다. 현실을 대상으로 삼지만, 현실이 사진적인 시공간으로 전환된 이미지에는 어떤 식으로든 현실의 정보가 초과되거나 누락되기 때문이다. ‘보통’을 찍어도 사진에는 ‘보통 이상’이 되거나 ‘보통 이하’로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카메라를 들고 무언가를 주목하는 행위와 과정에서 이미 특별함이 부여될 수밖에 없다.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고, 촬영하고, 이미지를 고르고, 편집하고, 보여주는 일련의 ‘사진화’ 과정에서 ‘하루’는 더 이상 현실처럼 ‘보통’인 상태로 남지 않는다. 엄밀히 말해 사진 속에 나타나는 ‘보통의 하루’는 이미지적으로 가공되었을 뿐만 아니라, 촬영자가 각별하게 관찰하고 발견한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보통의 하루’는 사진에 기록되거나 사진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정말 ‘보통의 하루’는 지금 이 순간에도 덤덤하게 지나치고, 무심코 무시하고, 굳이 눈길을 주지 않고, 의식조차 하지 못한 채 사라지기 때문이다. 매일 매 순간 아무렇지 않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공기처럼.

이번 호 특집 〈아주 보통의 하루〉에는 가족이나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부터 대도시의 생활과 직장인의 하루까지 폭넓게 우리의 일상과 주변을 살피는 사진 작업을 담았다.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매우 대단한 광경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지마다 사진이라는 각별한 수단을 거쳐서, 애써 바라보고 기록하려는 의지를 통해서 발견한 ‘오늘’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또 오늘, 그렇게 오늘만 계속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사진으로 붙잡을 수 있는 오늘보다 무심코 놓치고 마는 오늘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아주 보통의 하루〉에서도 우리가 의식해야 할 것은 사진 안의 장면뿐만 아니라 사진 밖에서 기록조차 되지 않고 사라지는 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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