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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12월호 / VOL. 48
특집 | 나의 집, 나의 방 001 사서 _ 황정아 028 디 아워스 브리드 _ 민혜령 042 IMA / Living room _ Jun Aihara 054 Armpit City _ Sophie Tianxin Chen 068 sik teng mm sik gong(pardon my chinese) _ Gloria Wong 082 Homeless People’s Family Stuff _ Huang Qingjun 098 내 방 _ 은유 104 두부씨네 구피 _ 황정은 110 우리는 사라질 테고 자리만이 남겠지만 _ 루리 116 영혼의 무주택자들 _ 진은영 122 [연재: 일시 정지] 세 편의 아카이브와 하나의 역사 _ 서동진 129 [연재: 영화의 장소들] 디스플레이라는 장소 _ 유운성 130 With Rift and Collapses _ Hannah Altman 142 Soft Spot _ Michalina Kacperak 156 스테이지 오브 마인드 _ 이지영 185 [에디터스 레터] 더 오래 더 멀리 _ 박지수 186 맞닿은 시간 _ 하다원 200 석웅 _ 성재윤 212 Shiny Ghost _ Rachel Co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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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과 몇 없는 기록을 쥐고 과거에 살던 집의 주소지를 하나하나 찾아갔다. 집은 모두 허물어져 있었다. 마치 애초에 누구도 살지 못하는 곳 같았다. 짓다 만 건물들. 텅 빈 터. 버려진 물건들. 낯선 풍경 앞에서 나는 기억과 기록, 그리고 실재하는 것 사이의 시차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돌았다. 이쯤에 내가 살던 집이 있었겠지, 상상만 할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노출을 맞추고 셔터를 누르는 일뿐이었다.
- 황정아, 〈사서〉 작가 노트, 3쪽. “평생 빚 갚다가 방 한 칸도 못 마련했어요. 일단은 내 집을 갖고 싶어요. 집보다도 공간을요. 먹는 거, 입는 건 어떻게든 하는데 공간이 없다는 게 힘들어요.” 집보다 공간을 원하는 그가 있고 여행보다 방을 원했던 내가 있다. 운 좋게 먼저 방에 도착한 나는 이토록 혹독한 노동의 일대기를 보내고도 남의 방을 전전해야 하는 그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나는 왜 여기 있고 그는 왜 거기 있나를 생각하며 아직 자기만의 방에 도착하지 못한 여성들을 기다리고 있다. - 은유, 〈내 방〉, 103쪽. 얼마 전에 누군가 내게 당신의 습작 기간은 어땠느냐고 물었는데 나는 그 질문에 ‘방’이라고 대답했다. 방이었다고. 내게 방이란 쪼개져 바람이 드나드는 벽이나 가스가 새는 바닥이나 결속을 청하며 같이 죽자고 요구하는 혈육이 있는 곳, 이웃이 훔쳐보거나 신발을 신은 채 침입하거나 창을 뜯어내거나, 그래서 이 문턱을 함부로 넘으면 칼을 쥐고 쫓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하는 곳, 언젠가는 다두고 도망 나와야 하는 곳, 빼앗기는 곳, 빼앗기고 남은 곳이었고 그래서 나는 대체로 방을 비우며 살았다. - 황정은, 〈두부씨네 구피〉, 107쪽. 그들은 집이 되어버린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떠나는 순간,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리라. 집이 사라지는 순간, 그들도 자신을 잃으리라. 비슷한 느낌을 나는 엄마 집에 갈 때마다 느낀다. 엄마 집에서는 엄마 냄새가 난다. 엄마들은 그 냄새를 만들고 지켜내기 위해 거기에 있는 사람들 같을 때가 있다. 엄마의 자식은 이제 다 커서 그 집에 살지도 않는데, 엄마는 여전히 주기적으로 내 방 이불 빨래를 하고 침대를 정리한다. 엄마는 이사도 안 간다. 우리 엄마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엄마들은 그렇게 집이 되기를 자처한다. 어떤 사람들에게 집은 공간 이상이 된다. 그들에게 집은 척추와 심장이 된다. - 루리, 〈우리는 사라질 테고 자리만이 남겠지만〉, 113쪽. 결국 영원하고 완벽한 안전성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앤 카슨은 말합니다. “모든 것은 무너질 수 있다/ 집도 육신도/ 그리고 적도// 무너진다// 그것들의 리듬이/ 흐트러지면.” 이 시구를 되풀이해서 읽으며 나는 시인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집도 몸도 무너진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악인과 악랄한 폭력 역시 언젠가 무너진다는 사실은 자꾸 잊어버리거든요. 전쟁과 대참사들이 끝없이 이어지는데도 사람들이 잔해가 가득 쌓인 거리를 치우고 다시 벽돌을 쌓고 세상을 향해 열리는 문과 창문을 달 수 있는 것은 이번에 짓는 집은 영원할 거라는 확신을 가져서가 아니라 우리를 파괴하는 것들 역시 무너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 진은영, 〈영혼의 무주택자들〉, 120쪽. 아마 우리는 계속 아카이브를 발굴하고 그것에 빛을 비출 것이다. 그것은 역사박물관 따위에서 마련한 재미난 이벤트를 위한 소품으로 전락하기도 할 것이고, 또 어떤 때에는 역사를 잃은 우리의 슬픔을 위무하는 묘약이 되어 스크린 위에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카이브가 역사와 접속하는 순간 역시 생산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은 희귀한 일이겠지만, 그를 단념할 수 없을 것이다. 사라진 이미지에서 유토피아적 잠재성을 믿는 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 서동진, 〈세 편의 아카이브와 하나의 역사〉, 128쪽. 영화관 경험과는 분명히 다른 디스플레이적 경험을 포착하는 데 영화는 여전히 서툴기 짝이 없는 것 같다. 이는 디스플레이를 그저 카메라로 ‘잘 찍는’ 것만으로 해결될 성질의 문제는 아닐 터다. 종종 긍정적으로 언급되곤 하는 영화관 경험과 달리 대체로 부정적인 색채로 물들어 있는 디스플레이적 경험을, 그것에 대한 호오를 떠나 그것과 결부된 장소적 감각과 더불어 포착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때, 디지털적 또는 AI적인 것의 아이스테시스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게 되었다. - 유운성, 〈디스플레이라는 장소〉, 131쪽.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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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가장 가까운 ‘나의 집, 나의 방’을 찾아서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 .... 한 작가의 드라마를 연이어 보다가, 왜 제목마다 ‘나의’라는 말을 붙였을까, 잠시 딴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각 드라마에는 ‘나’라는 존재감이 뚜렷하지 않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처럼 현실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은 서로의 희미한 그림자를 알아본다. 때로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알아본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응원이 된다. 그렇게 서로를 알아보면, 서로를 지켜보게 되고, 그러면 서로를 기다려줄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한 인간에게 찾아올 변화의 가능성이 싹틀 것이다. 이처럼 ‘귀한 인연’ 덕분에 다행히 그들은 ‘나’를 회복하고, 자신을 지켜낸다. 그렇다면 제목에서 ‘아저씨’나 ‘해방일지’보다 ‘나의’라는 대목이 더욱 중요하고 애틋하게 다가온다. ‘나’를 잃어가던 이들이 자신을 되찾기까지 힘겨운 시간을 통과한 후에 ‘나의’라는 말을 붙인 것일 테니까. 나의 집, 나의 방 ....‘나의’라는 말을 붙이기까지 어떤 분투를 거듭 겪는 드라마 속의 인물들을 떠올리면서 이번 특집 제목을 지었다. 우리는 비록 지금 당장 머물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집과 방이 있다고 해도, 계속 ‘나의 집’과 ‘나의 방’을 꿈꾼다. 그건 단순히 현재의 거주와 소유를 넘어 나 자신을 알아볼 수 있고, 지켜볼 수 있고, 기다려줄 수 있는 물리적/심리적 장소로서의 집과 방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 알다시피 집과 방은 인간에게 가장 가깝고 친숙한 공간이다. 누군가의 생과 사와 연관된 모든 흔적이 집과 방에 고스란히 남는다. 집과 방에 쌓여가는 일상의 냄새와 시시콜콜한 물건들, 서로 부대끼는 가족의 모습과 시간의 흐름, 이러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바라보면 언제나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런가 하면 사진가들에게 집과 방은 이미지를 만드는 데 매우 유용한 배경이자 무대가 되기도 한다. 집과 방이 하나의 미장센으로 새롭게 변신하는 모습을 보면 절로 감탄이 슬며시 새어 나온다. 이번 호에서는 삶의 가볍고 무거운 순간들이 펼쳐지는 집과 방을 엿볼 수 있는 사진 작업들, 이미지를 재현하는 데 집과 방을 주요한 매개물로 삼는 사진 작업들을 만날 수 있다. 또한 황정은, 은유, 루리, 진은영의 에세이를 통해 저마다 간직한 집과 방의 내밀한 기억들, 우리에게 필요한 집과 방의 의미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사진과 글을 통해 각자 자신의 존재와 가장 가까운 ‘나의 집, 나의 방’을 찾고자 애쓰는 우리 모두의 성장기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