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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가을호 | VOL. 55
특집 | 핸드메이드 : 이미지의 연금술 001 The Potential of Paper and the Human Hand _ Alma Haser 022 너바나 _ 이대성 036 Everyone's Dance is Unique _ David Meanix 050 Ghostwriter _ Sheida Soleimani 066 영혼 만지기 아니 아니 만지지 않기 _ 함윤이 072 일부러 길을 트는 우리에게 _이제야 078 말랑이의 비밀 _ 이희주 084 차마-핸드hand _ 이미상 090 손이라는 문장 _ 이제니 098 Radiator Theatre _ Ina Jang 112 Whatever the Camera Failed to Record _ Soo Kim 126 Chaology _ Tess Hurrell 138 A Slow Conversation with Old Objects _ Julie Cockburn 152 There is Nothing to Bind Me _ Jessa Fairbrother 166 Scenes From a Lost Family Album _ Triin Kerge 178 [연재_영화의 장소들] 이웃집 창문 _ 유운성 185 [연재_일시 정지] 바이브 머신, 극장 _ 서동진 192 [에디터스 레터] 그저 함께하려는 몸짓들 _ 박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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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메라를 처음 만난 과거의 사람들이 왜 그토록 영혼을 소중히 여겼을까 가늠해 본다. 필시 그들은 영혼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첫째 조건이라고 생각했을 게다. 그렇다면 인간이 인간임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또 무엇일까. 아마 그들은 인간으로 사는 일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던 모양이다. 영혼을 향한 이 같은 애호는 오늘날 보기 드물고 그런 만큼 곱씹어봄 직하다.
- 함윤이, 〈영혼 만지기 아니 아니 만지지 않기〉 중에서, 69쪽. 쉬운 답변이 점점 많아진다. 상황과 대상과 마음을 넣으면 적당히 AI가 조언을 해준다. 머뭇거림 없이 돌아오는 답에 조금 쓸 만하다 싶다가 간편한 마음에 이내 허무해진다. 나는 시를 쓰며 더 머뭇거리고 싶다. 여러분과 함께 시 안에서 더 복잡해지고 싶다. 그리하여 우리가 시집 한 권에서 엇갈리다가 튕기다가 한 번은 꼭 만나리라 믿으니까. - 이제야, 〈일부러 길을 트는 우리에게 〉 중에서, 77쪽. A6 사이즈의 이 다이어리엔 지류를 꽂아 넣을 수 있는 포켓이 있고, 나는 이 안에 몇 개의 영수증을 끼워 넣었다. 갈라진 벽 틈에 속삭이듯 그 위에 문장을 적었다. 보일 수도 자랑할 수도 없는 숨결 같은 이야기. 오로지 나만 간직한 채 어느 날 삭을 것. 그러나 만져지는 것. 내가 그렇게 만든 것엔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안하는 힘이 있다. 가장 만지고 싶은 것은 아니더라도 날 위로해 주는 손의 감각이있다. - 이희주, 〈말랑이의 비밀〉중에서, 83쪽. 죄를 저지르려다가 차마 못 하겠어서 멈추는 소극적 저항의 손 말이다. 개인적으로 인류에 대한 희망을 상기하고, 심신을 안정시키며, 무엇보다 따를 수 있는 최대치의 모범 사례로서 소극적 저항 일화를 수집하는 편이다. 12·3 계엄 당시 선관위로 출동하는 대신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태업한 군인들도 컬렉션 파일에 끼워 놓았다. 소극적 저항은 부담이 덜하다는 측면과 함께 십시일반의 방식이라 좋다. 어쩐지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 하는 노랫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 이미상, 〈차마-핸드hand〉 중에서, 87쪽. 살아가자고. 살아가라고 말하는 손의 문장이 있다. 도구이면서 기억이고 기술인 손. 감정이면서 노동의 흔적이고 사랑의 장소인 손. 아무런 목소리 없이도 구체적인 문장을 적어 내려가는 손. 수많은 실패와 상처를 간직하면서도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손. 나는 이 손으로 살아왔다고. 이 손으로 누군가를 만졌고. 무언가를 만들었고. 먹였고. 사랑했고. 보내주었다고. 쓰다듬었고 밀어냈으며 붙잡았고 마침내 놓아주었다고. - 이제니, 〈손이라는 문장〉 중에서, 95쪽. 다시 트루에바의 저 아름다운 장면을 떠올린다. 요즘 한국영화에 그런 장소가 나온다면 분명 많은 이들이 비사실적이라 여기겠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집 창문을 열면 지근거리에 이웃집 창문이 보이는 그런 장소를 상상한다. 그것도 아파트로 가득한 서울 같은 도시에서, 기왕이면 바로 그 아파트에서 말이다. 이는 한 명의 관객으로서 나의 권리다. 그런 장소가 스크린에 나오게 되면 어쩐지 한국영화 자체가 바뀔 거라는 생각까지 해 본다. 아주 약간의 비사실성은 일종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이제 한국영화는 지금 여기의 삶만이 아니라 가능한 삶을 함께 모색할 때도 되었다. 환멸 없는 환상은 공허하고 환상 없는 환멸은 맹목이다. - 유운성, 〈이웃집 창문〉 중에서, 183쪽. 나홍진 감독의 괴작(怪作) 〈호프〉가 개봉된 후 소셜미디어에서 영화를 둘러싼 입씨름이 무성했다. (…) 그러나 흥미롭게도 결론은 한결같은 듯 보였다. 어찌 됐든 〈호프〉는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좀 이상한 일이다. 무엇이 그 영화를 재미있게 하는가를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호프〉와 같은 영화에서 딱히 따져볼 이유가 없다고 간주되는 그 재미, 어렵게 말해 영화적 경험의 쾌락이야말로, 아마 이 영화의 핵심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가 오늘날 영화적 경험의 정수라고 할 분위기 혹은 기분의 소비에 진력하고 있고, 그것이 이 영화의 재미를 만들어내는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만석의 극장은 강렬하게 진동하는 ‘바이브 머신(vibe machine)’이 된다. - 서동진, 〈바이브 머신, 극장〉 중에서, 18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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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합니다.”
1890년대 코닥의 광고 슬로건은 사진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촬영 후 카메라를 코닥에 보내면 현상과 인화를 마친 사진과 새 필름이 장전된 카메라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광고 문구 그대로 사진을 얻기까지 복잡한 기술적 과정을 대신해 주었기에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150년쯤 시간이 흐른 요즘이라면, 저 광고 슬로건은 다음과 같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 “프롬프트에 입력만 하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합니다.” 어쩌면 AI 생성이미지는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질마저 귀찮은 일처럼 느껴지게 할지도 모르겠다. 더 나아가 그동안 촬영을 위해 당연하게 행했던 일들이 점점 번잡스럽거나 귀찮으며, 매우 불필요한 과정처럼 여기게 될 것이다. 셔터를 누르기 전에 찍고 싶은 사람이나 풍경을 직접 찾아가고, 이를 마주하며 바라보는 일련의 과정이 AI 생성이미지 프롬프트 앞에서는 전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이전 시대의 촬영 행위가 다분히 ‘인간의 육체와 시야’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면, 이러한 속박에서 자유로운 AI 생성이미지는 분명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으로 다가올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고민해 볼 지점도 있다. 이렇게 프롬프트 창을 통해 그 어떤 이미지도 생성할 수 있다면, 그렇게 ‘쉽고-빠르고-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미지란 언제나 우리에게 혜택만 가져다줄 것인가. 특히 쉽지 않고, 효율적이지 않은 과정을 일부러 설계하고, 이를 몸소 통과하면서 크고 작은 깨달음을 얻는 창작 과정이라면, 과연 ‘쉽고-빠르고- 효율적’이기만 한 이미지는 창작자에게 득이 될까, 독이 될까. 가령, 글쓰기는 의사 전달의 효율성만 놓고 본다면 꽤 답답한 과정이다. 한문장, 한문장 또 한문장을 이어 나가는 일은 결코 ‘쉽고-빠르고-효율적’이지 않다. 하지만 글쓰기라는 과정을 통해 어떤 생각을 거듭 또 거듭 다듬어 나갈 수 있고, 글쓰기라는 계기를 통해 오랜 시간 결론을 미룬 채 어떤 궁리를 지속할 수 있다. 그 과정과 계기를 통해 글쓰기는 필자의 사유를 처음 서 있던 곳과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사진 작업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구글링으로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고, 프롬프트에 입력해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대상을 굳이 촬영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일은, 결국 시선의 변화 가능성을 스스로 탐색하는 과정이다. 이는 ‘어렵고-느리고-비효율적’인 과정을 통해 ‘오래 천천히’ 머물러야만 비로소 눈앞에 나타나는 장면과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호 특집 〈핸드메이드 : 이미지의 연금술〉은 ‘어렵고-느리고-비효율적’인 과정으로서 수공예적인 행위가 개입된 사진 작업에 주목한다. 이에 따라 이미지 한 장을 이루는 모든 시각적 요소마다 작가의 분주한 손길이 느껴지는 사진 작업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하나하나 자르고 붙이고 겹치고, 한땀 한땀 꿰매고 수놓은 이미지들이, 화면 속 소품과 배경을 손수 만들고 연출한 미장센이 선사하는 시각적인 묘미를 따라가 본다. 또한 대상을 직접 마주하지 않고도 AI를 활용해 마음대로 동영상과 정지영상을 만들 수 있고, 그래픽으로 모든 걸 대체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세상과 마주하면서 손으로 어떤 형상을 만드는 수고로움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깃드는지 함께 음미해 보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