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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Luminous Visions _ Anna Thorne
012 Light Painting _ Tamotsu Kido 022 What Happens When Nothing Happens _ Tiziano Demuro 032 북쪽창문으로 _ 전명은 044 빛의 파노라마 / 낙진하는 밤 _ 이민지 056 Kamuy Mosir _ Ayaka Endo 068 The Dream Meadow _ Gareth McConnell 080 Light Break _ Nicolai Howalt 092 Between Control and Chance _ Tenesh Webber 130 투광 _ 성해나 135 빛으로 세어본 하루: 기억-빛뭉치 _ 유희경 140 세 개의 빛 _ 김애란 148 빛이 나를 따라다닌다면 _ 김복희 153 반짝반짝 주머니 _ 고명재 159 밝은 곳으로 향하는 마음과 움직임 _ 이민지와 전명은의 대화 168 [연재: 영화의 장소들] 시네마레나, 스캔들을 위한 경기장 _ 유운성 174 [연재: 일시 정지] 아카이브 속의 사진은 어떻게 역사를 숨기는가(1) _ 서동진 180 [에디터스레터] 한 줌의 뻔한 빛 _ 박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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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이 이해가 돼서요. 짧은 말이지만 큰 위안을 얻는다. 이해. 나에게서 타인에게로 투과되는 온기. 인간은 투명한 유리가 아니기에 서로를 완벽하게 비추지 못한다. 그저 타인에게 내 상을 비추며 희미하게 서로를 이해할 뿐이다. 하지만 그 어렴풋한 투광만으로도 때로는 안도하고 치유된다. 꺼진 장작 속에서 여전히 따뜻한 열기가 느껴질 때, 누군가 앉아 있다 일어난 시트에 온기가 한동안 남아 있을 때처럼 타인의 빛이 닿은 자리에는 늘 온기가 남고, 그 잔열로 밤을 버틸 힘이 생긴다. 집으로 돌아와 거울을 보는데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또 누군가의 따뜻한 손을 잡고 일어선 빛나는 밤이었다.
--- p.133 성해나, 「투광」 중에서 문득 나는 내가 기억―빛뭉치가 되어가고 있음을 알아챈다. 기억은 나 자신이다. 시 쓰기도 사진 찍기도 결국 어두워지고 모든 것을 감추는 창밖도 나 자신이다. 오른눈을 감는다. 아무도 없지만, 누군가 있다면 그는 나의 왼눈을 살필 것이다. 나의 왼눈이 무엇을 보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보고 있지 않다. 그럼으로써 보고 있다. 스스로 기억―빛뭉치로서, 그냥 그대로. --- p.139 유희경, 「빛으로 세어본 하루: 기억―빛뭉치」 중에서 다 드러내고, 다 털어놓는 대신 감추는 마음. 동시에 그걸 알아채고 헤아리는 마음. AI 앞에서 요즘 그런 것을 자주 생각한다. 우리 삶은 점점 AI 불빛에 감싸질 테지만 한편으로 삶의 몇몇 중요한 빛은 여전히 액정 밖에 있으며 우리가 고개 들어 애써 보려 하지 않는 이상 놓치기 쉽다는 걸 실감하는 중이다. 삶은 액정 위의 푸른 빛뿐 아니라 〈가요무대〉를 경청하는 한 인지장애 노인의 눈빛 속에 있다고. 자신이 무지한 화제 앞에서 황급히 눈물을 훔치는 몸짓 속에 있다고. 그건 인류의 지식을 흠뻑 흡수한 인공지능의 언어만큼 유려하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무엇이지만 그렇기에 더 강렬한 형태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과 흔적을 남긴다고 말이다. --- p.147 김애란, 「세 개의 빛」 중에서 매일 저는 빛을 봅니다. 저를 따라오는 빛을 봅니다. 죽기 전까지 저를 포기하지 않는 냉정한 다정함을 봅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빛을 어떻게 맞이할지 내내 붙드는 것이 제 과제입니다. 그런데 이 빛은 저만을 위한 것이 아니랍니다. 공평하게 당신에게도 빛이 따라붙었을 것입니다. 인간이 아니게 된 것, 그 무엇이라도 내버려두지 않고 다가오는 빛입니다. 당신도 저도 죽는 날까지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빛과. --- p.152 김복희, 「빛이 나를 따라다닌다면」 중에서 할머니 죽고 너무 심하게 마음이 아파서 이런 생각을 했던 날이다. 한 며칠은 밥도 안 먹고 일어나지 않겠다. 그냥 누운 채로 돌부처처럼 잠만 자겠다. 울다가 자가다 혼자서 당신 생각을 하다가 설핏 선잠에 든 것이었는데. 발목이 너무 따끈해서 아래를 보니 창문 틈으로 볕이 발목 위에만 내렸다. 밥 무라. 말하고 매번 발목이나 뒤꿈치를 손으로 슬쩍 감싸 쥐고는 했다. 그 생각이 나더라. 네 발목은 얇아서 한 손에 쥐기에 참 적당하다고. 벌떡 일어나서 양푼에 무채를 뿌렸다. 콩나물에 시금치에 참기름을 뿌려서 반짝이는 비빔밥을 밀어 넣었다. 먹으면서 생각나서 핑핑 쉬었다. 양푼째로 다 먹고 수박도 썰어 먹었다. --- p.155 고명재, 「반짝반짝 주머니」 중에서 이 영화를 아무리 거듭 본다고 해도 결코 말끔히 가시지 않을 스캔들이 강렬하게 다가올 터다. 그것은 두뇌 없는 카메라가 그야말로 가차 없이 줄기차게 포착해 내는 안드레스의 표정이다. 불안, 안도, 긴장, 공포가 뒤섞인 이 현존하는 최고 투우사의 얼굴에는 스크린상에 아직 실현되지 않은 죽음의 스캔들이 시종일관 어른거린다. 내부 시사 자리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본 안드레스가 충격을 받았던 것도 이 때문은 아니었을까? 두뇌 없는 카메라는 당신이 바라는 대로 당신을 보지 않는다. 모두가 각자의 손에 카메라를 들고 각자의 이미지를 만드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이처럼 무심한 시각이야말로 진정한 스캔들이다. --- p.173 유운성, 「시네마레나, 스캔들을 위한 경기장」 중에서 사진은 역사를 희석하고 추상화하며 역사를 추상적인 시간과 장소의 기호로 전락시킨다. 서글픈 일이지만, 이는 거의 모든 박물관의 전시에서, 미술관의 아카이브 전시에서 목격하는 사진의 작동 방식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아카이브적인 재현의 논리에 가담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면서도 나 역시 그런 아카이브 사진들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또 역시 또 하나의 조그만 사진 아카이브를 생산해낸 것이다. 그렇다면 이 궁지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나는 이를 마음에 품고 몇 가지 반성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 p.179 서동진, 「아카이브 속의 사진은 어떻게 역사를 숨기는가(1)」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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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기울기를 쫓아가는 눈동자의 궤적
어떤 사진을 바라보면, 거대한 눈동자가 떠올랐다. 눈동자로 말하고 듣고, 눈동자로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눈동자로?걷고 달리고, 눈동자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오로지 시각으로 감지하려는 사진 속의 어떤 몸짓을?느낄 때마다 그 거대한 눈동자를 떠올렸다. 어쩌면 사진이란 누군가의 눈동자에서 비롯한 이미지를 또 다른 눈동자로 옮기려는 의지가 아닐지 생각했다. 눈동자로부터 눈동자로까지 향하는 움직임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그 동선은 태양의 궤적과 그대로 겹쳐지곤 했다.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는 것도, 그 사물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는 것도 모두 빛 때문이었다. 인간의 시각 활동은 빛없이 불가능하고, 빛의 원리를 이용하는 사진 또한 이미지가 생성되려면 빛이 필수적이다. 이런 까닭에 세상을 카메라로 바라보고 기록하는 과정에서는 빛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또한 직진, 반사, 투과, 산란 등 빛이 지닌 성질은 다양한 영감을 불어넣고 다채로운 은유로 변주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빛과 사진의 친화성이 찬연한 이유는 매번 순식간에 사라지는 빛의 속성과 순간적으로 이미지를 붙잡는 사진의 역량이 서로를 호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호 특집 〈하루치의 빛〉은 빛의 기울기를 직감적으로 쫓아가는 눈동자를 상상하며 만들었다. 일상 속에서 순간적인 빛의 변화를 예민하게 포착한 사진 작업이나 빛의 성질과 물성을 탐구해 실험적인 이미지를 선보이는 사진 작업을 선별했다. 그리고 빛의 상징적인 의미를 다각도로 해석하는 시선이 담긴 에세이를 수록했다. 여기에 모인 사진과 글은 오늘 하루에도 우리에게 아낌없이 사방에서 쏟아졌던 빛을 우리를 대신해 아껴 바라본다. 또한 우리 주변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자취를 감추고 사라진 빛의 흔적을 우리를 대신해 기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