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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봄호 / VOL. 49
특집 | 견딜 수 없는 하루 001 Ambiguity and Fluidity _ Lean Lui 015 안녕 _ 이우선 027 노 드레스 코드 _ 송석우 039 A Dissonant Past Unmasked _ Emily June Smith 053 Body As a Negative. Sensations of Return _ Izabela Jurcewicz 066 슬프나 그러나 웃으면서 _ 정혜윤 071 목격자의 기도 _ 임지은 076 “지루한 것보다 죽는 게 낫다”, 마크트 웨인 _ 박참새 081 세 번의 하루 _ 한승태 085 견딜 수 없는, 견뎌야 하는 _ 이승우 090 [연재: 영화의 장소들] 절대적인 것의 여파 _ 유운성 096 [연재: 일시 정지] 도그마와 틸만스 그리고 사진의 리얼리티 _ 서동진 107 The valley of shadows _ Camillo Pasquarell 121 The Scars _ Je?drzej Nowicki 137 Ukraine _ Natalie Keyssar 153 Contrapasso _ Massimiliano Corteselli 172 [에디터스 레터] 한 권, 한 권, 또 한 권 … _박지수 175 겨울깃 _ 장소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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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적으로 연습을 하듯이 숨을 쉬어야 하는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잃어버린 얼굴들과 이름들마다 부재의 신기루가 계속 맴돌아도, 상처를 열심히 꿰맬수록 바늘 자국만 늘어나도, 그럼에도 새살은 또 돋아난다고 믿기에 천천히 발걸음을 떼려고 노력할 뿐이다. 우리의 안녕이 ‘bye’가 아닌 ‘hello’가 되기를 바라며.
- 이우선, 〈안녕〉 작가 노트, 24쪽. 내가 알기로 그(임의진 목사)는 자기 인생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을 불평 없이, 털털한 미소를 지으며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누나, 매형, 여동생을 잃었다. 원래는 넷이 떠나기로 한 여행이었다. 바로 직전에 유럽을 다녀온 그는 빠졌다. 그는 쓰고 남은 달러를 여동생에게 줬다. 매형은 떠나는 날 무안공항에서 전화를 했다. 같이 못 가서 아쉽다고. 사고가 난 며칠 뒤 임의진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 슬픔을 내가 겪지 누가 겪게 할까.” 숭고한 말이다. 그러나 그 이면은 얼마나 슬프던지. 싸늘하게 식은 사랑하는 몸보다 더한 어둠이 어디 있을까? - 정혜윤, 〈슬프나 그러나 웃으면서〉, 67쪽. 영훈은 할머니의 생애를 기억하고, 영훈의 유년기는 할머니를 통해 스스로를 기억한다. 할머니는 영훈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아마 지금은 영훈을 통해 자신의 생애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우는 영훈 곁에 조용히 머무른다. 언젠가 모든 게 조금씩 흐릿해질 때 더듬더듬 말해주기 위해서. 내가 다 목격했노라고. (…) 할머니가 떠난 것에 너는 정말이지 견딜 수 없이 슬퍼했었다고. 그 슬픔은 한때 네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 있었다는 증거이자, 그가 여전히 네 가슴속에 남아있다는 증거라고. 나도 다 기억하고 있다고…. 그렇게 버거운걸, 결코 영훈 혼자 붙잡고 있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엔 목격자가 필요하다. - 임지은, 〈목격자의 기도〉, 75쪽. 아직도 나는 그 여자 생각을 한다. 자살하기 전에 남겼다던, 아직 원고 뭉치에 지나지 않았을, 그 손이 집필한 슬픔의 설명서도. 붉고 진한 그 여자의 일생이 담긴 한 권의 책. 나는 지금 그 책을 어루만지고 있다. 계속해 환생하고 거듭해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그 책. 단 하나의 책. 나는 그것을 쓴다. 나의 손이기도 한 그 여자의 손과 함께. 계속해 쓴다. - 박참새, 〈“지루한 것보다 죽는 게 낫다”, 마크 트웨인〉, 80쪽. 법정에선 증거를 통해, 증언을 통해 피고의 정신세계가 낱낱이 드러난다. 이 글이 발표될 때쯤에는 결론이 나 있을 탄핵 재판을 바라보며 나는 현직 대통령의 뒤틀린 정신세계 안에 갇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사고방식이 콜센터에서 접했던 진상 고객들과 무척이나 비슷했다. 그들에겐 논리도 상식도 근거 자료도 소용없다. 오직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가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될 뿐이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다수 국민을 상대로 진상을 부리는 걸 지켜보며 비참하고 답답했다. - 한승태, 〈세 번의 하루〉, 83쪽. 유독 견디기 힘든 날이 있다. 견뎌야 하는 줄 알지만 견디기 어려운 일, 사람, 환경, 기분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이 있다. 그런 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주저앉는 편을 택한다. 견디지 않는 편을 택한다. 책도 보지 않고 핸드폰도 꺼놓는다. 텔레비전을 켜놓거나 음악을 틀어놓지만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음악을 듣는 것도 아니다. 견디기를 포기하는 그것이 견디기 힘든 삶을 견디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 하루를 억지로 견딘다면, 꾸역꾸역 무언가를 한다면, 아마 오래, 꾸준히, 계속 견디지 못할 것이다. 하루를 견디고 삶을 잃을 것이다. 내일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내일도 견뎌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견뎌야 하는 것은 하루가 아니라 삶이다. 하루는 다른 하루와 이어져 삶을 만든다. 평범한 삶 가운데 빛나는 하루가 아니라 평범한 하루들이 모여 만든 빛나는 삶을 바라보아야 한다. 견딜 수 없는 어떤 하루를 억지로 견디느라 자신의 삶을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 이승우, 〈견딜 수 없는, 견뎌야 하는〉, 87쪽. 절대적인 것을 산포하는 장소의 은유는 이제 디스플레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1960년대 중반에 이미 공장이 현대적 삶의 보편적 은유가 되고 있음을 직감하고 모든 언어가 기술적 언어로 흡수되고 변형될 때 “지금은 공장 안에서만 확인되는 현상이 사회적 삶의 모든 국면에서 되살아날 것”이라고 준엄하게 경고한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말을 떠올려야 한다. 즉, 지금은 ‘디스플레이라는 장소’ 안에서만 확인되는 현상이 사회적 삶의 모든 국면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아니, 지난겨울 비상계엄이라는 난폭한 방식으로 우리의 현실을 강타한 공장 시대의 망령이 똑똑히 보여주었듯, 이미 되살아나고 있다. - 유운성, 〈절대적인 것의 여파〉, 91쪽. 이(‘포스트-다큐멘터리’ 사진의 흐름)는 소셜네트워크를 비롯한 여러 미디어에서 폭발하는 사진의 가공할 선동적인 서사성으로부터 벗어나 사진에 포화된 내러티브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며 상황을 드러내고자 하는 데 진력하는, 근년 우리가 익숙한 사진의 풍경을 가리킨다. 그것은 인물 사진도 그렇다고 풍경 사진도 아닌 모호한 위치에서 세계의 리얼함을 드러내는데 복무한다고 자신한다. (…) 그(짐 호버만)는 이러한 영화들에서 관찰이 드라마를 포섭해버리고, 풍경이 연기보다 우위에 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리얼리즘이라는 재현적 코드를 해체하고자 했던 투쟁으로부터 탈출해 이제 다시 ‘리얼함’에 대한 갈망으로 채워진 이미지들을 애타게 찾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무엇이 리얼함인가. 우리는 그것에 모호한 시적이고 윤리적인 관념을 불어 넣어 리얼함을 재정의하는 중이다. 그러나 그러한 리얼리즘은 그릇된 환영을 부정하는 비판적 리얼리즘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전히 사진에서의 리얼리즘은 자명하지 않다. 사진의 리얼리즘을 둘러싼 토론이 절박한 것도 그 때문이다. - 서동진, 〈도그마와 틸만스 그리고 사진의 리얼리티〉, 102쪽. 겨울깃은 번식기인 봄과 여름이 지나고 가을쯤에 새로 나는 새의 깃이다. 겨울깃은 우리가 떠올리는 화려하고 매혹적인 새들의 모습과는 다르다. 겨울깃을 갖춘 새의 모습은 좀 더 평범하고 이목을 끌지 못하고 기억되지 않는다. 도시에는 이렇게 기억되지 않고 주목받지 못하는 새들의 일상이 있다. 이들은 사람을 위해 도시에 세워진 투명한 벽에 충돌해 목숨을 잃는다. 하루에 2만 마리, 한 해에 800만 마리가 건물의 유리창과 방음벽 앞에서 생을 마감한다. - 장소영, 〈겨울깃〉 작가 노트, 182쪽.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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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또 하루를 견뎌야만 하는 우리에게
하룻밤 사이에 일상은 크게 달라졌다. 속보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이런 와중에도 사람들은 회사에 나가야 하는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안절부절못했다. 하룻밤 사이에 나라가 뒤집어지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깟 출근이나 등교가 무슨 대수일까. 하지만 이러한 반응이야말로 사람들이 이번 사건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루아침에 평범한 일상이 멈출 수도 있었다는 것을, 보통의 생활이 지속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 그날부터 줄곧 수많은 뉴스를 접하면서 분노와 슬픔, 절망과 탄식 등이 교차되면서 복잡한 감정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소소한 날들이지만, 그 일상을 나와 상관없이 누군가 마음대로 빼앗을 수 있었다는 생각에 이르면 참기 힘들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모두가 다를 바 없이 모멸감을 견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칫 우리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졌으리라 상상하니, 무탈한 ‘하루’의 가치와 의미를 새삼 곱씹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각자 자신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견딜 수 없는 하루’는 어떤 모습인지... 조금 짓궂을 수도 있겠지만, 그 ‘견딜 수 없는 하루’와 연결된 저마다의 사연과 속내가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모두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뎌야 하는 이유에 관해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이번 호에는 ‘견딜 수 없는 하루’를 키워드로 삼아 사진과 글을 모았다. 우울과 불안, 상실감 또는 정서적 장애 등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부터 전쟁과 환경파괴, 정치적 갈등과 대립 등 사회적인 차원의 문제까지 한 인간의 삶을 무겁고 지치게 만드는 순간들이 사진 속에서 펼쳐진다. 그리고 정혜윤, 임지은, 박참새, 한승태, 이승우 등의 필자들은 각자 ‘견딜 수 없는 하루’를 보내면서도 삶을 견뎌야 하는 이유에 관해서, 그 견딤을 우리가 어떻게 서로 나눠야 하는지에 관해서 이야기를 전한다. 만약 이러한 사진과 글 속에서 가만히 웅크리고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던 너의 표정을 발견하게 된다면, 버텨야만 하는 나날들 속에서 바라보았던 나의 그림자를 기억하게 된다면, 그렇게 또 하루를 견뎌야만 하는 우리 자신에게 괜찮냐고, 괜찮다고 스스로 묻고 답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