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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극채색 볏
흰뺨검둥오리 산벚나무가 씻어낸다 참나무가족사 황무지에로의 접근 신문지 한 장 위에서 내소사 韻 나에게 상자가 있다 검은색의 음악회 복서 은사시나무가 있는 산업도로 두꺼비에 관한 것은 두꺼비에게 물어보라 눈의 무게 소나무 눈물이라는 영혼 버들강아지 홍단풍 만어산 햇빛이 수면에 제 숨소리로 무늬를 만들 때 산 風化 수치에서 마흔 살 개구리밥 악기가 필요할 때 천남성이라는 풀 기다린다는 생각 안 보이는 사랑 평정을 잃으면 소리를 낸다 사방무늬 입김 같은 절 가그랑비 불탄 부처 백흥암 가을 앞에서 아버지도 오시는 무덤 빗소리를 듣는다 여기는 지금 바닷속? 조문국의 입구 나무는 경계가 아니다 西行 격포 이하석 타이프라이터 애인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가시이다 누에 영산전 오백나한 중에는 반드시 닮은 나한이 있다는데 환생 이도백하 글자 팔 하늘 거울 라마승 숨쉬는 산 수법사는 없다 자루를 묶는 방법 팔조령에서 바라본 늦가을의 청도는 산봉우리 몇개만 섬으로 떠올려놓고 죄다 구름 아래 숨었다, 그 구름을 노래하라 재종조부 쓸쓸한 비탈 더이상 나무를 숭배하지 말자 히말라야꽃 감출에 대해 쓰다 황무지란 바람을 숨긴 이름이기도 하다 내 허파의 숫자 나의 왕오천축국전 목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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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가지에 앉은 눈의 무게는 나무가 가진 갓맑음이 잠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느티나무가 입은 저 흰옷이야말로 나무의 영혼이다
밤새 느티나무에 앉은 눈은 저음부를 담당한 악기이다 그때 잠깐 햇빛이 따뜻하다면 도레미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도 보일 게다 --- p.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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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학은 주로 자연에 속한 사물을 시의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그것에 시인의 감성을 부벼넣는 전통적인 서정시의 계열에 속하는 시인은 아니다. 그의 시적 상상력은 자연에 대한 마음의 외로움이나 슬픔, 기쁨 속에서 샘솟아나오기보다 자연의 사물에 대한 존재론적인 사유와 직관에서 촉발되는 경우가 많다. 삶의 남루함과 죽음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그것을 초극하는 마음의 경지를 꿈꾸는 그의 시편들은 상상력의 무기로 감각의 긴장을 내세운다.
감각의 긴장을 통하여 극단의 삶에 매혹된 그의 시편들은 절제와 응축된 표현을 얻어낸다. 이번 시집에서 특히 도드라져 보이는 특징도 사유와 직관을 그러한 감각으로 표현해내는 솜씨이다. 가령 수탉의 볏을 <좁아터진 뇌수에 담지 못할 정신이 극채색과 맛물려/톱니바퀴 모양으로 바깥에 맺힌 것>(「닭, 극채색 볏」)이라고 표현하거나 골목을 상자에 비유하여 <촘촘한 대문과 아이를 부르던 아부재기조차(사투리 : 날카로운 소리) 상자의 목록에 합쳐져서 굳기름 아래 눌러 붙었다>(「나에게 상자가 있다」고 표현하는 내용 속에서 우리는 그러한 솜씨를 확인할 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