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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_왕의 정치는 백성의 밥상에서 시작되었다
1부. 세종, 세금 제도를 바꾸다 1장. 미션! 백성을 배불리 먹여라 한반도는 왜 농사짓기 어려웠을까? | 우리 땅에 맞는 농사법을 찾아서 | 농사법을 바꾸면 생산성이 올라간다 2장. 세금 제도 바꾸려고 17만 명에게 묻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론 조사 | 과반수가 찬성하면 좋은 정책일까? | 조선만의 공법을 완성하기까지 3장. 비의 양을 재면 세금이 공평해진다고? 예로부터 중요했던 기상 관측 기록 | 측우기, 농업 생산량을 예측하다 | 탐관오리까지 막아 낸 측우기 4장. 종이 화폐 도입에 실패한 1만 원권의 주인공 쌀 대신 ‘돈’을 쓰기까지 | 화폐를 만들어도 백성이 안 쓰면? | 시장에서 외면받은 세종의 화폐 정책 5장. 대마도 정벌, 전쟁 뒤에 무역이 있었다 왜구도 막고 무역로도 지키고 | 전쟁 대신 무역을 택하다, 계해약조 2부. 광해군, 외교의 판을 뒤집다 1장. 세금을 쌀로 통일한 대동법의 탄생 백성을 괴롭히는 세금, 공납의 폐단 | 공납을 뜯어고치려 나선 사람들 | 조선을 살린 대동법의 시작 2장. 임진왜란 이후 막힌 바닷길을 열다 조선 전기, 일본으로 향한 통신사 | 조선 후기, 다시 일본으로 향한 통신사 | 사신 행렬이 지나가면 돈이 움직였다 3장. 조선판 주민등록증, 호패가 외면받은 이유 조선에도 신분증이 필요했다 | 백성들은 왜 호패를 싫어했을까? | 호패 하나로 세금과 군역을 잡아라! 4장. 명나라냐 후금이냐, 광해군의 줄타기 외교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은 중립 외교 | 임진왜란으로 요동친 동북아시아 | 명과 후금, 그 누구도 적으로 만들지 말 것 5장. 궁궐 공사에 나라 살림을 쏟아붓다 왕이 됐지만 왕답지 못하다고? | 새 궁궐로 왕권을 강화하라! | 무리한 궁궐 공사로 돌아선 민심 3부. 숙종, 시장에 화폐를 풀다 1장. 쌀만 내면 노비 탈출? 사람이 재산이던 시대, 조선의 노비 | 노비가 늘자 세금 낼 사람이 줄었다 | 노비를 양인으로, 숙종의 속량 정책 2장. 새 동전의 이름은 상평통보 동전이 있는데 왜 아무도 쓰지 않았을까? | 대흉년이 바꿔 놓은 화폐 생활 | 동전이 많아도 문제, 적어도 문제 3장. 빌린 돈보다 이자가 더 무섭다! 사채와의 전쟁 고려 사람들도 빚에 시달렸다 | 조선 전기에도 이자 상한선이 있었다고? | 빚 때문에 노비가 되지 않도록 4장. 대동법, 100년 만에 전국 진출 경기도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퍼진 대동법 | 세금이 바뀌자 시장도 달라졌다 | 대동법이 희망을 선사하기까지 5장. 조선 팔도의 모든 땅을 조사하라, 숙종의 양전 사업 장부에서 땅이 사라졌다고? | 세금 안 내는 땅을 찾아서 | 경자양전, 성공했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4부. 정조, 독과점을 금지하다 1장. 신해통공, 시장 독점을 막아라 나라가 허가한 조선의 상점, 시전 | 시장 경쟁을 막은 금난전권 | 독점 상인의 특권을 깨뜨린 신해통공 2장. 수원 화성, 조선 최초의 신도시 정조가 수원을 선택한 진짜 이유는? | 신기술과 정당한 대가로 쌓아 올린 화성 | 수원 화성이 불러온 뜻밖의 경제 효과 3장. 홍삼이 조선의 수출 효자 상품이었다고? 인삼을 홍삼으로, 상품 가치를 높여라! | 포삼제, 홍삼 무역을 나라가 관리하다 4장. 결혼도 나라가 지원한다! 정조의 인구 정책 조선 전기, 인구가 곧 국력이다 | 전쟁과 기근으로 줄어든 인구를 되살려라! | 결혼 못 하면 나라가 도와준다고? 5장. 정조는 왜 수원 화성에 13번이나 갔을까? 6,000명이 함께한 정조의 초대형 행차 | 격쟁, 왕 앞에서 억울함을 외치다 | 지역 경제를 들썩이게 한 왕의 발걸음 교과 연계 참고 자료 | 사진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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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전 조선에서 이루어진 경제 정책의 선택과 그에 따른 성공과 실패는 결코 과거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누가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가」 중에서라는 문제, ‘시장은 얼마나 자유로워야 하는가」 중에서라는 논쟁, ‘국가는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 중에서라는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선의 경제 정책을 살펴보는 일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경제 문제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됩니다.
--- p.7 「들어가며」 중에서 세종은 옛 방식을 고수하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고 있었기에, 강요하기보다는 관리가 먼저 모범을 보여서 농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즉, 『농사직설』의 농법을 적용하기 전과 후의 수확량 차이를 백성들에게 직접 보여 줌으로써, 농민 스스로 새로운 농법의 우수성을 체감하고 선택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죠. 또한 시행 과정에서 발견되는 문제점과 잘못된 농업 기술을 꾸준히 수정하고 보완하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고요. --- p.23 「미션! 백성을 배불리 먹여라」 중에서 우리나라 최초라고 부를 수 있는 여론 조사가 세종 때 진행되었습니다. 1430년 호조에서 농사짓는 토지 1결당 10두를 징수하자는 ‘공법」 중에서 시행안을 제출하자, 세종은 “전국의 전·현직 관리는 물론이고 백성에게까지 모두 찬성 여부를 물어보고, 그 결과를 아뢰도록 하라”라는 파격적인 지시를 내렸어요. (…) 그 결과 세종은 총 17만 2,806명 가운데 찬성 9만 8,657명, 반대 7만 4,149명이라는 집계 결과를 받아 보았습니다. 당시 조선의 호구(가구) 수가 69만 2,477호였음을 고려했을 때, 이 여론 조사는 당시 유력 인사들과 토지를 소유한 백성 대다수가 참여한 매우 큰 규모의 의견 수렴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 p.27~28 「세금 제도 바꾸려고 17만 명에게 묻다」 중에서 임진왜란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많은 농경지가 황폐해지면서 조선 사회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로 인해 백성들은 ‘죽지 못해 산다」 중에서라는 말을 달고 살 정도로 처참한 생활을 해야 했어요. 위기를 벗어나 국가를 정상적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엄청난 예산이 필요했지만,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백성들에게 새로운 부담을 지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백성의 부담을 줄이면서 국가 재정도 안정시킬 수 있는 제도 개혁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이 ‘대동법」 중에서입니다. --- p.74 「세금을 쌀로 통일한 대동법의 탄생」 중에서 왕이 된 광해군은 명나라와 후금이 다투는 일에 관여하지 않고, 오직 전후 복구에만 전념하고 싶었습니다. 약해진 조선이 어느 한쪽 편을 들다가 전쟁에 휘말린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죠. 여기에는 임진왜란 당시 명과 일본의 복잡한 협상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실리」 중에서를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고 배운 경험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 p.101 「명나라냐 후금이냐, 광해군의 줄타기 외교」 중에서 노비 제도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무너집니다. 두 번의 큰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집과 농토를 잃고 살길이 막막해지자, ‘이대로는 굶어 죽을 수 없다」 중에서라며 양반을 찾아가 노비가 되기를 자청하는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노비가 되면 자유는 잃지만, 적어도 주인이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해 주었으니까요. 그로 인해 세금을 내는 상민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자, 조선은 국가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 p.122 「쌀만 내면 노비 탈출?」 중에서 특히 땅을 많이 가진 지주들은 제대로 양전이 이루어지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해 양전 시행을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지방 관리들도 고을을 다스리려면 지주의 협력이 필요한 만큼 적극적으로 양전을 시행하지 않았고요. 그래서 양전을 시행할 때마다 갈등이 발생하자 ‘차라리 양전을 안 하는 게 낫다」 중에서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어려움이 많은 사업이었습니다. 결국 양전이 제대로 시행되어 세금을 공평하게 거두기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은 기득권층의 반발을 막는 일이었습니다. --- p.156 「조선 팔도의 모든 땅을 조사하라, 숙종의 양전 사업」 중에서 금난전권의 폐해가 최고조에 달했던 1791년, 명재상 채제공은 정조를 찾아가 말했습니다. 시전의 금난전권 때문에 소규모 상인과 생산자 들이 자유롭게 상업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이로 인해 물가가 너무나도 치솟아 백성들의 삶이 극심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말이죠. 이에 대한 대책으로 국가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핵심 육의전을 제외한 모든 시전의 금난전권을 폐지하자 고 제안했습니다. (…) 정조도 백성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 주고 자유로운 상업 발전을 열망했던 만큼 채제공의 주장을 받아들여 금난전권을 폐지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역사적으로 이 개혁을 ‘신해통공」 중에서이라고 불러요. --- p.171 「신해통공, 시장 독점을 막아라」 중에서 수원 화성 건설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신도시 수원의 눈부신 발전이었습니다. 행정기관은 물론 역참 같은 중요한 교통 시설과 상가, 그리고 잘 정돈된 도로 등 도시의 핵심 기반 시설을 갖추며 수원은 신도시로서 탄탄한 기반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도시 시설이 늘어나자 상업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고, 새로운 인구가 꾸준히 들어오면서 수원 지역의 경제도 성장했습니다. --- p.183 「수원 화성, 조선 최초의 신도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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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을 외우는 역사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역사로!
논술·토론·수행평가로 연결되는 역사×경제 교양서 좋은 정책이란 무엇일까? 이 책은 조선의 경제 정책을 단순히 옳고 그른 것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왕이 어떤 문제를 마주했는지 살펴보고, 그 선택을 둘러싼 여러 입장과 결과를 따져 보며 스스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그 대표적인 예로 대동법이 있다. 광해군은 백성을 힘들게 하던 공납 제도를 고치기 위해 경기도에서 대동법을 처음 시행했다. 특산물 대신 쌀로 세금을 내게 하자 백성의 부담이 크게 줄었다. 하지만 좋은 제도라고 해서 곧바로 전국으로 퍼진 것은 아니었다. 땅을 많이 가진 지주들이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결국 대동법이 전국에 자리 잡기까지는 10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모두에게 좋은 정책이 있다면 왜 곧바로 시행되지 못할까?’, ‘한쪽에는 이익이고 다른 쪽에는 손해인 정책은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숙종의 사채 정책도 눈여겨볼 만하다. 당시 백성들은 급전이 필요하면 개인에게 돈을 빌렸는데, 터무니없이 높은 이자 때문에 빚을 갚지 못해 노비로 전락하는 일이 많았다. 숙종은 법으로 정한 이자율을 넘기면 처벌하도록 하고, 흉년에는 빚을 없애 주기도 했다. 개인끼리 하는 돈거래에 국가가 끼어든 것이다. 이 대목에서는 ‘나라는 개인의 거래에 어디까지 개입해야 될까?’, ‘자유로운 거래와 약자 보호, 둘 중 무엇이 먼저일까?'라는 질문으로 생각을 이어 갈 수 있다. 이처럼 이 책은 역사적 사실을 아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했는지,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등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게 한다. 서로 다른 입장을 비교하고 자신의 생각에 근거를 더하는 과정은 논술과 토론, 수행평가에 필요한 사고력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역사를 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질문하고 판단하는 것. 이 책이 제안하는 새로운 역사 공부법이다. 돈의 가치, 시장 경쟁, 인구 문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경제 수업 돈의 가치는 왜 달라질까? 몇몇 기업이 시장을 차지하면 왜 문제가 될까? 인구 감소는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책은 오늘날 뉴스에서 접할 법한 질문들의 답을 조선의 역사 속에서 찾아간다. 수백 년 전 왕들이 마주했던 경제 문제를 지금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경제 원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세종이 세금 제도를 바꾸기 위해 17만 명의 백성에게 의견을 물었던 것은 정책을 결정할 때 국민 여론을 반영하는 오늘날의 공론화 과정과 닮아 있다. 숙종 시대의 상평통보를 통해서는 돈의 가치를 배운다. 조선 사람들이 왜 동전보다 쌀과 베를 더 믿었는지 살펴보고, 이를 물가와 구매력, 환율, 금리 등 화폐 가치를 결정하는 오늘날의 요인들과 연결해 보게 한다. 정조의 신해통공에서는 독과점과 시장 경쟁의 문제를 만난다. 시전 상인의 독점 특권을 없앤 이 개혁을 통해 지금의 기업 독과점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이를 통해 경쟁은 왜 필요한지, 국가는 시장에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정조가 펼쳤던 결혼·출산·양육 지원 정책은 오늘날의 저출생 문제로 이어진다. 인구 감소가 노동력과 소비, 내수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며 오래된 역사 속 고민이 지금 우리 사회의 고민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짚어 본다. 이처럼 이 책은 조선의 경제사를 오늘의 문제로 연결하며 역사와 경제를 함께 이해하는 시야를 넓혀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