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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의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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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일러두기

|제1장| 여진의 등장과 조명관계

제1절 16세기 말의 요동
몽골|명의 요동 진출|여진|건주여진|조선과 여진
제2절 건주여진ㆍ조선의 현안과 명의 중재
누르하치의 등장|누르하치의 접근|잔류 명군의 중재|신충일의 정탐|부총병 마동의 선유|군관 여희원|양호의 질책|누르하치와 최초 군사적 조우
제3절 함경도 번호의 동요
울라의 변경 침략|건가퇴 공격 실패|직첩과 봉목의 제공|요동에 대한 중재 요청|유격 유흥한|명 조정에 대한 보고|누르하치의 울라 축출|조선과 누르하치의 논쟁|명 조정의 질책
제4절 광해군의 즉위와 조명관계
왕위 계승과 책봉 요청|조사관원의 파견|책봉의 결정과 집행|요동지도부, 조선 군현화 주장
제5절 광해군 초기 국내외 상황
요동의 상황|조선의 대응|국내적 혼란|칠서지옥과 계축옥사|명의 왜정 조사|명의 징집 요청

|제2장| 후금의 도전과 조명의 대응

제1절 후금 건국 직후의 제문제
후금의 건국|통신사 파견|후금의 조선 접근|중강 개시|의주부윤 이극신|진강 축성
제2절 무순 함락과 명의 파병 요구
무순 함락과 명의 소탕 작전|요동순무의 징병 요구|계요총독 왕가수의 자문|계속되는 논란|재자관 이잠의 보고|경략 양호의 요동 진출|품획사 이경전|계속되는 파병 요구|황제의 칙서
제3절 사르후전투
원정 준비|조선 군대의 출정|패전 소식|광해군의 밀지설
제4절 전후 명ㆍ후금과의 관계
압록강변 방비 요청|경략의 차관 상명신|명 조정의 조치|누르하치의 첫 번째 서한|명에 대한 보고|조선과 요동 당국|누르하치의 두 번째 서한|경략의 차관들|후금의 차인|요동 당국의 반응
제5절 조선 감호론과 명군 주둔 문제
서광계와 장지발의 조선 감호론|요동지도부의 방안|고급사 홍명원|이정귀의 변무|진주사 황중윤|누르하치의 회유

|제3장| 요동 쟁패와 조선

제1절 누르하치의 요동 진출과 조선의 대응
누르하치의 요동 공격|명의 재파병 요구|등래순무 도낭선|후금 군대의 월경|정충신의 파견
제2절 명의 요동 방어 전략과 조선
모문룡의 진강 탈취|임반의 변|감군 양지원의 조선 진출|후금과의 접촉|모문룡의 가도 진입
제3절 인조반정의 파장
광해군의 죄목|명에 대한 보고|명 내부의 논의|인조의 책봉|이괄의 난|모문룡, 가중되는 부담|모문룡의 주둔지 이전 논의|명 사신 강왈광 |김상헌의 변무|후금과 일본

|제4장| 정묘호란의 국제정치

제1절 호란의 전개
후금의 공세 재개|조선과 모문룡의 상호 불신|침략의 개시|강화 논의|성하지맹(城下之盟)
제2절 호란과 조명관계
등래순무에 대한 자문|명의 대응|모문룡 문안사 신달도|진주사 권첩
제3절 전후처리
청북 지역 힘의 공백|의병장 정봉수|종전 직후 추가 교섭|강홍립과 박난영의 수종 한인|세폐와 개시|귀환 포로의 송환|기타 의례 문제들
제4절 정묘호란 직후 국제관계
모문룡 문제|원숭환, 모문룡 처형|대마도 사신의 상경|원숭환과 조선|후금의 북경 습격
제5절 가도의 균열
가도의 정변과 토벌 계획|명 조정의 입장|계속되는 정변|후금의 가도 공격 실패|가도 폐지 방안|등래사변과 여순의 함락

|제5장| 청의 수립과 병자호란

제1절 홍타이지의 득세
대릉하와 몽골 공격|가중되는 압력|조선의 거부|명과 화친 중재 요구|조명관계의 실상
제2절 병자호란의 발발
홍타이지, 대한(大汗) 옥새 확보|황제 존호 참여 요구|전쟁 준비|홍타이지의 황제 즉위|명의 요동 수복 전략|언관들과 최명길의 대립|청군의 침략|강화 협상의 개시|국왕의 출성과 항복
제3절 호란과 조명관계
북경의 조선 사신|명 내부의 논의|명의 가도 포기|가도 공격과 조선|명군의 움직임
제4절 호란 직후 조청관계
징병 면제 요청|대신들의 혼인, 시녀 상납, 국왕의 책봉|포로의 속환과 귀화인의 송환|심양의 인질
제5절 조청관계와 일본 요소
홍타이지의 최초 요구|병자호란 직후|왜정자문의 개시|두 번째 왜정 자문

|제6장| 명청의 최후 결전과 조선

제1절 청의 조선 군사 동원
청의 징병 요구|웅도 정벌|국왕 입조의 요구|계속되는 징병 압력|징병에 대한 반대 여론|조선 수군의 동원|송산ㆍ금주 전투와 조선군
제2절 심양의 옥(獄)
1차 심양의 옥|명 수군의 접근|조선의 보고와 청의 조사|조ㆍ명의 비밀 접촉|2차 심양의 옥
제3절 조청관계의 기타 현안
소현세자의 귀근|심기원 모반사건|2단계 왜정자문
제4절 청군의 입관 이후
청군의 북경 점령과 조선 군대|세자와 대신들의 석방|남명과 일본

에필로그
연표
주요 인물 소개
참고문헌ㆍ주ㆍ찾아보기
총서 ‘知의회랑’을 기획하며
총서 ‘知의회랑’ 총목록

저자 소개 1

입시특급장학생으로 경희대학교에 입학해 영어영문학 학사를 마치고, 서울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민대학교 동아시아국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간 베이징대학 방문학자, 클레어몬트매케나칼리지(Claremont McKenna College)와 퍼시픽대학(University of the Pacific) 교환교수를 지냈으며, 국민대학교 글로벌인문ㆍ지역대학 학장을 역임했다. 초기 연구는 정치경제학 이론과 현대 중국 정치에 토대를 두었다. 이후 시야를 확장해 지난 20여 년간 전통 시기 동아시아 국제관계에 집중해왔다. 주요 저서로 중
입시특급장학생으로 경희대학교에 입학해 영어영문학 학사를 마치고, 서울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민대학교 동아시아국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간 베이징대학 방문학자, 클레어몬트매케나칼리지(Claremont McKenna College)와 퍼시픽대학(University of the Pacific) 교환교수를 지냈으며, 국민대학교 글로벌인문ㆍ지역대학 학장을 역임했다.
초기 연구는 정치경제학 이론과 현대 중국 정치에 토대를 두었다. 이후 시야를 확장해 지난 20여 년간 전통 시기 동아시아 국제관계에 집중해왔다. 주요 저서로 중국 초기 제국과 동아시아 국제질서 형성에 주목한 『중국, 대국의 신화: 중화제국 정치의 토대』(2015)와 한중일 최초의 전면전인 임진왜란을 국제관계의 시각에서 통사적으로 풀어나간 『임진왜란, 2년 전쟁 12년 논쟁』(2021)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3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960쪽 | 152*225*40mm
ISBN13
9791155507285

책 속으로

ㆍ오늘날 중국의 부상과 그에 대한 미국의 견제로 대외정책상의 어려운 선택에 직면한 복합적 상황은 명청 교체기인 17세기 초반에도 유사하게 확인된다. 명과 청의 경쟁 속에서 조선은 자국의 생존과 국익을 두고 치열한 외교ㆍ군사적 대응을 펼쳐야 했다. 외형상 조선은 두 차례 호란을 거쳐 청에 굴복했고, 백성과 국가의 자존을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견고한 지적 전통, 예의와 의리의 대외적 이미지, 원칙과 유연성을 갖춘 정치체제를 바탕으로 독자적 정치공동체로서 생존에 성공했다는 점 역시 인정되어야 한다. 조선의 정책은 대부분 단기적 성격을 띤 당면 과제 해결에 급급했을 뿐, 기존 질서에 대한 고정관념 탈피나 중장기적 권력관계의 변화를 모색하지 못했다. 그 결과가 대규모 피침과 굴욕이었기에, 병자호란은 어쩌면 ‘예정된 전쟁’이었는지도 모른다.
---「머리말」중에서

ㆍ17세기 전반 동아시아의 격변은 요동에서 누르하치의 등장과 여진의 통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진은 동아시아의 패권국이던 명의 통제를 벗어나 세력을 확장했고, 그 여파는 인접한 조선의 북방 경계와 대외관계에 직접적인 동요를 가져왔다. 16세기 후반 건주여진의 추장 누르하치는 명의 ‘이이치이(以夷制夷)’ 정책과 내부 혼란을 활용해 여진 제부족을 차례로 통합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명 조정은 누르하치의 세력 확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고, 조선 역시 북변의 방비 태세를 갖추기보다는 사태의 진행을 관망하거나 명의 움직임에 의존하는 태도를 보였다.
---「제1장 여진의 등장과 조명관계」중에서

ㆍ조선 조정은 후금의 군신 관계 요구와 칭제(稱帝)에 대해 격렬한 명분론적 반발을 일으켰다. 척화파는 명에 대한 의리와 성리학적 명분을 들어 청과의 전면전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주화파는 현실적인 국력 차이와 군사적 열세를 들어 유연한 대응을 주장했다. 그러나 도덕적 당위성과 명분론이 정국을 주도하면서 조선은 현실적인 방비책이나 중장기적 전쟁 대비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명분의 고수와 현실적 대응 역량의 부재라는 이극화된 구조 속에서, 조선은 스스로 외교적 선택의 폭을 좁혀버리고 말았다.
---「제5장 청의 수립과 병자호란」중에서

ㆍ강대국의 패권 경쟁 속에서 약소국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관성에 얽매이지 않는 의식적인 성찰과 중장기적 전략이 필수적이다. 특정 강대국과의 동맹이나 기존 질서에 대한 관성적 의존만으로는 다가오는 국가적 위기를 막을 수 없다. 명청 교체기 조선이 겪은 시련과 대응 과정은 오늘날 자국의 안보와 국익을 스스로 지키기 위한 자체적 방비 역량과 유연한 대외 전략이 얼마나 중요한지 유효한 외교적 통찰을 제공한다.
---「에필로그」중에서

출판사 리뷰

병자호란은 1636년 겨울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1636년 12월, 홍타이지가 이끄는 청군이 조선을 침략했다. 병자호란이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들어갔고, 조선은 끝내 성 밖으로 나가 항복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병자호란은 대개 이런 장면들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병자호란, 예정된 전쟁』은 바로 이 익숙한 장면들에서 질문을 거꾸로 돌린다. 병자호란은 왜 일어났는가. 그리고 조선은 그 전쟁을 피할 기회가 정말 없었는가.

이 책은 병자호란을 하나의 독립된 사건으로 다루지 않는다. 명에서 청으로 동아시아의 종주권이 교체되던 약 반세기의 거대한 흐름 속에 병자호란을 위치시킨다. 1600년대 초에서 1640년대 중반에 이르는 기간, 그 중심에는 누르하치의 성장, 후금의 건국, 명의 쇠퇴, 요동을 둘러싼 쟁패, 광해군과 인조 정권의 선택, 정묘호란, 홍타이지의 등장과 청의 수립, 그리고 병자호란이 차례로 놓인다. 책의 목차 역시 여진의 등장과 조명관계에서 시작해 후금의 도전, 요동 쟁패, 정묘호란, 청의 수립과 병자호란, 명청의 최후 결전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 책에서 병자호란은 ‘1636년 12월에 발발한 전쟁’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선택과 대응의 결과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명에서 청으로의 패권 교체가 두 세대에 걸쳐 진행되었음을 강조한다. 현실 변화는 느리게 진행되지만, 정치적 선택은 대개 당면한 문제에 대한 단기적 대응으로 이루어진다. 바로 이 간극에서 역사적 비극이 발생한다는 것이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누르하치가 등장했을 때, 조선은 이미 그를 보고 있었다

병자호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16세기 말 요동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당시 요동은 명ㆍ몽골ㆍ여진ㆍ조선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명은 원을 몰아낸 뒤 요동에 군사행정 체제를 구축하고 변경 너머의 여진 세력까지 직첩(職帖)과 교역을 통해 관리했다. 여진 세력은 하나의 통일된 국가가 아니라 해서여진ㆍ야인여진ㆍ건주여진 등 여러 세력으로 나뉘어 있었고, 그 내부에서도 끊임없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복잡한 공간에서 등장한 인물이 누르하치였다. 그는 주변 여진 세력을 하나씩 통합하면서 세력을 키워갔고, 그 움직임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있던 조선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함경도 지역의 ‘번호(藩胡)’를 둘러싼 문제와 압록강 일대의 인삼ㆍ교역 문제 등은 조선과 여진 사이 긴장을 높였다. 조선은 명과 여진 사이에서 독자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웠고, 명의 요동 당국에 중재를 요청하거나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상황을 탐지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명 역시 더 이상 조선을 일방적으로 보호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 시기에 이미 조선의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은 겹겹이 쌓이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여진 세력의 성장과 명의 쇠퇴가 진행되었고, 국내적으로는 광해군 즉위 이후 왕위 계승 문제와 당파 갈등, 계축옥사 등 정치적 혼란이 이어졌다. 게다가 조선은 일본과의 국교 재개를 추진하는 한편, 북방의 위협에도 대응해야 했다. 즉, 조선의 외교는 처음부터 명ㆍ후금ㆍ일본이라는 여러 변수들 사이에서 복잡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사르후전투와 광해군의 선택, ‘중립외교’라는 익숙한 이름을 다시 묻다

후금이 건국되고 명과의 충돌이 본격화되면서 조선의 선택지는 더욱 좁아졌다. 명은 무순(撫順) 함락 이후 조선에 병력과 군수 지원을 요구했고, 결국 1619년 사르후전투를 앞두고 대규모 조선군의 출정을 요구했다. 조선은 명과의 전통적 관계를 무시할 수도 없었지만, 후금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현실도 외면할 수 없었다. 책은 이 과정에서 원정 준비부터 조선군의 출정, 패전 소식, 그리고 이른바 ‘광해군의 밀지설(密旨說)’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복잡한 상황을 세밀하게 추적한다.

특히 이 책의 장점은 광해군의 대외정책을 단순히 ‘중립외교’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버리지 않는 데 있다. 명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조선군이 어떤 방식으로 출정했는지, 전쟁 이후 후금과 어떤 접촉이 이루어졌는지, 명과 후금 양쪽에서 조선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각각의 사료를 통해 살핀다. 실제로 저자는 당시 조선이 명과 후금 사이에서 관망했다는 의혹에 대응하기 위해, 명에 대한 의리와 여진에 대한 원한, 원정 참여 의지 등을 적극적으로 해명했던 정황까지 추적한다.

그러나 사르후전투 이후의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명은 조선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요동 방어를 위해 조선에 더 깊이 개입하려 했고, ‘조선 감호론’까지 등장했다. 조선에서는 이를 내정 간섭의 가능성이 있는 문제로 받아들였다. 동시에 후금 또한 조선에 접근하고 회유를 시도했다. 조선은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 수도, 다른 쪽과 단절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선택의 제약 자체를 국제정치의 조건으로 복원해낸다.

인조반정 이후, 외교의 선택지는 더 좁아졌다

1620년대에 들어서면서 요동의 상황은 더욱 빠르게 변했다. 누르하치 세력은 요동으로 진출했고, 명은 모문룡(毛文龍)을 비롯한 군사세력을 조선 인근에 배치했다. 조선은 명의 방어 전략과 후금의 압박 사이에 놓이게 되었다. 특히 모문룡의 진강(鎭江) 탈취와 가도(椵島) 진입, 명군의 조선 진출은 조선의 안보 부담을 크게 키웠다. 책은 이 과정에서 명의 요동 방어 전략과 조선의 대응을 함께 살핀다.

여기에 1623년 인조반정이 발생했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들어선 인조 정권은 명과의 관계를 더욱 중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그 결과 후금과의 관계는 점차 악화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친명정책’과 ‘친후금정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명은 여전히 조선에 군사적 지원과 협력을 요구했고, 후금은 조선이 자신들과 맺었던 관계의 성격을 문제 삼았다. 조선 내부에서도 외교적 현실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이 충돌했다.

1627년 정묘호란은 이러한 긴장이 실제 전쟁으로 폭발한 사건이었다. 후금군이 침입하고 조선은 강화를 선택했다. 하지만 전쟁은 끝났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세폐(歲幣)와 개시(開市), 포로 송환, 의례 문제, 모문룡 문제 등 새로운 현안이 계속해서 양국 관계를 압박했다. 특히 정묘호란 직후 처리된 여러 사안들은 훗날 병자호란의 갈등과도 연결되었다. 책은 정묘호란을 병자호란과 분리된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병자호란으로 이어지는 국제정치적 과정의 일부로 읽는다.

정묘호란은 끝이 아니라 병자호란의 전주곡이었다

정묘호란 이후 조선은 일단 후금과 관계를 유지했지만, 후금의 국제적 위상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었다. 홍타이지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후금의 대외정책은 더욱 적극적으로 변했고, 몽골과의 관계 및 명과의 전쟁을 통해 그 세력권은 확대되었다. 조선에 요구되는 것도 점차 많아졌다. 문제는 조선이 이를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가였다. 조선 내부에서는 후금과의 관계를 둘러싸고 강경론과 현실론이 충돌했다.

결정적 순간은 1636년에 찾아왔다. 홍타이지는 자신을 황제로 칭하고 조선에 그 존호를 인정하는 데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조선의 입장에서 이는 단순한 의례 문제가 아니었다. 기존의 명 중심 질서에서 조선이 차지하고 있던 위치를 다시 설정하라는 요구였기 때문이다. 조선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후금의 사신이 가져온 서한을 둘러싸고 갈등이 폭발했다. 태학생들이 후금 사신을 죽이고 서한을 불태워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국내의 반발도 거셌다.

그리고 홍타이지는 침략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홍타이지가 왜 침략했는가’라는 질문만이 아니다. 그때까지 조선은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저자는 사료를 통해 전쟁 직전까지 이어진 외교적 요구와 군사적 준비, 조선 내부의 논쟁, 명과 조선의 관계를 촘촘하게 연결한다. 그 결과 병자호란은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재난이라기보다, 오랜 기간 변화해온 국제정세와 그에 대한 반복적 대응이 마침내 한계에 도달한 사건으로 파악된다.

병자호란의 숨은 핵심 변수, ‘가도’의 명군

그런데 홍타이지가 조선을 침략한 것이 조선 때문만이었을까. 저자는 병자호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과 후금ㆍ청의 관계만이 아니라, 그사이에 놓여 있던 ‘가도(椵島, 동강진)’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누르하치가 심양과 요양을 차지하며 명과 본격적인 대결에 들어갈 무렵, 명의 장수 모문룡이 이끄는 군대가 조선 땅으로 들어왔다. 이후 요동의 전란을 피해 수많은 한인(漢人) 망명자가 유입되면서 가도는 수만 명의 명군이 주둔하는 군사 거점으로 변모했다. 조선 앞바다에 명의 군사력이 자리 잡은 것이다.

가도의 존재는 조선과 후금 사이의 갈등을 지속적으로 증폭시켰다. 후금은 조선에 모문룡의 군사 활동을 막고, 가도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조선은 명과의 관계를 고려하면서도 가도의 명군과 망명자들에게 식량과 선박 등을 지원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후금의 의심과 압박은 더욱 커졌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가도가 중요한 문제로 반복해서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홍타이지는 병자호란 당시 조선의 ‘죄상’을 열거하면서 가도 명군에 대한 식량ㆍ병선 지원과 한인들의 가도 망명을 조선의 책임으로 지목했다. 저자는 “홍타이지는 가도의 존재를―조선이 판단했던 것보다―심각하게 간주했던 것”이라고 지적한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병자호란이 끝난 뒤의 행보다. 홍타이지는 조선을 굴복시킨 뒤 귀환하면서 가도에 대한 공격을 이어갔고, 조선군까지 동원해 결국 명군의 거점을 제거했다. 가도의 소멸은 조선과 명 사이에 남아 있던 마지막 군사적 연결고리를 끊어놓았고, 이후 조선은 청이 주도하는 새로운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으로 완전히 편입되었다. 저자는 이를 통해 병자호란을 단순히 ‘조선의 대외정책 실패’나 ‘명분론과 현실론의 충돌’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한반도 주변에 배치된 외국 군대와 군사 거점이 장기적으로 어떤 전략적 의미를 갖는지 묻는 것, 그것이 『병자호란, 예정된 전쟁』이 가도에 주목하는 이유다.

‘예정된 전쟁’이라는 결론은 운명론이 아니다

그렇다면 병자호란은 정말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까. 저자가 말하는 ‘예정’은 전쟁이 처음부터 피할 수 없었다는 운명론의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전쟁을 피할 가능성이 존재했던 만큼, 그 가능성이 어떻게 점차 사라졌는지를 살펴보자는 뜻에 가깝다.

저자는 조선이 가진 지적ㆍ물적 자원이 결코 전혀 활용되지 않았다고 보지 않는다. 침략을 피하려는 노력은 실제로 여러 차례 이루어졌고 때로는 성공하기도 했다. 조선은 외교적 소통과 논리를 발전시켰으며, 강대국에 맞서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원칙을 중시하면서도 온건한 세력이 공존할 수 있었던 정치체제의 유연성, 국내적 분열에도 외부적으로 결속을 보여준 정치적 역량 역시 조선의 생존에 기여했다. 저자가 보기에 조선의 역사는 단순한 ‘무능한 국가의 실패’로만 설명될 수 없다.

그럼에도 최종 결과는 두 차례의 호란과 국왕의 항복이었다. 저자는 그 이유를 정치에 내재된 ‘관성’에서 찾는다. 현실 변화는 느리게 진행되지만, 정치적 결정은 눈앞의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오늘의 합리적 선택이 내일의 최선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특히 약소국은 국제적 권력관계에 의해 선택의 자율성 자체가 제약된다. 기존 질서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나고, 변화하는 상황을 중장기적으로 바라보며, 자국의 위상을 높이는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지만, 조선은 그러한 조건들을 충분히 충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조선은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는 상당한 역량을 발휘했지만, 장기적인 권력관계의 변화까지 적극적으로 모색하지는 못했다. 그 결과 대규모 피침과 굴욕을 피하지 못했다. 다가오는 운명을 바꾸기에는 단기적 대응의 연속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병자호란을 ‘예정된 전쟁’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한 편의 전쟁사가 아니라, 국가의 선택을 묻는 역사

『병자호란, 예정된 전쟁』의 또 다른 특징은 서술 방식이다. 이 책은 특정 이론이나 가설을 먼저 세워놓고 사료를 그 틀에 맞추는 방식으로 쓰이지 않았다. 저자는 각국의 실록을 비롯해 외교 자료집, 사신들의 보고서, 개인 문집 등을 폭넓게 분석하고 교차 검증하면서 당시 사건을 재구성한다. 따라서 책의 서사는 단순한 연대기적 사건 나열에 머물지 않는다. 한 사건이 다음 사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조선의 선택이 명과 후금에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국제 정세 변화가 다시 조선의 국내 정치에 어떤 압력을 가했는지를 연결해 보여준다.

실제로 책의 구성은 이러한 접근을 잘 보여준다. 제1장에서는 16세기 말 요동과 여진의 등장, 누르하치의 성장, 광해군 즉위와 국내외 상황을 살피고, 제2장에서는 후금의 건국과 명의 파병 요구, 사르후전투, 전후 명ㆍ후금과의 관계를 다룬다. 제3장에서는 누르하치의 요동 진출과 명의 방어 전략, 인조반정의 파장을 추적한다. 이어 제4장에서 정묘호란을 국제정치의 맥락에서 다루고, 제5장에서는 홍타이지의 득세와 병자호란을, 제6장에서는 병자호란 이후 청의 조선 군사 동원과 명청 최후 결전까지 조선의 대응을 살핀다.

특히 병자호란 이후의 이야기를 상당한 분량으로 다룬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청의 징병 요구와 조선군의 동원, 송산ㆍ금주 전투, 심양의 옥(獄), 소현세자와 인질 문제, 포로의 속환과 귀화인의 송환, 그리고 청군의 북경 점령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이어진다. 병자호란을 ‘항복으로 끝난 전쟁’이 아니라 명청 교체라는 거대한 역사적 전환 속에서 조선의 생존 방식이 다시 결정되는 과정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400년 전의 선택은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저자는 머리말에서 오늘날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견제, 한미동맹, 남북 분단 등이 얽힌 현재의 국제 환경을 언급한다. 오늘날 한국 역시 대외정책에서 쉽지 않은 선택에 직면해 있으며, 국내 정치의 이념적 갈등과 국론 분열이 장기적 외교정책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복합적 상황이 17세기 초 명과 후금의 경쟁 속에서 조선이 처했던 상황과 일정한 유사성을 갖는다고 본다.

물론 저자는 17세기 조선과 오늘날 대한민국을 단순하게 등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책의 의미는 특정한 역사적 교훈을 현재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데 있지 않다. 그보다 국제질서가 바뀌는 순간 국가의 정책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기존 질서에 대한 믿음은 언제 현실 인식의 장애물이 되는가, 당장의 위기를 넘기는 것과 장기적인 국가전략을 세우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병자호란, 예정된 전쟁』은 그래서 병자호란에 관한 또 한 권의 전쟁사가 아니다. 이 책은 한 국가가 거대한 국제질서의 변화 앞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놓치며, 어떤 선택을 반복하는지를 추적하는 17세기 동아시아 국제정치사이자 조선의 대외정책 통사다. 그리고 독자는 책장을 덮으며 결국 하나의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병자호란은 정말 예정된 전쟁이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예정된 것’이라고 부르는 역사적 결과는 수많은 선택이 쌓인 끝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임진왜란』에서 『병자호란』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국제관계사

저자의 전작 『임진왜란, 2년 전쟁 17년 논쟁』이 임진왜란ㆍ정유재란 당시 조명관계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 분석했다면, 이번 책은 그 시선을 17세기 초 명청 교체기로 이어간다. 전작에서 확인한 조공책봉 질서와 국가이익 사이의 긴장은 명청 교체기에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저자는 명의 힘이 약화하면서 조선에 일정한 자율성이 확대되었지만, 그만큼 조선 스스로의 대응 능력이 중요해졌다고 본다.

그 결과 『병자호란, 예정된 전쟁』은 전작과 함께 읽을 때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룬다. 임진왜란으로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균열을 살펴보고, 병자호란을 통해 그 질서가 명에서 청으로 완전히 교체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다. 저자의 동아시아 국제관계사 연구가 한층 넓은 시야로 확장된 셈이다.

이 책의 메시지는 과거 역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 미ㆍ중 대립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패권 경쟁과 불확실한 국제 정세는 17세기 초 명청 교체기의 복잡했던 외교 환경과 상당히 유사한 양상을 띤다. 내정 분열과 장기 전략 부재 속에 당면 현안에만 응급처치 식으로 대응하다 피침의 파국을 맞았던 400년 전 조선의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서늘한 경고와 귀중한 교훈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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