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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같은 너를 어이 묻으랴
이승수 편역
태학사 200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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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학산문선

책소개

저자 소개

편역자 : 이승수
경기도 광주생. 일연과 김시습, 이태준과 토스토예프스키를 신앙처럼 숭배한다. 환상·광기·은자·여성·공간 등에 관심이 많아 문학을 통해 이들과 만나고 싶어하며, 번역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일을 벌이기는 잘하지만 수습이 약하고, 문제를 통째로 해명하려는 욕심 때문에 작은 것을 못 보는 경우가 많다. 임어당의 {소동파평전}, E. H. 카아의 {또스또예프스키}, 슈테판 츠바이크의 {천재와 광기} 같은 평전을 쓰는 것이 꿈이며, 청둥오리나 연어의 여행을 다룬 동화를 쓰고 싶은 소망도 품고 있다. 저서로 {삼연三淵 김시습金昌翕 연구硏究}, 역서로 {국역 졸수재집}이 있다. 현재 한양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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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5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18쪽 | 128*188*30mm
ISBN13
9788976266590

책 속으로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단 하나, 기다리는 시간은 한없이 길고 피어 있는 시간은 턱없이 짧기 때문이다. 죽음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그 자체다. 이 어둠이 빛을 낳는다. 인간의 삶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쉬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 p.머리말 중에서

출판사 리뷰

사람들은 새 천년을 맞아 디지털·인터넷·사이버·닷컴과 같은 신조어와 그것이 파생하는 구호의 홍수 가운데서 생활이 더욱 편리하고 좋아질 것이라고 느끼면서도 공허한 마음을 가눌 수 없는 것은 우리의 궁극적인 화두가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디지털의 세계가 발전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따스한 감정은 메말라 형해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속도감과 일정한 명령이 모든 일을 좌지우지하면 할수록 한 알의 콩도 반쪽씩 나누어 먹던 인정 넘치는 삶은 사라질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예전의 아름다운 인정어린 이야기는 민속박물관에나 가야 보게 되지 않을지. 이러한 때에 우리 조상들은 부자간에, 부부간에, 형제간에, 친구간에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살았을까를 이 가정의 달을 맞아 되돌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제문은 고인에게 제사를 지낼 때 낭독되는 글로 유세차維歲次로 시작해서 상향尙饗으로 마무리되는 격식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먼 길을 떠나는데 어찌 술 한 잔 따라주지 않을 것이며, 한 마디 말이 없을 것인가? 또 육신이 멀어졌다고 어찌 그를 잊을 수 있는가? 그래서 분향하여 신을 부르고 한 잔 술을 권한 뒤 제문을 읽는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말하기도 하고, 그간의 경위를 알려주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고인을 부르며 직접 말을 건넨다. 그래서 분위기가 자연 격절激切해지기 쉽다. 이렇게 해서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 감응하는 것이다. 정신적으로는 계속 공존하는 것이다.

묘지명과 묘비명은 후세에 전할 목적으로 고인의 출신 내력과 생시의 행적을 돌에 새기는 글로, 묘지명은 장례식 때 광중에 넣고 묘비명은 비석에 새겨 무덤 앞에 세운다. 이 중에서 묘지명은 죽음의 시점과 멀지 않기 때문에 묘비명에 비해 내용이 상대적으로 애절하다. 광지壙誌나 광명壙銘이라 하기도 한다. 제문이 죽은 자와의 직접 대화를 통해 죽은 자와 공존한다면, 묘지명과 묘비명은 기억을 통한 영속을 꾀한다. 과거는 지속적으로 환기되어 나오고 현재에 함께 있다. 제문과 묘지명은 모두 제의祭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사라진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고 과거와의 공존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이번에 태학사에서 나온 {옥 같은 너를 어이 묻으랴}는 이러한 제문과 묘지명·묘비명의 글들 가운데서 한양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는 이승수가 가려 뽑아 옮긴 글들을 묶어 낸 것이다.

죽음은 삶에 균열을 일으키고 상처를 입힌다. 밤, 상처, 모든 분리, 절망은 언제나 죽음의 그림자와 함께 우리에게 다가온다. 삶은 본질적으로 고苦이고 죄罪라고 하지만, 더 근원적으로 말한다면 삶은 생래적으로 죽음의 그림자이고, 죽음이 준 상처이고, 결국은 죽음이다. 삶에는 필연적으로 누적되어 전해진, 죽음이 가한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고 거두어지지 않는 그림자가 있다. 모든 존재는 사라지며, 그래서 허무하다. 그렇기 때문에 소중하고 아름답다. 죽음은 삶을 불안과 공포의 격랑에 휩싸이게 했지만, 아름다움과 행복을 낳기도 했다. 틈과 균열이 오히려 존재 사이의 일체감을 회복시켜 준다. 남은 자와 사라진 자 사이의 일체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리움'이다. 이 그리움은 끊임없이 죽은 자를 불러내어 괴리감을 확인하고, 이어 생전에도 이루지 못했던 대화와 합일을 시도한다. 그러니 삶은 죽음이고, 죽음은 그리움이고, 그리움은 아름다움이며, 아름다움은 다시 삶인 셈이다.

이 책에는 죽은 자를 애도하고 기억하는 우리 선인들의 글 43편을 한 자리에 모았다. 작가는 고려 중기의 이규보李奎報에서부터 조선조 말 이건창李健昌에 이르기까지 35명이다. 그 가운데 박지원朴趾源과 정약용丁若鏞의 글이 세 편씩이고, 상진, 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홍세태洪世泰의 글이 각각 두 편이다. 이들에 대한 외적인 정보는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는 선에서 작가를 소개하였다.
문체나 대상을 막론하고 이들 글에는 모두 죽은 자를 전송하고 회고하는 엄숙함이 배어 있다. 분위기를 엄숙하게 하고 그리움을 자아내는 것은 글이 지니는 주술적 힘이다. 오늘날 세상은 속도계로 가리키지 못할 정도로 급속도로 변하고 있고, 사람들 또한 지나간 것에 연연해하지 않으려 한다. 따라서 지나간 것, 죽음은 한없이 가볍고 그리움이나 회고는 오히려 속도를 내는 데 장애가 된다. 그러니 사라진 소중한 것들이 가치 있게 기억되지 못한다. 이는 그리움의 지수가 낮아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사라진 존재들에 매여서는 안 되겠지만, 그리움의 공기 층이 엷어지면서는 자꾸 살갗이 가렵다. 바쁘기만 한 세상이지만 때때로 눈감고 그리움에 잠겨볼 일이다
.
여기 실은 40여 편의 글들은 우회하여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룬 것도 아니고, 철학적인 탐색이나 과학적인 접근으로 지어진 것도 아니다. 실제 삶에서 부딪친 죽음을 다루었기에, 편안하게 감상하거나 문장의 미적인 성취를 따지기 어려울 만큼 분위기가 절박하고 무겁다. 젊은 시절 레닌은 체홉의 [6호실]을 읽고 문득 자신이 정신병동 6호실에 갇힌 듯한 착각에 두려워져 문밖으로 뛰쳐나갔다고 한다. 여기 이 글들도 아마 그런 느낌을 줄지도 모르겠다. 이 글들이 가족이나 스승, 벗 등 사라진 존재들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또 살아있는 존재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나아가서 삶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한국문학사에서 여기 소개한 작품들은 빙산의 일각이다. 더 다양하고 많은 작품들이 발굴·소개되면 '한국문학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테마의 윤곽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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