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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대나무
소동파
태학사 200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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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학산문선

책소개

목차

글쓰기
나의 문장
부자들의 농사짓기
교활한 쥐
호랑이가 두려워하는 상대
구양공 영전에
구양수의 공
해에 대한 비유
돌종을 찾아서
마음속의 대나무
나의 벗, 문여가
왕문보와 헤어지며
황주의 안국사
달밤 뱃놀이

(중략)

기쁨의 비
어디를 간들 즐겁지 않으리
사물을 좋아하는 방법
아기를 살려주세요
아내를 위한 묘지명
당나라 '서법육대가'의 글씨
조조가 화를 당한 이유
범증은 향우를 언제 떠났어야 했을까
노인이 장자방에게 심부름을 시킨 이유

원문

저자 소개 1

蘇東坡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 이름은 식(軾)이며, 1036년 중국 사천성에서 태어났다. 부친 소순(蘇洵), 아우 소철(蘇轍)과 더불어 ‘삼소(三蘇)’라 불린다. 송나라 제1의 시인이며, 시, 사(詞), 산문, 부(賦), 서예, 그림 등 여러 장르에 모두 뛰어나 각기 시대의 최고봉으로, 문장에 있어서도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22세에 진사에 급제하고, 구양수(歐陽修)에게 인정을 받아 문단에 등장하였고,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이 실시되자 ‘구법당(舊法黨)’에 속했던 그는 지방관으로 전출되었다. 그의 나이 44세에 “독서가 만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 이름은 식(軾)이며, 1036년 중국 사천성에서 태어났다. 부친 소순(蘇洵), 아우 소철(蘇轍)과 더불어 ‘삼소(三蘇)’라 불린다. 송나라 제1의 시인이며, 시, 사(詞), 산문, 부(賦), 서예, 그림 등 여러 장르에 모두 뛰어나 각기 시대의 최고봉으로, 문장에 있어서도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22세에 진사에 급제하고, 구양수(歐陽修)에게 인정을 받아 문단에 등장하였고,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이 실시되자 ‘구법당(舊法黨)’에 속했던 그는 지방관으로 전출되었다. 그의 나이 44세에 “독서가 만 권에 달하여도 율(律)은 읽지 않는다”는 말이 빌미가 된 필화사건으로 감옥에 갇혔고, 호북성 황주(黃州)로 유배되었다가, 50세 되던 해 구법당이 득세하자 그는 승진을 계속하여 57세에 병부상서(兵部尙書), 예부상서(禮部尙書) 등의 고관(高官)을 역임하였다. 황태후(皇太后)의 죽음을 계기로 신법당이 다시 세력을 잡자 광동성 혜주(惠州)와 중국 최남단인 해남도(海南島)로 유배되었다가 귀양살이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강소성 상주(常州)에서 1101년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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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김병애 金炳愛
경기 여주 출생으로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민족문화추진회에서 한문을 수학했으며, 서울시립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논문으로, 「소식산문蘇軾散文의 문예미연구」, 「허균許筠의 고문관연구」 등이 있으며, 현재 서울시립대 등에 출강한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78쪽 | 128*188*20mm
ISBN13
9788976267221

출판사 리뷰

중국의 대문호 소동파(1036~1101)는 11세기 중국사회의 관료이자 문인이며, 배운 대로 실천하려 애썼던 양심적인 지식인이었다. 타고난 문재文才와 호방한 성정性情으로 불교와 도교, 유교를 넘나드는 분방한 글쓰기를 통해 드넓은 정신의 자유로운 경계를 펼쳐 보인 그는, 참으로 무어라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큰 숲이다. 특히 진솔하면서도 서정적 감염력이 넘치는 그의 글은 후대 소품산문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소동파의 진솔한 산문들을 골라 번역하여 묶어낸 책 『마음속의 대나무』가 도서출판 태학사에서 나왔다.

소동파는 서법과 그림에서도 남다른 재주가 있어 시서화詩書畵의 원리를 꿰뚫었다. 이러한 원리를 「마음속의 대나무」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대나무를 그릴 때에는 반드시 먼저 마음속에 대나무를 완성하고 나서 붓을 들고 자세히 바라보아야 그리고자 하는 것이 보일 것이니 그 때에 급히 서둘러서 붓을 휘둘러 곧바로 그려내어 보인 것을 따라잡아야 한다. 마치 토끼가 나옴에 새매가 쏜살같이 내려와 채가듯 해야 할 것이니 조금이라도 늦추면 토끼는 이미 달아나 버릴 것이다.

이 묘사법은 동파회화의 중심이론이자 주된 창작이론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작자의 창작영감이 번뜩일 때 사물을 잘 포착하여 꼭 맞는 정경을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소동파는 유학儒學의 질서와 불학佛學의 섭리와 노장老莊의 우주관을 이해하고 이를 조화롭게 운용하였다. 한평생 수 차례의 좌천으로 인해 여러 고을을 전전하며 생활했는데, 그때마다 각 지역의 구전설화나 민간주술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보고 읽고 기억하여 자신의 예술세계를 재창조하였다. 다양한 사상과 방식이 동파의 내면에 흘러 들어가 녹고 담금질되어 새로운 것으로 탄생되니 그의 문사는 무궁무진하며, 호방한 기질과 초연한 태도가 넘쳐난다.
만물은 모두 볼 만한 것이 있다. 진실로 볼 만한 것이 있다면 모두 즐거울 만한 것이 있는 것이니 굳이 괴이하거나 빼어날 필요는 없다. 지게미를 먹거나 멀건 술을 먹거나 간에 모두 취할 수 있고, 과일이나 채소나 초목도 먹으면 다 배부를 수 있으니 이런 것을 미루어 보건대 우리들이 어디를 간들 즐겁지 않으리오. --- 「어디를 간들 즐겁지 않으리超然臺記」

본래 문체상의 ‘기記’란 단순히 일을 기록한 문장을 일컫는다. 그러나 한유韓愈 이래로 점차 기문記文에 의론이 담겨 있고, 구양수歐陽修, 소동파 이후로는 점차 의론이 많아졌다. 이러한 변화의 양상이 ‘기문記文의 꽃’임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본 책에 수록된 몇 편의 기문에서도 글의 목적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사물의 명칭이나 주인의 성향을 간파하여 알맞은 철리哲理를 빚어내는 특징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의 두 글은 서로 다른 기문이기는 하지만 두 작품을 함께 보면 두 배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군자라면, 사물에다 자기의 뜻을 잠시 붙일 수는 있지만 사물에다 자기의 뜻을 머무르게 해서는 안된다. 사물에다 뜻을 붙이는 것은 비록 미물微物이라도 족히 즐거움이 될 수 있고, 보물寶物이라도 병통이 되기에 부족하지만, 사물에다 뜻을 머무르게 한다면 비록 미물이라도 병통이 되기에 족하고, 보물이라도 즐거움이 되기에 부족하다. --- 「사물을 좋아하는 방법寶繪堂記」

사람의 이목을 이목을 즐겁게 하고 쓰기에도 적당하며 써도 닳지 않고 취해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 어진 자와 불초한 자가 각각 그 재주대로 얻고, 仁者와 智者도 각각 분수대로 보니, 재주와 분수가 같지는 않으나 탐구하고자 함에 얻어내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것은 책이다.
내 벗인 이공택李公擇은 젊었을 때에 여산廬山의 오로봉五老峰 아래에 있는 백석암의 절집에서 독서하였다. 공택이 떠난 뒤 산중의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여 그가 묵던 곳을 ‘이씨산방’이라 하였는데, 이곳에 보관된 책이 9천여 권이나 된다. 공택은 이미 물을 건너 가 근원을 탐색하고 꽃과 열매를 따고 뽀개어 속 맛을 씹어 자기 것으로 삼은 자다. 공택이 나에게 기문記文을 써주기를 구하기에 곧 이런 말을 하여, 후학들로 하여금 옛날 군자들이 책을 보기 어려웠던 사정과 오늘날 학자들이 책이 있어도 읽지 않는 애석함을 알게 하노라. --- 「책李氏山房藏書記」

소동파의 다양한 문학의 마당에는 재미난 우화를 소재로 한 작품들도 많이 있다. 그 가운데 서랍 속에 갇혀 있던 쥐가 버젓이 사람 눈을 속이고 교묘하게 탈출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하여, 사람으로서 쥐의 계책에 빠진 것은, 생각이 전일하지 못해서라는 경계를 일깨운, 「교활한 쥐」나, 눈으로 ‘해’를 볼 수 없는 소경이, 남의 설명만 듣고 사물을 잘못 인식하는 사례를 들어, 그릇된 학문경향을 경계한 「해에 대한 비유」 등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 슿 소품들이다.

사람이 천금이나 되는 귀한 구슬을 부수는 데에는 꼼짝 않고 있을 수 있으나, 하찮은 가마솥이 깨짐에는 놀라 소리지르지 않을 수 없으며, 사나운 호랑이를 맨 손으로 잡을 수는 있으나, 벌이나 전갈에는 얼굴 색이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생각이 전일하지 못한 데에서 오는 병폐다. --- 「교활한 쥐」

나면서부터 눈이 먼 자가 해를 알지 못하여 눈이 온전한 자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이가 “해는 쟁반처럼 생겼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소경이 쟁반을 두드려 소리가 남을 알고는, 종소리를 듣고 해라고 생각했지요. 또 어떤 이가 “해의 빛은 촛불과 같다”고 말해주자, 소경은 초를 만져보고 모양을 알아차리고는 피리를 더듬어보고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해는 종이나 피리하고는 다릅니다. 그러나 소경은 다른 점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 까닭은 한 번도 해를 본 적이 없으면서 남에게서 듣고 알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 「해에 대한 비유」

소동파의 의론산문은 특히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다. 당시 구양수는 글자 수를 맞춰가며 부화浮華한 글자를 늘여 놓는 문장틀, 이른바 변려문의 풍조에 과감히 반기를 들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담아낼 수 있는 글을 짓도록 새로운 문풍을 조성하고 있는 터였다. 이러한 시대조류에 부응하여 소동파의 의론문들은 구양수의 눈에 띄었고 구양수의 격려와 동파 자신의 필력으로 그의 의론산문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아낌을 받고 있다. 특히, 「조조晁錯가 화를 당한 이유」, 「범증은 항우를 언제 떠났어야 했을까」, 「노인이 장자방에게 심부름을 시킨 이유 留侯論」 등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새로운 시각의 변론을 폄으로써 교훈을 논리적으로 시사하는 효과를 안고 있다.

동파는 이태백과 도연명을 사랑한 시인이었다. 특기할 사실은 44세(황주 유배시기)를 전후하여 앞서는 이태백에, 뒤에는 도연명에 심취했다는 것이다. 이는 동파의 성정이 본래 명쾌 활달하여 웅장한 절개와 충천하는 기상이 거침없는 이태백의 기질과 동류였음이고, 뒤에는 내면적 자기성찰을 통해 더욱 성숙하고 경건한 수렴의 변모가 더해졌음이다. 너무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달밤 뱃놀이赤壁賦」의 초연함은 이 점을 잘 반영하고 있다.

흰 이슬이 강물을 가로지르고 물빛은 하늘에 접해 있네. 한 조각 작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아득히 너른 바다를 흘러간다. 하도 넓어 허공에 의지한 듯 바람을 탄 듯 멈출 곳을 모르겠으며, 두둥실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 돋아 신선세계에 오르는 듯하더라.

동파는 호방한 기질로 방해와 구속을 뛰어넘어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폭넓은 사변과 깊은 성찰로 자아와 인생을 뒤돌아보며 참된 의미를 노래하였다. 이러한 향내나는 좋은 글들을 이 산문선에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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