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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대의 명인, 기인
가객 송실솔 칼의 명인, 벙어리 신씨 의협심 많은 고지기 장복선 글품팔이 유광억 무당을 혼내준 최생원 2. 혀가 달린 글 흰 봉선화야 너는 어이 희어서 선생, 세상의 그물을 조심하시오 개구리 울음에도 감정이 들어있나 가을의 벌레소리 어리석은 벼룩아 죽은 벼룩이 꿈에 나타나다 나비가 물에 빠져 파닥이는구나 거울에게 묻는다 족집게 선생 3. 미적취향과 세계의 인식 책에 취하다 바다를 본 기억 신기루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송광사 연초향기와 향연기 지방언어에 대한 소논문 시장 4. 내가 사는 세상은 물의 나라 사당패이야기 시장의 간교한 놈들 오이에 대한 소논문 기생 가련이 한 밤에 통곡한 까닭은 걸인의 행패를 물리친 후덕한 성진사 이놈 고양이야 5. 아아, 조선의 여성이여 사도세자의 사랑을 받은 여인 살아있는 열녀 다섯 아들의 어머니 필영은 억울하옵니다 심생의 사랑 이하 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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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말에 이르면 경험적 사실의 일회적 진실과 그 아름다움에 눈을 뜬, 그래서 감정과 신념을 엄격하게 조정하다보면 결국 자신의 개성을 훼손시키는 것이란 사실을 자각한 일군의 작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문체반정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다. 여기에 이르러 지금까지의 문법, 문체, 방식, 투는 이지러지고 고통의 비명을 지르게 된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연암 박지원과 더불어 산문 문체의 모든 형식들을 이지러뜨리고 자신의 감정과 신념을 보다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방법을 실험한 사람이 이옥李鈺이다. 그는 과거에 대비해서 연습하던 '부賦'도 산문의 문체로 훌륭하게 부활시켰으며, 일반 민중들이 관청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소지(장첩狀牒)도 인간관계의 실상을 반영하는 허구적 요소를 지닌 산문으로 멋지게 사용하였다. 불경의 어조를 패러디하여 자신의 인생관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그는 봉건사회의 질곡에서 벗어나 참다운 개성을 글 속에 담아내려고 하였던 실험적 작가였던 것이다. 이옥에게는 자기의 글쓰기가 곧 현실사회에 유효하다고 전제하는 교조적 태도가 나타나지 않는다. 자신만의 감정을 표출하고 그것으로 자족하고 마는 글쟁이의 사고방식도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문인의 존재가 조선사회에 등장하였음을 볼 수 있다. 산문은 예리한 관찰력에서 나온다. 거기에는 관심이 있어야 한다. 관심은 사물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주변의 사물을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이 백성들의 어려움을 보게 하고, 번민하게 하고, 애정을 가지게 하고, 글을 쓰게 한다. 가슴 속에서 타는 듯한 심정을 누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옥의 산문에서 이러한 이옥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다. 그래서 이옥은 글을 쓴다는 것은 '근심을 전이하는 행위'와 같다고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내 친구 가운데 근심이 많아서 본시 술을 좋아하는 자가 있었다. …… '나는 근심스런 몸으로 근심스런 땅에 거처하고 근심스런 때를 만났다. 마음이 근심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마음이 몸에 있으면 몸을 근심하고, 마음이 처소에 있으면 처소를 근심하고, 마음이 상황에 있으면 상황을 근심하는 것이니, 마음이 있는 곳에 근심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그 마음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근심은 따라 오지 않을 수 있다. 지금 내가 술을 마시고 있는데, 술병을 들어 찰찰 따르면 마음이 술병에 있고, 잔을 잡고서 넘칠까 조심하면 마음이 잔에 있고, 안주를 집고서 목구멍에 넣으면 마음이 안주에 있고, 객에게 잔을 권하면서 나이를 고려하면 마음이 객에게 있다. 손을 뻗어 술병을 잡을 때부터 입술에 남은 술을 훔치는 때에 이르기까지, 잠깐 사이라도 근심이 없게 된다. 몸을 근심하는 근심도, 처지를 근심하는 근심도, 닥친 상황을 근심하는 근심도 없다. 바로 이것이 술을 마심으로써 근심을 잊는 방도요, 내가 술을 많이 마시는 까닭이다.' 나는 그의 말을 옳다고 여기되, 그의 실정을 슬퍼했다. 아아! 내가 봉성에서 글을 쓴 것도 또한 친구가 술을 마시는 것과 같은 것이었나 보다." 또한 우리는 이옥의 글에서 안톤 시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에 나오는 장면을 패러디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뉴월의 장의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바이얼릿 빛과 흑색과 회색의 빛깔들. 둔한 종소리. 바이올린 G현. 가을밭에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진 비둘기의 털. 자동차에 앉은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창의 작은 구멍을 통해서 바깥 저자의 광경을 엿보았다. … 소와 송아지를 몰고 오는 자. 두 마리 소를 끌고 오는 자. 닭을 안고 오는 자. 팔초어(문어)를 끌고 오는 자. 돼지의 네 다리를 묶어서 메고 오는 자. 청어를 묶어서 오는 자. 북어를 안고 오는 자.…"(『선생, 세상의 그물을 조심하시오』의 「시장」) 온전한 문장도 아닌, 명사구의 모음으로 이처럼 시장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낼 수 있는 힘은 예리한 관찰에서 나오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는 또 방언과 속어를 글 속에 사용하였다. 남들은 그것을 두고 글의 병통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가 방언과 속어를 사용한 것은 생경하고 껄끄러운 글쓰기를 배격하고 자연스러운 행문行文을 추구한 결과다. 그는 글쓰기 방법을 여러 가지로 실험하여, 규범적 세계로부터 벗어나고픈 지향의식을 담아내었다.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면서 디테일의 묘사와 섬세한 감정의 표출에 주력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역사적 인식을 고의로 배제한 글쓰기를 통하여 세계의 인식에서 고정성·규범성을 탈피하려는 해체적 방법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송광사」라는 글이 그러한 글이다. 이 책을 통하여 독자들은 이옥이라는 한 인간이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기이한 생각과 감정을 마치 누에고치가 실을 토하듯 토해내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